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아렌달 군의 일방적인 공격을 맞은 플로렌스 백작은 소드마스터의 경의적인 회복 능력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양팔이 떨어진 채 전신이 검게 그을린 플로렌스 백작의 몰골에 발트에 혀를 차며 말했다.
"이 꼴을 보니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겠군."
"소드마스터가 내뿜는 살기에 병사들이 손을 멈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긴… 나도 이들이 내뿜는 살기에 공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으니 말이야."
그리고 아렌달 군의 전투 경험은 거의 몬스터를 상대로 쌓은 것이었기에 완전히 파괴하는 전투에 익숙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죽은 우리 병사들은?"
"지금 수습하고 있습니다."
"경계병들이 경보를 울려 줬기 때문에 소드마스터가 날뛰기 전에 막아 낼 수 있었다.
희생된 병사들이 아렌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잘 관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희생된 것은 안타까웠지만, 발트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이번 테러로 아렌달의 전투력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가 포함된 기사단이 쳐들어왔음에도 큰 피해 없이 승리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기사들이 과거와 같지 않더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기사단을 압도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탑의 지원 없이 병사들의 힘만으로 소드마스터의 목숨을 거두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도망친 테러범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철저하게 확인하게. 그리고 어디서 온 놈들인지 정보를 얻어내기도 해야 하니 가능하면 생포하도록."
"수색병들에게 명령하겠습니다."
"아렌달에 보고를 해야 하니 뒤를 부탁하지."
"옛! 사령관."
아렌달 군의 주둔지를 기어서 빠져나온 오가스 백작의 몸도 성치 못했다.
전신이 으스러진 듯한 통증에 숨쉬기에도 쉽지 않았고, 몸속도 어딘가 뒤틀어졌는지 마나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커헉! 이런 제길…"
검은 피를 한 차례 토해 낸 오가스 백작은 한결 숨쉬기가 편해짐을 느꼈다.
그와 함께 아렌달의 무기를 직접 맞으며 받은 충격을 다시 떠올렸다.
"빨리 왕국으로 돌아가서 알려야 한다.
아렌달은 너무 위험해. 지금 왕국에서 개발하는 마법 무기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야.
아렌달이 더 성장하기 전에 찍어 누르지 않는다면 왕국의 미래가 위험해진다."
오가스 백작은 검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힘겹게 걷는 오가스 백작의 눈에 그람 왕국의 마을이 들어왔다.
"저기서 탈것을 구할 수 있다면…"
탈것이 아니라도 새로운 무기나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약, 혹은 먹을 것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오가스 백작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 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법 무기에 검게 일그러진 갑옷과 붉게 짓이겨진 얼굴, 거기에 위협적인 검까지 들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마을 사람들에 오가스 백작이 말했다.
"나를 도와다오!"
그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 몬스터가 아닌가?"
"저게 사람이라고? 사람이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걸어 다닐 수 있어?"
자신을 몬스터라고 하는 마을 사람들에 오가스 백작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감히 나를 몬스터라고 했느냐! 나는 몬스터가 아니라 귀족이다!"
"귀, 귀족님이라는데?"
"거짓말. 귀족님이 저렇게 망가진 갑옷을 입고 망가진 채로 혼자 다닌다고?"
자신의 말에도 마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자 오가스 백작은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한 마을 사람의 목소리가 오가스 백작의 귀를 파고 들었다.
"왠지 위험해 보이는데… 순찰을 다니시는 아렌달 병사님들한테 알리는 게 좋지 않을까?"
"!"
아렌달 병사들이 마을에 순찰을 온다는 말에 오가스 백작이 몸을 날렸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던 마을 처녀를 향해 달려든 오가스 백작은 여자를 붙잡고 소리쳤다.
"꺄악--!!"
"당장 나에게 먹을 것과 탈것을 가지고 와라!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를 죽이겠다!!"
오가스 백작의 협박에 마을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오가스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검을 들었다.
"듣지 못하였느냐! 귀족의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냐!!"
오가스 백작의 협박에 마을 사람들 얼굴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귀족의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마을 노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 당장 귀족님의 명령대로 먹을 것과 탈것을 준비해라!"
그 말에 오가스 백작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렌달 병사들이 순찰 나오기 전에 이 마을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한 청년이 소리쳤다.
"우리 마을에 먹을 게 어디 있다고!
지금도 아렌달 병사님들이 나눠 주는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데!"
청년의 목소리에 오가스 백작의 검이 움직였다.
"꺄악!!!"
인질로 잡고 있던 마을 처녀를 검으로 찌른 오가스 백작이 처음 목소리를 낸 마을 청년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의 명령을 거부해…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오가스 백작이 내뿜는 살기에 마을 청년들은 뒷걸음질 치다가 갑자기 멈춰 서며 소리쳤다.
"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귀족도 사람이라고!!
귀족도 칼로 찌르면 죽고, 우리와 같이 붉은 피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 목소리에 마을 청년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아니- 무기라고 부르기에도 우스운 돌멩이나 농기구 등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오가스 백작의 살기에 맞섰다.
그 모습에 오가스 백작은 어이없음과 함께 분노를 느끼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감히!!!"
"주, 죽여!"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을 청년들에 오가스 백작이 마나 소드를 만들기 위해 마나를 집중하는 순간, 완전히 망가진 몸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청년들의 무기에 오가스 백작이 저항했지만,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커헉!"
그렇게 청년들의 집단 공격에 오가스 백작이 피를 토했다.
검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꼬꾸라지는 오가스 백작에 마을 청년들도 점차 손을 멈추고 물러났다.
"귀, 귀족이 죽었다."
"진짜 귀족이 죽었어. 우리와 똑같이,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었어."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오가스 백작에 마을 청년들도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았다.
* * *
"플로렌스 백작과 오가스 백작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메이더스 국왕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한번 말해 보라."
"…플로렌스 백작과 오가스 백작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흔적이 사라져?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있었는데?"
"기사단의 흔적 역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무래도 죽은 것 같습니다."
순간 메이더스 국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드마스터 둘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인가?"
"……"
메이더스 국왕의 분노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좌중의 침묵에 메이더스 국왕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마탑주!"
"예. 폐하."
"마법 무기를 개발해라! 아렌달에 뒤지지 않는 마법 무기를…"
오가스 백작은 메이더스 왕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가 전하려던 아렌달의 위험성은 메이더스 국왕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았다.
* * *
그람 왕국에서 전해진 보고에 헤돈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주둔군에 기사단 규모의 테러가 있었는데 소드마스터가 섞여 있었다?
그것도 두 명이나?"
"그렇습니다."
"우리 병사들의 피해는?"
"당시 주둔군의 바깥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 1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테러에 희생된 병사들이 안타까웠지만, 소드마스터가 두 명이나 있었음에도 겨우 12명밖에 죽지 않았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소드마스터들이 무모하게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 왔기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모했네."
"우리가 가진 마법 무기의 위력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다른 왕국이 가진 마법 무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아렌달의 마법 무기는 차원이 다른 무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둔군을 공격한 기사단이 어느 왕국의 기사단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건가?"
"안타깝지만, 테러범들이 전부 죽어 버려서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부 죽었어?"
"한 명이 도망치기는 했었는데, 주둔군 인근의 마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 도망친 테러범은 없는 건가?"
내 물음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된 병사들이 아렌달로 돌아오며 당시의 영상 역시 함께 아렌달로 올 겁니다.
테러 당시 영상을 확인해 보면 작은 단서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발트와 주둔군에게는 위로의 말과 함께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돌아가는 헤돈의 모습을 보며 볼튼이 말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소드마스터는 이야기 속에서나 듣게 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담담하게 말하는 볼튼을 바라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야기로나마 남을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
"오드리가 그러더군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그런가?"
내 말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마스터인 볼튼이 먼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흐름을 받아들이는 볼튼의 모습은 조금 멋져 보였다.
"샤를로트에게 기사와 소드마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부탁해 볼까?"
"기사와 소드마스터의 이야기라니… 괜찮군요.
혹시 이야기의 모델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자신 있게 자신을 가리키는 볼튼의 모습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람 왕국에서 돌아오는 배를 타고 테러로 희생된 아렌달 병사들과 대학생들이 돌아왔다.
예정보다 빠른 귀환이었지만, 언제 또 테러가 있을지 몰랐기에 서둘러 아렌달로 돌아온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람 왕국의 백성들에게 우리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가르침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가치가 있었어."
노아와 동지들은 그람 왕국의 백성들을 통해 자신들의 가르침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자축할 수 있었다.
"그람 왕국은 시작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우리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아렌달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른 왕국에 영향력이 큰 아렌달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달의 평민들은 다른 왕국의 백성들과 다르게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족과 평민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면 분명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
노아와 동지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붉은 두건을 다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