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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48화 (148/169)

148화

"그러니까 주둔군이 얻기 힘든 중앙대륙의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서 혁명세력과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발트의 보고대로라면 그렇습니다."

헤돈의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론 아렌달을 위해서 그람 왕국이나 중앙대륙의 정보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굳이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아렌달 상단이나 다른 상단을 이용하면 충분히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아니- 아렌달 상단이 실시간으로 보내 주는 영상 정보에 비하면 혁명세력이 얻을 수 있는 정보쯤이야 없어도 그만인 저급 정보였다.

"그래도 다행인지 주둔군이 아니라 그람 왕국에서 먼저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공격에 대응 차원으로 작은 전투가 일어났을 뿐이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둔군에서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1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전투였다. 작은 전투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람 왕국에서는 어떤 메세지가 없었나?"

"아직은 없습니다만… 주둔군에서도 핫라인으로 보내 온 정보라, 그람 왕국에서도 곧 어떤 메세지를 보내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람 국왕은 아직 주둔군과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렌달만큼 빠르게 통신이 되는 왕국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람 왕국과 더 불편한 사이가 되기 전에 손을 쓸 시간이 있다는 말이네."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주둔군을 아렌달로 복귀시킬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주둔군을 아렌달로 복귀시키면서 그람 왕국에 메세지를 보내.

이번 전투는 오해로 생긴 전투라고 말이야. 그리고 죽은 병사들을 위로한다고 약간의 보상을 해 주면 그람 왕국으로서도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거야."

어차피 책임을 물어야 할 주둔군은 지금 당장 아렌달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기술자들이 그람 왕국에서 활동하며 해 온 일들과 앞으로 해 줄 일들을 생각하면 그람 왕국에서도 물고 늘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주둔군으로 피신한 형제단은 어떻게 합니까?"

"아렌달이 혁명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남겨 둬야 하지 않겠어?

그람 왕국에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들을 데리고 있는 것보다 그람 왕국에 넘겨주는 것이 아렌달을 위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혁명세력들이 평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렌달의 평판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왕국의 권력자들은 혁명세력을 쳐 내는 아렌달에 호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솔직히 기분은 조금 그렇지만, 혁명세력과 얽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지.'

"알겠습니다. 주둔군에는 복귀와 함께 형제단의 잔당들은 그람 왕국에 남겨 놓고 돌아오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헤돈의 대답에 볼튼이 내게 말했다.

"데우스님. 노아는 어떻게 합니까?"

그 말에 지휘관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나에게 리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만큼 지휘관들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노아에 대한 처분은 내려졌다.

"리오가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노아는 이제 아렌달인이 아니라고 말이야. 리오 스스로가 죽은 아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으니 나는 그 뜻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럼…"

"그래. 노아에 대한 구원은 없다. 아렌달인이 아닌 노아가 그람 왕국에서 어떻게 되든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만약 리오가 노아를 구해 달라고 했다면 그의 구원을 고민했을지도 모르지만, 리오는 내게 그런 부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아렌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리오지 않은가. 노아의 존재는 명백하게 아렌달에 손해가 되는 것이기에 리오는 나보다 먼저 노아에 대한 손을 놓은 것이다.

"냉정하군요."

헤돈의 말에 볼튼과 지휘관들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아렌달을 위해서라면 나보다 더 냉정해지는 사람이지."

* * *

"아렌달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아렌달로 돌아간다. 최대한 빨리 주둔지를 정리해라!"

임시로 세워진 철창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노아와 형제단의 동지들이 고개를 들었다.

"이, 이봐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렌달로 돌아가는 건가요?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형제단의 목소리에 한 병사가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 주둔군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불필요한 전투가 일어났다.

그람 왕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아렌달로 돌아갈 거야."

"저, 저희도 그럼 아렌달로 가는 겁니까?"

형제단의 물음의 병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금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람 왕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기 위해 아렌달로 돌아간다고."

그 말에 동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그럼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형제단 동지들의 물음에 병사는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동지들이 철창을 흔들었지만, 병사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하나둘 주저앉는 동지들을 보며 노아가 병사에게 말했다.

"주둔군의 발트 사령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기회를 주십시오."

갑자기 나온 발트의 이름에 병사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어떻게 사령관님의 이름을 알고 있지?"

"사령관님께 노아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사령관님도 저를 알고 있을 겁니다."

노아의 존재를 모르는 병사는 순간 당황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노아의 말만 듣고 발트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사령관님은 너 같은 녀석과 이야기를 나눌 만한…"

병사가 부탁을 거절하려는 그때 노아의 눈에 철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들어왔다.

"발트님!"

"헉! 사령관님!"

발트의 존재를 깨달은 노아와 형제단이 일제히 일어나 철창에 매달렸다.

"발트님. 동지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여기로 도망친 것도 제가 이끌고 온 겁니다."

"……"

"발트님! 동지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 말에 발트가 노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뭐라고?"

"네?"

"아렌달에서 추방당한 네가 뭐라고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발트의 냉정한 말에 노아와 형제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주둔군 쪽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주둔군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 형제단을 보며 발트는 노아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데우스님께서 네게 말해 주라더군.

'지금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만 알고 있겠지."

"……"

"아렌달의 지시를 따라 너희들은 그람 왕국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그람 왕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저를 이대로 그람 왕국에 넘겨줘도 괜찮은 겁니까?

저는 그동안 주둔군에서 형제단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요."

주둔군이 뒤를 봐주고 있었다고 주장해 봐야 어차피 그람 왕국에서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는 건 노아도 알고 있었다.

"주둔군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동지들만이라도 풀어 주십시오."

"아렌달의 지시를 어기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나보고 또 아렌달의 지시를 어기라는 말이냐?"

"어차피 혁명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저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동지들만이라도 살려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발트님."

노아의 말에 형제단의 동지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발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철창 안으로 던져 넣었다.

"데우스님께서 너를 살려 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건…"

"우리는 이제 아렌달로 돌아간다. 뒤에 일은 그람 왕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

멍하니 발트를 올려다본 노아는 서둘러 발트가 던진 열쇠를 챙겨 넣고 고개를 숙였다.

그람 왕국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주둔지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철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분명 아렌달에서는 형제단의 잔당들을 놔두고 갔다고 하던데?"

"위스타드 항구에서도 형제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그놈들이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이야?"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둔지를 빠져나온 노아와 형제단의 동지들은 그런 그람 왕국의 병사들은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게 빠져나왔다면 그람 왕국군에 붙잡힐 뻔했습니다."

"노아 선생님.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주둔군에게 도망치자고 생각했을 때부터 혁명은 실패했다는 것을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샌더스나 동지들의 생사도 불분명한 상태였고, 다른 왕국의 혁명세력 역시 왕국의 군사력에 쓸려 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혁명은… 실패입니다."

노아의 말에 동지들이 고개를 숙였다. 몇몇 동지들은 눈물을 훔치며 주저앉기도 했다.

노아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그람 왕국에 파병되었던 병력이 뉴렌달 항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아렌달에 병사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다만 병사들과 다르게 지휘관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발트.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래. 그대가 저지른 잘못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처벌하도록 하겠다."

헤돈의 말에 발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발트와 지휘관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던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지? 무기고가 털렸어?"

"4번째 있었던 테러에서 무기고에 있던 마법 무기 4개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기관총 1정과 일반 소총 3정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고를 안 했어?"

내 말에 헤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무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고인지는 헤돈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마법 무기를 훔쳐 간 것은 소드마스터급의 인물로 파악되는 것 같습니다.

발트와 병사들이 그 흔적을 뒤쫓았지만 결국 그람 왕국 밖에서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럼 누가 마법 무기를 훔쳐 갔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물론 주둔군이 있던 곳에 소드마스터를 보낼 수 있을 만한 왕국이라면 어느 정도 유추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네."

내 말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메이더스 왕국의 소드마스터 중 몇 명이 모습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에나플 왕국에서도 기사단 일부가 실종되었고요."

"소드마스터라면…"

"주둔군에 일어났던 첫 번째 테러에서 소드마스터가 두 명 있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이후의 테러들도 기사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테러의 배후에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이 있었다는 말인가?"

"거의 확실합니다."

"설마 두 왕국이 연합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동대륙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소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중앙대륙의 강국들이 연합을 하다니.

중앙대륙의 패자라고 불리는 왕국들이 연합을 맺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에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정보 인력을 투입해 봐.

만약 두 왕국이 테러의 주범이라면 그 책임은 물어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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