소설리스트

〈 52화 〉또 다른 문제 (52/72)



〈 52화 〉또 다른 문제

세하는 기가 막혔다.


‘살다 보니 고슴도치가 말을 하는 꼴을 보네.’

하지만 사람이 알아들을 말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보고 말하고 있으니 세하는 이를 지나칠 수 없었다.

“알았다. 혹시 케나아찰 계에서 온 건가?”


세하가 손을 뻗으며 묻자 그 작은 고슴도치는 갑자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기 시작했다.

“흐흑! 제대로 찾아온 거군요! 감사합니다!”
-마스터. 너무 가여운데요.

마치 설치류 인형 같은 존재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하도 이상스레 마음이 동하는 것 같았다.

“너 이름이 뭐냐?”
“노타라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전한 곳에서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노타라고 밝힌 존재는 이제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그러니까 케나아찰 계의 왕자라는 겁니까?”

알페렌 중 소년의 음성이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게다가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은 마그티스와 그 호위 프로스 거기에 린시지오의 벨레토르 후작까지 와 있었다.


“노... 놀랍네요.”


그리고 뜻밖에도 회의 장소를 제공하게 된 레이린은 이 인물들의 면면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일단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협회장님에게 보고야 드렸지만 일단 이렇게 맡기시더라고.”

류한호는 엑펠트와 이차원에 대해서는 거의 세하에게 전권을 맡기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레이린은 혼란해하면서도 노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저기... 노타 왕자님. 엑펠트가 케나아찰 계에 얼마나 퍼져 있나요?”


비록 햄스터가 떠오를 정도로 작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레이린은 노타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러자 노타는 감격해하며 답했다.


“고마워요. 지금 전 세계의 9할 정도가 엑펠트에게 점령을 당했어요. 원래 마그티스 공의 연락을 받고 우리도 대표를 보내려고 했었지만 중간에 당해버렸어요. 흐흑.......”

맑은 소년의 음성으로 노타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했다라. 그럼 그때 헤러커 놈이  짓인가?’

세하는 부산에서 이차원의 대표들과 회의를 할 때 모습을 드러냈던 가시 거인을 기억했다.

‘거의 융합체에 가까운 상태에서 처리됐고  뒤에 헤러커가 나타났었지. 케나아찰은 그때 이미 망한 상태였구나.’


세하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렀을 때 다른 인물들은 노타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린시지오는 이제 엑펠트와 싸워볼만하게 됐고 저를 대표로 보낼 정도지만 케나아찰은 너무 심각하군요.”


벨레토르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그티스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 파흐트 계도 그리 사정이 좋진 않다. 얼마 전 엘파타르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6할 정도가 엑펠트에게 점령당했다고 한다.”
“.......”

세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어디부터 풀어야 되는 거지?’


슈타크카이트와 린시지오는 이제 각자의 차원에서 엑펠트와 백중세에 접어들었고 다른  차원은 밀리는 판국이었다.

‘단순히 쳐들어오는 엑펠트만 박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차원들까지 엮여서 머리 아프군.’

세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노타는 더욱 더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이곳 지구에 대규모 침공이 있을 겁니다.”
“이런.......”


세하는 너무 화가 나서 순간 노타를 후려칠 뻔했다.


‘아니지. 아니야.’

아무튼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노타의 발언 때문에 제너럴 마이트의 알페렌은 통신 너머로도 헛바람을 삼키고 있었고 마그티스와 벨레토르도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방법이 없네요. 일단 협회장님을 뵈어야겠어요.”

레이린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러자 알페렌도 거기에 응했다.


“미합중국과 유엔을 통해서 국제 공조가 갖춰지도록 하겠어. 서둘러야겠네.”

다급한 소년의 음성과 함께 알페렌의 통신이 끊겼다. 세하는 일단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생각보다 혼란이 크진 않았다. 헌터 협회장 류한호는 세하와 레이린이 보고하자 뭔가 물어볼 것 없이 비상 대책 회의를 주관했고 거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 길드 대표들이 긴급하게 모였다.


-안 그래도 최근에 케나아찰  몬스터들이 세계 각 지역에 출몰하는 것 같네요.


세하는 회의에 얼굴을 비추기만 했지 달리 의견을 내진 않았다.  사이 레이린이 각 네트워크에서 정보를 캐내서 세하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렇네. 생각보다 아주 조금씩 나타났었어. 사전 조사나 정보파악 때문이었군.’


세하는 자신의 뇌와 시신경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보이는 자료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곧 대한민국 정부차원에서도 움직일 거고 유엔을 통해서 미합중국도 움직일 겁니다. 그러면 다른 국가들의 동의하에 글로벌적으로 방위 태세를 갖출 수 있을 겁니다.

루이제는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평하고 있었다.

‘너,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니야?’


세하가 그래서 마음속으로 한마디 했다. 하지만 루이제는 눌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달리 비관적인 생각을 해서 되겠어요?
‘이해했어.’


세하는 바로 이해했다. 1주일 후 자신이 정말로 고생할 것도 포함해서였다.






*
머지않아 세하는 아예 차출이 돼서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지난번처럼 제너럴 마이트의 수송기가 픽업을 와서 세하는 뭔가 익숙한 기분마저 들었다.


“좋게 말하면 올스타로 선정된 건데 나쁘게 말하면 지옥으로 기어들어가는 거네.”


전세계 통합 통계에 따르면 북미 콜로라도 지역에서 초대형 게이트가 출현할 것으로 예보되고 있었다. 각 대륙의 몇몇 지점도 마찬가지였지만 북미 지역만큼은 아니어서 일단은 인근 지역 국가들이 뭉쳐서 대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그게 좀 불만인 것 같지만요.”


그리고 세하에게 동행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헌터협회의 엑펠트 조사관인 레이린 리였다.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는 더욱 크기가 줄어들어버린 노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째  줄어버렸냐?’


세하는 그런 노타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이차원으로 넘어와서 존재 유지를 위해서 육체를 더욱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괜찮아요. 버틸 수 있어요.”

노타는 세하의 그런 시선에도 일부러 밝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북미 지역은 제너럴 마이트의 입김이 강하기에 세하와 레이린 그리고 노타의 수속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을  같았다.

‘저번에도 별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이번에야말로 비행 도중에 일이 터지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세하는 애써 배정된 구역에서 시트에 몸을 가득히 기댔다.


*
처음에 미국을 갔을 때처럼 제너럴 마이트 본사로 향하기보다는 콜로라도 주 지역에 가득히 펼쳐진 주둔지에 수송기가 착륙하게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민세하 헌터님. 그리고 레이린 리 조사관님.”

토마스 하퍼가 그의 동생 일라이저 하퍼와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덕에 세하 일행은 빠르게 등록수속 등을 간략화 하고 주둔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하고는 다른가?’


한창 겨울이 연상되던 처음과 다르게 지금은 산악 지역  고산이라 할 만한 곳만 눈이 보였고 다른 곳은 봄의 전형적인 생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쪽이 케나아찰의 왕자시군요. 제너럴 마이트의 수석 조사관인 토마스 하퍼라고 합니다.”

일행이 주둔지 안쪽의 깊숙한 막사로 들어갔고 또 그 안에서 이중 삼중으로 보안이 유지되는 구역에 들어서자 토마스가 노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타는 작은 크기에다가 레이린의 어깨에 올라가 있으면서도 의연하게 토마스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토마스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케나아찰을 돕는 것이 우리 지구를 돕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어렵사리 게이트를 통과해 오셔서 위험을 알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일입니다.”


아무튼 인사치례가 끝나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제너럴 마이트 측은 토마스와 일라이저였고 한국에서 온 일행은 세하와 레이린 그리고 노타가 다였다. 그러자 가상화면으로 통신이 연결되며 알페렌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겠지만 상황이 급한 관계로 먼저 의논을 드려야 함을 용서하십시오.”


그 음성은 노련한 중년 정치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알페렌  가장 대표자격인 존재인데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만치 상황이 중대한 것을 뜻하고 있었다.

“북남미 통틀어서 헌터들을 소집했고 군병력을 동원했습니다. 그 외에도 해외에서 S급 헌터로서 손꼽히는 분들을 지원받았습니다. 물론 민세하 헌터님은 엑펠트에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전력이니 긴히 청했습니다.”
“인사치례는 됐어. 지금 보니까 당장 부탁할 일이 있는  같은데 말해봐.”


물론 엑펠트에 관해서는 거의 다 반말로 대응하는 세하라서 말이 이런 식으로 튀어나왔다.

“허허허... 지금 당장 나가실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침공이 예고된 시점 전에 케나아찰이나 엑펠트의 정찰병력이 있을  있습니다. 민세하 헌터님은 그걸 좀 유심히 봐주시고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작전 당일에는 프리롤을 부여할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주둔지와 방어선을 지키는 선에서 활동해주십시오.”


알페렌이 당부를 이어갔다. 거기에 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숙지해나갔다.

“헤러커는 요즘 안보이나?”

그 말에 알페렌은 확신을 주지 못했다.


“최근 북남미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는 나타났었을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정보 협조가 안 되는 편이군요.”
“중국이나 러시아. 거기에 중동연합 정도가 그렇겠네. 유럽이나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협조적인데 말이야.”

세하는 불만을 그런 식으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알겠어. 최대한 노력해 볼 테니까 그 쪽에서는 정보를 좀 모아줘.”




*
세하는 그날 밤부터 움직였다. 느와르레이드 슈트 상태로 주둔지 주변과 현재 구축되고 있는 방어선의 상공을 비행하며 정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스터께서 의외로 순순히 나오셔서 놀랐어요.


그제야 루이제가 꺼내는 말에 세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위아 더 월드 해야 할 판에 불만 드러내는 것도 우습지. 하지만 여전히 정보 제공이 안 되는 국가들 생각하면 갑갑하긴 하네. 전생 때 지구연합군이 있을 때도 그 안에서 반목은 여전했지만 말이야.”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각종 센서를 통해서 이상 수치를 조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제너럴 마이트와 삽질했던 곳이 문제인 것 같네.”

세하는 계속 움직이다보니 예전에 난리를 치고 마그티스를 찾아냈던 거대 호수 주변까지 오고 말았다. 원래 호수가 없었다가 게이트 관련으로 생겨났던 것인데 아직도 남아 있어서 세하는 미심쩍은 기분마저 들었다.


-게다가 게이트 캐스터들이 이곳이 주된 침공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조심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 전에는 이곳에 퍼스트 캠프이니 하면서 전초 부대를 보냈다가 융합체나 되어버리는 바람에 여기까지 병력을 보내진 않았네.”


세하는 그렇게 루이제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신경은 예민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내려가 보실 건가요?

 그래도 세하가 문제의 호숫가를 계속 비행하고 있어서 루이제가 물었다. 하지만 세하는 거부했다.


“아니. 일단 내 역할이 역할이니 위험한 짓은 안할 거다. 하지만 장소 자체는 신경이 쓰이니 그런 거지.”

온갖 스켄과 센서가 주변 지형을 훑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이 벌어졌었던 극히 미량의 잔류 에너지만 느껴질 판인지라 세하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만하고 철수할까? 어?”

그리고 세하는 클리셰 라는 말이 어찌 보면 세상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럴 때 마주치는 군.”
-하지만 헤러커는 아닙니다.

서서히 사이킥 에너지의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세하가 막 몸을 돌려 호숫가를 벗어나려는데 문제의 호숫가 심층부에서부터 서서히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나고 있었다.

-케나아찰이나 엑펠트의 전초부대일까요?
“모르지. 아무튼 본 이상 처리해야겠지. 일단 주둔지 본부에 통신부터 넣고.......”


세하는 자신이 혼자 처리하기 보단 보고를 먼저 하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존재를 보고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민세하군요.”


그 존재는 무척 부드러운 미성으로 세하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이 마치 천상처럼 환한 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