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9화 (19/169)

19화

내 요구에 마탑주는 네 명의 마법사를 소개해 주었다.

알비레오와 에일렌을 데리고 갈 때 단 두 명을 추천해 준 것과 비교하면 마탑주가 나에게 얼마나 호의를 보여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하. 친분이 있거나 아는 사람 있어?"

"다들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에일렌도 데리고 왔어야 했나?"

마탑주에게 에일렌과 같이 원소 마법을 잘 다루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모두 에일렌 또래의 어린 마법사들이었다. 아무래도 원소 마법은 기초 마법에 해당하기 때문인지 어린 마법사들 위주였다.

"마탑주. 그렇다면 자하와 같이 마법진을 잘 다루는 마법사는 없습니까?"

"마법진 전문가라면 흔치 않지요. 보통은 손이 많이 가는 마법진 보다는 주문 위주로 공부를 하니까요.

자하가 특이한 경우지요."

마탑주의 말에 자하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면 베르겐에서 마법진을 제일 잘 다루는 마법사는 자하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어떻습니까?"

고민하는 내게 마탑주는 또 한 명의 마법사를 소개해 주었다.

"달리아. 공간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입니다."

"호오~ 공간이요?"

딱 듣기에도 토목 공사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단어지 않은가? 공간이라는 단어는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한 단어였다.

하지만 자하는 그렇지 않은지 썩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녀석. 아직도 마탑에 있었습니까?"

"아는 사람이야?"

"예. 미치광이입니다."

"끌끌끌-"

미치광이라는 말에 마탑주가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렌달에 있는 세 명의 마법사 중 두 명이나 미치광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그 달리아라는 마법사를 한번 만나 보죠."

"윽!"

달리아를 발견하자마자 자하가 싫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달리아는

"어머! 자하 아니니?"

반가워하며 자하에게 달려와 그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 저번에 마탑에 왔었다면서 나한테는 얼굴도 비추지 않았던 거야?"

"이거 놔! 이 미치광이야."

"어머! 너는 누나한테 미치광이가 뭐야?"

누나라는 말에 내가 놀라자 마탑주가 말했다.

"자하와 달리아는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아~"

"하아- 영주님. 저와 같은 스승님 밑에서 배운 달리아입니다."

"영주님? 아! 아렌달 백작님이시군요. 반가워요."

달리아는 아주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얼마나 새로웠으면 자하와 마탑주가 놀라서 내 눈치를 보고, 볼튼이 검을 빼 들 정도였다.

"너! 영주님께 무슨 짓을!"

"이런 무례한!"

"에이~ 그냥 인사인데 왜 그러실까?"

인사라고 한 것이 포옹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큼- 괜찮아. 괜찮아."

나는 남아있는 푹신푹신한 온기를 털어내고는 말했다.

"마법사 달리아. 그대는 공간 마법의 전문가라고 하던데. 그게 어떤 마법인지 알려줄 수 있나?"

"설마 저를 영입하고 싶으신 건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달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리아가 외우는 주문에 볼튼이 나를 보호하고 나섰지만, 자하는 이런 모습이 익숙한지 머리를 집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녀석이라···"

"그래 보이는군."

"···있으리라. 점프."

달리아는 마법을 사용하고는 내게 말했다.

"이런 거예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이런 거라니?

"마법을 사용하기는 한 거지?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내 말에 달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달리아의 손바닥 위에 내 수호 목걸이가 있었다.

"헐?"

"이게 공간 마법의 가장 기초에요."

"이거 사람도 옮길 수 있어?"

"마나량만 충분하다면 가능해요. 물론 마법진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정확한 좌표도 필요하지만요."

공간을 뛰어넘는다니.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해낼 수 없는 진짜 마법의 영역이 아니던가. 그것만으로 달리아를 영입하기에 충분했다.

"달리아를 포함해 다섯 명 모두 영입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안 됩니까?"

"아무래도 한 귀족 가문에 너무 많은 마법사를 내주게 되면 왕궁이나 다른 귀족 가문에서 마탑을 어떻게 생각할지···"

마탑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렌달에만 너무 편의를 봐주면 마탑이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마법사들을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가고 싶었다.

"이번에 마법사들의 영입을 허락해 준다면 아렌달에서 생산되는 마나석의 일부를 마탑에 기부하겠습니다."

"허업!"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탑주의 얼굴에 기대가 어렸다.

마탑에 남아있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권력에 관심이 없는 마법사들이었다.

권력보다는 마법 연구가 이들에게는 더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즉, 마법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치적 압박 따위야 충분히 견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들도 아렌달에 가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귀족 가문이라도 무작정 마탑을 압박하지는 못할 겁니다. 마법사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 아닙니까?

이정도면 도와 주시겠습니까?"

"큼큼 -그래도 마탑은 권력을 멀리하고 귀족 가문에 편애를 주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돈에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는건 마탑으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모욕입니다."

"마탑주. 아까 드린 1등급 마나석을 생각해보세요."

자신의 주먹만 했던 마나석을 떠올린 마탑주가 눈동자가 반짝이며 말했다.

"큼- 그렇다면 마나석은 얼마나 기부해 주실 건지···"

"오늘 전해드린 1등급 마나석을 추가로 3개."

"허업!"

"그리고 2등급 마나석 10개와 3등급 마나석을 50개 기부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다른 귀족 가문에서 마탑을 꾸짖기에도 너무나 많은 마나석이었다.

더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나는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미는 마탑주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 영지에도 마나 스팟이 있었다면 마법사도 양성하는 건데."

"아렌달에서 마나 스팟이 발견되면 왕궁에서 빼앗아 가지 않겠습니까? 다른 귀족 가문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

사실 이렇게 마탑에서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보다 영지에서 마법사를 키우는 게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하의 설명을 듣고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은 포기했다.

괜히 마법사들이 마탑에 모여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나 스팟. 풍수지리로 치면 용맥의 용혈같이 마력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모든 마법사는 마나 스팟이라는 마력이 모이는 곳에서 수련을 통해 마법사가 된다.

당연히 그 중요성 때문에 마나 스팟은 철저하게 왕국에서 관리한다. 일개 귀족 가문에서 갖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장소인 것이다.

"그래도 마법사를 8명이나 데리고 있는 귀족 가문도 거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렌달의 마법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관심이 있는 마법사들이 직접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아렌달로 돌아가기 전에 왕도에서 소문이라도 내고 돌아가야겠어."

아렌달이 마법사에게 호의적인 영지라는 것이 알려지면 자연히 마법사들도 찾아올 것이다.

심지어 아렌달에는 마나석 광산도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아렌달은 마법사가 몸을 의탁하기 좋은 영지였다.

"그래도 마법 연구에 들이는 시간보다 공사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 무작정 찾아오지는 않을 텐데요?"

"그건 비밀로 해야지!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마법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을 필요한 곳에 써야지.

골방에 처박혀서 연구나 할 생각이면 마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

영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재라면 그건 인재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지원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마법사뿐만 아니라 장인이나 상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바보도 호구도 될 생각이 없다.

"이거 호구 잡히게 생겼는데?"

드디어 국왕에게 연락이 왔다. 왕도에 있는 빈민들을 데리고 가도 된다는 연락이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왕도 남쪽 구석에 있는 빈민 1천 명뿐 아니라 왕도 밖에 사는 빈민 1천 명도 같이 데리고 가라는 게 국왕의 대답이었다.

물론 아렌달에 사람이 늘어난다면 나도 환영이다. 그런데 국왕이 내세운 조건이 만만치 않았다.

왕도 내 빈민뿐 아니라 왕도 밖 빈민들의 인두세도 같이 지불 할 것.

2천 명분의 인두세를 내지 않으면 요구했던 1천 명의 빈민도 데리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 국왕의 조건이었다.

"아렌달의 인구가 겨우 2500명입니다. 그런데 한 번에 2천 명의 인구를 받으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

나인의 말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떤 자식 머리에서 이따위 생각이 나온 거지? 국왕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 같진 않은데."

"국왕 폐하의 측근인 덴프린스 공작님이나 재상인 벨파스트 후작님 아니겠습니까?"

"역시 그렇겠지?"

덴프린스 공작과 벨파스트 후작은 중앙의 권력가들이었다. 왕국에서 제일 입김이 세기로 유명한 귀족들이 나를 견제하기 위해 손을 쓴 것일지도 몰랐다.

"당장에 2천 명분의 인두세를 감당할 수 있나?"

"한 번에 2천 명이라니. 세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주님.

그렇게 많은 인구가 한 번에 아렌달에 들어오면 영지의 행정이 무너질 겁니다."

나인의 말대로였다. 돈이라면 마나석을 팔아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지에 2천 명이 한 번에 들어가면 그들이 살 집이나 일터, 그리고 그들에게 분배할 식량은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말이다.

1천 명의 인구를 받기 위해 나와 행정관들이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데. 거기에 추가로 1천 명의 생활 공간을 당장 어떻게 마련한다는 말인가?

"중앙의 귀족들이 나를 엿 먹이기 위해 계획한 것이겠지?"

내 말에 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도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다.

리카르드 덴프린스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덴프린스 공작은 나와 같이 이제 겨우 23살.

베르겐의 정치 세력 한 축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젊은 공작이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눈빛은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덴프린스 공작님."

"누구인가?"

저건 내가 누구냐 묻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나 스스로 소개하라 말하는 것이다.

"아렌달 변경백의 데우스 아렌달입니다."

"아! 자네가 그 아렌달 백작이군. 근 몇 년간 아렌달 변경백이 아주 발전했다지?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능구렁이처럼 묻는 덴프린스 공작에 나는 표정을 감추고 말했다.

"이번에 국왕 폐하께 부탁드려 왕도의 백성 중 일부를 아렌달 변경백으로 이주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왕도의 백성을 이주시킨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말로는 모르는 척했지만, 전혀 놀란 얼굴이 아니다.

조금의 표정 연기도 하지 않는 덴프린스 공작에 나는 시간이 아까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렌달에 왕도의 백성들을 이주시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칫. 아렌달 백작은 재미없는 사람이었군."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도 연기를 그만두었다.

"한 번에 2천 명의 빈민을 받는 것은 아렌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한 일입니다.

국왕 폐하께 처음 요청했던 대로 1천 명의 빈민만 이주할 수 있도록 덴프린스 공작께서 도와주십시오."

"잠깐만.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 사안에 태클을 건 것은 벨파스트 후작이지 내가 아니야.

나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덴프린스 공작 역시 쉽게 왕도의 백성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방 영지의 그것도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변경백이 힘을 키우는 것은 중앙의 귀족으로서 바라는 일이 아닐 테니까.

"왕도의 백성을 데리고 가고 싶으면 벨파스트 후작을 찾아가게.

나는 계속 중립을 유지해줄 테니까."

"벨파스트 후작에게 가봐야 제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은 공작님께서도 아실 텐데요?"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다. 벨파스트 후작에 대해 소문으로만 듣던 나보다 덴프린스 공작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벨파스트 후작은 나에게 절대 왕도의 백성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백작이 원하는 답을 해줄 거라는 말인가?"

"적어도 벨파스트 후작보다는 가능성이 높지요."

"어째서?"

"저와 덴프린스 공작님은 같은 방계 왕족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벨파스트 후작 같은 늙은이보다는 젊은 덴프린스 공작님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다소 도발적인 내 말에 덴프린스 공작이 피식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