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81화 (181/200)

181화 I’m waiting

내가 처음 이 아이템을 꺼내 들었을 때, 회의실에 모였던 모든 사람의 얼굴이 지금 매튜 본드의 얼굴 같았다.

좀비라니.

예능에다가 좀비를 끌어 오겠다는 내 발상에, 웬만하면 내 결정을 응원해 주는 민희조차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았다.

‘어젯밤에 얘가 술을 많이 마셨나?’

묻지 않아도 그런 속마음이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들을 설득했던 논리를 떠올리며 나는 매튜 본드를 보았다.

“좀비, 맞습니다. 좀비라면 현재 전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정착하였고, 인간 군상을 관찰하기에는 딱 좋은 상황 설정이라 할 수 있죠.”

그 설명에는 공감한다는 듯 매튜 본드가 기획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작년이었던가요. 듀플릭스에서 서비스된, 한국 제작사가 만든 좀비 드라마 하나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죠.”

“<Last Empire>?”

“네. 한국 제목으로 <마지막 제국>. 일제강점기 시절에 좀비가 퍼졌다는 설정으로, 그동안 다뤄 온 외국의 좀비 드라마와 차별화된 한국적 소재를 살려서 히트를 쳤지 않습니까.”

일제강점기 시절에 좀비가 퍼졌다는 설정에다, 그 좀비가 마루타와 관련된 연구 시설에서 만들어낸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배경까지.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드라마 내용에, 국내는 물론 해외 게시판까지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문제작이다.

듀플릭스는 일단 투자를 한 다음에는 제작사에 정말 전적인 판단을 맡기는데, 그 투자를 믿고 제작사에서 아주 온갖 국뽕 설정을 집어넣은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그게 통했고, 새로운 좀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평과 놀라운 흥행 성적을 얻었다.

곧 시즌2가 방영한다고 소식은 들었는데, 조금 제작이 오래 걸리는 건 투자액이 늘면서 스케일이 커져서라는 뒷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케이팝 가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엑시트는 해외 투어를 성공적으로 돌고 있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그런 시대.

“한국 드라마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이 마당에, 예능이라고 못 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거침없이 설명한 다음에 라이언 킴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말을 열심히 통역하면서도, 라이언 킴은 지금도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다.

반면에.

“호오…….”

매튜 본드는 기획안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치프 매니저가 아닌 제너럴 매니저.

매튜 본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관건이다.

나는 그의 머리 위를 보았다.

[78%]

흥미는 돌고 있으나, 아직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인상이다.

이 자리에서, 저 기획안을 받아들일 확률을 최대한 올리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이다.

“엘도라도가 한국 진출에 있어서 후발 주자로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무슨 말이죠?”

“엘도라도에 대해 몇 가지 분석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내 태블릿을 꺼냈다.

한국 언론의 기사와 외국 기사 몇 개.

외국 기사는 역시나 인터넷과 방수정 PD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기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는 지적이 있었다.

『……듀플릭스의 선점 효과를 이기기 위해서 엘도라도 또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돈질’로서 끝나지 않으려면 플랫폼에 필요한 콘텐츠를 잘 선별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엘도라도라는 플랫폼이 가진 강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강점은 애매하나 단점은 분명하다. 엘도라도를 굳이 찾아가야 할 개성적인 콘텐츠가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

.

……세계는 현재 콘텐츠 전쟁 중이다. 할리우드가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두터운 북미 음악 시장에서도 동양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본인이 가진 장점을 무기로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그런 자세가 엘도라도에도 필요해 보인다…….』

장황하게 쓰여 있긴 하지만, 북미 쪽 기사에도 비슷한 논지는 있었다.

그 기사를 본 라이언 킴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옆을 살폈다.

좋은 기사는 아니기에 매튜 본드의 심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78%]

그렇지만 나는 그의 표정보다 좀 더 명확한 수치로서 매튜 본드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엘도라도의 약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꺼내도 확률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건, 그 또한 충분히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엘도라도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발견한 이 기사를, 위험한 걸 알면서도 던지기로 마음먹은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듀플릭스와 차별되는, 또 다른 플랫폼들과 차별되는 엘도라도만의 명확한 개성.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여 드린 그 기획이 그 개성 중 하나가 되어 줄 겁니다.”

“이 생각…… 어…….”

매튜 본드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한국말로는 정리가 안 되는지 결국 포기하고 영어로 라이언 킴에게 전달했다.

“개성이라고 하기에, 좀비 소재는 이미 드라마도 영화도, 게임도 많습니다. 개성이 되어줄 수 있을지 물으시네요.”

“예, 드라마나 영화나, 아무튼 좀비물은 많죠. 그렇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세트를 건설한 예능으로서의 좀비물은…… 본 적 없지 않으십니까?”

“그건 확실히…….”

라이언 킴이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 놀라 멈췄다. 내 이야기에 어느새 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매튜 본드를 보았다.

“지사장님. 개성이다, 장점이다,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웃어넘기셔도 됩니다.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니까요.”

“……I’m waiting.”

“이 좀비 예능,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잡고 싶지 않으십니까?”

나는 단언했다.

모든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이었을 뿐이니까.

개성이 필요하다 하고, 기사를 꺼내 아픈 점을 찌르고, 그렇게 매튜 본드의 맘을 흔들었던 건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해서다.

“성공할 거라고요. 이 기획이, 반드시?”

라이언 킴의 입을 빌려 매튜 본드가 신중하게 물어왔다.

오늘 본 가장 신중한 얼굴.

좀 전까지 호인 같아 보이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사업가의 눈이었다.

그 눈을 보고서, 나는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서인하 선배의 존재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I swear.”

기획안을 넘겨주고,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르고 나서야 서인하 선배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하아…… 그렇게 긴장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이렇게 떨리는데, 대한이 넌 왜 멀쩡한 거야?”

“제가 멀쩡해 보이십니까? 심장이 터져서 지금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데요.”

창백한 내 얼굴이 안 보이냐는 듯 가리켜 보였지만 서인하 선배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길 뿐이었다.

“정말이지 신기한 녀석이야, 넌. 분명 짬밥은 내가 더 긴데…… 어떻게 이런 놈이 내 밑에 있는 거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시동을 걸었다.

“선배님이 절 데려오신 장본인이신데,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게. 나도 새삼 그게 웃기다.”

피식 웃는 것을 보니 그래도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었다.

서인하 선배는 결국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을 하는 건 괜찮았으나, 그래도 금세 차를 출발하진 못했다.

“우리 회의 때도 그랬지만…… 결국 우리 다 그 자신감에 넘어가긴 했다만…… 넌 대체 무슨 확신이 그렇게 있는 거냐?”

“확신이요?”

“그래, 확신. 그 좀비물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 말이야. 촉새로서의 감이냐?”

“음…….”

난 뭐라고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볼만 긁적였다.

엘도라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세계적인 플랫폼에 어울리는 기획안을 생각해 내기 위해 애썼다.

나의 판단만으로 미래까지 볼 순 없다. 그렇지만 AGD 앱은 가능하다.

어떤 기획이 세계 시장에 통할지. 엘도라도의 대표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

오랜만에 아이템까지 사용하며 낮은 확률을 올리고, 여러 기획안을 썼다가 고치고 뒤엎었다.

그렇게 나온, 가장 최상의 기획안이 바로 좀비물이었다.

[94%]

세계 시장에 통할 확률 94%.

이틀 밤 가까이를 고심하여 나온 결과물에, 내가 확신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촉이라면 촉입니다만, 이번만은 더 믿으셔도 됩니다. 엘도라도의 대표작이자, 우리 아이윌의 대표작이 될 겁니다.”

“아직 제작도 안 됐는데, 투자도 안 들어왔는데 벌써 성공한 말투구나……. 야, 그것도 매튜 본드인가 하는 GP가 받아들여 줘야 하는 거잖아.”

“그건 그렇죠. 그런데 뭐,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어지기 전.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질렀을 때, 그의 머리 위 확률이 변했다.

이건 통했다, 거기서 나는 확신했다.

출발하는 차에서,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매튜 본드는 이미 88%의 확률로 넘어왔습니다.”

* * *

둘만 남은 룸에서, 매튜 본드는 계속해서 기획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상사에 해당하는 그가 말없이 기획안만 살피자, 라이언 킴도 별다른 말 없이 남은 음식만 살폈다.

“이봐, 라이언.”

그러다 갑작스런 부름에 흠칫 놀랐다.

“나보다는 강대한이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겠지?”

“나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이야기 들은 건 더 많겠지. 왜?”

“아니, 어딜 가더라도 저런 화법인가 싶어서 말이야. 이 기획안은…… 직접 만든 게 맞다면…… 절대 그렇게 보이진 않거든.”

매튜 본드가 보기에, 이 기획안을 만든 사람은 세심하면서도 디테일을 따지는 스타일이다.

초안임에도 벌써부터 마지막 화까지의 대략적인 구성을 전부 실어 놓았다.

모든 이야기 구성을 보고 판단하라는 듯.

하지만 눈앞의 강대한은, 솔직히 지나치게 대범했다.

사무적이지만 도발을 서슴지 않고, 그래 놓고 순한 양처럼 물러서더니, 마지막엔 제독처럼 딜을 걸어왔다.

두어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개의 모습을 봤는지 모르겠다.

사업적 눈은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매튜 본드로서도 판단이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재밌어. 재밌는 아이디어야.”

“그건 나도 동감해. 만들어진다면…… 정말 재밌는 방송이 될 거야.”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솔직히 겁도 나.”

솔직한 매튜 본드에 반응을 들으면서, 라이언 킴이 되려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 이거지?”

“그래. 이런 기분 들게 하는 기획안은 오랜만이야.”

기획안을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기면서 매튜 본드가 말했다.

“강대한, 그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낼지, 매우 보고 싶어.”

* * *

『NBS 새 예능 ‘골목대장’ 레트로 추억 놀이 속으로……!』

『아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골목대장’ 토요일 밤에 떠나는 추억여행』

<V.I.P>가 끝나기 얼마 전.

NBS와 바람처럼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예능 <골목대장>이 방영을 시작했다.

시즌제도 아닌 레귤러로 출발한 <골목대장>은 1%로 시작하여, 화를 거듭하면서 1~2%를 오르내리는 시청률을 유지했다.

레트로한 감성을 자극하는 예전 골목놀이들, 게임들을 가지고 와 패널들이 대결을 하는 콘셉트로, 젊은 층보단 30대 이상의 시청자층에 좀 더 지지를 받는다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

“……그래서 일단, 다음 촬영부터 콘셉트를 바꿔 보려고 합니다.”

신동욱 실장의 말에, 곽성찬 본부장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은 거죠. 나쁜 시청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 것 같진 않으니까 다른 방법을 같이 강구해 봅시다.”

지금부터 강구하기에는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신동욱은 속으로만 씹어 삼켰다.

분명 미진한 시청률의 책임은 곽성찬에게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신동욱이 아는 바로, 전략기획실에서 그의 재가를 받고 제작된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는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잘된 것도, 안된 것도 모두 아랫사람의 몫.

대신 그는 한 가지만 신경 썼다.

방송사 통합 OTT 플랫폼.

그것은 신호현 이사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 신동욱도 이해는 하기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본부장실을 나갔다.

신동욱이 나간 후, 표인배가 곧바로 들어왔다.

“본부장님. 기사가 떴습니다.”

그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기에 뜬 기사 한 줄에 곽성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북미발 동영상 플랫폼 ‘엘도라도’, 콘텐츠 제작사 아이윌에 투자?』

『강대한―방수정 PD의 아이윌, 엘도라도에 투자를 받다!』

내용을 굳이 확인하지 않고, 곽성찬이 재킷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신 이사, 외부 나갔지?”

“예. 여의도로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등위 쪽이랑…….”

“내가 지금 간다고 전해.”

본부장실을 거침없이 나서는 그의 눈매에 그늘이 깔려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