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가 미안했어
방수정 PD는 류준혁 쪽으로 갔다. 그래서 다시 나랑 눈이 마주치는 일은 없었고, 나도 뒷정리를 돕느라 그럴 새가 없었다.
모두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퇴근 시간.
“자, 다들 수고했어. 주말 동안 쉬고, 월요일에 봅시다.”
방수정 PD는 짐을 챙겨 들고 가장 먼저 일어섰다. 다들 퇴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기에 해맑게 인사를 나누었다.
기재 정리는 전부 끝났고, 촬영본 데이터도 빈틈없이 백업을 시킨 뒤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그냥 집에 갈 거냐?”
옆자리에 있던 박주영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그를 쳐다보자, 그도 그렇고 다른 동료 몇이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안 피곤하세요?”
“주말이잖아, 어차피. 한 잔 딱 하고 집에 들어가면 24시간 잘 수 있을 듯?”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안 오거든. 이럴 땐 알코올 샤워가 필요해.”
다들 PD 경력이 길어서 그런지 말은 잘한다.
사실 국내 체류 신세였던지라 귀국조 분들이 마시자고 하면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저도 사실 좀 땡겼어요. 가시죠.”
사실 나도 한잔 하고 싶었다.
그렇게 결정되자, 다들 행동이 일사천리였다.
부리나케 자리를 정리한 다음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이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나가는 길에,
지잉―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응?”
생각지 못한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왜 그래? 누군데?”
선배가 물어와서, 난 패널을 가리면서 말했다.
“전화 좀 받고 바로 따라갈게요. 어디로 가시는지 문자 주세요.”
“알았어. 늦지 말고 와.”
“예.”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이들을 보내고, 난 비어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예. PD님.”
전화는 방수정 PD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래, 나야. 퇴근했어?”
“아뇨, 아직……. 선배들이 한잔 하자고 해서 막 나갈 참이었습니다.”
“그래? 걔들은 피곤하지도 않나. 한 살이라도 젊은 게 부럽네.”
담담한 듯 웃음기 섞인 말투를 보니, 뭔가 또 혼내거나 경고하려는 것은 아닌 듯했다.
“빨리 가야 할 테니 짧게 말할게.”
“어, 네.”
가만히 기다리자, 잠깐의 침묵 뒤에 방수정 PD가 이야기했다.
“내가 미안했어.”
짤막한 말.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최효명에 대한 판단, 전적으로 네 판단이 맞아. 내가 제대로 못 본 부분을 네가 잡아 준 거야.”
“어, 음…….”
“귀국하면 직접 보고 이야기해야겠다 싶었는데, 얼굴 보고는 할 용기가 안 나서. 전화로 하는 거 이해 좀 해 주고.”
“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해 주면 내가 더 고맙고.”
나도 뻘쭘해서 말을 못 잇는데, 수화기 너머에서도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뭐 어쨌든, 덕분에 촬영도 잘됐고, 티저도 잘 나왔고. 본방 들어가기 전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것 같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전화가 끊긴 다음에도 나는 멍하니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내가 무슨 통화를 나눈 거지……?
그렇게 멍하니 머릿속으로 통화를 곱씹어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되살아난다.
방수정 PD가 나를 인정해 주었다.
그것이 확실했다.
고집으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 방수정 PD가, 자신의 의견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뿐인가. 나의 판단이 맞았다고 인정해 주기까지 했다.
“하…… 젠장…….”
괜스레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을 눈두덩이에 힘을 주어 참았다.
대신 회의실을 박차고 나와 달려간 술집에서, 나는 부어라 마셔라 새벽까지 달렸다.
“야 윔마……! 아무뤼 주말이롸궈 해둬, 쉼한 궈 아니냐으……!”
같이 달리다가 혀가 꼬인 박주영 선배가 뭐라고 한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난 그저 즐거웠다.
* * *
토요일은 순삭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숙취로 낮까지 골골대다 겨우 정신 차려서 저녁 챙겨 먹고, 못 본 영화 하나를 봤더니 금방 밤이 되었다.
놓쳤던 예능 프로그램들을 틀어놓고 잘까 말까 고민을 하던 중에,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앱을 기어코 생각해 냈다.
칭찬한다, 나.
AGD 앱에는 그동안 사용한 내역들이 주르륵 쌓여 있었다. 티저 대박 확률을 보다 보니 사용 내역이 급격히 늘었다.
내가 궁금한 건, ‘100%’를 달성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였다고 했던 부분이다.
앱을 열어 ‘마이 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포인트: 1,378P]
숫자가 좀 애매하다.
보아하니 일률적으로 포인트가 쌓이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확률 보기를 할 때마다 포인트가 가산되거나 하는 것 같은데…….
“봐도 봐도 신기한 앱이란 말이야…….”
이게 대체 왜 나한테 생겼지?
부작용 같은 건 없을까?
숙취 때문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생각이 치솟았다. 하지만, 내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 따윈 없다.
일단은 내가 써서 나쁠 건 없으니 계속 이용해 보기로 하자.
일단 적립된 포인트는 ‘상점’에서 이용 가능하다던 말이 새삼 기억이 났다.
‘상점’을 터치해 보았다.
[권한이 없습니다.]
“안 되네.”
아직 상점은 이용할 수 없었다. 게임처럼 일정 포인트나 레벨이 필요한 걸까?
“지금으로서도 대단하긴 한데…… 상점이 열린다면 얼마나 더 대단해지는 거지.”
‘상점’에 대한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이 앱은 설명 자체가 매우 불친절한 편이었다.
마치 사용자가 직접 사용하면서 몸으로 깨달아 가라는 듯이.
어쩔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사용해 가면서 알아내는 수밖에.
일요일이 되어서, 나는 일부러 밖으로 나가 AGD 앱을 곳곳에서 사용해 보았다.
예를 들면 점심 메뉴를 고를 때나, 지하철 어느 자리가 빨리 비는지 확인할 때.
그 결과, AGD 앱은 우수한 성능을 자랑했다.
그것 말고도 하루 종일 앱을 사용하면서 여러 사용법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실물이 있어야 하는구나.”
사물이든, 길이든, 사람이든. 실물이 있어야만 앱은 확률을 알려 준다.
단순하게 머릿속에서 중화, 일식, 한식 등의 메뉴를 떠올려 봤자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 간판을 두고 어느 가게에서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지를 떠올리면 간판 위로 확률이 떠올랐다.
또 하나는, 변수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앱이 보여 주는 것은 단순 확률의 수치.
가령, 가장 빨리 목적지에 닿는 길을 물으면, 그 길에 차가 다니거나 사람이 다니거나 아니면 사고가 나거나 하는 식의 변수들이 무작위로 반영된다.
그래서 확률이 아주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어느 길이나 목적지에 닿을 확률은 ‘100%’지만, 10분 안에 닿을 확률은 실시간으로 달랐다.
그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바로 나의 몫.
그런 식의 변수까지 반영되니 선택자의 책임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티저를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하루 간의 사용기로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무조건 믿어선 안 돼……. 결국 중요한 건 나의 선택이야.”
시험 삼아 복권의 당첨 확률도 보았다.
1등이든 2등이든, 당첨 확률은 ‘100%’ 아니면 ‘0%’로만 떴다.
당첨이거나 아니거나.
복권이란 건 결국 그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리라.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등 당첨 100% 복권’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발품을 파는 것뿐이다.
스포츠 점수 맞히기면 또 다를까 싶어 해 봤지만, 당장 내가 스포츠에 대해 아는 바가 일절 없다 보니 확률 보기도 형편없었다.
사용자의 이해도가 중요하다는 게 이런 것 때문인가 보다.
“뭐, 그런 요행을 노리지 말란 소리도 일단 받아들여야지.”
사실 단순히 돈만 벌자면 방법이야 많겠지만…… 일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앱에만 매달려 성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꿈, 내 목표도 반드시 이뤄 내고 싶다.
그러니 요행을 부리지 않고 내 능력도 적절히 사용하며 성공할 것이다.
“잘해 보자고.”
나는 나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 * *
월요일. 직장인에게 결코 달갑지 않은 날이 밝았다.
“좋은 아침.”
모두가 출근한 사무실에 방수정 PD가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회의 갔다 올게.”
방수정 PD는 몇 가지 자료만 챙겨 들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느 회사나 비슷하겠지만, 우리 NBS는 월요일마다 간부 회의가 열렸다.
간부 회의는 굵직한 의제들이 결정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진짜 편성 당겨질까요?”
박주영 선배가 권민헌 PD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메인 서브인 만큼 권민헌 PD가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도 눈길을 줬다.
금요일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티저 반응도 좋고 촬영본도 괜찮아서, 서인하 부장이 직접 편성을 당기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실무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다.
3주라는 원래 기간도 빡센데, 그것을 당기자면 더욱 빡세질 테니까.
“당겨지면 좋겠어?”
“어휴, 그럴 리가요. 박카스 좀 그만 마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배는 편집실에 또다시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그 좁은 방에 집세를 내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그건 저희 작가들도 싫은데요.”
원래라면 작가실에 있어야 할 이민희도 나타나 슬쩍 끼어들었다.
그녀는 질색하는 얼굴로 말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왜?”
“우리 맏언니가 끌려가셨거든요.”
유수현 메인 작가 말이다.
간부회의에 보통 유수현 작가가 참석하진 않는다.
그녀가 올라갔다는 것은…….
“젠장…… 진짜 편성 당겨지는 거야?”
“나 다음 주에 연차 썼는데!”
“제발! 하느님!”
촬영 잘된 건 잘된 거지만, 편성이 당겨지는 것을 원하는 실무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잡다한 일만 담당하는 내 입장에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었다.
회의는 조금 길어졌다.
평소보다 30분 늦게 내려온 방수정 PD가 사무실에 고개만 내밀더니 한마디를 남겼다.
“회의실로 집합.”
그 발언 하나만으로 모두가 불길함을 느꼈다.
“아, 신이시여…….”
누군가가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 뒤에 다들 회의실로 모였다.
상석에 앉은 방수정 PD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일주일 당겨졌어.”
“…….”
“…….”
적막이 흐른 다음, 모두가 일제히 한숨을 터뜨렸다.
“아오…… 진짜요? 될까요?”
“편성은요? 스페셜 잡혀 있지 않았어요?”
“맞아요. 2주분 편집본 이미 들어와서 넘겨놨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1회로 줄여.”
방수정 PD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PD들이 사색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말처럼 뚝딱 되는 일이 아님은 방수정 PD도 잘 알고 있었다.
“……외주에 1회분으로 다시 편집하라고 해. 사정 아니까 해 줄 거야. 그만큼 위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어투는 평소처럼 무미건조했는데, 어쩐지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요일에 통화했던 것 때문일까?
그게 아니더라도 조금 유해진 것 같긴 했다.
원래라면 이 시점에 반론이고 뭐고 다 묵살하고 까라면 까라는 식이었을 텐데, 지금은 모두를 둘러보면서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처음에 사고가 났을 때는 윗선에선 아예 편성 취소하고 미루자는 말도 있었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서 반응이 너무 좋아진 거야. 이사진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는 거지. 물론 나도 그렇고.”
그녀가 둘러보던 시선을 멈추었다.
……왠지 나를 보는 거 같은데.
하지만 금방 그녀의 시선은 다시 회의실 전체를 향했다.
“모두 고생할 거야. 알아. 하지만 지금은 고생해야 할 때야. 이건 우리에게도 기회고, 약간의 부정적인 부분마저 싹 없앨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그 말에 반론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분위기를 타지 않는다는 판단이야말로 잘못된 것일 테니까.
그건 확률을 보지 않아도 당연한 거다.
“하자, 우리.”
마지막 방 PD의 말.
“……예. 뭐.”
“까짓것 해 보죠, 뭐.”
“어쩌겠어요. 위에서 하라는데.”
그런 식의 발언이었지만, 자조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는 일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좋아. 그럼 PD들 전부 촬영본 모니터링 들어가고, 작가들도 참여해야 해. 수현이는 포인트 좀 잘 잡아 주고.”
“네.”
“알았어.”
방수정 PD가 일제히 지시를 내린 다음에,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직시했다.
“강대한. 너도 들어와.”
그러더니 폭탄발언을 하는 게 아닌가?
방수정 PD의 발언에 모두가 나를 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보고, 또다시 나를 보았다.
측근인 유수현 작가도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하고 있을 때, 반응을 읽은 방수정 PD가 나를 다시 보았다.
“대답은?”
내가 할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