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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58화 (58/200)

58화 만족스러운 수치

오지환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민희의 뒤를 따라 나갈 때까지 그 딸꾹질은 계속됐다.

“……저거, 괜찮은 거냐.”

가게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네 명의 시선이 좇았다.

“무슨 일이에요?”

그나마 친분이 있는 구은경 작가가 의문을 표했지만 달리 뭐라고 설명해 줄 말이 없었다.

“전에 둘이서 같이 일했었는데, 그때 일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아, 그 토크 방송? 큰일일까요. 이 작가님 저렇게 심각한 표정인 건 잘 못 봤는데.”

“음.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은 박주영 선배와 함께 모르는 척을 했다.

둘 사이의 일이고, 민희가 먼저 나서 줬으니 나로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나아 보였다.

“뭐, 둘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린 우리끼리 인사나 합시다. 그쪽 작가님은 처음 뵙는 분인 것 같은데.”

“아, 그렇죠?”

민희가 자리에 없지만 그래도 안면 있는 구은경 작가가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녀가 소개해 준 작가는 도채린. 올해 3년차로 그사이 꽤 많은 팀을 다녔다고 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당잠사> 시즌4 했었다고요?”

“예. 후반에 투입되었어서…… 한 달 정도? 일했었어요.”

구은경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얌전히 육회만 집어 먹었고, 나와 박주영 선배는 굳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준영 PD님 괜찮았어요? 같이 일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가 못한 말을 박주영 선배가 태연하게 꺼냈다.

그러자 도채린도 묘하게 먼 산을 보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작가 1명이 트러블로 팀을 나갔다고 해서, 제가 그 대타로 들어간 거였어요. 그런데 들어가고 보니…… 왜 나갔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왜, 왜. 무슨 일 있었는데?”

“사실…….”

도채린 작가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우린 절로 테이블 중간으로 모여들었다.

들어보니 섭외 중에 작가 하나가 실수를 했는데, 그 실수를 몇 달 동안 회의 시간마다 우려먹었다 한다.

결국 그 작가가 울면서 그만두겠다고 했고, 늘 그렇듯 가는 사람 잡지 않겠다는 듯 내보냈다. 그 이후 인원 보충해 달라고 보고해서, 도채린 작가가 합류한 것이었다.

“그 작가가 아예 때려치운 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며칠 쉬긴 하셨어요. 그래도 뭐, 지금은 유수현 작가님이랑 같이 일하고 있으세요. 아무 일 없이.”

유수현 작가도 지금 여행 예능 하나를 하고 있던가. 별일이 없다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우리랑 일할 때는 실수한 게 자기 혼자뿐이라서 안 우려먹었나 보네.”

“선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어때. 그리고 들어올 때 이미 확인했어. 잘 안 들려.”

박주영 선배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도둑처럼 씨익 웃어 보였다. 하긴, 나도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것이니 그냥 같이 웃기로 했다.

“그런데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도채린 작가가 재차 목소리를 낮추었다.

“말씀하세요.”

“저희 프로그램, 이 작가님께 기획안 받아서 봤는데, 경연 프로그램이죠? BJ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 맞습니다.”

“그럼 현 PD님이 따로 관여하려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까요?”

이야기를 듣던 3명이 동시에 표정을 찡그렸다.

그 가능성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준영 PD는 타사에서 성공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고, 경연 프로그램도 그만큼 잘 다룰 사람이다.

우리가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면, 지금 여행 프로그램 하나 만들려고 기획 중인 사람이라 한들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저희도 그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쪽으로는 일단 팀장님이나 국장님 선에서 막아 줄 겁니다.”

정민우 PD도 일찍이 그런 우려를 드러냈었다. 그리고 자신과 서 국장님을 믿으라고도 이야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윗사람한테 대드는 타입은 아니니까, 현 PD가.”

“그렇겠죠……. 그럼 뭐, 저흰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되겠네요.”

“그럼, 그렇고말고.”

박주영 선배의 말에 도채린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

“갑자기 자리 비워서 죄송합니다아.”

느긋하게 인사하면서 자리에 앉는 민희.

그리고 그 맞은편 빈자리에 앉는 오지환의 표정은, 역시나 굳어 있었다.

너무 굳어 있어서 슬퍼하는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를 만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볼까 하는 사이에, 민희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인사했죠? 지환 씨만 인사하면 되나?”

“그래. 지환아, 인사해라.”

박주영 선배에게 이름이 불린 지환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들었다.

“오……지환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목소리도 좀 가라앉았다 뿐이지, 이상할 부분은 없었다.

구은경 작가와 도채린 작가가 각자 이름을 밝히고, 민희가 쾌활하게 웃으며 건배를 청했다.

“메인 PD님께서 한마디 하셔야지?”

“이런 거 부끄러운데.”

“그래도 익숙해져야지. 방 PD님도 이런 건 안 빼셨어.”

여기서 방수정 PD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또 안 할 수가 없지.

난 오지환은 일단 내버려 두고, 잔을 들고, 헛기침을 터뜨린 뒤 이야기했다.

“뭐…… 크게 이야기할 건 없고.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프로그램 하나 잘 만들어 가봅시다.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서로 고생하십시다.”

“재미있게 만들어 봐요.”

그렇게 서로 한마디씩 덧붙인 다음,

“건배!”

“건배!”

짠―

소주잔이 즐거운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저녁 자리가 길어지진 않았다.

구은경 작가와 도채린 작가는 먼저 이야기 들은 대로 내일도 일이 있어 빨리 일어나야 했다.

육회집을 나오면서 두 사람이 떠나자, 나는 오지환에게 말했다.

“오 PD, 아니 지환 씨도 들어가 봐요. 내일 봅시다.”

“…….”

오지환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뒤돌아섰다.

그가 상점가를 나서서 사라지는 것을 진득이 기다렸다가 민희를 돌아보았다.

“무슨 이야기 했어?”

“여기서 이야기하자고?”

“그러면 안 되지. 2차 가자, 2차.”

박주영 선배가 국물이 당긴다면서 근처 이자카야로 향했다.

어묵탕을 시키고, 다시 소주 한 병이 테이블에 올라온 시점에 민희가 입을 열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는데, 지환 씨가 날 좋아해.”

“그렇겠지.”

“알아.”

“뭐야, 박 PD님은 그렇다 치고, 대한이 너도 알았다고?”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하도 하는 짓이 이상해서, 그냥 대놓고 물어봤더니 부정도 못하더라고.”

“후우…… 저렇게 눈에 다 보이는 사람은 나도 처음이라니까.”

“그래서?”

내가 물어보자, 민희는 소주잔을 입에 털고는 대꾸했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고백도 안 한 사람 일단 차야 했지.”

오지환을 불러내서, 난 지금 연애할 생각이 없다, 지환 씨의 마음은 대충 알겠지만 지금은 한 팀으로서 일하자, 나도 그럴 테니 지환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쯧쯧. 불쌍한 녀석.”

박주영 선배가 혀를 차는 것에 나도 동감했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이다니. 이 무슨 슬픈 사연인가.

“짠 하시죠, 선배.”

“왜 둘만 해. 나도.”

“여기서 일단 이 작가는 빠져.”

볼멘소리를 구시렁거리는 민희를 두고, 남자 둘이서 오지환을 떠올리며 잔을 비웠다.

“그래서, 괜찮은 것 같아? 울고불고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아까 보니 그래도 멀쩡하던데.”

“나도 그 걱정을 하긴 했는데, 의외로 그냥 죄송하다고 인사만 하더라고. 죄송할 것까진 없다곤 했는데, 모르지 뭐. 저렇게 집에 돌아가서 펑펑 울지도.”

척 봐도 멘탈이 강해 보이진 않아서, 그래, 그 점이 걱정이긴 했다. 울 땐 울더라도 내일 제대로 출근은 해야 할 텐데. 그래서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보낸 건데.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민희가 사과를 해 왔다.

“미안해. 내 일 때문에 팀에 폐를 끼치네.”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폐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래, 메인을 맡았으면 이런 것도 조절하고 해야지. 그래서 메인인 거니까.”

박주영 선배의 말이 맞았다. 이미 그가 두 번째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 팀의 메인 PD. 좋든 싫든 그 자리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되어 가야 했다.

묵묵히 그 위치를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을지는 나도 닥치지 않는 이상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자리가 끝날 즈음에 오지환에게 메시지나 하나 보냈다.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도 많이 복잡할 텐데, 어쨌든 우리 이제 시작이니까, 내일 웃으면서 보자.]

[(파이팅)]

어울리지 않게 이모티콘도 붙여서.

그리고 다음 날.

얼마 마시지 않았는데 불편한 속을 문지르면서 출근했는데,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해 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오지환이 서 있었다.

“이거.”

그가 내미는 것은 숙취 해소 음료.

얼떨떨한 얼굴로 그것을 받으며 안색을 살폈다.

“나보다는 지환 씨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하하…….”

힘없이 웃으면서 오지환은 자기 몫의 음료를 들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향하면서 물어보았다.

“오늘, 괜찮겠어?”

나름대로 많은 의미를 함축한 질문이었다. 그것이 통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오지환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지.

메인 PD가 되자마자 생긴 해프닝.

익숙해지면야 별거 아니겠지만, 나로선 짐짓 고민이 되기도 한 일이었다.

결국엔 내가 괜한 오지랖을 떤 꼴이 되었지만…… 어쨌든 해프닝은 지나갔다.

그것을 증명해 주듯, 자리에 앉아 숙취 음료를 원샷하고 열어본 기획안 위의 확률이 변화해 있었다.

[88%]

만족스러운 수치였다.

* * *

한 주가 지나고, 구은경 작가와 도채린 작가가 정식으로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조금 좁지만 우리 팀 사무실도 생겼다.

“현판 붙이자, 현판.”

“종이에 프린트한 걸 가지고 현판이라니. 부끄럽다.”

“그래도 이름 붙이면 현판이지. 안 그래요, 박 PD님?”

“이 작가님 말씀이 백프로 맞지.”

민희가 신이 나서 프로그램명을 프린트한 종이를 문에 붙였다.

『언더커버 싱어(가제) 팀 사무실』

부서 개편이 된 이후로 팀 사무실을 없어질 줄 알았는데, 역시 예능국 사무실 안에서 모든 일이 돌아가기엔 각각의 프로그램마다 성향이 너무 달랐고, 서로 모여 있다 보니 괜스레 위축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 팀 사무실 방식은 존속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로서는 그편이 훨씬 좋았다.

여섯 명의 제작진이 모두 모여서 소리 내어 떠들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환경.

전에는 몰랐던 팀 사무실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자, 그럼 우리 첫 회의를 시작해 봅시다.”

자재 관리 직원에게서 갓 받아온 따끈따끈한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회의를 진행했다.

그동안 기획안을 숙지해 온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필요한 것들을 정리했다.

화이트보드에 기입한 것들을 민희가 바로바로 기획안에 추가하는 동안, 나의 눈은 화이트보드와 컴퓨터 모니터의 허공을 교차했다.

[78%]

[83%]

[85%]

지금의 확률 보기 설정은 ‘최적의 출연진 구성’이었다.

총 열 명의 BJ를 캐스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러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이 두 분은 전문으로 하는 장르가 너무 비슷해요.”

“그렇게 따지면 힙합 쪽이 너무 적네.”

“록 전문이신 분이 한 분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뽑아온 리스트, 그리고 각 팀원들이 준비해 온 리스트를 대조하면서 10명의 출연진에 대한 평가를 나눴다.

더하고 빼고 할 때마다 즉각 확률이 요동치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최적의 조합을 구성하려 했다.

“……음, 일단 이 정도인가?”

일단 1순위 캐스팅 리스트가 짜이는 순간,

[100%]

AGD 앱도 인정하는 최적의 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이 리스트대로 캐스팅이 완료된다면…… 정말로 완벽한 방송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우리 제작진의 영역이었다.

“2순위도 정리되었고…… 일단 그럼 이 리스트를 가장 기본으로 해서 출연진 교섭을 해 보도록 하죠.”

“몇 명씩 나눠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과는 바로바로 단톡방에 공유하죠.”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역시 진행이 빨랐다. 그것을 뿌듯이 둘러보고 있을 때, 여태까지 잠자코 있던 오지환이 손을 들었다.

내가 시선을 주자 그가 말했다.

“4번…… 6번, 7번의 BJ는 한 소속사입니다. 소속사에 물어보면 한 번에 파악될 것 같아요.”

“그래?”

오지환이 자신의 노트북 모니터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그가 말한 대로, 회사 BJ 소개란에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이 동시에 떠 있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쪽으로 잘 아나 보네. 그럼 그 소속사에는 오 PD가 연락해 봐.”

“제, 제가요?”

“그럼. 말 꺼낸 사람이 책임져야지.”

“…….”

오지환의 얼굴이 굳는 것이 보였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다 보이는 건 여전했다.

“아니, 그렇다고 캐스팅 못했다고 책임지라곤 안 할게.”

“그래, 여차하면 나나 메인한테 돌려. 그래도 돼.”

박주영 선배가 옆에서 거들어주자, 티 나게 침을 꿀꺽 삼킨 오지환이 대답했다.

“여, 연락, 해, 해 보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각자 4번, 6번, 7번은 빼고, 각자 할 일 나누도록 합시다.”

<언더커버 싱어>가 착착 진행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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