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선배와 후배
『NBS 예능국장 서인하 PD, 퇴사』
『<당잠사>, <달리는 도시인>, <언더커버 싱어> 등을 발굴한 장본인 서인하, 새 출발』
굳이 알리지 않았음에도, 외부로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사들이 나타났다.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서인하 본인이 그렇게 외부로 알려진 스타 PD인 것도 아니라서 몇 개의 기사가 올라간 것이 다였다.
개중에는,
『……사직서 제출 과정에는 NBS 신임 본부장 선임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계속 공석이었던 본부장 자리에 걸맞은 인재를 찾기 위해 연초부터 물밑에서 여러 방향으로 컨택을 해 온 NBS는…….』
신임 본부장으로 낙점된 이를 유추하면서, 서인하의 퇴사를 그와 연결 짓는 증권가 찌라시발 기사도 있었다.
그 기사들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은 누구보다 서인하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서인하가 퇴사를 결심한 것은 본부장 제안을 받은 후.
오히려 그 자리에 욕심이 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여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앞뒤를 설명할 연유가 서인하에게는 없었다.
그는 오늘도 밀려드는 손님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아니! 이렇게 가는 게 어딨어! 상의 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화를 내는 선배 PD도 있었고,
“후임은요? 국장님 후임은 정해진 겁니까?”
야심을 내비치는 후배 PD도 있었다.
“정말…… 정말 보고 싶을 겁니다, 국장님…….”
아끼는 후배인 권민헌은 술자리에서부터 그렇게 울려고 했고,
“몰라. 나가기 전에 한잔 더 해. 아주 술로 혼쭐을 내줄 거니까 각오하고.”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감독들은 이를 갈았다.
서인하도 모르지 않았다.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퇴사 소식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리라.
회사 생활을 NBS에서 시작했고, 국장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의 퇴사이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 마음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기에 서인하는 그저 웃는 얼굴로 미안하다고만 반복했다.
지잉―
오늘도 그렇게 사무실에서 감독들의 방문을 받던 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왕이범 이사로부터의 메시지였다.
“미안해, 김 감독. 나 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이사님이신가? 어쩔 수 없지, 그럼. 날짜는 빨리 잡는 거야. 괜찮은 날 알려 줘.”
“알았어, 알았어.”
그를 내보내 놓고, 서인하는 보고할 자료를 들고 이사실로 올라갔다.
그가 내민 보고서는 본체만체 책상 위에 던져놓고, 왕이범은 소파 쪽을 가리켰다.
“이사진이 자네를 좀 잡아 보라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꺼내는 말에 서인하는 피식 웃었다.
“혹하는 조건을 걸어 준답니까?”
“뭐야, 조건만 괜찮으면 다시 눌러앉을 건가?”
예능 총괄인 왕이범에게 사직서는 이미 제출한 상태.
왕이범의 결재도 받고, 인사팀으로 이미 넘어가서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다만, 국장 자리가 비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사장 결재까지는 남아 있었다.
“고 사장이 많이 아까워해. 큰일 해 줄 사람이 나간다고.”
“그 점은…… 죄송합니다.”
위치상 고덕재 사장과도 안면은 텄고 가끔은 대면 보고도 했다.
그가 자신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심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잘해 주셨습니다만, 나가서 한번 홀로서기 해 보겠습니다.”
“휴우. 그래. 이제 와서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할 친군 아니지.”
선배로서 왕이범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나눌 때, 왕이범은 계속해서 그를 붙잡았다. 그 마음이 진심임은 분명해서 서인하도 미안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고개를 조아렸다.
“거듭 감사합니다, 이사님.”
“이러지 마. 당장 나갈 것도 아니잖아. 본부장 올 때까지는 있어야지?”
“그럼요. 인수인계는 확실히 하고 가겠습니다.”
서인하가 국장으로서 관여한 분야는 예능만이 아니다. 인수인계만 해도 몇 달은 걸릴 일들이라, 그도 당장에 그만둘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 최대한 빨리 가게 해 줄게. 어차피 새 본부장도 두어 달 뒤면 올 거니까.”
“감사합니다.”
서인하가 담백하게 인사를 하자, 왕이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진득하게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인하야.”
“……예, 선배님.”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네가 콘텐츠 회사를 만들어서 나간다는 게……. 네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냐. 그렇지만…… 그게 옳은 길인지는 잘 모르겠어.”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이야기지만, 도와주기를 약속한 왕이범이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 주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그랬다.
‘좀 더 안온한 레일을 깔아 줄 수도 있는데.’
왕이범은 그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도 잘 알았다. 서인하의 능력이 제 울타리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이 잘난 후배는 그 레일 밖을 훔쳐보다가 결국에는 직접 두 다리로 평야를 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결정이 기특하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마치 부모와 같은 심정인 왕이범이었다.
“……걱정 마세요, 선배님.”
그런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서인하는 일부러 단단한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고생은 하겠지만, 실패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선배님도 도와주기도 했고, 또 같이 해 나가자는 친구도 있고요. 같이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친구, 강대한 그 친구도 완전히 오케이한 거지?”
“예. 고민했지만 오케이해 줬습니다.”
왕이범은 쓰게 웃었다.
내심 속이 쓰렸다. 서인하 하나도 아까운데, 싹수 좋은 강대한까지 내보내다니.
그렇지만 이제 와서 자신이 내뱉은 말을 되돌리기에는 늦음을 안다.
그렇기에 왕이범은 일부러 대범한 척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어쨌든 둘 다, 나갈 때까지는 우리 직원이고 내 새끼들인 거 잊지 마. 일 확실히 시킬 거니까.”
“열심히 굴려질 각오, 단단히 하고 있겠습니다.”
서인하도 농담을 섞어 응답했다.
* * *
서인하 국장의 사직이 공식화된 이후, 회사 분위기는 조금 뒤숭숭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당장 눈앞의 일과 다음 주 방송분으로 인해 금세 자리를 잡아 갔다.
대들보 하나가 나간다는 것은 슬프고 중요한 일이지만, 사람 하나 사라진다고 뒤엎어질 회사가 아님은 그곳을 다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란 그런 것이다.
“그게 참 슬프기도 하고 그래. 그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않습니까.”
“적응도 좋긴 하지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저번에도 말이야, 좋은 아이템 하나를 던져 줬는데 그걸…….”
오랜만에 위층으로 올라온 짠돌이 박주영 선배가 커피를 사 준다며 카페로 데려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불평을 그는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선배.”
“그러게. 레귤러는 체력이라더니 정말 그렇더라고. 이쯤 되니까 국장님이 그만두는 이유도 잘 알겠어.”
서인하 국장이 현역이던 시절에는 지금 같은 시즌제 예능보다 레귤러 예능이 주요였던 시절.
그 시절을 뚫고 국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만둔다는 것을, 박주영 선배는 새삼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시즌제 할 때는 기획도 시즌별로 나눠서 할 수 있고, 제작도 그렇게 나뉘고, 딱 좋았는데 말이야. 레귤러는 정말이지…….”
“거기다 주말 예능이고 말이죠. 모두가 선망하는.”
<달리는 도시인>은 매주 시청률도 괜찮고 화제성도 잡혔다.
영화, 드라마 홍보와도 적극적으로 매칭하여 콘셉트를 잡고, 미션 설정도 다양화했다.
다만 매주 진행되는 촬영이다 보니, 아무리 신선한 아이템을 가져와도 결국 몇 번 못 쓰고 닳아 버린다.
시즌제와는 다른, 레귤러의 무서운 점이었다.
“으음…… 아무래도 변화의 때인지도 몰라.”
“시청률 잘 나오잖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너무 평탄해. 방송도 점점 굴곡이 없어지는 것 같고. 그걸 어떻게든 하고 싶어.”
“그렇군요.”
나는 짐짓 조용히 끄덕이며 커피를 마시다가,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그를 발견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저 여자친구 있습니다.”
“빨대로 얻어맞아서 죽어 본 경험 있냐? 아니면 커피 물에 코 박아 죽은 경험은?”
“어느 쪽도 없고 앞으로도 싫습니다.”
“이걸 때릴 수도 없고. 확.”
박주영 선배가 커피를 술처럼 들이마시더니, 말했다.
“이런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게 그동안 나한테는 서 국장님이나 정 팀장님이나, 너 정도였다고. 근데 국장님은 이미 날짜가 나왔고, 너도 곧 그럴 거 아냐. 그럼 나는 어째?”
“정 팀장님 계시잖습니까.”
“그 양반 요새 바쁜 거 안 보이냐? 차기 대권 주자라고 전부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새 본부장은 외부에서 온다. 그렇다면 국장은 아마 내부에서 올리지 않을까 하고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모두가 1순위로 꼽는 건 정민우 팀장이었다.
연차가 부족한 게 변수이긴 한데, 그 때문이지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은 최근에도 긴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이 고민 덩어리인 사람한테 어떻게 고민 상담을 해. 나 그런 사람 아니다.”
아니, 저도 고민 덩어리인 상태인데요. 충분히 그런 사람이십니다.
말을 하다 답답했는지 박주영 선배는 커피를 원샷 했다.
그러고는 좀 전의 뜨거운 눈빛으로 다시 나를 보았다.
“그니까 나갈 때까지, 나 좀 도와줘라. 어차피 너 당분간 눈치 보고 프로그램 만들 거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도시인> 좀 도와줘. 팀으로 들어오라고는 안 할 테니까, 지원으로라도.”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끄덕였다.
“그럴게요.”
“뭐야, 이렇게 쉬워?”
“선배가 커피 사 준다고 할 때부터 어차피 짐작했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 지원 다니고 있는데, 그것보단 <도시인> 팀 돕는 게 저도 편하고 좋죠.”
다들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어차피 <당잠사>를 도울 것도 아니니까 좋은 타이밍이었다.
“크으. 고맙다. 정 팀장님한테는 내가 잘 이야기하마. 그래서 말인데…….”
말이 끝나자마자 박주영 선배가 몇 가지 아이템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향후 진행할, <달리는 도시인>의 아이템들이었다.
“이건 바로 다음 달 들어갈 아이템인데,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을…….”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지금 시국이 이런데 일본은 건너뛰어야죠.”
“이건 어때?”
“음…… 이거 작년에 하지 않았습니까?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결국 스마트폰으로는 안 되었다.
커피를 하나 더 주문해서 챙겨 들고 5팀 사무실로 올라온 우리는, 회의실을 골라잡아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몇 번 그렇게 이야기가 오간 다음, 우리는 몇 가지 아이템을 선정했다.
“이걸 하려면…… 정말 구성을 바꿔야겠네.”
“그렇습니다. 지금 미션 두세 개, 마지막 추격전 대결, 이런 식의 양상으로 주로 가잖아요. 이젠 그 빈도를 점점 줄여야 할 거예요.”
“대신 미션이 늘어나고, 미니게임도 추가해야겠군.”
“변화가 빠른 시기다 보니까 그러는 편이 바로바로 적용하긴 편할 것 같습니다.”
대략 1년 동안 <달리는 도시인> 메인 PD를 맡고 있어서인지, 박주영 선배의 판단은 예전보다 더 빨라져 있었다.
아이템 선정도, 판단도, 대단해 보였다.
“오케이. 그럼 정 팀장님한테 보고하고, 너 지원으로 보내 달라고 할…… 어.”
그러면서 회의실 밖을 내다본 박주영 선배의 시선이 멈췄다.
왜 그러는가 하고 나도 시선을 같이했다가 똑같이 행동이 멎었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저분, 새로 오는 본부장이지?”
회의실에서는 좀 멀리 보이는, 예능국 사무실 끝에 있는 국장실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서인하 국장이 무언가를 소개하듯 사무실을 한차례 일별하고, 누군가를 손짓으로 불렀다.
정민우 팀장이 때마침 자리에 있었는지 일어나서 향하는 것이 보이고, 뒤를 이어 몇 팀장도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시키고, 새 본부장이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아직 출근일 아니지 않나?”
“인사한다고 미리 한번 얼굴 비춘다고는 들었습니다. 오늘인 줄은 몰랐네요.”
일단 사무실에 있는 팀장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인하 국장이 본부장을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우리는 움찔 놀라서 도로 회의실로 도망치려고 하다가, 서로 몸이 부딪쳐 미처 문틈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야! 비켜!”
“억, 조심 좀 하십, 컥!”
이게 무슨 덤앤더머냐, 속으로 그렇게 태클을 거는 순간.
“강대한 PD시죠?”
유려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서, 박주영 선배와 같이 굳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쓴 음료라도 들이켠 듯한 얼굴의 서인하 국장과, 새로운 본부장이 될 사람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