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난민 문제로 나르비크 왕국과 약간의 트러블이 생길 뻔했지만, 그들을 브레튼으로 보내 버리면서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나르비크 왕국의 실수에 아렌달 역시 난민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했다며 대응하니 나르비크로서도 뭐라고 하기 난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브레튼으로 난민을 보내면서 은밀하게 소문을 냈기 때문인지 평민들 사이에서 나와 아렌달의 평판은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아렌달은 평민의 목숨이라도 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평민들 사이에 돌면서 아렌달을 향한 애국심이 높아지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다른 왕국에서는 불편한 눈빛을 보내고 있겠죠."
"언제는 안 그랬나?
아렌달이 독립한 이후로 왕국들은 언제나 불편한 눈빛을 보냈어."
"그때는 아렌달의 뛰어난 기술력 때문이었지 않습니까?
왕국 평민들의 지지가 아렌달을 향하는 건 왕국의 기득권들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백성들이 언제 아렌달을 향해 탈주할지 모르니까요."
"자기네 백성들은 자기들이 해야지.
그리고 영주들이 영지 관리를 잘하면 난민은 생기지 않는다고."
하물며 영지를 빠져나온 백성들도 국경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난민을 관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서로 눈치를 보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이 같은 일이 지속되어서 아렌달에 좋을 건 없다.
"그래도 이번의 경우처럼 대규모의 난민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만약 이 같은 경우가 또 생긴다면 그때는 아렌달에서도 막으면 되는 거잖아."
"알겠습니다. 헤돈경에게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렌달에는 별다른 이득이 없는 것도 사실. 독립하기 이전에나 일손 하나하나가 아쉬웠지, 독립한 이후에는 아렌달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국에서 도망치는 백성들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렌달인도 아닌 사람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생각해 줄 만큼 박애주의자는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 요구 때문이기는 했지만, 마탑에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마법 기술이 개발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공 마나석을 만들기 위한 시추 기술, 드론을 넘어 비행선을 만들기 위한 비행 기술, 그리고 리암이 바라 마지않는 영상 기술.
그중에서 가장 먼지 빛을 보게 된 기술은 바로 영상 기술이었다.
"3등급 기록석 하나에 저장할 수 있는 시간은 약 50분입니다."
50분이면 연극이나 스포츠를 녹화하기에 아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록석 두 개로 축구 경기의 전, 후반 풀타임을 녹화할 수 있었으니 충분히 실용성이 있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1, 2등급의 마나석을 이용한다면 그 이상의 시간도 영상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녹화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수상기-텔레비전은 어때?"
"인화용 종이와 비슷합니다."
"그래?"
"다만, 아시다시피 마나석 용액이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겠네."
"평민들이 가지기에는 어려울 겁니다."
어느 정도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창기 텔레비전 역시 평범한 가정집에서는 가질 수 없는 물건이지 않았던가.
원래 첨단 기술이 처음 나오게 되면 부유한 사람부터 누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녹화한 영상을 한번 확인해 볼까?"
달리아가 여행을 다니면서 찍어 온 영상은 아렌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부분까지 영상에 담겨 있었기에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아렌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특히 대단한 건 수상기-텔레비전이었다.
인화용 종이와 비슷하다고 했던 것처럼 정말 종이처럼 얇은, 그리고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을 만든 것이다.
'마법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물건이겠지?'
"훌륭해. 역시 마법은 대단한 것 같아."
내 칭찬에 자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자하에 나는 마주 웃어 주었다.
그저 서로 웃기만 하는 모습에 자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고개가 기울어졌다.
"왜?"
"보너스는 없는 겁니까?"
"보너스?"
"이 정도면 데우스님께서 지시하신 수준에 도달한 것 아닙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기는 하지. 그런데…"
"…그런데?"
"영상 마법에 내가 보너스를 준다고 했었던가?
시추 마법과 비행 마법에는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지만, 영상 마법에는 보너스를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
내 말에 자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겨우 영상 마법 하나에 보너스라니…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겨우 영상 마법이라니요! 이 마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데…"
좌절하는 자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럼 한 가지 더 임무를 줄게."
"이, 임무요?"
"지금처럼 영상을 녹화하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낼 수 있는 마법도 만들어 봐.
통신 마법으로 라디오 중계를 하듯이, 텔레비전이 있는 장소에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기술 말이야."
"윽! 그건 또 무슨 이상한 기술입니까?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내라니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방금 말했던 보너스를 줄게."
"왠지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은데요."
"원래 일은 하면 할수록 점점 늘어나는 법이야."
"하아- 알겠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보내는 것처럼 통신 마법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보너스를 준다는 말에 다시 밝아지는 자하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라디오 방송에 익숙해져 있던 아렌달의 백성들은 처음 공개하는 텔레비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영상 마법은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사진이 살아 움직이다니. 살면서 그런 건 처음 봤어."
"그 텔레비전인가 뭔가 하는 게 자동차만큼이나 비싸다고 하던데.
과연 그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돈 많은 귀족님들은 다들 사지 않을까? 그리고 자동차는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살 수 있지 않나?"
"열심히 일하면 산다고? 몇 년이나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는 계산해 봤어?"
텔레비전의 가격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영상이 주는 재미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극장이나 경기장에 직접 가서야 즐길 수 있었던 것들이 가까운 공간에서도 즐길 수 있으니 그 편리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유가 있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을 주문했다.
물론 비디오테이프처럼 녹화한 기록석을 하나하나 따라 준비를 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나 텔레비전을 구매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네는 왜 여기 있는 것인가?"
"텔레비전을 사야 녹화한 경기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은 빼놓고 녹화한 기록석만 보내 주시면 어떻게 보라고 그러시는 겁니까."
"텔레비전이야 체스터 가문에서 보내 줄 줄 알았지."
"이블린이 그러는데 지금 귀족들 사이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직접 마탑을 찾아갔다 이거야?
브레튼에서 하던 공사까지 손에 놓고?"
"손에 놓기는 누가 놓았다고 그러십니까.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았을 뿐이죠."
당당하게 할 말은 다 하는 리암이었다.
"근데 지금 귀족들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들었다며?
물량도 없는 물건을 어떻게 구하려고 온 건데?
설마 아렌달 건설의 관리자라는 직위를 앞세워 물건을 강탈할 생각은 아니겠지?"
"……"
"…진짜냐?"
"크, 크흠- 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방금전의 당당함은 어디 갔는지 목소리를 낮춘 리암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집무실 한쪽에 둘둘 말려져 있는 텔레비전을 가져와 리암에게 건네주었다.
"자. 나는 잘 안 보니까 리암에게 줄게."
"허업! 이게 텔레비전이군요."
"사용 방법은 알지?"
"하하- 물론입니다."
말려져 있는 종이를 활짝 핀 리암은 주머니를 뒤져 기록석을 꺼냈다.
"기록석도 가지고 다니는 거야?"
"텔레비전을 받으면 바로 사용해 볼 요량으로…
오- 나온다!"
경기 영상이 출력되는 모습에 리암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이제 되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브레튼으로 돌아가지?"
"하하- 알겠습니다.
브레튼으로 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겠네요."
리암의 말에 순간 텔레비전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던 것이 생각이 났다.
'흠- 이동하는 동안에도 볼 수 있는 작은 것도 만들면 괜찮을지도.'
영상 마법은 순식간에 백성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특히 영상 마법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귀부인들이었다.
외부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야 해서 바깥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 귀부인들인 만큼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텔레비전은 대단한 인기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귀부인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것은 단연 연극 무대와 가수들의 공연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뜸하던 공연 문화계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체스터 극단 소속의 배우들은 연기력이 뛰어나군요.
체스터 부인께서 투자를 많이 하신다고 하던데, 확실히 돈을 쓰는 만큼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체스터 극단 소속이 아니어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은 많답니다.
할리 소속의 레오나르도의 연기력도 대단하다고요."
"레오나르도가 연기력이 대단하다고요?
그는 얼굴이 대단한 거지 연기력은 형편없는데요?"
"…배우의 연기력은 얼굴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시는 건가요?"
공연 문화가 극장이라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었다.
"바다가 배경인 작품은 당연히 바다의 모습이 담겨야 실감이 나지 않겠어.
이번에 만들 늙은 어부와 바다는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 거야."
"극장에서는 많은 인물을 활용하기에 한계가 있지.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전쟁신 같은 걸 극장에서 표현하기에는 어렵잖아."
이렇듯 극장에서 만들기 어려운 그림을 극장 밖에서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때요? 진짜 작품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샤를로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공연을 넘어 영화를 만드는구나.
그런데 작은 극단들은 영화를 만들기에 어려울 텐데.
기록석의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까.
지금 보고 있는 이 작품만 해도 기록석이 6개나 들어갔잖아?"
"그래서 아직은 자본이 있는 극단들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귀부인들이 투자해 주지 않을까요?"
"샤를로트는 영화에 투자할 생각 없어?
연극 좋아하잖아?"
내 말에 샤를로트가 슬쩍 말했다.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다행이다."
"?"
"사실은 지금 보는 이 작품이 제가 투자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아-"
"그리고 앞으로 세 작품 더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 그러십니까?"
내 말에 샤를로트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날 샤를로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문화계에 투자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체스터 가문에서 취미에 돈을 때려 붙는다고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