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고비와 고비
나한테 사람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AGD 앱으로 확률을 따로 본 것도 아니다.
그저, 연습실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가장 눈에 띄었던 게 바닥에 흩어진 악보였다.
거기다 효명이 이야기로는, 창호가 처음 언급한 것은 효명이의 곡에 대한 불만이라고 했다. 곡이든 연습이든 자기 맘대로 한다고.
“창호야, 네 생각을 정확하게 이야기해 줘야 거기에 맞춰서 대응을 하지.”
창호는 내 말에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그러나 쉽게 입을 열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성격이 성격인지라 그동안에도 제대로 말을 섞은 적이 잘 없었다. 효명이는 차치해도, 나머지 멤버들과 살갑게 다가가지 못한 게 화근이다.
……라고 자책할 새도 없이.
“됐어요.”
창호가 몸을 돌려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야! 정창호! 어디 가!”
“있어 봐. 우리가 갈게.”
효명이가 따라잡으려는 것을 허민이가 말리는 사이, 기한과 아론이 그렇게 말하고는 뒤따라 나갔다. 허민이도 곧장 따라나갔다.
그렇게 연습실엔 효명이와 나만 남았다.
“미안해요, 형. 제 잘못이에요……. 하아.”
고개를 숙이려는 효명이를 말렸다.
“문제는 창호지. 이번 주에 무대 올라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서로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쉬고 있으려니 더 답답했다.
여태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는데 지하라 더더욱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슬쩍 핸드폰의 AGD 앱을 열었다.
[62%]
알려 준 대로 불화가 일어났음에도 확률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효명이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말을 걸었다.
오래 알아 온 만큼 창호의 심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방송 시작하고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했지? 혹시 뭔가 이야기 없었어? 곡에 대해서나, 연습에 대해서나.”
“없었어요. 창호가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하지만…… 사실 좀 불안하긴 했어요.”
어쩐지 기운이 빠져 있는데도 그것만은 확실하다는 듯이 말했다.
“곡이 맘에 안 든다기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자기 곡을 싣지 못한 게 불만이었을 거예요.”
“자기 곡? 아, 창호도 작사 작곡은 다 할 줄 알지.”
“그동안 싱글에 몇 번 실리기도 했는데…… 이번 컴백은 우리한테도 의미가 크잖아요. 케이 록페스 무대까지 오르게 되었고. 그런데 사실 그런 중에 창호의 곡은 선택되지 않았어요. 거기에 불만이 좀 있을 거예요.”
질투심이 많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회사의 입장에서야 효명이의 인지도를 더 안고 가고 싶어 할 거고, 그건 우리 방송도 마찬가지.
평소 같았으면 몰라도 원점으로의 회귀나 다름없는 이번 컴백에서, 창호는 전에 없이 욕심이 났을 거다.
“내 탓이기도 해. 곡 선정은 전적으로 너희에게 맡겼다고 해도, 미리 이런 상황을 미리 상정했어야 했는데.”
어디나 그렇지만, 예능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사람이 사람과 일하는 곳.
현준영 PD가 사람 관리를 안 한 탓에 <당잠사> 시즌4가 나락으로 빠진 걸 봐 놓고도, 나 또한 사람 관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간과했다.
“형 탓이라니요. 우리 그룹 일인데. 이건 리더로서 제대로 관리 못한 제 탓이에요.”
효명이는 바닥에 흩어진 악보를 줍기 시작했다. 나도 곁에서 거들었다.
“이 악보를 볼 때마다 창호의 심정도 복잡했겠죠. 그걸 빨리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니까요.”
“창호가 기분 알아채기 좋은 성격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도…….”
효명이는 그렇게 의기소침해하면서도 빠짐없이 주운 악보를 도로 정리해서, 창호의 자리에 다시 올려 두었다.
“어쨌든 방법은 마련해야지.”
난 분위기를 전환하듯이 말하면서 한쪽에 던져 둔 가방에서 기획서를 꺼냈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곡 리스트가 적힌 페이지가 나왔다.
엑시트가 이번 앨범에 담으려고 준비한 곡들이었다.
“한 곡을 창호가 작곡한 곡으로 바꿔도, 케이 록페스까지 일정에 무리 없을까?”
“네? 창호가 작곡한 거면 ‘메이크 더 월드’요?”
“그래, 그거. 그때 그 곡 좋다고 다들 그랬잖아. 최종적으로 선택 안 했지만.”
난 말하면서 곡 리스트의 첫 곡을 펜으로 쓱쓱 지웠다. 그리고 그 흔적 옆에 ‘메이크 더 월드’를 써 넣었다.
처음 확률을 봤을 때도 이렇게 했었는데…….
기대하면서 확률을 봤다.
[61%]
그런데 웬걸. 확률이 소폭 하강했다.
1%가 아쉬운 지금, 이 결정은 보탬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길이 맞다고 생각했다.
“너한테 모든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같은 그룹으로서 소외감도 있었을 거야. 어쨌든 밴드에 대한 갈증은 너만큼이나 컸을 테니까.”
“네. 제가 너무 무심했죠. 근데…… 이제 와서 창호가 받아들일까요?”
그럴 수도 있다.
“넌 어떤데?”
“저요? 저야 형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창호를 설득하는 건 제일 오래된 친구이자 리더인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잖아.”
변수는 불화. 그리고 내가 확인한 불화는 효명이와 창호 간의 불화였다.
그 당사자끼리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다면,
대책 없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효명이는 그 말을 듣고 도리어 문 쪽을 보았다.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던 그가 자신의 폰을 찾아 들었다.
“소홀했던 리더 일을 해 봐야겠네요.”
창호를 비롯한 네 명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차피 유명세만큼이나 얼굴이 다 팔려 있다 보니 그들의 선택지는 망원동, 플래티넘 1층 카페였다.
저녁에는 세계 맥주도 파는 곳이어서, 다들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있었다.
그곳에 나와 효명이가 나타나자 창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딴 곳을 보는 척을 했다.
맥주 하나씩을 시키는 우리와 창호 사이에서 허민, 아론, 기한이 눈치를 보았다.
“창호 형도 딱히 나쁜 맘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이중 막내인 아론이 그래도 눈치를 보고 말을 꺼냈다. 네 명이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풀리긴 한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창호야.”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효명이가 창호를 불렀다. 그러나 창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얼굴 좀 보고 이야기하면 안 되냐.”
“안 봐도 들려.”
뾰족한 말투. 그러나 자리를 뜨지 않는 것만 봐도, 조금 기분이 진정되었음은 알 수 있다.
효명이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너, 네 곡이 하나도 선택되지 않은 것 때문에 삐쳤냐?”
“……사람을 뭘로 보고.”
창호가 휙 하고 효명이를 노려보았다. 옆에서도 움찔할 만큼 날카로웠지만 효명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면,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말해 봐.”
“…….”
창호는 뭐라고 말하려는 듯 효명이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이다가 필요할 만큼의 답답함이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역시 내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케케묵은 감정을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면 어차피 케이 록페스건 무엇이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른 멤버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먼저 슬쩍 일어섰다. 역시 6년차 아이돌들답게 눈치가 좋았다. 나머지 멤버들도 뒤따라 일어섰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해서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효명이와 창호만 남겨놓고 좀 떨어진 테이블로 이동했다.
“두 사람만 두자, 일단은.”
“저희 때문에 죄송해요.”
“효명이나 너희나, 왜 이리 다들 착해 빠졌냐. 뭘 다 그렇게 너희 때문이래.”
답답할 정도로 착한 애들이다, 정말.
그래서 나는 믿었다. 이런 멤버들과 지난 6년을 함께 지낸 창호 역시 나쁜 친구는 아닐 거라고.
맥주를 한 모금씩 하면서, 아론이나 허민, 기한과도 조금의 친분을 쌓으면서, 효명이와 창호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창호의 성격이 그러하니 대화의 물꼬를 터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효명이는 끈질기게 창호와의 대화를 시도했고, 점점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졌다.
“넌 그게 문제야. 전부 네 멋대로 해.”
“너도 그게 문제야. 다 진행된 다음에 불평하잖아. 먼저 이야기 안 하고.”
“우리가 결정하기도 전에 밀어붙인 적도 많잖아?”
“그러지 않으면 아예 기회를 놓치니까 그렇지.”
언성이 높아지면서 들려오는 대화는, 지난 몇 년간 쌓인 것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말려야 하나.”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허민이 말했다.
“괜찮아요. 저 둘은 저렇게 한 번씩 싸워야 해요. 우린 할 만큼 했고, 나머지는 저 둘한테 맡겨야죠.”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같은 멤버가 말해 주니 신뢰가 생겼다.
그래, 이게 좋은 결정이었을 거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래, 내가 좀 더 의견을 들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아니 뭐…… 그걸 딱히 불만이라는 건 아니고.”
날카로웠던 둘의 말투가 수그러들었다. 무엇보다 창호의 얼굴에 약간의 쑥스러움이 깃든 것이 보였다.
열이 가라앉고 불만이 어느 정도 풀린 다음에, 자신이 화를 낸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결국.
“미안하다.”
“아니. 나도 제대로 못 한 거야. 나도 미안해.”
두 사람이 사과 인사와 함께 맥주병을 부딪쳤다.
깡-
“어휴…… 드디어 끝났나 보네.”
그것을 계기로 우리 네 명이 다시 그쪽 테이블로 합류했다.
“다 싸웠어?”
“아주 싸울 때마다 간이 콩닥콩닥한다니까.”
“그래도 요번엔 몇 년 만이었어. 그치? 그러니까 진즉 이야기 좀 하라고. 둘 다.”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자 효명이가 머쓱하게 웃었고, 창호도 슬쩍 고개를 돌려 미안함을 표현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나도 쐐기를 박았다.
“방송 엎어지는 줄 알았잖아. 이제 최소한 <뮤직스케치> 끝날 때까진 싸우지 말자. 알았어?”
“예에.”
“그럴게요.”
“최소 2주는 못 싸우겠네?”
나의 괜한 으름장에 아론이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나도 피식 웃으며 슬쩍 기획안 쪽을 확인했다.
[92%]
두 사람의 화해와 함께 단숨에 확률이 상승했다. 정말로 그 불화가 최악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번만큼은 AGD 앱에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결정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그래. 어떻게, 리스트는 정했어?”
창호는 내 질문에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가, 느릿하게 물어 왔다.
“……정말 효명이 말대로 해도 됩니까?”
“그건 너희 결정이지. 어차피 너희 무대고, 케이 록페스는 내 방송 권한이 아니니까.”
“지금 곡 리스트를 바꾸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가 갈 텐데요.”
“그렇게 딴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 사달을 만들면 안 되지.”
창호가 눈썹을 꿈틀했지만 내 말에 반박하진 않았다. 본인의 잘못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소소한 복수의 재미를 느끼면서 웃었다.
“걱정 마. 일단은 김유미 팀장이 고비겠지만, 대놓고 반대하진 않을 거야. 오히려 너희가 바뀐 곡을 제대로 연습할 수 있느냐, 그게 더 문제겠지.”
“괜찮아요. 저흰.”
효명이가 대답했다.
“할 수 있어요. ‘메이크 더 월드’는 편곡까지 거의 완성된 곡이고, 나머지는 연습하면서 정리하면 돼요.”
“뭐…… 밤샘은 해야겠지만.”
“아, 또 밤새워야 하나…….”
“왜 이 직업은 밤샘과 떨어질 수 없는가…….”
불평을 터뜨리는 모습이 참으로 정겨웠다.
“그렇게 결정된 거지, 그럼?”
“예.”
“잘해 볼게요.”
“설명 잘 부탁해요, 형.”
엑시트는 한고비를 넘고, <드림 어게인>도 한고비를 넘겼다. 이제 나만 고비를 넘으면 되는 문제였다.
* * *
엑시트를 택시 2대에 나눠 태워 보내고, 나는 서인하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태를 전하고, 욕 같은 칭찬을 받았다.
“휴우, 간 졸이게 하네. 정말. 다 해결은 된 거지?”
“예. 일단 회사 복귀해서 수정된 곡 리스트 공유드리고, 김유미 팀장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이미 퇴근한 서인하 부장은 내일 얼굴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난 망원동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상암으로 가,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기획안을 고쳐 김유미 팀장에게 보냈다.
케이 록페스는 당장 이번 주 금요일에 시작된다.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 곡 리스트를 바꾸겠다고 하자, 김유미 팀장은 대번에 전화를 걸어와 화를 냈다.
나는 수화기를 향해 큰절을 하며 사과를 했다.
“어휴, 정말. 무대 시간 차이 나는 건 아니죠?”
“최대한 맞추기로 했습니다. 길어도 몇 초 차이일 거예요.”
“알았어요. 당일 늦지 말고 오세요.”
몇 번 더 사과를 한 다음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후우…… 하루가 기네. 그래도 다 해결했군.”
기분이 홀가분했다.
[92%]
아직 확률이 더 오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오르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다.
창호의 곡으로 대체하는 것이 비록 100%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선택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만큼 엑시트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그 자체만으로도 무대는 빛날 테니까.
케이 록페스 무대로 가기 전에 이 모든 고비를 다 해결했고, 이제 알 사람 다 안다는 것이 나의 보람…….
“……아, 맞아. 임 작가님한테 아직 제대로 설명 못 드렸지…….”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