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날벼락 같은 PD
“일단 대기해.”
휴가 복귀 날.
당잠사팀 사무실로 친히 내려온 서인하 부장이 우리 팀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프로그램 팀은 일종의 프로젝트 팀이기 때문에, 방영이 끝나면 해체된다.
원래대로라면 시즌2가 끝났으니 각자 자기 부서로 돌아가려고 짐을 챙겨야 맞았다.
하지만, 시즌3가 어떻게 될지 결론이 나질 않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다.
“수정이 나오면 회의실로 오라고 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가 나간 뒤 몇 분이 지났을까.
“좋은 아침.”
방수정 PD가 출근했다. 사무실 안을 둘러본 방수정은 눈썹을 살짝 꿈틀했다.
“다들 짐 안 싸? 여기 눌러앉을 작정이야?”
“그게…… 좀 전에 제작부장님이 오셔서 다들 대기하라고…….”
“뭐?”
“방 PD님 나오면 회의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권민헌 PD가 그렇게 보고하자, 방수정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자리에 던지듯 가방을 올려 둔 방수정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건너편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는 태도에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죄다 벽에 붙어서 회의실 쪽을 훔쳐보았다.
회의실 안에서 서인하 부장과 방수정 PD가 격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자리에 앉아 있긴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주먹이라도 오갈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게 건너편 우리 사무실까지 전해졌다.
입사 이래,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싸우는 건 처음 봤다.
“그냥 4분기에 하자는 대로 하시지, 방 PD님도. 저렇게 항의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은데…….”
선배 PD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장 권민헌 PD가 그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지금 PD님이 자기 좋자고 저러시는 거야? 4분기가 결정되면 우리가 잡아 놓은 기획이 싹 다 날아가잖아! 출연진 섭외에 로케지 섭외에, 그렇게 해서 시즌3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 같아?”
“그건…… 그렇지만요.”
말을 꺼냈던 선배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닫았다.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나도 시즌2를 온전히 겪고 나서 이해하게 되었다.
방수정 PD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게 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 때문임을.
시즌2가 한차례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으니, 시즌3는 최소한 그 근처의 완성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년간의 텀을 요구한 거고, 그러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그런데도 상부에서는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는 거다.
방수정 PD가 결코 용인하지 못 하는 이유를 알기에, 우린 벽에 달라붙어 우리의 대장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좀 더 이어졌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나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서로 쳇바퀴 같은 이야기.
벌컥!
문을 열고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온 것은 서인하 부장이었다.
“네 맘대로 해 봐! 그래! 버티기만 한다고 일이 해결될 것 같아?”
“버티기만 해서 안 되겠죠. 그래서 부장님께 말씀드리는 거잖아요.”
서인하 부장은 씩씩대다가, 사무실 창문에 붙어 있는 우리들의 눈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올라가 버렸다.
방수정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주무르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지만 사실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눈치를 보던 중, 유수현 작가가 총대를 메고 방수정 PD에게로 갔다.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겠어.”
말을 아끼는 투였다. 그러다 우리를 둘러보고서는, 일어서서 이야기했다.
“일단 오늘은 대기하고 있어. 점심쯤에는 결정될 거야. 어느 방향이든 그렇게 따르는 걸로 해.”
“……예.”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곳곳에서 힘없는 대답이 들려오고 나서, 우리는 일단 일상으로 돌아갔다.
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소하게는 휴가 중의 영수증 처리와, <당잠사> 시즌2의 방영 뒤 뒤처리도.
그것을 처리하는 중에 점심시간이 금방 다가왔다.
“식사 안 가세요?”
그때까지 방수정 PD는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 생각이 없네. 가서 먹고들 와.”
“커피라도 사 올까요?”
“아냐. 됐어.”
우린 방수정 PD를 사무실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내가 문득 그렇게 내뱉었다.
“불길한 느낌이 계속 드는데요.”
“나도 그래요.”
“나도.”
이민희, 박주영 선배도 맞장구를 쳤다.
AGD 앱 때문에 괜히 이상한 느낌만 늘었나 싶었는데, 다들 느끼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앱으로 확률이라도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실물이 필요한데, 방수정 PD 옆에 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별일 없으면 좋겠어요.”
“그래. 쉬지도 못하고 또 생고생을 해도 좋으니까.”
하지만, 내 감이 영 형편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서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 * *
방수정 PD는 자리에 없었다.
대신 서인하 부장이 우리를 전부 회의실로 집합시켰다.
“너희는 시즌3에도 그대로 간다.”
묘한 말이었다. 마치 원래는 제작진이 교체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 같은.
“설마 다른 제작진으로 갈 거였어요?”
참지 못한 유수현 작가가 그렇게 묻자, 서인하 부장도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수정이가 계속 못 하겠다고 버티니까 이사진에서는 그런 소리까지 나왔어. 유 작가, 몰랐어?”
“전혀요.”
“수정이도 참……. 딴 애들은 몰라도 수현이 너한테는 이야기했어야지.”
엄청난 말이었다.
제작진이 말을 안 듣는다고 아예 다른 제작진으로 물갈이를 할 작정이었다니?
방송계의 악명 높음이야 입사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겪을 뻔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튼 걱정 마. 너희들은 그대로 갈 거야. 출연진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그 말씀도 좀 걸리는데요. 너희들이라고 하면…… 여기 없는 방 PD는요?”
유수현 작가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전원이 헉 하는 얼굴로 서인하 부장을 보았다.
그는 표정을 풀지 못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수정이 돌아올 거야. 나머지는 수정이에게 들어. 일단 4분기 방영 확정인 것만 알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서인하 부장도 뭔가 분을 못 이기는 듯했다.
대체 윗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일일까요?”
“부장님도 납득을 못하시는 것 같은데…….”
웅성대는 팀원들.
그새 방수정 PD가 돌아왔다.
회의실에 우리가 모여 있는 것을 본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장님 다녀가셨나 보네? 얘기는 어디까지 들었어?”
“방 PD, 시즌3 안 해?”
서인하 부장이 앉았던 상석에 방수정 PD가 앉기가 무섭게 유수현 작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시선이 모인 와중에 우리를 한차례 둘러본 방수정 PD가 씁쓸하게 웃었다.
“난 휴가 냈어.”
“뭐?”
“PD님! 그게 무슨……!”
“진짜 시즌3 안 하시는 거예요?!”
회의실에 단숨에 시끌벅적해졌다.
그만큼 그녀의 발언은 파괴력이 대단했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놀라는 사이, 오히려 그녀가 침착한 얼굴로 손을 저으며 우리를 진정시켰다.
“이번 시즌 끝나면 휴가 좀 길게 다녀오라고 부장님도 그러셨잖아. 몇 년 동안 내가 잘 못 쉬기도 했고. 그러니 이번 기회에 좀 쉴 거야. 타이밍이 좀 안 맞았던 것뿐이니까, 너희는 시즌3 집중해서 잘 만들도록 해.”
“야, 방수정. 너 없으면 대체 누가…….”
“그건 잠시.”
유수현 작가의 말을 끊고, 방수정 PD가 우리를 다시 한차례 둘러보았다.
“인사할 시간은 더 있으니까,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 수현이랑 나는 이야기 좀 더 할 테니까.”
다들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수정 PD의 지시가 달라지진 않았다.
힘 빠진 얼굴로 다들 회의실을 벗어났다.
* * *
“어떻게 된 거야? 제작진 그대로 가는 게 마지막 조건 아니었어? 그것만 받아들여 주면 4분기 방영 어떻게든 맞춘다고 위에다 이야기했던 거잖아.”
둘만 남은 회의실에서 수현은 수정을 다그치듯 말했다.
수정과 가장 친했던 수현은, 그동안 그녀가 상부와 기싸움한 과정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완강하니 이사진에서 제작진 전체를 갈아 버리려고 했다는 것도, 그래서 결국 제작진 유지를 해 달라는 것으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부장님이 많이 힘써 주셨어. 결국 내가 이 사달을 낸 건데 말이야. 덕분에 제작진은 유지하게 됐으니,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 아니야?”
“누구 맘대로 엔딩이야, 엔딩은. 너, 진짜 휴가 내려고?”
“이미 냈어.”
“야!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말했으면 안 말렸어?”
“그걸 말이라고…….”
길길이 날뛰려던 수현을 멈추게 한 건, 수정의 한마디였다.
“현준영이 온대.”
그 말에 수현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뭐? 누가 와? 현준영……? 걔가 왜 우리 회사에……?”
“스카우트 이야기는 있었잖아. 딜 성사됐고, 들어온다더라고. 당장 다음 주부터.”
“……설마 걔한테 시즌3를 맡긴다고? 그래서 제작진 물갈이 소리가 나온 거야?”
수현은 어이가 없었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현준영 PD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경력은 그녀들과 비슷하고, 인지도도 수정과 비슷했다. 다만 그는 타 방송사의 메인 PD였는데, 사실 작년 말부터 꾸준히 스카우트 루머가 있긴 했다.
루머가 퍼졌을 때부터 수정과 수현은 맘에 들지 않았다.
수정과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그는 학교 때부터 수정과 라이벌이었고, 방송계에 들어와서는 더욱 그랬다.
그만큼 사이도 좋지 않았고, 사석에서는 얼굴조차 보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현준영의 입사야 윗선의 결정일 테니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그 관계를 뻔히 알 텐데 <당잠사>를 맡긴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난 못해. 그 인간 밑에서 어떻게 일해? 아, 몰라 몰라. 나도 때려치울 거야.”
“수현아.”
수정이 말리기 시작했다.
“너까지 그러면 안 돼. 애들 생각해야지. 너까지 없으면 어떡해.”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맘 돌려. 어떻게든 해 보자.”
“이미 끝났어. 정해진 거니까 되돌릴 수도 없고.”
수정의 어두운 얼굴에 수현은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침묵이 그렇게 회의실을 감쌌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한참 후 수현이 한숨을 진하게 내쉬더니 말했다.
“언제 복귀할 건데?”
“일단 연말. 눈엣가시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서인지 휴가 결재를 빨리도 해 주더라고.”
“뭐 하려고?”
“병원 다니고, 좀 쉬어야지. 충전도 하고, 여행도 가 보고.”
“어휴, 나쁜 년……. 이런 걸 친구라고 내가 지금까지…….”
수현의 투정에 수정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애들 잘 부탁해.”
“나 말고 현준영 그 인간한테 부탁하지그래.”
“그건 좀 싫고.”
방수정이 표정을 바꾸고 사무실 쪽을 한차례 보았다.
“강대한 있잖아? 걔 좀 잘 돌봐 줘.”
“대한이?”
“그래. 몇 번 이야기했지만 걔는 감이 참 좋아. 좀만 가르치면 크게 될 것 같은데, 괜히 현준영한테 나쁜 버릇 들지 않게 잘 막아 줘.”
“알아서 잘하겠지. 너나 나도 이겨 먹은 애를 걱정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수현의 말대로였다. 방송 업계 사상 막내 PD가 메인 PD나 작가를 이겨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아예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그건 멍청한 짓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강대한은 결국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
“잘됐으면 좋겠어, 걔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게 무슨. 아주 대단한 선배 납셨네.”
유수현의 폭언을 듣고서도 방수정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 * *
방수정 PD는 정말 인사만 남겨 놓고 매우 담백한 태도로 사무실을 떠났다.
휴가는 연말까지라고 했다.
하지만…… 떠나는 그 뒷모습은, 어쩐지 아예 전부 버리고 떠나는 사람 같았다.
초연함 같은 것이 있었던 거다.
“……아.”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내가 그녀가 떠나간 복도를 보면서 소리를 내자, 박주영 선배가 물어왔다.
“왜? 뭐 까먹었냐?”
“아니요…… 방 PD님한테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려고 했는데. 그걸 까먹었습니다.”
“뭐, 돌아오실 텐데 걱정도 팔자다. 돌아오시면 하든가. 오늘은 서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죠…….”
결국 나는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보라카이에서도 못했던 인사를 결국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못하게 되다니.
그때 꼭 할걸 하는 후회가 가슴에 남았다.
하지만 아직 일할 게 잔뜩 남아 있었다.
방수정 PD의 빈자리는 빈자리였고,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서인하 부장이 사무실로 와서 다음 주부터 현준영 PD가 시즌3 책임으로 올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까지는 유수현 작가와 권민헌 PD가 수장을 맡으라는 명령도 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시즌3 준비에 돌입했다.
권민헌 PD와 유수현 작가를 중심으로 기획서를 다듬고, 회의를 통해서 콘셉트와 로케이션 지역 등의 후보군을 추렸다.
“시즌3는 일정 문제도 있어서 아마도 원래 안대로는 못 갈 거야. 가까운 곳으로 중국, 대만 쪽이 나은 것 같은데.”
“일본은요?”
“이 시국에 일본 타령을 하고 앉았네. 분위기 좀 읽으세요.”
선배 PD 중 하나가 일본 이야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중국도 분위기가 안 좋긴 마찬가진데…… 차라리 베트남 같은 데는 어떨까요?”
그러한 회의를 몇 차례 거치며 기획서가 정리되어 가는 중에.
나는 기획서를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답답해졌다.
『연출책임: 방수정』
기획서 첫 장에는 아직 그 이름이 명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고쳐야 맞겠지만, 아무도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나도 고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문득 궁금해졌다.
시즌3가 시즌2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할지에 대한 확률이.
한번 봐 볼까…….
이윽고 기획서 위로 나만 볼 수 있는 숫자가 떠올랐다.
[76%]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숫자.
……잠깐만, 이 연출 책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난 주변을 신경 쓰면서, 펜으로 ‘방수정’ 이름을 죽죽 긋고, 거기에 ‘현준영’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52%]
설마 하던 숫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