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8화 (8/200)

8화 첫 방영

8인의 출연진 각각의 캠, 카메라팀 풀가동, 드론 항공 촬영, 숙소 내 고정 카메라 등등.

파리 로케이션은 총 10일간이었다지만, 모니터링해야 할 촬영본은 10일이 아니라 100일분에 가까웠다.

그 방대한 촬영분을 두고 메인, 연출, 조연출, 작가진 가리지 않고 모두 들러붙어 모니터링 하고, 편집점을 잡고, 10화분의 스크립트를 짜고…….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이 훅 지나갔다.

매일매일 전투적으로 시간이 지나가서 요일이 흐르는 감각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일련의 작업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여태껏 나는 신입에다가 막내 중의 막내 위치였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 잡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출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테이블 한자리를 차지하고 내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방수정 PD를 비롯해 메인 작가나 다른 PD들도 모두 내 의견을 흘리지 않고 들어주고, 편집에 반영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 봐야 거창한 의견은 아니었다.

메인인 방수정 PD 지시에 따라 편집본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의견을 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뿌듯했다.

내 의견이 반영되어 콘티가 짜일 때면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이윽고 1화의 가편집본이 나오고, 내부 시사가 열리는 날.

“여기에 좀 더 세게 자막이 깔려야 할 것 같아요.”

“색감이 좀 더 쨍하면 좋을 것 같은데.”

“CG 다른 걸로 바꿀까 봐요.”

“자막 하나 빼먹었습니다. 수정할게요.”

연출진과 작가진이 다들 모여 저마다의 감상평을 남겼다.

가편집본이기에 CG나 자막도, 음악도 군데군데 비어 있어서 잡을 곳은 많았지만, 대체로 판단은 비슷했다.

“몇 부분만 잡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가 찍었지만 잘 뽑힌 듯?”

방 PD도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같이했다.

아직 PD로서의 경험치가 저들에게 미치진 못하지만, 내게는 또 하나의 판단 기준이 있었다.

[96%]

가편집본이 시사될 때부터 나는 확률 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영상 위의 허공에 떠 있는 그 숫자는 ‘이 가편집본이 방송되었을 때 시청률 5%를 넘어설 확률’이었다.

찾아보니 시즌1 모나코 편의 최종 시청률이 4.7%였다.

그래서 확률 보기의 시청률 설정을 5%로 잡은 것인데, 이미 [96%]의 높은 확률이 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첫방부터 전 시즌의 시청률을 넘기면서 시작하는 게 거의 확정이라는 소리다.

수정안이 아주 산으로 가지 않는 한, 더 볼 것도 없었다.

“강대한, 어때?”

방수정 PD가 나를 지목했다.

“대박 날 것 같습니다.”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금요일 9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파리 편 1화가 드디어 방송되었다.

다음 날.

『‘<당신이 잠든 사이에2> 파리 편 1화 시청률 5.2%! 쾌조의 출발!’

우려와 기대 속에 시작된 <당신이 잠든 사이에>(이하 <당잠사>) 시즌2 파리 편이 방영되었다.

방송 전부터 티저 영상으로 각종 기록을 세우며 연일 화제를 일으켰던 <당잠사>는 언제 한차례 사고를 겪었냐는 듯 여행 예능의 최강자임을 몸소 증명해 냈다. 금요일 9시 편성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제작진에게, 시청자들이 시청률로 응답한 것이다.

첫 시청률 5.2%는 전 시즌 모나코 편의 최종 시청률인 4.7%를 웃도는 수치. 시즌2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 주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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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 ‘당잠사2’ 파리 편의 향후 내용에 귀추가 주목된다.

‘당잠사2’ 파리 편은 매주 금요일 오후 9시 NBS에서 방영된다.』

시청률이 확인되자마자 우린 일제히 보도자료를 뿌렸다.

각종 포털에는 ‘당잠사’, ‘류준혁’, ‘최효명’의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하고, 다시 보기 집계가 이루어질 즈음에는 점점 더 화제의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중 단연 화제인 것은, 최효명이었다.

“야, 최효명 클립 영상은 벌써 20만 뷰가 넘어갔대.”

방송이 끝나자마자, 미리 편집해 둔 클립들이 네이버TV 등 공식 채널에 올라갔다.

12시간이 겨우 지났는데 최고 조회수 20만 뷰 이상부터, 최저가 10만 뷰를 넘는 호조의 출발.

―명리더ㅠㅠㅠㅠ 우리 명리더가 여기서 빛을 보네ㅠㅠㅠㅠㅠ

―엑시트라는 애 처음 보는데 방송 잘한다 혼자 존나 여포네 여포

―ㄴ엑시트 아니고 최효명임 ㅇㅇ

―효명이 발음에 꿀 발랐어? 불어 쓸 때마다 녹는다 녹아

―프랑스어학과 수석 졸업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수석 졸업이 뭐냐? 저 정도면 박사 논문 프리패스임ㅎㅎㅎ

―헐 최효명 대학원생이었음? 어떻게 감금에서 풀려났지?

클립 영상이든 기사든 댓글들이 난리가 났다.

한참 클립 영상에 붙은 댓글들을 체크해서 단톡방에 주요 내용들을 붙여넣고 있었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쳤다.

방수정 PD였다.

“회의실로.”

노트북을 챙겨서 그녀를 따라갔더니, 나 말고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도 있었다.

어라, 이 조합…… 감금 조합인데.

이 불안감은 대체 뭐지?

그 정체는 곧 드러났다. 방수정 PD가 상석에 앉자마자 말했던 것이다.

“선공개 영상 포함해서, 클립들을 너희에게 맡기려고 해.”

“예…… 에에에?”

스탭롤 기준으로, 우린 조연출 끝자락에 이름이 실릴까 말까 하는 경력이다. 그나마 이민희가 작가진 리스트 세 번째 정도 위치긴 한데.

어쨌든 클립을 주관할 위치는 아니었다.

“너희 윗선들은 어쨌든 본방 편집하느라 쉴 새 없을 거야. 거기다 추가 디렉터즈컷 준비도 해야 하고. 손이 남는 건 너희뿐인데, 뭐 문제 있어?”

아, 네.

아주 냉정한 말투라서, ‘우리는 절로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야 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우리를 보더니, 방 PD가 흔치 않게 웃음을 보였다.

“……뭐, 그런 이유긴 한데, 사실 다른 이유가 더 크지.”

“다른 이유요?”

“너희가 만든 티저 전부 대박 났잖아? 내가 기획한 것보다 더.”

어, 음…… 네.

갑자기 말이 궁해졌다. 여기서 냉큼 ‘그렇죠’ 해 봐야 멍청한 놈이 될 텐데.

방수정 PD의 미소가 진해졌다.

“팩트만 이야기하는 거야, 팩트만. 민헌이도 그 티저들 보고 자긴 퇴사해야 되냐던데?”

윽.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 싶어 박주영 선배를 쳐다봤더니.

‘아…… 내가 이분께 이런 극찬을 받다니……’ 하는 얼굴로 헤벌쭉하고 있다.

뭔가 못 볼 걸 본 기분인데.

“아무튼 클립들 한번 맡아 봐. 나한테는 최종 컨펌만 받으면 되니까. 오케이?”

거기서 거부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예! 열심히 알겠습니다!”

방수정 PD는 나가면서, 선물이라고 2화 가편집본을 주고 갔다. 아직 보지 못한 따끈따끈한 영상을 틀어놓고, 우리는 선공개용과 방송 후 클립들을 선별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가 이야기했다.

“대한아. 이건 네 몫이야.”

“예? 저요?”

“이 결재는 부장님이 내셨을 건데, 우리 둘만 보고 이 일을 맡기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네가 감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난 너 하라는 대로 할게.”

“아, 저도 찬성.”

박주영 선배는 편집 실력도 출중한 PD다.

이민희도 경험치로는 아마 우리 셋 중 가장 높을 거다.

그런 둘 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귀찮아서 떠넘기는 것이거나 제 일을 후배에게 떠맡기는 느낌은 아니다.

표정에, 말에, 시선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

“어…… 그래도 그런 하극상을 할 순 없습니다.”

“어라? 하극상은 이미 티저 때 다 했잖아요?”

아, 뼈 때리네.

예고도 없는 이민희의 공격에 등골이 다 아팠다.

선배는 내 표정을 보고 낄낄 웃어 대더니 말했다.

“하극상이고 나발이고, 맡겨진 일이면 퀄리티 잘 뽑는 게 우선이지. 편집 잘할 테니까, 넌 영상이나 잘 선정해.”

“저도 자막 잘 짤게요.”

두 사람이 막무가내에 가깝게 그렇게 떠넘겼지만, 사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점점 더 이 팀 내에서 나의 역할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본방 편집 회의에 참여하고, 가편집본이 나오면 클립 영상도 제작하는, 그야말로 생소한 일정이 펼쳐졌다.

그 작업 동안 나는 AGD 앱을 풀로 활용했다.

그 결과.

『‘당잠사2’ 2화 시청률 6.1%!』

『‘당잠사2’ 3화, 7.8% 시청률 기록』

『‘당잠사2’ 시청률↑ 4화 8.2%!』

5화 방영을 앞둔 시점까지 시청률은 상승 곡선을 멈추지 않았다.

NBS 역사상, 예능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상승 곡선이었다.

“잘하면 5화에 10%도 넘겠어.”

10%는 <신유람기>가 지난 시즌에 기록한 최고 시청률이었다.

하지만, 일요일 9시에 방영하고 있는 <신유람기>는 아직 3화에서 3%에 머물고 있었다.

3배에 가까운 시청률 차이가 나다 보니 우리 윗분들은 아주 살 판이 났다.

“편성 시간 좀 늘려 봐.”

“앞뒤로 광고 좀 배치 더 하자고.”

그런 의견이 하달되어 내려왔지만, 방수정 PD 선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커트했다.

“광고 또 완판됐대요!”

그런데도 마케팅부에서 이런 낭보가 쉬지 않고 날아들었다.

그 결과 협찬과 광고를 통해 이미 제작비는 전부 회수했다.

단 4화 만에.

다시 말해 앞으로 VOD 판매 등은 모두 수익으로 남는단 소리다.

“우리 미친 것 같아.”

“우리가 무슨 방송을 만든 거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는 중에도 일은 계속되어야 했다.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클립 영상도 성실하게 제작해 업로드했다.

올라가는 영상마다 포털 첫 페이지에 노출되고, 조회수가 천장을 찍고,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흘러 다니며 화제가 되었다.

―여기가 그 클립 맛집이라는 당잠사인가요

―헉 우리 효명오빠 또 운닼ㅋㅋㅋㅋ

―방송에서 볼 때도 짠했는데ㅠㅠㅠㅠ 이렇게 보니 또 짠하네ㅠㅠㅠㅠ

―남자가 눈물이 많아도 별로임

―ㄴ거울 보랬지

―ㄴ너는 없어도 별로...

―ㄴ네다찐

본방도, 클립들도 굳이 최효명에 포커스를 맞추려 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효명은 촬영분 곳곳에서 알아서 활약하고 있었다.

새로 추가된 출연진임을 잊게 만들 정도로 기존 출연진 사이로 녹아들었고, 미션에 따라서는 가장 앞장서서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니 본방이나 클립 지분율이 높을 수밖에.

우리 팀에서는 외려 이 부분 때문에 걱정이 컸다.

어찌 보면 좋은 효과를 기대했는데, 효과가 좋다 못해 과할 정도랄까.

무작정 최효명에게만 집중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편집 회의에선 매번 이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뭐, 높아지는 시청률은 그러한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

어쨌거나 방영 때마다 최효명의 이름이 검색어 1위를 찍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엑시트최효명: 피디님 이번 클립도 감사합니다ㅎㅎㅎ 근데 우는 얼굴은 클립에선 짤라주시면 안 될까요ㅠㅠㅠ]

3화 공개 후부터는 간간이 최효명에게 톡도 왔다.

[그게 하이라이트인데 어떻게 잘라요.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엑시트최효명: (엉엉)(통곡)]

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면서 낄낄대고 웃었다.

최효명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이돌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없앴을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싹싹하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하고.

“뭐야, 뭐 봐요?”

내가 낄낄대고 있는 걸 보고 이민희가 물어와서, 나는 톡을 보여 주었다.

이민희는 같이 킥킥거리면서 웃다가 말했다.

“효명 씨가 대한 씨를 참 좋아하나 보네요. 하긴. 은인 같은 사람이니 당연한 거려나요.”

“은인은요. 자기가 잘해서 그런 건데.”

나는 머쓱해져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엑시트최효명: 참. 혹시 시간 되시는 날 없으세요? 제가 술이라도 한잔 사고 싶은데.]

[술이요? 됐어요. 뭘 그런 걸.]

[엑시트최효명: 아니요, 제발 사게 해 주세요. 이렇게 톡으로만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기도)(제발)]

이모티콘에서 절실함이 묻어났다.

“어? 나도 데려가요, 나도.”

이민희가 화면을 훔쳐보고선 보챘다.

같이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라 박주영 선배도 결국 알게 돼서, 양쪽에서 나를 흔들어 댔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항복을 하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 보고 이야기해 줄게요. 대신 선배들 좀 같이 나가도 될까요? 편집 도와준 분들인데.]

[엑시트최효명: 아이고 그럼요! (만세) 지갑 두둑하게 하고 나가겠습니다! 연락만 주세요! (찡긋)]

메시지에서도 그 밝은 성격이 느껴지는 친구다.

암튼 우린 빨리 일 끝내고 스케줄 보자는 협의를 하고 선공개 영상 최종본을 만들었다.

그렇게 종일 편집실에 틀어박혔다가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였다.

어쩐지 사무실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박주영 선배의 물음에 선배 PD가 손짓으로 자리에 앉게 하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류준혁 매니저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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