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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8화 (18/169)

18화

"빌려주신 4만 셀링에 이자 5천 셀링을 더해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자까지 완벽하게 갚을 줄은 몰랐군."

"국왕 폐하께서 빌려주신 셀링 덕분에 영지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이걸 준비했습니다."

내 신호에 나인이 준비한 상자를 시종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무엇인가?"

"수호 마법이 걸려있는 마법 아이템입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이 프로텍트 마법이 걸려있는 목걸이였다.

"이런 마법 아이템까지 선물로 가지고 오려면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렌달 백작이 그간 여유가 많이 생겼나 보군."

"그렇게 부담이 생길만한 물건이 아닙니다. 영지에서 만든 아이템이니까요."

내 말에 국왕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리 보고가 더딘 변경백이라도 왕국에서도 영지의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순간에 빚을 갚을 돈과 마법 아이템까지 만들어서 왔다?

국왕이 바보도 아니고 이 정도 얘기면 아렌달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설마 아렌달에서 마나석이 나온 건가?"

국왕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곧 알려질 일이기에 국왕 폐하께 보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 이유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국왕 폐하께 부탁이 한가지 있습니다."

"마나석 광산이 있다면 또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은 아니겠군."

"네. 이번엔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합니다. 왕도의 백성들을 아렌달로 데려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내 부탁에 국왕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대는 내가 바보로 보이는가? 왕도의 백성을 아렌달으로 데려간다고?

그간 상단을 통해 이주하는 빈민들도 눈 감아 줬는데, 이제는 대놓고 백성을 내놓으라는 말인가?"

국왕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이세계는 사람의 머릿수가 곧 노동력이고 세금인 세계였다.

명백하게 왕도의 재산과 노동력을 나누어 달라고 하는 내 말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바보 멍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 에도 내가 이런 부탁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국왕 폐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달라고 부탁드리는 백성은 세금을 내지 못하는 빈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가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도, 왕도에서 세금을 내는 상인과 장인도 아닌 왕도 구석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빈민들을 데려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건 지금처럼 상단을 통해서 조금씩 데려가면 되는 것 아닌가?"

처음 리비아 상단이 이주민을 데리고 온 그날부터 2년 동안 아렌달로 들어온 이주민이 겨우 400명도 안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어느 세월에 영지의 인구를 불린다는 말인가?

이렇게 국왕에게 직접 요청하는 것은 지금처럼 찔끔찔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많은 인구를 늘리려는 계획이었다.

아렌달 개발 3개년 계획은 이제 끝났다. 새로운 영지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왕도의 남쪽 구석에 있는 빈민가에 1천 명의 빈민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왕도 바깥의 농지에 노동력을 더하는 인구도 아니고, 왕도의 경제를 움직이는 상인이나 기술자도 아닙니다.

왕도의 쓰레기를 뒤지거나 하루하루 일감을 받아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국왕 폐하께서도 그들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불편함이 있지 않습니까?

행여나 그들이 병을 옮길까 걱정도 해야 하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구호 물품이나 식량이 아까울 수도 있고요."

내 설명에 국왕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조금씩 펴지며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국왕으로서도 왕도의 빈민들이 눈에 거슬렸을 게 분명했으니까.

도시에는 어쩔 수 없이 빈민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빈민층의 사람들로 인해 도시의 미관이 엉망이 되고, 떨어진 위생상태로 역병이 돌 수도 있다.

그리고 굶주린 빈민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쫓아내고 핍박해봐야 국왕의 평판만 떨어질 뿐. 처리하기도 어려운데 도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게 도시의 빈민들이었다.

그런 빈민들을 내가 알아서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국왕은 지금 내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자신에게 어떤 이득과 손해가 생길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민하는 국왕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쐐기를 박기로 했다.

"만약 국왕 폐하께서 아렌달로 빈민들을 보내 주신다면, 그 빈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인두세를 아렌달이 대신 지불 하겠습니다."

"변경백이 세금을?"

"예. 인구 1천 명분의 인두세를 지불하고 데려가겠습니다."

왕도에 도움 하나 되지 않던 빈민을 처리하면서 세금까지 걷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다.

"흠- 아렌달 백작의 부탁은 내 대신들과 상의 후에 답을 주도록 하겠네."

아까와 사뭇 다른 말투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국왕은 이미 빈민들을 나에게 넘겨주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국왕에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국왕 폐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또?"

"네. 이번엔 부탁이 아니라 허락입니다."

"아렌달 백작이 내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다고? 흠-"

잠시 생각을 정리한 국왕은 내가 말한 허락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변경백이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은 하나뿐이다.

국경과 관련된 일 말고는 변경백이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은 없다.

"바깥을 개발하겠습니다."

"아렌달 백작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왕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국왕 말고 아무도 없는 내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도 내가 여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용케 알아서 찾아온 것이다.

"나를 찾아올 손님이 있나?"

여관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내려가니 익숙한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렌달 백작님."

"랄프 부 단주가 아닌가?"

리비아 상단의 부 단주인 랄프가 찾아온 것이다.

"백작님께서 왕도를 찾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역시 상인답게 정보가 바싹한 랄프였다.

"마침 리비아 상단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상단의 도움이요?"

"그래. 아렌달에 사람을 이주시켜야 하거든. 이주에 리비아 상단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국왕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국왕은 내 요청을 들어줄 것이다.

빈민들의 인두세에 바깥을 개발하는 데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밑밥까지 깔았으니 빈민을 아렌달로 보낼 명분도 충분했다.

대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시간 끌기 중이지만, 내 요청을 들어줄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빈민들을 이주시켜줄 도움을 구해야 했다. 리비아 상단이라면 그 역할을 맡기기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랄프는 내 말에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리비아 상단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니···"

"도움을 주기 어려운가 보네?"

"그게 아니라··· 사실 저는 지금 리비아 상단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 리비아 상단을 나왔습니다."

리비아 상단이라면 제법 왕도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규모의 상단이었다.

그런데 부 단주까지 올라간 사람이 스스로 상단을 나온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때 랄프가 내 앞에 털썩 엎드렸다.

"백작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나는 순간 랄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움은 내가 청했는데 갑자기 자신을 도와 달라니.

"혹시 리비아 상단에서 쫓겨나게 된 거야?"

"아닙니다! 새로운 상단을 만들고 싶어서 제 발로 나왔습니다."

새로운 상단을 만드는데 나한테 무슨 도움을 바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랄프는 내 침묵에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백작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아렌달에서 상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렌달에서 상단을 만든다고?"

"예!"

상인을 할 생각이면 자본과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는 것이 기본상식이다. 당연히 아렌달보다 왕도가 적합했다.

그리고 랄프라면 왕도에서 만든 인연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왕도를 떠나, 그것도 변경 영지에서 상인을 하고 싶다는 말은 내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랄프의 눈은 무언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을 보니 듣고 싶었다.

랄프가 왜 리비아 상단을 제 발로 나와서까지 아렌달로 오고 싶어 하는지를.

"10살에 처음 상단 일을 배우고 25년간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베르겐은 물론 나르비크 왕국과 오울루 왕국까지 이문을 남기기 위해 발품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곳도 아렌달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아렌달은 발전을 위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미 수백 년간 겪었던 시행착오 끝에 쌓인 현대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렌달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발전이 가능했다.

그리고 랄프는 아렌달에 가장 많이 들른 외부인이었다. 상단을 이끌고 아렌달에 들릴 때마다 달라지는 영지의 모습에 그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것이다.

이제 아렌달에는 돈이 흐른다.

"백작님께서 맡겨만 주시면 아렌달을 위한 상단을 만들겠습니다."

"어용 상단이 되고 싶다는 건가."

"예. 아렌달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을 외부에 팔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렌달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렌달에서는 상업이랄 게 없었다. 공사에 투입되는 영지민에게 임금을 주지만 그 임금도 대부분 나에게 되돌아 왔다.

식량이나 수작업으로 만든 물건들은 전부 영주성에서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대장간, 제분소, 푸줏간 등 시설 역시 영주인 내 권한 밑에 있었기 때문에 영지의 경제는 모두 영주성의 관리 아래 있었다.

외부의 상단들이 들여오는 물건들도 모두 영주성에서 사들인 이후 영지민에게 분배하는 시스템이었으니 지금까지 아렌달에는 상인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영지의 경제력이 올라갈수록 상업의 발전 역시 준비해야 했다.

'좋은 기회다.'

왕도에서 큰 상단을 이끌었던 상인이 스스로 아렌달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상인으로서 경험도 충분하고, 인맥도 있으며, 돈의 흐름을 보는 감도 뛰어나다. 스스로 찾아온 인재를 놔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작은 성의입니다."

"허억! 이것은!"

내 선물에 마탑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1등급! 1등급 마나석이 아닙니까!"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마나석에 마탑주가 흥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건 마나석 광산에서 캐낸 마나석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커다란 녀석이었으니까 말이다. 시장에서 거래한다면 5천 셀링까지도 받을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알비레오와 에일렌을 추천해주신 덕분에 영지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된 줄 모릅니다. 이번에도 재능있는 마법사를 영입하고 싶은데, 마탑주께서 또 한 번 추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자란 제자 놈이 사람 구실을 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데 이런 선물까지···

아렌달 백작께서 바라시는 마법사가 있다면 제가 설득을 해서라도 아렌달로 보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설득까지 해준다니 정말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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