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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49화 (149/169)

149화

그람 왕국을 거점 삼아 중앙대륙을 파고들겠다는 계획은 주둔군이 아렌달로 돌아오게 되면서 몇 걸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렌달 상단을 비롯해 여러 상단이 중앙대륙으로의 활로를 뚫어 놨기에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혁명의 물결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는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몸을 사린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메이더스 왕국의 오가스 백작과 플로렌스 백작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게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둔군 처음 테러를 당했을 때와 시기가 비슷하네."

"그렇습니다.

첫 번째 테러는 메이더스 왕국에서 일으킨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헤돈의 말에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럼 그다음에 있었던 테러들도 다 메이더스 왕국의 짓인가?"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만… 메이더스 왕국보다 에나플 왕국일 확률이 조금 더 높습니다."

"에나플?"

"첫 번째 테러와 그 이후의 테러들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텀도 길었고, 소드마스터가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하긴, 소드마스터가 두 명이나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일반 기사들만으로 테러를 감행한 게 이상하기는 하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에나플 왕국에서 비슷한 기간에 기사들의 숫자가 갑자기 줄어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 그럼 첫 번째는 메이더스, 그 이후는 에나플 왕국이라는 거네?"

내 물음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에 마법 무기를 훔쳐 간 것은 에나플인가?"

"그럴 확률이 높지만, 아직 조금 더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데우스님께서 아시다시피 아렌달의 마법 무기는 모든 왕국에서 노리는 물건이지 않습니까?

이전의 테러와 달리 새벽에 단독으로 들어와 무기를 훔쳐 간 것 때문에 어느 왕국이라고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답답한 말이었지만, 헤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CCTV라도 있었으면 범인의 얼굴이라도 찍어 놓는 건데.'

안일하게도 이미 있는 기술을 아끼고 있다가 귀찮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앞으로 모든 군사시설에는 CCTV를 설치하도록 해야겠어.'

* * *

그람 왕국군이 도착하기 전 주둔지에서 탈출한 노아와 동지들이 형제단의 거점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형제단은 완전히 분해되어 있었다.

형제단을 숨겨 주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왕도로 끌려갔다는 사실에 동지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샌더스와 다른 동지들도 모두 끌려갔을까요?"

"그들도 분명 우리처럼 탈출했을 겁니다."

희망을 담아 말했지만, 누구도 노아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자신들도 아렌달 군이 아니었다면 그람 왕국군 손에 붙잡혔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동지들의 물음에 노아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 침묵에 몇몇 동지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희는 이렇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물결을 향해 가겠습니다."

"다른 왕국의 혁명 세력과 함께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람 왕국에서는 실패했을지라도 다른 왕국에서는 혁명이 성공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노아 역시 그 목소리에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동지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노아는 그들의 목소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럼 저는 여러분들을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기다리신다니요? 저희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남은 동지들과 함께 지하에서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발트가 전한 데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는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때를 기다린다니요? 설마 이대로 포기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실망하는 동지들의 목소리에 노아가 고개를 저었지만, 그래도 동지들은 노아의 대답을 변명이라고 생각하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혁명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시작된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심어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동지들이 피를 흘릴 일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저희는 그람 왕국을 떠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바랐지만, 뜻을 접으신 선생님께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더 이상 말해 봐야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더스 왕국의 혁명 세력인 붉은 태양이 아직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메이더스 왕국에서 다시 한번 붉은 물결을 일으켜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마음이 바뀌시면 꼭 메이더스 왕국으로 와 주시기를…

메이더스 왕국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떠나가는 동지들을 보며 노아와 남은 동지들도 걸음을 옮겼다.

* * *

그람 왕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붉은 물결은 메이더스 왕국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곳이 메이더스 왕국일 줄은 몰랐네."

"메이더스 왕국은 일부로 혁명의 불씨를 끄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면서도 일부로 탈출로를 만들어 주며 혁명이 계속되도록 유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먹었다면 아스타나 왕국보다 빠르게 혁명 세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곳이 메이더스 왕국이었다. 그럼에도 혁명 세력이 세를 불리는 것을 가만히 놔두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른 왕국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핑계로 우리와의 대화 채널도 모두 끊어 버렸지."

그리고 혁명 세력이 왕국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아렌달의 메세지를 무시하는 모습에 메이더스 왕국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붉은 혁명은 이제 모두 끝났다고 봐야 하는 건가?"

"사실상 그렇습니다."

씁쓸하게 말하는 리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도 이제 우리의 일을 해야겠지."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에서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은 매일 밤마다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떠들어 댔다.

"메이더스 국왕은 살인귀에 몬스터다."

"에나플 국왕은 겁쟁이에 도둑놈이다."

처음에는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나 무시하던 두 왕국의 백성들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유령의 노래에 점점 빠져들어 또 다른 소문을 만들고 있었다.

"몬스터가 왕으로 있는 왕국이라니… 진짜 국왕 폐하께서 살인귀에 몬스터라면 어떻게 하지?"

"들리는 이야기로는 국왕이 사람도 잡아먹는다고 하더라고.

그 붉은 태양이라고 부르던 혁명가 놈들 있잖아? 그 녀석들도 다 국왕이 잡아먹고, 그 뼈는 바깥에다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어."

"허업! 나, 나도 용병들에게 들은 적 있어.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도 사람 뼈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진짜로 국왕이 몬스터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왕국으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왕국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하는 메이더스 왕국의 백성들과,

"겁쟁이에 도둠놈이라니… 그런 사람이 왕국의 주인이 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 이야기 들으셨소? 국왕 폐하께서 마법 무기를 개발하는 이유가 왕국의 발전이나 다른 왕국과의 경쟁이 아니라 귀족들로부터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영주들의 창고가 털리는 일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은 그것도 국왕 폐하의 명령을 받는 기사들의 도둑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허어! 어찌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이오! 왕국의 귀족들을 견제하고 그 재산을 훔친다니!

그야말로 겁쟁이에 도둑놈이 아닌가!!"

에나플 국왕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에나플 귀족들로 인해, 두 왕국의 왕궁에서는 매일같이 고성이 오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두 왕국에서는 유령을 잡겠다고 왕국의 병사들을 동원해 도시를 뒤지고 있었지만, 진짜 유령인지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언론플레이라는 거다.'

물론 실제로 언론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차나 동물들 움직이는 것에 통신 마나석을 설치해 놓고, 아렌달에서 메세지를 보내고 있으니 목소리의 주인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법사를 동원해 통신 마나석을 찾더라도 아렌달의 통신 시스템을 모르고 있는 두 왕국으로서는 범인을 특정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렌달에서 장난치고 있는 나를 붙잡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장난은 이것뿐만이 아니지."

우리 병사들이 테러로 인해 희생되었는데 겨우 언론플레이로 끝낼 만큼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두 왕국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주둔지나 병영을 향해 한 발의 폭격 마법을 날렸다.

-쾅!

"폭발이 일어났다! 마법 공격이다!

병사들은 전투에 대비하라!"

"빠, 빨리 물을 가져와! 창고에 불이 붙기 전에 꺼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한 발의 폭격 마법을 날렸다.

-쾅!

"폭발이 또 일어났다! 다음 마법 공격에 대비하라!

병사들은 무기를 들어 전투에 대비하라!"

"물이 없다면 흙이라도 뿌려! 창고가 타기 전에 불을 꺼야 한다!"

그리고 또 다음 날에도 한 발의 폭격 마법을 날려 주었다.

-쾅!

"하아- 폭발이다. 마법 공격에 대비…"

"어디서 누가 공격한 줄 알고 마법 공격에 대비합니까!?"

"창고에 불이 번지기 전에…"

"이미 병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대륙을 넘어가는 초장거리 공격이었기에 위력은 형편없었지만, 두 왕국의 병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에는 충분한 공격이었다.

"데우스님. 근데 이거 거리가 거리인지라 마나석의 소모가 너무 큰데요?

딱 한 발만 날리는 데도 수천 셀링씩 날아가는 데 효율이 너무 떨어지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 돈을 저에게 주시면 제가 직접 중앙대륙에 가서 한 발씩 먹여 주고 돌아오겠습니다."

알비레오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죽을 텐데?

그냥 여기서 하루에 딱 한 발씩만, 앞으로 10일 동안만 더 갈겨 줘."

"소모되는 마나석이 너무 아까운데… 정말 저에게 맡겨 주시면 시원하게 한 발씩 날려 줄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전쟁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무슨 시원하게 날려 준다는 소리야?"

"그럼 왜 이러는 겁니까?"

"열 받으라고."

* * *

"나를 모욕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냐!!!"

대전을 울리는 고함에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내가 몬스터가 되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라면 당장 보여 주겠다!

누구냐! 누가 내 손에 먼저 죽어 볼 테냐!"

당장이라도 아무나 죽여 버리겠다고 날뛰는 국왕에 대신들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맥그리거 공작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국왕 폐하 진정하십시오. 적들이 바라는 상황이 바로 이것일 겁니다."

"맥그리거 공작. 내가 더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장 유령이라는 놈을 잡아 와라!"

"지금 마법사들과 기사단이 범인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 수색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똑같이 말하지 않았나!"

"국왕 폐하. 마법사들과 기사단이 범인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렇게 많은 신하와 기사들이 있는데 나를-왕국의 주인을 모욕하는 놈 하나 못 잡는단 말인가? 하-"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맥그리거 공작에 국왕이 한심하다는 듯 헛웃음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맥그리거 공장이 말했다.

"국왕 폐하. 제가 알아본 바로는 에나플 왕국도 똑같은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에나플 왕국도?"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우리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을 동시에 도발할 수 있는 곳이라면 딱 한 곳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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