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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30화 (130/169)

130화

처음 텔레비전을 만들었을 때와 다르게 실시간 방송은 백성들에게 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당장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영상들은 모두 아렌달의 모습뿐이었기에 이것을 공개하는 것은 아렌달보다 다른 왕국들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왕국의 정보들도 실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나서 공개해도 늦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분석해서 아렌달에 이득이 될 수 있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렌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실시간으로 대응한다면 백성들에게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겠지.'

이렇게 쌓은 신뢰는 언젠가 아렌달의 위기에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실시간 방송을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건 저희에게 채널을 만들어 주는 것도 늦어지게 되는 것이겠군요."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조금 더 기다려 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한 개의 텔레비전에서 동시에 여러 영상을 받아들이는 기술도 부족해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마법사들과 이야기는 해 봤는데, 영상을 보내는 건 지금 당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텔레비전에서 영상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가 봐."

내 말에 라이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영주로서 마법사들을 지원하고 마법 기술을 개발했던 사람으로서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알고 있는 라이언이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마법이라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스톨에서는 무슨 방송을 하려고 실시간 방송 채널을 원하는 거야?"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그랬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내 말에 라이언이 씨익 웃었다.

"스톨에서는 뉴렌달 브랜드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뉴렌달 브랜드의 최대 생산 기지가 스톨이라는 건 나 역시 알고 있는 사실.

그뿐 아니라 스톨 가문에서는 가문의 재력을 이용해 엄청나게 많은 상품을 만들어 아렌달이나 다른 왕국에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도 금광에서 뽑아내는 금이 만만치 않지만, 이제는 도시에서 생산하는 상품들로 얻는 소득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것들을 팔 겁니다."

"?"

"방송을 통해 스톨에서 생산하는 물건들을 팔 생각입니다. 굳이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나오지 않아도 물건을 보고 주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설마… 홈쇼핑?"

"홈쇼핑이라… 제 생각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저희가 받는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스톨에서 만든 상품뿐만 아니라 엔나나 기르만에서 만든 상품까지 스톨의 방송을 통해 거래하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라이언의 생각에 나는 속으로 감탄, 또 감탄하고 있었다.

'라이언이 영지의 경영을 물려받은 이후에 스톨의 재산이 훨씬 성장했다고 했었지?'

장인에게 백작위를 물려받기 이전부터 실질적으로 영지를 관리하며 성장시킨 인물이 라이언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장인보다도 손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라이언이었지만, 그것이 조금의 흠도 되지 않는 것은 그가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스톨 가문은 아렌달처럼 상단을 운영하지는 않지?"

"그렇습니다. 여러 상단과 교류를 하고는 있지만, 가문에서 직접 운영하는 상단은 없습니다."

"그러면 말이야… 나중에 홈쇼핑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때 아렌달 상단에 유통을 맡기지 않겠어?"

내 말에 라이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계약서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길었던 아스타나 왕국의 중앙대륙 원정이 또다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아스타나 왕국의 전장에서 마법 무기의 성능을 충분히 시험한 다른 왕국들이 점차 지원을 멈추기 시작했기에 아스타나 왕국에서도 무리하게 전쟁을 이어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스타나 왕국에서 손해만 본 전쟁은 아니었다.

다른 왕국들의 무기를 받아들이면서 아스타나 왕국의 기술도 한층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에 다른 왕국들이 돈을 썼다면, 아스타나 왕국에서는 병사들의 목숨을 썼을 뿐이다.

"가장 피해를 본 것은 그람 왕국이겠네."

"아무래도 전장의 배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마법 무기로 인한 피해도 가장 많이 본 게 그람 왕국이고요."

그람 왕국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인구의 30%가 목숨을 잃었다.

거기에 왕국이 초토화되면서 생산력 역시 박살이 나서 자력으로 왕국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람 왕국에 접근하는 것은 어떻게 되었지?"

"랄프가 직접 중앙대륙을 향했습니다. 아마 그람 왕국의 중심 세력과 접촉이 된다면 바로 메세지를 보낼 겁니다."

"그람 왕국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렌달로서는 좋은 기회야. 이번에 그람 왕국과 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아렌달의 중앙대륙 진출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

자생력이 떨어지는 그람 왕국을 뒤에서 지원하면서 아렌달 상단의 진출 교두보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현재 중앙대륙에서 아렌달 문화가 퍼져 나가고 있는 만큼 거점이 될 만한 장소가 필요했고, 그람 왕국이 영향력을 펼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힌 것이다.

-우리 왕국을 거점 삼아서 중앙대륙의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정말 다른 뜻은 없다는 말인가?

통신 마나석 너머에서 그람 왕국의 국왕은 의심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자칫하면 왕국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람 왕국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렌달에서 그람 왕국을 지원하려는 이유는 오직 중앙대륙으로 아렌달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서지 그람 왕국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아쉬운 것은 아렌달이 아니라 그람 왕국 아닙니까?"

-……

"그래도 우리의 뜻이 못 미덥다면, 이번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해도 좋습니다."

내 말에 통신 마나석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 후우- 아렌달의 뜻을 받아들이겠소.

그람 왕국에서는 안 좋은 조건이라도 아렌달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그람 왕국을 집어삼키려는 왕국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그람의 국왕도 모르지 않을 테니까.

아렌달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아렌달의 보호를 받는다면, 다른 왕국에서도 쉽사리 그람 왕국을 삼킬 생각은 못 할 것이다.

"좋습니다. 아렌달 상단의 선단에 왕국의 사신을 보내십시오.

그러면 다른 왕국에서 아렌달과 그람 왕국의 협력을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람 왕국으로의 지원은 조약을 확실히 맺은 이후부터 진행될 겁니다."

-확실히 하겠다는 말이군.

"이렇게 큰일을 허투루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제안대로 얼마 후 그람 왕국의 사신들이 아렌달을 찾아왔다.

마음 급한 그람 왕국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아렌달의 보호를 받기 위해 아렌달이 원하는 대로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아렌달이 개발하려는 부분에 그람 왕국에서는 적극적으로 노동력을 지원해야 한다니…

이 내용은 왕국에 너무 불리한 내용이 아닙니까? 이 부분은 조약에서 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력을 지원한다면 그 대가로 임금을 지불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람 왕국의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내용이 어떻게 불리한 내용이 된다는 말입니까?

이 내용은 절대 뺄 수 없는 부분이니 그람 왕국 측에서 양해해 주길 바랍니다."

"하아- 그럼 이 내용은 어떻습니까?

아렌달에서 그람 왕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중앙대륙에서 모두 소진될 때까지 반송시킬 수 없다는 내용은요?

이것도 지금 그람 왕국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왕국의 창고에 불필요한 재고를 쌓아 놓겠다는 말 아닙니까?"

"불필요한 재고라니!!!

아렌달의 상품은 지금 없어서 거래를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왕국에서는 아렌달의 상품을 하나라도 더 받겠다고 난리인데 무슨 소리입니까?

그람 왕국은 아직 아렌달의 상품이 대륙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까?"

"무, 물론 아렌달의 상품들이 높은 품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팔려 나간다는 보장이…"

"걱정 마십시오. 분명 그람 왕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각 왕국에서는 아렌달 상품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룰 테니 말입니다.

재고가 쌓인다니… 우리 아렌달의 상품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합니까?

길어야 한 달, 아니- 열흘이면 창고가 거덜 날 테니 창고나 더 만드는 게 좋을 겁니다."

무엇하나 유리한 조항이 없었지만, 아쉬운 소리도 통하지 않는 아렌달의 그람 왕국의 사신들은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람 왕국과 조약을 맺었다고 아스타나 왕국에서 또 뭐라고 하겠군."

"뭐라고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스타나 왕국은 지금 내부 관리하기에도 바쁠 겁니다.

두 번의 원정으로 죽은 병사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요. 듣기로는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왕국 내에서 전투가 없었다고 해도 아스타나 왕국 내부의 상황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듯했다.

특히 자신들만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주변 왕국보다 나아진 게 없으니 백성들이나 지방 영주들이나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럼 아스타나 왕국은 신경 쓸 필요 없겠네."

"다른 왕국들이야 아렌달이 중앙대륙으로 진출하면 더 좋아할 겁니다.

자신들도 중앙대륙으로 진출할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미 기술력에서는 동대륙이 앞서있는 만큼 중앙대륙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겠죠."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특히 중앙대륙의 패권을 가지고 있는 에나플 왕국과 메이더스 왕국에서 동대륙의 진출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거야 다른 왕국들의 사정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우리아 그람 왕국이라는 확실한 거점이 생겼으니까 말이야.

아렌달을 밀어내고 싶다면 그람 왕국을 지도에서 지우는 방법밖에 없을 거야."

내 말에 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움직여야겠지.

랄프에게 그람 왕국에 먹을 것부터 넣어 주라고 해.

먹을 것만큼 백성들의 마음을 돌리기 좋은 것도 없으니까."

"이미 그람 왕국의 사신들이 배에서 내리는 순간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쯤이면 그람 왕국의 왕궁에서도 파티가 한창일 겁니다."

"역시… 일을 잘해도 너무 잘하는 것 아니야?"

"아렌달에서는 쫓겨나기 싫다면 일을 잘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 밥그릇 놓치지 않으려면 알아서 잘해야죠."

리오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도대체 은퇴는 언제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내 말에 리오도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좋은 시대에 은퇴를 왜 합니까?"

'좋은 시대라… 그런가?'

리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 시대를 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좋은 시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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