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31화 (131/169)

131화

평민이 아렌달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같이 공부하는 귀족 가문의 자재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평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리버 가문에서 인재들을 많이 영입할 생각인 것 같은데?"

"리버 가문 좋지. 특히 스티븐님께서 동문인 아렌달 대학 출신의 인재들에게 잘해 주기로 유명하잖아."

"나는 고향인 스톨에서 일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스톨 가문에서는 인재를 많이 뽑지 않는 게 문제야."

"스톨이나 영주 가문의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기에 우리 같은 평민들은 쉽지 않으니까."

귀족 가문에서 인재를 뽑는다고 하면 가장 우선순위로 선택되는 사람들이 아렌달 대학을 나온 이들이었다.

물론 대학을 나온 평민들이 가장 바라는 자리는 아렌달의 관리자였지만, 모두가 아렌달의 관리나 귀족 가문의 가신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에 남아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에드윈 교수께서 발더 학장님께 대학에 남아 연구를 할 수 있게 추천을 해 주셨어."

"네가 마법사도 아니고 연구는 무슨 연구야?"

"마법사만 연구하라는 법 있나?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 기술이 아닌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라니… 친구들이 다들 떵떵거리며 살 때 책이나 붙잡고 있을 생각이냐?"

"나에게는 떵떵거리고 사는 것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니까."

계속해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학생이나.

"아직도 갈 자리를 정하지 않은 거야?

네 성적이라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잖아?"

"……"

"정 가고 싶은 곳이 없다면 나와 함께 코아스탈에 가는 건 어때?

뉴렌달 만큼은 아니지만, 코아스탈도 멋진 도시라고.

뉴렌달처럼 바다도 있으니 가끔씩 해안을 거닐며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말이야."

자신이 갈 자리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만 가자. 노아.

동지들이 모여 있을 거야."

그리고 남들과 다른 뜻을 품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도 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만큼 왕국 시절의 백성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렌달의 가르침으로 왕국의 백성이라면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이념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똑같은 사람이다. 신분이라는 이름의 벽으로 갈라놓았을 뿐, 그 본질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째서 다른 대우를 받고, 차별을 겪으며, 기회를 빼앗겨야 한다는 말이냐!"

노아의 말에 젊은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람은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 없이, 신분의 벽은 무너져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젊은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앞으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뜻을 모을 것이다.

뜻있는 자들은 모두 결의를 하자.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노아의 말에 젊은이들이 품에 가지고 온 붉은 두건을 머리에 쓰고 주먹을 쥐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 * *

공장지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공장 노동자들과 다른 깔끔한 모습은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리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대학생들? 저들이 리오랑 무슨 상관이라고 기분이 좋아?"

"왜 상관이 없습니까? 저 아이들 중 상당수는 아렌달의 관리가 될 텐데요?

그렇다는 말은 제 밑으로 들어온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하루빨리 아렌달을 위해서 저 아이들을 굴리고 싶네요. 하하-"

리오의 웃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아렌달의 관리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하나도 안 남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오처럼 일 중독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라고."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데우스님보다 적게 일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사실 아렌달의 최고 관리자들 중 일 중독자가 아닌 사람을 꼽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니야?"

"아렌달의 관리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렌달 영지 시절에 비하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는 지금과 같은 행정체계도 없었고, 저와 나인 둘이서 영지의 모든 살림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랑 지금이랑 비교하는 건 잘못된 예 같은데?"

겨우 인구 2천 명일 때 이야기를 해 봐야 학생들 마음에는 조금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하루라도 빨리 저 녀석들이 성장해서 아렌달을 위해 일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이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저 녀석들도 스스로 밥값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오의 꼰대 같은 개똥철학을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 리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노아! 지금 돌아오는 것이냐?"

그 목소리에 한 젊은이가 걸음을 멈춰 섰다.

주변에 친구들로 보이는 이들도 나와 리오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고개를 숙였다.

"데, 데우스님. 안녕하십니까?"

"노아라면… 리오의 막내아들인가?"

내 물음에 리오와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제 막내아들의 이름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나한테 그렇게 자랑을 해 놓고, 내가 기억도 못 할 거라 생각한 거야?"

"제, 제가 언제 이 녀석 자랑을 했습니까?"

리오의 말에 노아를 보자 그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대학에서 손에 꼽힐 만큼 좋은 성적을 받고 있다면서?

잘하면 수석으로 졸업할지도 모른다고 네 아버지가 나에게 네 이야기를 많이 했다."

"……"

"나 역시 너 같은 인재가 앞으로 아렌달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이 녀석. 데우스님께서 이렇게 네 칭찬을 해 주시는데 그게 무슨 태도냐."

"됐어. 친구들과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가자고."

내 말에 리오는 노아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품에서 돈을 꺼내고는 노아에게 주었다.

"이걸로 친구들과 뭐라도 사 먹거라.

잘 먹어야 공부할 힘도 나는 법이지 않겠느냐."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돈을 받아 드는 노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를 해 준 리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람 왕국을 향하는 선단에 아렌달 군의 병사들이 올라타고 있었다.

이번 선단에는 그람 왕국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자들도 함께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할 아렌달 군 역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람 왕국으로서는 아렌달 군이 왕국에 주둔하는 상황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아렌달의 선진 기술을 보호한다는 명분 때문에 아렌달 군의 주둔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람 왕국으로서도 아렌달 군의 주둔을 반기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전쟁으로 왕국이 초토화된 이후로 주변 왕국에서 호시탐탐 그람 왕국을 갈라 먹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왕국에서도 아렌달이 왕국을 삼키지 못하게 견제하고, 아렌달군을 이용해 주변 왕국의 침략을 막아 내면 왕국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상황이지만, 아렌달로서도 손해 볼 건 없었기에 그람 왕국의 행동에 눈 감아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람 왕국을 식민지로 만들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람 왕국에서는 얻어 낼 만한 중요 자원도 없고, 아렌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봐야 관리하기 귀찮기나 하지.

그리고 굳이 영토를 점령하지 않아도 아렌달의 영향력 아래 두는 방법은 많잖아.'

이미 피를 많이 본 그람 왕국에서 이 이상 피를 흘리는 방법으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차라지 경제적인 지원이나 문화적인 교화를 통해 백성들의 지지를 아렌달로 향하게 만들면 그람 왕국은 자연스럽게 아렌달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게 될 것이다.

"아렌달 군이 적극적으로 그람 왕국의 백성들에게 어필하면 백성들은 아렌달을 같은 편으로 생각하게 되겠지. 자신들이 왕국이 아닌 아렌달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말이야.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잘해 주라고.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렌달에 고마운 감정을 품도록 말이야. 초콜릿 같은 걸 하나씩 쥐어 주면 좋아하겠지."

"초콜릿이요? 하하- 알겠습니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아렌달 상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될 거야. 한동안은 그람 왕국에 지원을 집중하도록 이야기해 놨으니까 말이야."

주둔군의 지휘를 맡게 된 발트는 내 지시에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람 왕국에 들어간 기술자들은 파괴된 왕국을 복구하면서 그람 왕국의 백성들에게 아렌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했다. 아스타나 왕국의 전쟁에서 조심스럽게 전파하던 아렌달 문화를 이제는 숨기지 않고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터의 병사들로 인해 알음알음 퍼지던 아렌달 문화였기에 그람 왕국의 백성들도 받아들이는데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전파되던 것 이상의 첨단 문물들은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었다. 아렌달의 기술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사진이나, 가끔씩 텔레비전을 통해 영상을 보여 줄 때는 이것이 같은 세계의 물건이 맞는지 의심마저 할 정도였다.

"아렌달에서는 정말 평민들도 이런 걸 본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아렌달에서는 누구나 이런 취미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네."

"누구나요?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말입니까?"

"하하- 자네가 보기에 내가 귀족으로 보이는가? 나 역시 평민이야."

"그, 그렇군요."

아렌달의 기술자들은 일꾼들을 끌고 다니면서 다양한 아렌달의 문물들을 자랑했다.

아렌달의 문화를 자랑하며 우쭐거리는 것을 즐겼고, 일꾼들의 동경심을 자극했다.

"저도 언젠가는 아렌달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자네가 열심히 일해 준다면 기회가 오지 않겠나? 나중에 아렌달로 돌아갈 때 사람 한둘쯤은 데려갈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귀족도 아니고 자네의 충성을 받아서 뭘 하겠는가?"

기술자들이 일꾼들에게 우쭐거리고 있는 만큼 아렌달 군도 바닥 민심을 관리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와- 아렌달 군이다!"

"이 녀석들! 뛰지 말고 줄을 서거라!"

"병사 아저씨. 오늘도 빵을 나눠 주시나요?"

"오늘은 빵이 없단다."

병사의 말에 한껏 기대하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빵 대신 초콜릿을 가지고 왔단다."

"와! 초콜릿이요? 저 그건 이야기로만 들어 봤던 건데."

똘망똘망 눈을 빛내는 아이들에 병사들이 품에서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한 명당 딱 한 조각씩 나눠 줄 것이다.

새치기하는 녀석은 나눠주지 않을 테니 똑바로 줄을 서거라."

병사들이 나눠 주는 초콜릿을 입에 문 아이들은 너무 맛있어서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속에 아렌달 군은 정의의 용사가 되었고, 백성들을 구원해 주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겨우 초콜릿 하나에 용사가 되고 영웅이 될 수 있다니, 정말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나중에 아렌달 병사가 될 거야."

"우리는 그람 왕국의 백성인데 어떻게 아렌달의 병사가 된다는 말이야?"

"그, 그건 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아렌달 병사가 될 거야!

그래서 아스타나의 악마들을 혼내 줄 거야."

초콜릿을 하나씩 물고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병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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