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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15화 (15/200)

15화 AGD 포인트

‘52%’라는 숫자. 고작 연출책임 이름이 바뀌었을 뿐인데, 수치가 떨어진 것이다.

내가 충격에 사로잡힌 사이, 회의가 끝났다.

회의실을 치우는데, 박주영 선배가 커피 타임을 갖자는 손짓을 해 그를 따라갔다.

“현준영 PD는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건물 1층에 붙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면서 그렇게 묻자, 박주영 선배는 괜히 주변을 살폈다.

“따라와.”

그는 커피를 들고 나를 카페 구석 자리로 데리고 갔다.

“작년부터 스카우트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들었을 거고.”

“네. 제 입사 초기부터 그런 소문이 계속 돌았었죠.”

“현준영이 오디션 프로그램 만들어서 대박 낸 것도 알지? 혹시 방 PD랑 관계는 아냐?”

“음…… 잘 모르겠습니다.”

박주영 선배는 한숨을 푸욱 쉬더니, 커피를 무슨 술처럼 꿀꺽 삼켰다.

“그 PD랑 방 PD랑 대학교 선후배야. 방송계 경력이나 학번이나 현 PD가 1년 선배고.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서 비슷하게 주목받고 비슷하게 인지도를 쌓았는데, 그쪽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빵 터진 게 빠르지.”

내가 기억하기로, 그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고 2년쯤 뒤에 방수정 PD의 첫 여행 예능이 나왔다.

그녀가 그 프로그램으로 그 해의 PD상을 탔던가 했는데.

“현준영 PD는…… 그러고 보니 상을 탔다거나 하는 게 없네요.”

“맞아. 시청률은 늘 잘 나오지만, 항상 논란거리도 같이 만들거든. 악마의 편집이라거나 제작진 대우 문제라거나.”

‘나도 들은 거지만……’ 이라면서 박주영 선배는 몇 가지 방송계 소문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업계에나 있겠지만 다소 정도가 심한 이야기들이 꽤 섞여 있었다.

“뜬 PD들은 대개 고집이 있고 아집도 심한 거 알지? 방 PD님도 그랬고. 근데 현 PD는 그게 더 심해.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으음…… 대충 어떤 캐릭터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막내라인이라 그 PD가 상대라도 해 줄지 모르겠지만, 눈에 띄어도 딱히 좋을 건 없을 거야.”

자리에 돌아와서, 파일에 꽂아둔 기획서를 다시 꺼냈다.

[52%]

확률은 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으로서는 그가 책임져야 할 시즌3는 시즌2의 아성을 넘지 못한다.

‘52%’의 확률이면 근처에도 못 갈 가능성이 높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상황에 괜히 머리만 복잡해지려 했다.

* * *

현준영 PD가 올 때까지, 1주 동안 자잘하게 확률 보기를 활용해 가면서 팀 정비를 도왔다.

연출진, 작가진은 그대로지만 촬영팀이나 음향팀에는 외주 업체도 있었다.

그들의 일정을 확인하고 교체도 이루는 사이, 바쁜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다시 월요일.

드디어 그날이다.

다들 긴장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아침.

간부 회의가 끝난 시점에 맞추어서, 서인하 부장이 내려왔다.

그 옆에는 기사로만 봤던,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인 남자가 서 있었다.

“자, 인사합시다. 오늘부터 <당잠사> 팀을 맡게 된 현준영 PD. 다들 얼굴은 알지?”

“예.”

“네…….”

현준영은 기사 사진에서처럼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다.

언뜻 보면 만둣집 사장님같이 푸근한 인상이라서, 박주영 선배가 말해 준 것과는 묘하게 안 맞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폴로셔츠의 첫 단추를 탁 풀면서 앞으로 나섰다.

“현준영입니다. 잘해 봅시다.”

간단한 인사.

팀원들도 모두 저마다의 인사를 한 뒤, 서인하 부장이 손을 들고 밖을 가리켰다.

“첫날이니까 인사도 더 나눌 겸, 점심 먹으러 가자고.”

그가 법인카드를 흔들면서 앞서 나갔다.

간만의 점심 회식 메뉴는 삼계탕이었다.

아직 한창 덥다고는 해도 삼복은 이미 끝났다. 그럼에도 다들 군말 없이 삼계탕을 목으로 넘겼다.

왠지 비장한 표정들이어서, 심적으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

“다들 회의실로 좀 모입시다. 자료들 가지고.”

서인하 부장이 올라간 다음, 현준영 PD는 팀을 전부 소집했다.

다들 군말 없이 자료를 가지고 회의실에 자리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현준영의 손에도 <당잠사> 시즌3의 기획서가 들려 있었다.

서인하 부장에게서 이미 받았다는 모양이다.

“일정이 급박한 만큼, 빠른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점은 다들 인지하고 계시죠?”

그 말투는 사뭇 점심시간과는 달랐다.

부드러운 말투이긴 했는데, 회의실 안을 둘러보는 눈빛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상석에 앉은 그가 자신의 오른쪽에 앉은 유수현 작가가 아닌, 서브인 권민헌 PD를 보았다.

“기획서는 보긴 했는데, 설명을 좀 들어봅시다. 어디까지 정리된 버전인지.”

방수정 PD 체제에서도 직속 서브였던 권민헌 PD가 슬그머니 유수현 작가를 보았다.

방 PD가 떠나면서 유수현에게 기획에 대한 관리를 맡기고 갔기에, 그 역시 그녀의 위치를 인정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작가를 보죠?”

그러나 현준영 PD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PD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작가에게 맡길 건가요?”

“아, 아닙니다.”

“그럼 설명해 보세요.”

권민헌 PD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기획에 대해 설명했다.

기획서에 실린 것들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시즌2의 콘셉트를 이어 가면서 몇 가지 새로운 미션을 추가하는 식이었다.

로케지는 몇 가지 안 중에서 결정했는데, 총 3곳을 후보로 선정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상하이였다.

각각 여행사의 추천과 함께 최근 각광 받는 여행지이기도 해서 팀 내에서는 어느 쪽이든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일단 이 3가지 안을 가지고 출연진들과 협의해 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추가되는 미션은 각 지방에 따라…….”

“아아, 잠깐. 잠깐.”

설명하려는 권민헌의 입을 막은 뒤, 현준영이 볼펜으로 기획서를 톡톡 두들겼다.

“3가지 장소 중에서 출연진과 협의하여 결정한다? 왜요?”

“어…… 일단 시즌2까지 함께한 출연진들이기도 하고, 스케줄 협의하려면 일단 후보지를 알려서 가능한 한 일정을 최대한 맞춰야…….”

“아니죠, 아니죠. 지금까지 프로그램 그렇게 만들었어요?”

현준영의 말에 권민헌 PD가 입을 다물었다.

방수정 PD의 수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준영은 매우 티나게 입술을 씰룩이더니 말했다.

“스케줄을 맞추는 건 그 회사 소관이고, 우리는 방송을 잘 만들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방송을 어디서 찍어야 가장 잘 만들 수 있을까. 그것부터 고려해서 결정하고 통보하면, 그쪽 회사에서도 그걸 안 받아들일 거 같아요?”

그러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프로그램에 애정이 있는 출연진이라면서요?”

그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그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문제인가?

“안 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그런 협의를 거칠 시간이 어딨어요?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쳐내고 가야지.”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프로그램이 모든 출연진의 사정을 맞추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되는 사람은 안고 가고, 만약 안 되면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거다.

더할 나위 없이 정론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뭐지, 이 기분은.

“우리 아마추어처럼 생각하지 맙시다. 다들 프로들이잖아요? 방송 만드는 프로들. 지금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프로그램입니다. 출연진은 차후 고민하는 걸로. 알겠어요?”

연출책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면, 달리 거부할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거니까.

“……예.”

“네.”

그러나 권민헌 PD도, 유수현 작가도 애매한 대답만 남겼다. 긍정은 긍정이나, 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 듯한.

“쯧.”

현준영은 티 나게 혀를 차더니, 기획서를 한 장 앞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또. 이 3곳이 정말 최선인가요? 상하이는 요새 중국 문제가 시끄러운 마당에 힘들지 않을까 싶고.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는 관광객이 너무 많을 것 같고, 특히 모스크바는 비행시간도 길 텐데?”

뭐지…… 이쯤 되면 기획서가 맘에 안 드는 것 아닌가.

“혹시 기획 자체가 맘에 안 드십니까?”

나의 의문을, 정말로 말로 물어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수현 작가였다.

현준영은 삐딱하게 의자를 돌려서 그녀를 보았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맘에 들진 않네요. 뭐, 급하게 준비했을 테니 이해는 합니다. 단점이야 보완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왜요, 맘에 안 들어요?”

“……아뇨, 맘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잔뼈 굵은 메인 작가님이신데,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 로케지는 이미 정했습니다.”

그가 대뜸 그렇게 선언했다.

“시즌3는 필리핀으로 갑시다.”

“네? 필리핀이요?”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혀 언급되지 않은 곳이라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준영은 일어나더니 화이트보드에 ‘필리핀’이라는 큰 글자를 썼다.

“필리핀을 다들 모르진 않을 텐데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타면 3시간대에, 바다 있고 산 있고, 거기다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있고. 딱 괜찮은 곳 아니에요?”

화이트보드에 시간, 위치 이런 것들을 슥슥 쓰는데, 권민헌 PD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이미 프로그램에 많이 노출되어서 새로운 곳을 찾는 게 쉬울지…….”

“그런 사람들이 상하이를 후보로 올립니까?”

그 말에 다들 입이 궁색해졌다.

그렇게 모두의 입을 막아 놓고는, 현준영이 말을 이었다.

“물론 필리핀엔 그런 단점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또 방법이 다 있단 말이지.”

그가 가지고 들어온 가방 안에서 웬 파일 하나를 꺼내서는 권민헌 PD에게 넘겼다.

“돌려봐요. 보면서 다들 들어보세요. 필리핀이 이런저런 방송에 많이 나오긴 했는데, 그게 또 일반 관광지 대상이거든. 필리핀에 최근 개발 붐이 일면서 다른 관광 장소가 생겨나고 있어요. 거기 자료에 나온 리조트 같은 데는 인피니티풀도 딸려 있고, 해변도 다시 정비되거나 개발되기도 했고.”

자료가 내 앞으로까지 왔다. 옆자리의 박주영 선배와 함께 자료를 펼쳤다.

그 자료는 우리가 연계한 여행사와는 다른 여행사의 자료였다.

현준영 PD의 말대로 새로운 리조트나 관광지가 개발되면서 필리핀 국내에서도 새로이 각광받고 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마닐라 같은 데야 여전히 그런 분위기이긴 한데, 여러모로 새로운 그림을 보여 줄 곳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어때요?”

마침내 자료가 회의실을 한 바퀴 돌았다.

“방영은 어쨌든 4분기라서 겨울일 텐데, 필리핀이면 너무 여름 그림 위주가 되지 않을까요?”

그 말대로다. 필리핀이면 사시사철 여름인 동네가 아니던가. 완전한 동남아 기후일 텐데.

사실 우리가 후보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이 ‘최대한 여름 분위기가 아닐 것’이었다.

“요새 시청자들이 뭘 그런 걸 신경 쓴다고. 추운 겨울에 따뜻한 여름 풍경 보여 주는 게 뭐 어떻습니까?”

잘라 말하는 것에 턱 하고 말문이 막힌다.

근데 이번에도 아예 아닌 소리는 아니었다. 뭐라고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팀원들도 모두 수군대기만 할 뿐 명확하게 의견을 이야기하진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그림을 뽑을 수 있음에도 네 시간 안쪽 거리라는 거죠. 출연진이 문제가 생겨도 여차하면 당일치기로 때울 수도 있고. 우리 상황에 딱이지 않나요?”

현준영은 보드마커로 필리핀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럼, 오케이? 다른 의견 있으신 분?”

다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땅땅땅. 마치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현준영은 <당잠사> 시즌3의 로케이션 지역을 필리핀으로 결정했다.

그 뒤로는 현준영의 발표회나 다름없었고, 기존 기획서의 내용들을 필리핀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쉽게 끝날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꽤 장시간의 회의가 될 듯했다.

방수정 PD와는 달리 현준영은 막내 라인 쪽으로는 아예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나나 구은경 작가는 거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그렇게 현준영이 자신의 좌우만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기획서에 로케지 이름을 전부 지우고 필리핀을 덧썼다.

기획서 위에서, 숫자가 변화했다.

[57%]

소폭 상승했다.

틀린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연출책임이 방수정 PD였을 때 다른 3곳의 후보지의 확률이 이보다 훨씬 나았다.

나는 이 확률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 궁금했다.

그래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기획서를 고쳤다.

“이 미션은 그럼 동네를 바꿔서…….”

“이 상품은 필리핀에 없을 수도 있으니 대체를…….”

“여기서 여기까지 그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을까요?”

나중에는 그냥 노트북을 꺼내 들고 기획서 PPT 파일 자체에서 고쳤다.

실시간으로 확률이 계속해서 변해 갔다.

[65%]

[68%]

[62%]

[73%]

[70%]

하지만…… 어떤 식으로 기획서가 수정되어도, 확률이 큰 폭으로 좋아지진 않았다.

애초에 이 기획 자체가 그 정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듯이.

노트북을 톡톡 두들기다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스마트폰을 몰래 꺼냈다.

[‘<당신이 잠든 사이> 시즌3가 시즌2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할 확률’을 사용 중입니다.]

[73%]

[70%]

.

.

이윽고 앱을 터치해 ‘상점’을 열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2,416P/2,416P]

몇 번인가 확률 보기를 사용했더니 포인트가 소폭 상승해 있었다.

나는 드디어…… 이 포인트를 사용해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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