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엉망진창
-라인버스터 슈트 기동합니다.
세하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는 사이 루이제가 냉정하게 움직였다. 세하의 전신을 두텁고 커다란 슈트가 뒤덮었고 모든 충격을 흡수하고 반격하는 리버스 필드가 발동되는데 걸린 시간은 가히 찰나간이라고 할만 했다.
끄아아악!
하지만 세하가 그렇게 움직였다고 해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일부 순찰을 돌고 있던 이들이나 파악이 늦은 이들은 근처의 시설물과 더불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자식이!”
세하는 분노를 담아 주먹을 위로 쳐올렸다. 주변에 펼쳐진 리버스 필드가 크나큰 파장을 일으키며 그대로 위로 광선처럼 뻗어나갔다.
키아아아!
그리고 공중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세하는 그제야 일의 원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무슨........”
세하의 반격 덕분에 제법 고도를 높여 올라갔음에도 그 거체가 확연히 보일 지경이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머리가 셋. 그러면서도 목이 길었다. 게다가 발도 세 개였다.
‘삼족오라고 발이 3개 달린 까마귀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건 뭐냐?’
또 특이할만한 건 그 표면이 일반적인 생물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광염, 빛과 화염이 뭉뚱그레 합쳐진 것 마냥 이글거리는 기운으로 이뤄져 있었다.
-어찌 보면 피닉스하고도 비슷한 거 같군요.
“그런데 저 자식은 대 놓고 사람을 죽이는 거고 말이야.”
아무튼 세하는 슈트의 덕을 보고 있어서 올려다 볼 수 있었지만 살아남은 헌터들은 아니었다. 그 눈부심에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인지라 세하는 이를 악물었다.
“저 자식이 트리아람 맞지?”
-네. 저만한 기운을 뿜을 수 있는 건 아다만테르 외에 저 존재 밖에 없습니다.
세하는 잠시 궁리했다. 마크2 슈트로 날아가서 당장 트리아람과 공중전을 벌일까도 싶었는데 일단 트리아람이 고고도에서 헌터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서 일단은 상황을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브로. 괜찮나?”
그 사이 파워드 슈트를 완전히 갖추고 나타난 하워드가 물었다. 거기에 세하는 뱉듯이 말했다.
“저거 되게 재수 없는 놈 같은데? 저 자식 오는 것도 계산했었냐?”
“흠. 아무튼 4대 필드 보스 몬스터 중 마지막으로 남은 놈 같군. 트리아람이라고 했었지? 저 놈이 뭘 잘 못 처먹어서 여기까지 왔지? 올 리가 없는데.”
하워드의 말이 세하는 신경 쓰였다. 그 사이 김준혁과 다른 헌터들도 다가왔다.
“이상하군요. 여기는 트리아람의 서식처가 아닌데 말이죠.”
김준혁의 말도 세하는 뭔가 신경 쓰였다.
‘이 놈들이?’
아무튼 그들의 반응은 트리아람의 존재를 알면서도 왜 여기에 왔는지 놀라고 있었다. 단순히 당황한 게 아닌 계산 밖의 상황이라서 그런 것을 세하는 읽을 수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냄새가 나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야겠죠.
루이제가 세하의 속말을 알아채고 말했다.
‘뭐?’
-솔직히 마스터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어요. 다만 저 사람들은 아니죠. 그러니 대놓고 시위를 하죠.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작정하고 하워드와 김준혁에게 몸을 돌렸다.
“야. 너희들.”
“?”
라인버스터 슈트의 위용은 아무래도 살벌했다. 게다가 세하가 그 굵고 긴 팔로 지면을 한번 씩 후려쳤으니 그 위협이 남다를 지경이었다.
“너희들은 저 자식이 여기 올 줄 알았지?”
“아니, 브로.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는........”
“저기 불타는 세발이 새랑 던전 게이트 앞에서 퍼질러 있는 뱀대가리. 너희들이 못 잡잖아? 그런데 존재하는 건 잘도 알더군. 그런데도 겁도 없이 이곳에 머리를 들이민 것부터 이상하잖아? 다들 날 이용해 먹을 생각하는 거 아니야?”
“.......”
물론 세하로서도 자신이 어느 정도 이용당하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계획적이라면 이것들부터 족쳐야지.’
세하는 등 뒤에서 트리아람이 덮치는 한이 있어도 진실을 듣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워드와 김준혁이 그렇게 불안하게 서로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직접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워드가 맥 빠진 듯이 말했다. 그 말에 세하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그렸는데 갑자기 그들 뒤에 서 있는 파워드 슈트차림의 헌터 한 명이 손에서 강렬한 전격을 내뿜었다.
키아아아!
거기에 고고도에 있는 트리아람이 적중당해서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각성자에 세하는 어안이 벙벙했고 김준혁의 뒤에서도 갑자기 한 여성이 나타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블랙메탈.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 반가워.”
“........”
세하는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적어도 자신보다 아래가 아님을 알았다. 루이제도 뒤늦게 깨닫고 말했다.
-S급 각성자들입니다.
‘뭐야? 너도 감지를 못했어?’
세하는 당연히 풀페이스의 헬멧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표정이 들키진 않았지만 정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얼굴이 안 보이니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네.”
그 반면에 김준혁의 곁에 나타난 여성은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 일반적인 헌터 슈트로 몸을 감싸고 있음에도 어딘가 매혹적이고도 끈적한 분위기를 지닌 미인이었다. 게다가 검고 긴 머리칼은 어딘가 밤의 장막처럼 공간에 퍼져 그녀를 신비롭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봉황 길드의 S급 헌터. 흑천녀(黑天女) 라설연이라고 해. 그리고 너 정도 헌터가 나를 못 알아봤던 건 이것 탓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팔찌를 들어보였다. 검고 탁해 보이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급수로 따지면 A급 아티팩트는 돼. 본질의 기운을 많이 죽일 수 있어. 그래서 B급 헌터 정도로나 알았을 걸? 하지만 이걸 발동시키고 있으면 정말로 본신의 힘을 낼 수 없어. 아무래도 블랙메탈. 네가 우리 애들을 죽게 놔둘 것 같아서 나설 수밖에 없었어.”
덤덤하게 사실을 말하는 라설연에 세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뇌전을 쏘아내던 헌터가 갑자기 파워드 슈트를 스스로 부셔내며 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난리통에 어울리지 않는 칼 같이 관리된 정장차림의 미남자였다. 전형적인 금발에 푸른 눈, 벽안을 지닌 이였는데 지극히 오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라설연. 이만 교대하자. 나도 대화 좀 하자고.”
“알았어.”
라설연은 그 청년과 교대하듯이 갑자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먹물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어둠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그대로 공중의 트리아람에게 뻗어나갔다.
키아아아!
강렬한 어둠의 창이 뻗어나가며 트리아람을 강타했다. 그 때문에 다시 괴성이 들려왔고 정체를 드러낸 금발 청년은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세하의 앞까지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제너럴 마이트 소속 아스트라테, 일라이저 하퍼라고 한다.”
자신을 밝힌 청년, 일라이저를 보고서 세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스트라테? 제우스의 번개라도 된다 이거냐? 아무튼 이놈들. 죄다 날 스토킹하고 있었군.”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S급 헌터이니 관심이 안 갈 수 없지. 아마 우리 인사 담당이 메일 보냈을 걸?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이라며? 하지만 우리 보스는 한번 삘 꽂히면 포기를 안 하지.”
일라이저는 새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세하의 행동에 그만 얼굴이 굳고 말았다.
“다 여기서 죽고 싶냐? 여기서 내가 깽판 한 번 치면 저기 날아다니는 세발이 새가 가만 있을 거 같냐?”
이미 들어 올린 세하의 오른팔에는 커다란 포신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어? 다 너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AA급 몬스터를 단독으로 둘이나 처리해버렸으니 말이지.”
“차라리 처음부터 나타났으면 내가 뭐라고도 안하지. 뒤에서 숨은 채로 내가 얼마나 용 쓰나 지켜볼 요량이었나 본데. 저기 세발이 놈은 변수에 없었나 보지? 게다가 죄 없는 헌터들 몇몇은 그냥 죽어버렸어. 그러니 너 같이 힘 숨기면서 여유 부리는 것들은 내가 여기서 조져주마!”
세하의 분노는 사그라들 길이 없어보였다. 정말로 팔의 에너지 포를 쏴버릴 기세인지라 일라이저는 손을 급히 내저으며 말했다.
“트리아람이 여기 나타난 건 진짜 몰랐어! 아다만테르하고 저 놈은 서로 견제하는 존재 때문에 절대 근처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진짜야!”
워낙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고 있는지라 세하는 멈칫했다. 안 그래도 트리아람을 견제하고 있던 라설연이 서서히 밀리는 판국인지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마스터. 아다만테르와 트리아람이 견제 관계인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루이제가 정보를 체크하고서 전하는 말에 세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니 우선 저 둘에게 트리아람을 맡기도록 하죠.
다시 루이제가 말하자 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죄하는 의미로 너희 둘이 저 세발이 놈을 처리해.”
“어.......”
“그 뒤에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 그리 해. 나는 뭐 같이 이용당하는 게 싫으니까. 알겠냐?”
세하는 그렇게 말하더니 일라이저의 곁을 지나쳐서 장갑차가 있는 부근에 턱하니 주저앉았다.
“뭐하냐? 빨리 가보지 않고.”
“쩝. 이거 별 수 없군.”
일라이저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곧장 허공으로 벼락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잘 싸우네.”
라설연과 일라이저가 협공하자 트리아람도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태양처럼 야영지 전체를 불태울 기세였지만 처음에 세하에게 공격당해 튕겨나가고 뒤이어 라설연과 일라이저가 본색을 드러내자 이제는 공격할 틈을 못 만들고 있었다.
-S급 헌터 둘이면 상당한 전력들입니다. 아마도 두 길드의 에이스급들이라 생각됩니다.
“그건 그렇겠지. 아무튼 저것들이 정체를 숨긴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는 게 굉장히 기분 나빠. 그러니 나는 저 녀석들에게 최대한 엿을 먹일 거야.”
세하는 슈트의 두께 상 팔짱을 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거의 장갑체에 몸을 기댄 상태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살아남은 헌터들이 희한한 꼴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지만 세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를 수분 여. 갑자기 세하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거북한 음성에 세하는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루이제. 들었지?”
-네.
“어이. 다들 준비해.”
세하는 하워드와 김준혁을 비롯한 헌터들에게 경고했다.
“무슨 소리지? 브로.”
하워드는 자신보다 윗사람이 정체를 드러냈음에도 세하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무래도 천성인가 싶어서 세하는 다시 말했다.
“준비하라고. 한 놈 더 오니까.”
“.......”
그 말을 알아들은 하워드가 김준혁에게 말했고 헌터들은 급히 장갑차를 중심으로 다시 방어진을 만들었다.
쿠구구궁!
아니, 만들려했다는 것이 옳았다. 삽시간에 강렬한 지진이 사방을 휩쓸었고 헌터들은 죄다 넘어지거나 부서지는 시설물에 깔리는 등 삽시간에 태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크아아아!
순식간에 세하의 전방에서 땅이 갈라지며 아다만테르가 커다란 입을 벌리며 나타났다. 온통 묵빛의 비늘에 둘러싸인 거대한 뱀과도 같은 존재에 제법 오금이 저릴 만도 하지만 세하는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뭘 지켜야 한다는 거야?”
세하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두터운 사이킥 블레이드가 뻗어나가며 그대로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아다만테르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크아아악!
거기에 아다만테르가 돌진하는 기세가 줄어들고 비틀 거릴 지경이었다. 세하도 양 어깨가 삐꺽대는 느낌을 받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사이킥 블레이드를 해제하고 양 주먹에 사이킥 에너지를 둘렀다.
오히려 길게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 주먹의 주변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서인지 오히려 그 밀도가 짙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세차게 진동하며 날카로운 충격파를 발하는 것이 여기에 적중 당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위력이 엿보였다.
“일단 죽도록 맞아봐라! 그러면 진실을 토해내겠지!”
세하가 성난 사자처럼 아다만테르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길게 뻗은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다시 아다만테르의 머리를 가격하며 격렬한 진동과 충격파가 아다만테르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거기에 적중당한 아다만테르는 처절할 정도의 울음을 토해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