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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187화 (187/200)

187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이윌에서 미팅 요청?”

피곤한 외근을 다녀온 뒤, 채 재킷을 벗기도 전에 매튜 본드가 찾아와서 던진 말에 엘도라도 한국지사장 맥스웰 도너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말만 들어도 무슨 용건인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독점작 제공 계약 체결이 미뤄지고 있으니, 거기에 대한 항의일 가능성이 크리라.

맥스웰은 찾아오는 사람을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지금껏 성실함을 기본으로 일해 온 사람이라, 계약이 미뤄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미안함도 느끼고 있었다.

“알았어. 스케줄을 좀 보지.”

“빠른 시일이면 좋을 것 같아.”

“바쁜 일인가? 하긴, 계약 건일 테니 바쁜 맘이긴 하겠지.”

“그것도 그런데…….”

맥스웰은 매튜와도 오랜 시간 일했다.

엘도라도 미국 본사에서부터 한국지사로 발령 날 때도, 맘이 맞는 사람과 함께이면 해서 그를 추천했다.

그런 매튜의 어투에서 뭔가를 감지해 내고 그가 물었다.

“왜? 내가 모르는 게 있어?”

“아니야. 거기 강 PD라는 사람이, 제법 예리한 친구라서 말이야. 이번에 너도 얼굴 익히면 좋을 것 같아.”

“전에 라이언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데. 둘 다 꽤 맘에 들었나 보군. 알았어. 시간 빨리 만들지.”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시간을 만들기란 쉽지는 않았다.

플랫폼 오픈 직전이기도 하고, 확정되지 않는 시일 때문에 분 단위로 쪼개 미팅을 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거기다 본사 쪽 관리도 해야 하니, 약속이 잡힌 것은 사흘이 족히 지나서였다.

“2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지만, 괜찮을까?”

매튜에게 한 이야기는 라이언에게 전달되고, 그대로 강대한에게 연락이 갔다.

“바로 가겠습니다.”

강대한은 그대로 엘도라도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솔직히 그가 찾아온다고 했지만, 맥스웰은 혼자 올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곤 해도 어쨌든 지사 차원에서 큰 투자가 들어가는 일이고, 그렇다면 CP급 인물보다 대표가 직접 오는 것이 맞다.

그러나, 강대한은 본인이 한 말 그대로 정말로 혼자서 엘도라도로, 맥스웰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대한입니다.”

“맥스웰 도너먼입니다. 이렇게 급히 부르게 되어서, 미안해요.”

맥스웰은 유창한 한국말로 응대했다. 그가 한국지사장으로 발령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면서 맥스웰은 슬쩍 강대한을 살폈다.

캐주얼한 수트 차림의 그는, 제법 큰 키에 말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PD 일을 한다곤 했지만, 연예인 생활을 해도 나쁘지 않은 인상이었다.

듣자 하니 한국 방송계에서도 스타 PD라고 했는데, 직접 보니 신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앞으로 이야기할 건은 다르지.

지난 사흘간. 맥스웰은 아이윌과의 계약 건에 대해서 생각한 바가 있었다.

직접 온다는 것을 굳이 거부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신임하는 매튜와 라이언이 이 남자를 맘에 들어하고, 또 그의 기획을 맘에 들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맥스웰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선하고, 또 대단한 콘텐츠가 될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다만.

‘지금 시기에는…… 진행하기 힘들어.’

지금 맥스웰은 영등위 등 온갖 기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현재 심의를 넘어간 영상물의 숫자 자체가 적은데, 그것이 다 누구의 로비 때문인지도 안다.

로비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당장은 여의치 않은 상황.

그로서는 아이윌의, 강대한의 콘텐츠를 지금 당장 제작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겨우 아픈 마음을 붙잡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강대한이 맞은편 소파에서 자리를 잡자, 맥스웰은 입을 열었다.

“오늘,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시기가 많이 지연도 되어서, 직접 뵙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나도 그게 낫겠다 싶어서 이렇게 오라고 한 겁니다. 사실…….”

맥스웰이 입을 떼려는 찰나. 강대한의 말이 반 박자 빨랐다.

“계약 건을 백지화하시려는 말씀이라면, 잠깐만 미뤄 주십시오.”

담담하기까지 한 그 말에, 맥스웰이 되려 당황했다.

* * *

맥스웰 도너먼 지사장.

오기 전에 그에 대해 조사했다.

뒷조사……까지는 아니지만, 지사장을 만나러 가기 전 정보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도움 요청을 흔쾌히 받아 준 민준기 기자는 하루도 되지 않아서 그에 대한 필요충분한 정보를 찾아와 주었다.

그의 간단한 신상. 경력. 엘도라도에서의 업무. 한국지사장으로서의 지금까지의 과정.

“저도 전문 분야는 아니라서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미안합니다, 강 PD.”

“그럴 리가요. 충분합니다. 꼭 좋은 소스로 보답하지요.”

민준기 기자와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정말 정확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건조할 수도 있지만, 그런 깨끗함이 우리 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몇 가지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때마침 맥스웰 지사장이 만나러 오라는 신호를 내주었고, 나는 그 사무실에 앉아서 일단 말을 던졌다.

“계약을 되돌리기 전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역시나, 맥스웰 지사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계약을 없던 일로 하려고 한 것이다.

표정을 보니 정확히 들어맞은 듯했다.

오늘 타이밍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맥스웰 지사장이 오늘이기에 부른 것인지.

어쨌든 나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모든 것은 그의 결단.

그 결단을 흔드는 것이, 오늘 내가 할 일이었다.

나는 눈을 새로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나만이 보이는 숫자가 떠올랐다.

[43%]

미묘하게 떨어진 숫자.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사장님. 지금 고민하시는 부분이 무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맥스웰 지사장은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회사 안팎의 사정이죠. 그 사정 때문에 계약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사정이라면…… 네, 제가 자세히 여쭐 수는 없겠으나…… 아마 오픈에 관련된 일이겠죠.”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도라도 오픈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 심의도 많이 진행되지 못했고, 그 탓에 예정했던 가을도 이미 지나는 건 확정일 것 같고요.”

“맞아요. 라이언도, 다른 직원들도 열심히 뛰어주고 있는데…… 다 내가 부족한 탓입니다.”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다른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닐까요. 가령, 누군가가 방해를 한다거나.”

“…….”

맥스웰 지사장이 다시 입을 닫았다. 그것은 이미 일종의 긍정이라, 나는 말을 이었다.

“최근에 저희 회사에 합류가 결정된 PD가 있어서, 덕분에 저도 이것저것 더 알게 됐습니다. 엘도라도에 제가 모르는 고민이 있다는 것도요.”

“그건…….”

“굳이 고민을 꼬집자는 건 아닙니다. 그 탓에 저희 아이윌도 영향을 받은 거지만, 전 그 솔루션을 드려 보고자 온 거니까요.”

“솔루션?”

익숙한 영단어에 반응하는 맥스웰 지사장.

나는 머리 위를 힐끔하고서 말했다.

“저희 독점작 계약. 엘도라도 오픈에 맞춰서 진행되면 좋겠지만, 굳이 뒤로 미뤄져도 상관없습니다. 저희야 진행할 수만 있다면 시기야 언제든 괜찮습니다. 그 점은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예. 그렇다면 나도 조금 마음이 놓이네요.”

[46%]

확률이 꿈틀댔다.

바로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즉각적인 변화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욕심은 당연히 있습니다. 전해 들으셨겠지만, 저흰 이 기획에 자신이 있습니다. 반드시 엘도라도의 대표작이 될, 킬러 콘텐츠가 될 겁니다.”

“알고 있어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49%]

“하지만…… 그래요, 속 편하게 이야기하죠. 지금 아이윌의 작품을 제작해서 공개하는 것에 조금 소극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는 뭐 아신다니……. 그게 시기가 지난다고 해서 얼마나 나아질지는…….”

“엘도라도가 오픈한 다음에 자리를 잡더라도, 저희 작품을 독점 공개하는 것에 부담이 느껴지신다는 거군요.”

[46%]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요.”

라이언 킴과 매튜 본드에게는 한차례 이야기했다. 그리고 의견만 묻고, 함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을 믿으니, 지사장에게는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나는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고서, 말했다.

“굳이 한국에 오픈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 독점작을 제작해서 한국 엘도라도에서 오픈하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그냥 미국에서 먼저 오픈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반응은, 라이언 킴과 매튜 본드와 같았다.

“…….”

말문이 막힌 듯 뭐라고 반응조차 못한다.

나 스스로도 정신 나간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독점작을 찾는데, 그걸 미국에서 오픈해 버리자고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내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미국에서 하든 한국에서 하든, 계약 사항에는 전 세계 동시 공개가 기본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영상 심의가 좀 더 까다로우니, 그만큼 기간이 밀릴 겁니다. 결국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선공개가 되겠죠. 그 이후 한국에서 오픈을 하더라도, 엘도라도로서는 할 말이 충분히 있으실 겁니다.”

“그……건 그렇네요.”

“한국 제작사가 만든 엘도라도 독점작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선공개된다. 그 지점만 살짝 비틀면, 얼마든지 방법은 생기지 않겠습니까?”

엘도라도는 독점작을 챙길 수 있다. 아이윌은 거액 투자를 받아, 독점작이 전 세계로 공개되는 업력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다만.

“……물론 본사 측에서 이 기획을 받아들여 준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만, 그건 뭐…… 지사장님과 다른 분들을 믿겠습니다.”

정신 나간 의견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판단 때문이 아니다.

한국지사만이 아니라 본사로까지 결재 라인이 옮겨가야 한다는 것.

단순 투자 결재가 아닌, 미국 본사의 선독점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내가 던진 이 의견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내가 던진 것은,

[63%]

지나치게 성실하다는 평을 받는 이 맥스웰 지사장을 뒤흔들려면, 그 정도 미친 의견이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판단의 기본은…… AGD 앱이 새로이 해금한 아이템에 있었다.

[아이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사용 중입니다.]

[사용하려는 대상의 충분한 정보가 입력되었습니다.]

[사용 중 대상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머리 위 숫자 밑으로, 맥스웰 지사장의 생각이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하긴 모르는 것도 이상한가.]

[시기를 미룰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야. 좀 더 괜찮은 시기에…….]

[한국 독점작이 아닌 미국 독점작 형태로 가져간다……? 괜찮은데……?]

그 메시지들을 보면서, 즉각 판단해 말을 바꾼다.

남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천운과 같은 이 기회를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아이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충분히 얻었다.

그 기한이 곧 다가왔다.

[사용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포인트 부족으로 사용 시간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연속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말을 던졌다.

“제 의견이 통과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드릴 만큼, 저희 회사는 의욕에 차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를 한번 믿어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양인에게 통할지 모르겠으나,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아이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사용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이템이 봉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다음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동일 인물에게는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

AGD 앱이 나에게 던져 준 시간은, 아이템은 아주 소중히 사용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맥스웰 지사장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두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머리 위의 숫자는,

[69%]

처음과 비교해 20% 이상이 뛰어 있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몇 분 안 되는 사이 이뤄낸 괄목할 만한 성장. 나는 그것에 가능성을 걸었다.

그리고 이틀 후.

라이언 킴이 오전부터 전화가 해 왔다.

“결재 떨어졌습니다. 계약서 보내 드리죠!”

드디어 좀비 예능 <이스케이프> 제작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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