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쾌속전진
퍼억!
통렬한 타격음이 세하의 영혼을 깨우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에 세하는 다른 것을 잊고 눈앞의 존재를 패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크아아아!
명색이 AAA급 몬스터라면서 세하에게 계속 공격을 허용하지 아다만테르는 크게 포효하며 입에서 뭔가 뿜어냈다.
당연히 세하의 전방에 리버스 필드가 전개되며 그 충격파를 에너지로 흡수했다. 하지만 지면에 흐르며 하얀 연기가 발생하는 꼴을 보고 세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독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애시드 브레스군요. 하지만 마스터의 필드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이거 그냥 놔두면 헌터들 다 죽어나겠군.”
세하가 그렇게 걱정하는 사이 다시 아다만테르가 애시드 브레스를 뿜어냈다. 이번에는 안개처럼 확산되는 형태로 쏘는지라 세하는 결단을 내렸다.
“먹어라!”
리버스 필드가 순식간에 역전되며 강렬한 충격파의 검이 되어 애시드 브레스와 충돌했다. 거기에 아다만테르가 그대로 뒤집어써서 흰 연기를 뿜기 시작했고 다시 세하의 주먹질이 이어졌다.
퍼억! 퍼억!
“이 지렁이만도 못한 놈아! 슬슬 불어!”
아다만테르를 두들기며 세하가 외쳤다.
-죽도록 패는데 잘도 불겠습니다.
루이제의 핀잔이 끼어들었지만 세하는 개의치 않았다. 이무튼 세하의 연속된 공격에 질려버린 아다만테르가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갑자기 꼬리부터 움직이며 세하의 전신을 휘감아버렸다.
“큭!”
묵빛의 금속질로 된 긴 몸이 세하의 전신을 조이자 세하도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세하를 꽁꽁 묶어버린 아다만테르가 커다란 입을 벌리며 세하의 머리의 머리를 노렸다. 그렇게 벌려진 입안에서는 산성의 기운이 점점 팽창해 오고 있었다.
-마스터. 지금 꼴이 되게 모냥 빠지는 거 알아요?
“그렇네. 하지만!”
갑자기 세하의 헬멧 위에서 회전톱이 달린 금속팔이 튀어나왔다.
카카캉!
키에에에!
맹렬히 회전하는 회전톱에는 당연히도 초진동하는 사이킥 에너지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아다만테르의 머리통을 갈아버리다시피 했다.
아다만테르가 그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머리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서 그 고통에 세하를 조이던 몸을 풀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땅을 파고서 도주하려고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세하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사이킥 에너지가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며 도망가려던 아다만테르를 묶어버렸다.
-호오? 이런 형태라니.
루이제의 감탄사가 있었지만 세하는 무시하고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바로 어깨 위에 4문의 포신이 나타난 것인데 예열 과정도 없이 그대로 포격에 들어가 버렸다.
파콰콰쾅!
-마스터. 영거리 포격에 너무 맛들이신 거 아니에요?
“이래서 사이킥 에너지겠지.”
세하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아다만테르를 보고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다가 여전히 트리아람을 상대하고 있는 라설연과 일라이저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 괜찮을까?”
-문제없이 제압할 겁니다. 다만 시간은 걸리겠죠. 원거리에서 공격만 하고 있으니까요.
루이제의 판단에 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부스터를 가동해서 최대한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크2 슈트로 변환해서 더더욱 높이 날았다.
-블릿츠 캐논 장전합니다.
루이제가 세하의 의도를 깨닫고 미리 셋팅에 들어갔다. 세하의 어깨 위에서 4문의 캐논이 나타났고 그 포구에서 바직거리는 전격의 기운이 맴돌았다.
“발사!”
콰르르릉!
뇌전의 기둥들이 순식간에 치솟으며 트리아람을 직격했다.
“.......”
접근전이 어려워서 견제만 하던 라설연과 일라이저는 그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튼 블릿츠 캐논에 적중당한 트리아람은 전신이 뇌격에 휘감기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세하의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었다.
파치치칙!
이번에는 세하의 오른팔에 격렬한 뇌전의 기운이 참가된 커다란 사이킥 블레이드가 전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올라가는 기세를 타고 트리아람을 베어버렸다. 트리아람은 순식간에 조각이 나며 지면에 떨어지게 되었다.
*
콰직!
세하는 트리아람과 아다만테르를 해체해서 코어를 적출했다.
물론 염동력과 사이킥 블레이드를 이용해서 본인은 멀찍이서 가만히 서 있는 채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설연과 일라이저를 비롯한 헌터들은 그 광경을 질렸다는 듯이 볼 수밖에 없었다.
“서운해 하지 말아. 너희들은 그냥 원거리에서 찔끔거리기만 했잖아? 그래서 언제 잡을 건데? 결국엔 내가 막타 쳐주길 바란 거 아니야?”
세하는 그렇게 헌터들에게 말하고 적출한 코어 2개를 그대로 아공간 인벤토리에 던져 넣어버리고 닫았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지라 라인버스터 슈트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크고 살벌한 모습에 일반 헌터들은 접근도 못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생각 외로 수월하게 코어 적출 작업을 끝내고 세하는 두 몬스터의 사체를 가리켰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가공하라고.”
사실 고위급 몬스터의 사체 만해도 상당히 쓰임세가 많았다. 그래서 헌터들은 쭈삣 거리면서도 작업을 시작했다.
“이거 굉장하군. 역시 블랙메탈이야.”
그때 일라이저가 다가와서 말했다. 거기에 세하는 무장을 풀지 않은 채 답했다.
“AAA급 몬스터 둘도 나 혼자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괜히 공을 나누자는 말을 하지 말자고.”
“그 건 당연하지. 그나저나 정말 제너럴 마이트로 올 생각 없어? 대한민국 헌터 협회보다 훨씬 잘 대우해줄 수 있는데 말이지.”
일라이저가 스카웃 이야기를 꺼내자 세하의 헬멧에서 안광이 강하게 일어났다.
“기업은 기업일 뿐이라서. 내가 달리 돈이 부족하고 힘들면 생각해 보겠는데 말이야. 협회는 나를 높게 쳐주고 있으니 이편이 편해.”
세하는 편하다는 식으로 말을 퉁쳤다. 이번에는 라설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뭘 말이지? 너희들의 처분?”
세하가 스산하게 꺼낸 말에 라설연과 일라이저가 흠칫했다.
“농담이야. 같은 사람이고 헌터인데 내가 무슨 머더러급 존재도 아니고.”
세하는 라인버스터 슈트의 큰 손을 앞으로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그 손에 잘 못 맞으면 AAA급 몬스터라고 하도 곤죽이 나는 꼴을 봤는지라 라설연과 일라이저는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아무튼 너희들이 날 이용하려 했었다는 건 사실이잖아? 그러니 코어는 내가 챙긴 거지.”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몸을 돌렸다.
“어딜 가는 거지?”
그 뒤에 대고 라설연이 물었다.
“던전 게이트도 마저 공략해야지. 하지만 따라올 생각은 마라. 너희들은 나한테 신용을 잃었으니까.”
세하는 그대로 부스터를 이용해서 달려갔다. 곧장 아다만테르의 영향을 받은 질퍽한 땅이 나타났지만 세하는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아다만테르가 앞에서 또아리를 틀었던 던전 게이트가 나타났다. 거기에 세하는 그대로 직진해서 진입했다.
*
-어찌 보면 현명했고 어찌 보면 충동적이었습니다.
던전에 들어오기 무섭게 루이제가 입을 열었다.
“인정해. 하지만 AAA급 몬스터 둘도 내가 잡은 마당인데 같이 던전에 들어갔다간 무슨 일이 생길려고.”
이미 게이트는 닫혔다. 이제 세하와 루이제만이 이 던전을 클리어 하거나 죽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터였다.
-이른바 기왕 할 거 독점하시겠다는 거군요. 이렇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면 마스터로서는 더 없이 성장하실 기회가 될 겁니다.
루이제가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을 스캐닝 하는지 헬멧의 디스플레이에서 여러 번 점멸 반응이 보였다.
-현재 던전의 환경은 대기 상 무해한 성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석조 벽이 대다수인지라 이대로 라인버스터 슈트로 진행하실 것을 권합니다.
“그렇네. 여긴 말 그대로 던전 같아.”
마치 예전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타우르스를 가뒀다는 미궁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조명이 있는지 그리 어둡진 않았지만 주변은 석조 벽으로 둘러쳐진 미로와도 비슷했다.
-혼자 이곳에 들어오셨다면 심리불안에 시달리시다가 골로 가셨을 겁니다.
“맞아. 네가 있으니 이렇게 온 거지.”
세하가 루이제의 말을 긍정했다. 그게 의외였는지 루이제는 왠지 놀리는 것 같은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런가요? 그럼 제가 의도적으로 침묵하면 방법이 없겠군요.
“그러진 마라. 아무튼 아다만테르 놈에게서 엑펠트의 반응이 나왔으니 이곳 던전은 더하겠지?”
세하의 이어진 말에 루이제는 긍정했다.
-네. 어찌 보면 뭣 모를 헌터들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후우. 엑펠트는 그에 속한 떨거지들도 처음 보는 사람이 트라우마 걸리기 좋은데 말이지. 지금 이러고 있으니 전생에 처음 전쟁터에 나갔을 때가 생각난다.”
세하는 이제 전생인 지오 그라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만치 사이킥 에너지의 융합 효과가 있는 것 같군요.
“그러게. 사실 이 시대의 헌터들이 보기엔 내 능력은 그야말로 사기 같겠지. 하지만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른 형태로만 힘이 작용되는 거니 마냥 장점은 아닌 거 같아.”
-그래도 마스터는 사이킥커로서 발상이 자유로우신 편입니다. 그 단점은 오히려 전생보다 더 나아질 거라 판단합니다.
루이제로서는 드물게 칭찬위주인지라 세하는 갑자기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너, 오늘따라 왜 이러냐?”
-그만치 잘하셨으니 칭찬해드리는 겁니다. 못하실 때는 가차 없이 까드릴 거니 각오하세요.
루이제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는 사이 갈래길이 나왔다. 전형적인 오른쪽과 왼쪽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왼쪽으로 가자.”
-왜죠?
“모름지기 동양에서는 좌측을 더 쳐주는 분위기였어. 좌의정, 우의정 있으면 좌의정이 더 높은 자리라고.”
-고민이 없으셔서 좋네요. 사실 어느 쪽으로 가도 별 반응이 안 느껴집니다.
아무튼 세하가 왼쪽을 택해서 움직였다.
우으으으
그러기를 수 분 여. 이제 서서히 장내에 신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와... 이거 너무 오랜만이라서 할 말이 안 나오는데?”
세하는 익숙한, 아니 전생에 너무 익숙해서 할 말이 안 나올 소리들이었다.
-엑펠트에 감염된 사람들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주변의 환경으로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겠지. 암튼 가보자.”
세하는 오히려 달렸다. 그리고 디스플레이에 서서히 문제의 존재들이 확대되어 보였다.
그냥 봐서는 중세 시대 정도의 병사들로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두 눈이 흐리멍텅 한 상태였고 그들의 주변에 뭔가 바직거리는 기운이 보였다.
“초기 증상이군.”
세하는 그들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양 손에서 사이킥 캐논을 생성해 발사했다.
새하얀 광선이 뻗어나가며 폭발을 일으켰고 그 안에서 인간 형태의 감염자들이 죄다 불타오르거나 닿는 족족 지워지듯 사라져갔다.
-괜찮으세요? 마스터.
루이제는 세하가 걱정돼 물었지만 세하는 덤덤했다.
“괜찮아. 전생에는 이런 일 숱하게 겪었잖아.”
세하는 이미 지오 그라함의 기억에 동기화 된 것 같았다.
“이렇게 경험하니 기억이 더 잘 떠오르는 거 같네. 아무튼 엑펠트는 참 역겨운 것들이야.”
세하는 그런 상태로 계속 전진했다. 계속 감염자들이 보였지만 세하는 사이킥 캐논이나 블레이드로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족족 해치울 뿐이었다.
그렇게 기계처럼 정해진 작업을 하는 것처럼 전진하자 루이제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들이 그렇게 진격해가는 것도 어느새 그 끝이 다가왔다.
“이건 뭐냐?”
세하는 정말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뭐긴요. 엑펠트의 융합체는 모든 걸 융합시키지 않나요? 그러면서 역겨운 소리들이나 내뱉죠.
이어진 루이제의 반응은 경멸을 한 것 담고 있었다. 거기에 세하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네. 전생에 나도 지겹도록 싸웠지만 이것들의 상위종과는 대화를 못 해봤지. 아니, 애당초 대화가 되는 것들이긴 한가?”
세하는 한탄하듯 말하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괴로워........’
‘하나가 돼야 한다... 하나가.......’
‘이런 건... 크헤헤헤!’
세하의 앞에는 하나의 큰 벽이 있었다. 하지만 그 벽에 떠올라 있는 얼굴들은 하나 같이 괴로움에 차서 온갖 사념을 토해놓고 있었다. 세하 또한 표정이 괴로움에 일그러졌다가 서서히 다른 감정으로 변해갔다. 분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