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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37화 (137/169)

137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리오. 올해 새로 뽑은 인원이 많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렌달의 관리자로 뽑는 인원이 많은지 물어보는 거야.

졸업 예정인 학생 중에 귀족 가문에 지원한 학생의 숫자가 예년보다 적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말이야.

아렌달에서 인재를 독점하는 것 아니냐고 조금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완전히 기업화되어 가고 있는 귀족 가문들은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대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자리는 아렌달의 관리가 되는 것이었지만, 일부 학생들의 경우 이 시기쯤부터 귀족 가문에 스카웃돼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스카웃 한 인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어느 분야에서도 추가 인력을 요청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나마 인력에 대한 요청은 그람 왕국에 파견할 관리자나 아렌달 건설 쪽에 현장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뿐일 겁니다."

아렌달 건설이야 항상 현장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특별히 인력이 더 필요한 곳은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상인 길드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했습니다. 산단에서 대학생들을 영입하기 힘들다고요."

"상단에서도?"

"네. 그런데 상단은 귀족 가문에 스카웃되지 못한 학생들이 차선책으로 가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귀족 가문도 상단들도 인재 영입이 시원치 않다는 말이네."

"그런 것 같네요."

"확실히 아렌달에서는 올해 특별하게 인력을 충원할 이유는 없는 거지?"

"그렇습니다."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였다.

"노아는 아렌달의 관리자가 될 생각이겠지?"

"아직 녀석이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지만, 성적도 괜찮다고 하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뒤에서 말이 나오지 않게 잘 관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아의 실력이라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지는 않겠지."

내 말에 리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리암의 아들도 아렌달을 위해서 일해 주면 좋을 텐데…"

"그쪽은 귀족이지 않습니까? 가문의 사업이 있는데 아렌달의 관리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가문의 사업을 위해 일하는 것도 결국에는 아렌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아렌달을 위해 일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데이비드도 리암같이 아렌달의 관리자가 되어 줬으면 좋겠지만, 귀족 가문의 후계자인 만큼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가 특별히 관리자를 더 뽑는 것은 아니니 귀족들에게도 더 적극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라고 해야겠군."

나르비크 철도 사업에 대해 보고하던 리암이 나에게 물었다.

"데우스님. 혹시 이번에 아렌달에서 관리자를 많이 뽑는 겁니까?"

"아니. 리오의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흠- 그렇습니까?"

"리암도 귀족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네."

"저희 가문에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가문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오겠다는 인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체스터 가문은 아렌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렌달의 관리자가 되는 것보다 체스터 가문에서 일하는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체스터 가문의 스카웃을 무시할 정도로 인재들의 눈이 높아진 건가?'

하지만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체스터 가문은 대기업 중에서도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는가.

'아무리 인재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해도 체스터 가문을 뒤로 물리고 갈 만한 곳이 있나?'

"그건 조금 이상한데?"

"데이비드가 같이 공부한 학생들에게 직접 제안을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직에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기업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마법사도,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아닌 이들이 그럼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혹시 다른 왕국에서 손을 쓴 것은 아닐까요?

아렌달에 들어와 있는 유학생 중 대부분은 자기네 왕국에서는 이름깨나 있는 가문이지 않습니까?"

"아-"

"대학생들에게 작위나 영지를 준다며 인재들을 포섭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아렌달에서 누리는 것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왕국의 권력자가 될 기회라면 혹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었다.

이세계는 아직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이 존재했으니까.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네. 한번 알아봐야겠어.

리암. 데이비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하는 데이비드에 웃음이 나왔다.

"무엇이든 하겠다니… 대답이 좋네.

그럼 데이비드.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귀족 가문이나 상단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

내 질문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대부분은 아렌달의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왕국에서 인재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나?"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왕국의 제안에 흔들릴 만한 인재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렌달의 귀족 가문들이 왕국의 영주들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평민들 역시 아렌달에서 있는 것이 훨씬 나은 삶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고요."

"다른 왕국에서 작위와 영지를 약속한다면?"

"영지요? 그러면은 고민은 해 보겠지만… 저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아렌달에 관광을 왔던 귀족들을 많이 봐 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삶이 아렌달에서의 삶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가…"

데이비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 남은 학생들이 전부 아렌달의 관리자를 목표로 남아 있다는 말인가?

몇 명 뽑지도 않을 자리를 놓고, 그 뛰어난 인재들이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는 게 진짜일까?"

"……"

내 말에 데이비드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지?"

"…네."

"데이비드. 네가 한 번 알아봐 줄 수 있겠어?"

내 특명을 받은 데이비드는 학교 수업을 하는 와중에 틈틈이 내게 학생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었다.

'진로를 정하지 않은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평민들이다.'

오직 평민들만이 무언가 기다리는 듯 시간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 빠릿빠릿하게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은 귀족보다 평민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귀족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찾아 움직이고 있는데 평민 학생들만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데우스님.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어?"

"이것을…"

데이비드는 테이블 위에 하나둘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하나같이 붉은색의 물건들이었다.

"요즘 학생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입니다."

"아-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물건인가? 지난번에 보니까 다들 이런 걸 가지고 있던데…"

내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 붉은색 물건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귀족 학생 중 누구도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이 붉은 두건을 포함한 물건들은 모두 평민 학생들만 가지고 다니는 것들입니다."

몇 달 전 본 학생들이 모두 붉은색 장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행하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의 말은 유행하는 아이템이 아니라 무언가의 증표라는 말이었다.

"평민 학생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나 보네?"

"……"

"그것도 하필 붉은색 징표를 나누어 갖고 말이야."

내 말에 데이비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같이 공부한 동기들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사실에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 * *

노아와 동지들은 침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람 왕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지금과 달리 분위기가 많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아렌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어때?"

"오늘이라고 특별한 게 있겠어? 평소와 똑같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칫-"

또 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는 말에 몇몇 학생들이 혀를 찼다.

"우리의 뜻이 아렌달에서 이렇게까지 관심받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람 왕국에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곧잘 들어 줬는데."

"그람 왕국과 아렌달의 평민들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겠지."

단순히 가진 배경의 차이라고 하기에 아렌달의 평민들은 동지들이 주장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신분의 벽을 부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람 왕국보다 아렌달에서 더 힘들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왜지? 아렌달의 평민들은 왜 귀족에게 저항하지 않는 거지?"

동지들의 말에 노아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아. 어디를 가는 거냐?"

"여기서 우리끼리 떠들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잖아.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노아의 말에 동지들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았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우리의 생각을 알아줬으면 좋겠군."

"노아야. 이제 돌아오는 것이냐?"

저택의 문을 열던 노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오늘은 늦었구나. 들어가자."

금방 다가와 자신보다 앞장서 걷는 리오의 등을 보며 노아가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귀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냐?"

리오의 물음에 노아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리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설마 누가 네게 귀족의 작위를 주겠다고 한 것이냐?"

의심의 눈을 하는 리오에 노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께서 귀족이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겁니다."

"내가 귀족이라니?"

"아버지께서는 데우스님의 측근이시니까요.

어쩌면 아버지께서도 데우스님께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노아의 말에 리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

"정말이요?"

"그래. 데우스님께서 덴프린스 공작을 축출하고 공작위에 오르셨을 때는 나도 작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데우스님께서는 내게 작위를 내려 주시지 않았지.

아니- 데우스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작위를 내려 주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작위마저 버리신 분 아니냐. 하하-"

리오의 웃음소리에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겐 왕국의 작위를 버리고 독립하는 아렌달을 그 역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쓸데없는 생각이었지."

"귀족이 되면 좋은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느냐?"

"……귀족은 평민과 다르게 차별받지 않으니까요.

기회를 받고, 권력을 누리는 것도 모두 귀족들이잖아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귀족들의 지배 아래 수탈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 대답에 리오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네가 차별을 당했느냐?"

"……"

"그럼 귀족에게 수탈당한 것이 있느냐?"

"……"

침묵하는 아들을 보며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흘리는 것보다는 조금 더 가치 있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소중히 하거라."

돌아서는 리오의 뒷모습을 보며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쓸데없는… 가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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