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60화 (60/200)

60화 꼭 어려운 길을 가시겠다?

“아온?”

김유미 팀장은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다음 씨익 웃어 보였다.

“뭐야, BJ들 다루는 예능 해요?”

가타부타 설명할 것도 없이 단숨에 핵심을 짚는다. 서인하 국장님에게 들었나?

“커버계 BJ들이 출연하는 예능을 해 볼까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이전에 EDM페스 때 본 아온이라는 BJ가 참 인상 깊어서, 꼭 출연시키고 싶어서요.”

EDM페스도 김유미 팀장이 어느 정도 도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라면, 섭외팀장의 위치이니만큼 알고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혹시 연락처 알고 계십니까?”

“미투브에서 쪽지라도 보내 보지 그래요. 아온이라면 개인 SNS도 있을 텐데.”

“확인은 했는데, 일 의뢰의 경우에는 답변하지 않는다고, 회사를 통하라고 되어 있더군요.”

김유미 팀장도 알고 있었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어요.”

“아, 그럼…….”

“그래도. 개인 번호를 함부로 알려 줄 수는 없죠.”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느 정도 태도가 유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일 관련으로는 여전히 철두철미했다.

내가 다시 부탁해 보려 할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민희가 들어왔다.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 김유미 팀장에게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같이 오신다고 했던 분이 이분이었나 보네요?”

“예. 이민희입니다. 두 번째 뵙네요.”

EDM페스에서 우연히 두 사람은 인사를 했었다. 그렇기에 얼굴은 알지만, 사실상 정식으로 자리를 갖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메인 작가를 맡아 주고 있습니다.”

“아온을 합류하는 아이디어도 같이?”

“그건 대한이가…… 강 PD가 낸 아이디어고, 저도 괜찮을 것 같아서 찬성했어요.”

민희가 덧붙이는데, 살짝 김유미 팀장의 눈썹이 실룩였다.

“대한이라. EDM 페스 때 같이 오신 것 보고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는데, 많이 친하신가 봐요?”

“…….”

민희와 눈을 마주쳤다.

“어, 네, 뭐. 사적으로는 친구입니다.”

일로 만났지만 이젠 친구라도 불러도 되겠지. 그런 뜻을 담아 민희를 보자, 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김유미 팀장을 보고 있었다.

“친구?”

“뭐, 네. 친구랑 일하는 거 아니라곤 하지만, 그렇게 되었네요.”

“그렇군요.”

두 여성이 눈을 마주친 채 대화를 나눌 뿐인데, 왜 긴장감이 느껴지지?

그렇게 민희를 보던 김유미 팀장이 막걸리 병을 잡았다. 민희는 자연스레 빈 잔을 들었다.

그 잔에 막걸리가 차고, 민희가 병을 받아 김유미 팀장의 잔도 채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잔도 마주치지 않고 잔을 비웠다.

꿀꺽꿀꺽.

완전히 빈 잔을 다시 내려놓기까지, 두 여자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난 괜히 박주영 선배가 보고 싶어졌다.

“그…… 메인 작가까지 함께 나온 건, 그만큼 저희가 간절하다고 생각해 주시면…….”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입을 뗐는데,

“도와드리면, 나한테는 뭘 해 주실까요?”

김유미 팀장이 오늘 본 중 가장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잠깐 말문이 닫혔다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민희가 끼어들었다.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일인데요, 당연하죠.”

“……그래요?”

“그럼요. 업무적으로, 얼마든지요.”

두 여자가 또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 옆에서 나는 묘한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갑자기 박주영 선배가 보고 싶어졌다.

“알았어요. 일단, 빚을 지워 두는 걸로 하죠. 당장 도움 요청할 일은 없으니까.”

김유미 팀장이 나를 보았다.

“매니저 연락처는 알고 있어요. 개인 연락처도 알고는 있지만, 그걸 당장 알려 주는 건 아닌 것 같고.”

“매니저 연락처도 괜찮습니다. 그 이후론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매니저가 어디냐. 어떻게든 직접적인 콘택트만 가능하다면 기회는 아직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 쉽지는 않을 거예요.”

“단칼에 거절당했을 때부터 이미 예상은 하고 있어요.”

“사정은 전혀 모르겠네요, 그럼.”

김유미 팀장은 민희 쪽을 힐끔 보고는 이야기해 주었다.

“아온은 BJ로 활동하기 전에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보컬이다 보니 걸그룹에 맞지 않고, 걸그룹이 아니면 데뷔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보니 결국 무산되었죠. 그때 방송 쪽 일로 아마 여러 번 출연 무산이 되기도 했나 봐요. 그 이후로는 무대라면 몰라도 방송 일은 철저하게 거절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에서야 BJ로서 완전히 자리 잡아 웬만한 가수들의 인지도도 뛰어넘었지만, BJ 초기 때부터 그런 노선을 정했다면 본인에게도 잃는 게 컸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노선을 지키고 있는 거면, 포섭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하면 그냥 다른 쉬운 BJ를 찾는 게 좋을 텐데, 꼭 아온이어야 하나요?”

여러 조합을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확률을 보았다. ‘100%’의 확률이 나온 출연진 조합을.

그래서 아온이 꼭 필요했다.

“그 부분은…… 저희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쉬운 길은 있을 수 있겠지만, 쉬운 게 정답은 아니니까요.”

“꼭 어려운 길을 가시겠다?”

“예.”

나는 묵묵하게 대답했다. 민희가 동조는 하지 않았지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케이 록페스 때랑 달라진 게 없네요. 여전해서 안심했어요.”

김유미 팀장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 내 스마트폰 화면에 푸시가 떴다.

[아온 매니저 연락처]

“번호 알려준 게 나라고는 말하지 마요. 알죠?”

“그럼요. 정보원은 언제나 보호되어야 하는 법이죠.”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에게, 나도 단단히 대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김 팀장님.”

“별말씀을요, 이 작가님.”

두 여성도 인사를 나누고, 나는 잽싸게 빈 잔들을 채워 주었다.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럼 안주 하나 더 시켜도 되죠?”

“물론입니다.”

다행히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김유미 팀장을 먼저 택시에 태워서 보낸 뒤, 민희가 그 택시를 물끄러미 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좋냐?”

“어?”

“평소엔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 저 팀장 앞에서는 잘도 웃어 대잖아.”

“잘 풀렸잖아. 도움 주신 분이니 잘 보여야지.”

“그것뿐이야?”

“그럼?”

민희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입꼬리를 끌어올려서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 * *

힘겹게 매니저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으면서, 부담된다고 연락을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두어 번 부재중 전화를 남기고, 또다시 두어 번 메시지를 남겨 놓고 연락을 기다리고, 그러고 다시 두어 번 통화를 시도하고 나서야 나는 매니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 발끝까지 피가 빠져 사라지듯 긴장감이 풀렸다.

“뭐래?”

“미팅은 잡았어. 다음 주 화요일.”

“월요일 팀 전체 회의에 할 말은 생겼네.”

다행히 출연진 중 절반은 출연을 확정 지을 수 있어서, 첫 미팅 일정만 조율 중이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두 명의 BJ. 블라하이는 아직 소식이 감감하지만, 아온은 그래도 접촉이나마 해 볼 기회를 얻었다.

“화요일이면…… 나는 같이 못 가겠네.”

“나도 같이 못 갈 것 같은데, 어떡하냐 대한아.”

메인 작가와 서브 PD가 일정이 겹쳐서 움직이지 못했다.

“괜찮습니다. 저 혼자 가겠습니다.”

어차피 메인인 내가 움직이면 될 일.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든든하겠지만, 아니라고 해서 내가 빠질 순 없었다.

“일단 각자 미팅들 준비하도록 하죠.”

“그래.”

“네.”

팀원들이 각자 맡은 출연진들과 여타 미팅 일정들을 공유한 뒤, 다음 주까지의 흐름을 정리했다.

그렇게 월요일.

“진행이 빠르네. 블라하이와 아온은 어때?”

진행 상황을 체크하던 정민우 팀장이 태연하게 물어 와서, 나도 태연함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블라하이는 현재 2차 컨택트 메일을 보내 둔 상태이고,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 수를 생각하려 합니다. 아온은 내일 매니저와 미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섭외해야 기획이 안정적일 텐데 말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라고 하고 싶지만, 한마디만 해 둘게.”

정민우 팀장이 기획안을 덮고 나를 보았다.

“강 PD, 지금껏 첫 입봉작 메인으로서 잘해 주고 있어. 하지만 결국 방송계에서는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가장 중요해. 당장 시청률 문제가 아니더라도, 제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그렇고. 냉정한 이야기지만 이해하고 있을 거라 믿어. 그렇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힘내.”

팀장이 된 이후, 정민우 팀장도 예전의 선배 PD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5팀에서도 이미 첫 촬영일까지 정해진 방송이 있고, 출연진도 꾸며지지 못한 기획이 있다.

우리의 <언더커버 싱어>는 진행이 느린 편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프로그램들의 제작 진행 상황을 컨트롤해야 하는 정민우 팀장인 만큼, 예전처럼 좋은 조언만 해 주는 걸로 끝나진 않았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먼 나로서는 그가 이미 딱 맞춘 양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게 짬에서 오는 바이브인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담감과 책임감에 위가 더부룩해지는 것 같았다.

“힘내, 강 PD.”

“일 있으면 말하고. 팀장님 모르게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 PD들의 응원에 그나마 나아진 기분으로, 회의실을 나와 휴게실로 갔다.

폰을 열어 AGD 앱을 켰다. 마이 페이지로 들어가서 현재 가진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9,385P/1,043P]

총 적립 포인트가 9,000P를 넘겼고, 그동안 자잘하게 활용한 확률 보기의 성공으로 사용 가능 포인트도 겨우 1,000P를 넘겼다.

일단 한 번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번만은 확률 보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미투버 아온, 출연 교섭을 성사시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

[36%]

“……우와, 바닥이네.”

이렇게 바닥일 수가 있나.

그동안 제작진 세팅과 출연진 교섭을 위해 사용한 확률 중에서도 이렇게 처참한 숫자는 본 적이 없었다.

당장 아이템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변동을 위한 변수가 무엇인지, 부족 확률의 가장 큰 변수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되지……. 일단은 미팅을 하고 난 다음에 생각하자.”

충동을 억누르고 미팅 준비로 들어갔다.

다음 날.

“잘 다녀와.”

“꼭 데리고 와라.”

“강 PD님, 파이팅!”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아온의 소속 회사 ‘슈프림 엔터테인먼트’의 회사는 청담동에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라고 했더니, 대형 가수, 그룹을 몇 번이나 배출한 중견 회사였다.

아온과 같은 커버계 BJ는 물론, 먹방, 운동 등등 유명 BJ들과 계약하여 일선에서 인터넷 방송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회사라고 한다.

아온과 그 회사에 대해서 공부하는 동안, 그 영향을 받아 확률이 조금 변동을 했다.

[41%]

내가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황도 낮은 확률에 한몫한 듯했다.

벼락치기라도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보람은, 슈프림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1층에 도착해, 안내받은 회의실에 나타난 후덕한 인상의 매니저를 만나고부터 매우 흐릿해졌다.

“남만덕입니다. 강대한 PD님이시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꽤 유명한 그분, 맞으시죠?”

“아, 예.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날 알아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표정이 긍정적으로 변하진 않았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음료수를 준비해 달라고 하고 내보낸 뒤, 아주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근래 이렇게 끈질기게 연락 주신 분이 없으셔서, 한번 뵙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라도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메이저리그 1선발의 직구만큼이나 뼈를 때리는 질문이었다.

“헌데, 아이돌 심폐소생 전문가라고 불리시는 분이, 딱히 아이돌도 아닌 저희 아온이가 왜 필요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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