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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23화 (223/260)

# 223

223화.

정시우가 문자 그대로 WPC 회의장을 뒤집어엎고 퇴장한 이후, WPC…… 아니 UN은 그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곤란한 지경에 놓였다.

일단 무력으로 그를 억제한다는 것은 근본부터 성립이 불가능한 문제였으며, 그 대신 그의 친인척을 압박하자니 당장 마석거래소장의 위치에 있는 정시환과 그의 아내를 어떻게 건드릴지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 그에게 은을 입은 미국 정부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설혹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상 몬스터들이 물러나 준다고 해도, 그 막대한 대륙을 이제 와 인간이 수복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들이 아프리카를 차지하는 것을 인정하고, 아프리카를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몬스터가 대륙을 다스린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인 정시우라면…….”

“그를 여전히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아니, 아프리카는 그렇다고 칩시다. 그자가 데려온 그 거대 고래…… 그래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그 고래가 이끄는 해양 몬스터는 대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우리가 어떻게도 할 수가.”

무수한 논의가 오갔지만 애초에 결론이 나올 수 없는 문제였다. 정시우가 지니는 무력은 플레이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지 오래였고, 그런 그가 지상과 해양의 몬스터까지 다스리게 되었으니!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은 그저 정시우가 벌이는 일들을 지켜보며 팝콘을 먹는 것뿐이었다. 그들에겐 아무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신은 단 한 명에게 어찌 이리도 많은 것을 주셨단 말인가.”

“다 안 부럽지만 그 가슴 큰 여자는 부러웠어…….”

“그러니까 아까부터 누구냐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과 세력을 지닌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군림. 어쩌면 이세계로부터의 신들과 몬스터 침입이 정시우의 등장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지구에 군림할 단 한 명의 절대자를 맞이하기 위한 사전작업 말이다.

“잘 잤어요, 오빠?”

“으무…… 우으음. 후, 응. 상태는 만전이고…… 좋았어.”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든, 각 국가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마련하든 알 바가 아닌 정시우는 다음 날 휴식처의 침대 위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상쾌한 기상을 맞이했다.

“그러면 바로 출발해 볼까. 해양정벌.”

“누가 들으면 아침산책이라도 나가는 줄 알겠어요.”

물론 그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산책 비슷한 거지 뭐. 뿌이만 있으면.”

“그 뿌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다른 침실. 자꾸 어리광 부리게 놔두면 나중에 얘기를 듣고 엘까지 덤벼들까 봐 걱정이거든.”

“그것만은 제가 목숨 걸고 막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수아린이 한줄기 투기를 내비치며 자신의 프라이팬을 뒤집개로 두들겨 보였다. 어째서 얘는 항상 사람 깨우러 오면서 프라이팬을 대동하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정시우에게 수아린이 언제나처럼 말했다. 어딘가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미소와 함께.

“아침은 먹고 출발해야죠? 이제 곧 준비 끝나니까 기다리세요.”

그날의 아침은 평소와 비교할 것도 없이 대단했다. 아침 한 끼만 먹고 점심 저녁은 모두 걸러도 될 것만 같은 만찬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장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미역국을 한 수저 떠 봤더니 성게알이 가득 들어 있었기에 나머지는 얌전히 먹기로 했다.

“자자, 많이 드세요! 오늘부터 또 힘내서 일해야 하니까. 후흐.”

“뿌이!”

“……형님?”

“…….”

정시우는 분명 간밤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 확신하는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는 용세하를 애써 무시하며 식사를 마쳤다. 가벼운 키스 한 번에 이 정도로 요란하면 대체 그 이상으로 진도를 빼면 아침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두려울 지경이었다.

“후…… 준비는 됐어, 뿌이?”

“뿌이이이이!”

앞으로의 일에 집중할 겸, 부담스럽게 눈을 빛내는 수아린을 피해 현실도피를 할 겸 세이락시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니 녀석이 기분 좋게 대꾸해 왔다.

사실 이 녀석만 있어도 전 세계 해양 통합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서야 정시우가 이 녀석을 이세계에 대동할 수 없게 된다.

지구에 세이락시아와…… 그리고 에리우가 없어도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손을 봐 놓고 떠나는 것이 정시우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

“그러면 조용히 떠나 볼까, 조용히.”

“시작은 미약하나…….”

“불길한 나레이션 깔지 마라.”

“뿌우이이.”

과거 세이락시아를 비롯한 수중 몬스터들은 정시우의 도움을 얻어 태평양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간 앞뒤로 세력을 차츰차츰 넓혀 나가며 남극해와 북극해를 넘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환경이 완전히 크레센트 에이지로 접어들게 되면서 본래 추웠던 곳은 더욱 춥게, 더웠던 곳은 더욱 덥게 변하며 남극해와 북극해에도 기존의 지구 역사에는 없었던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고, 세이락시아를 제외한 다른 수중 몬스터들은 그곳에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단 방향을 선회해서 인도양과 대서양을 공략하고 있었다는 거지?”

[뿌이.]

본래의 고래 모습으로 돌아와 일행을 모두 태우고 수중을 질주하며 세이락시아가 대꾸했다. 지금 일행은 오세아니아 대륙을 끼고 남극해에 이르기 전에 방향을 선회하여 한창 인도양을 내달리고 있었다.

“좋아, 이왕 그렇게 됐으니 인도양과 대서양을 확실히 마무리하고 북극해로 넘어갈까.”

[뿌이이, 뿌우이이이이이!]

“좋아, 순조로이 따라오고 있는 것 같네.”

물론 그들 뒤로는 수천만에 가까운 숫자의 수중 몬스터가 뒤따르고 있었다. 철저하게 레벨 150을 넘는 전투인원으로만 선별하여 이 정도.

토종 몬스터 세력이 태평양을 완전히 점령한 이후 본래 그곳에 있던 이세계 몬스터들을 모두 잡아먹고 새로이 토종 몬스터가 탄생한 결과 이런 전력이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리자님과 세이락시아를 따르라!]

[보다 속도를 높여! 적과 가장 먼저 싸울 영광을 얻을 자 누구냐!]

[우오오오오오오, 나도 신의 대리자의 총애를 받고야 말겠다!]

수천만에 이르는 숫자의 몬스터가 마나를 최대로 활성화한 채 태평양을 가로질러 왔으니, 아무리 수중으로 이동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인간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 정시우는 그것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

“슬슬 적의 기척이 느껴지네. 역시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하고 있었던 건가.”

“기척 수준이 아닌데요. 앗, 오빠. 저기…… 대대적으로!”

수중 몬스터는 그야 깊은 바닷속에서만 활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정도로 전투적으로 마나를 돋우고 움직이는 무리를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분명 그들 나름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겠지.

[놈들이…… 온다…….]

[용을…… 내세우고…… 헤데아, 님……!]

특히 요새 인간도 좀 통과할 수 있게 된 태평양과는 달리 인도양과 대서양은 완벽하게 몬스터의 영역으로 굳어 버린 지 오래였기에 그 안에 어떤 위험이 잠들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숫자로만 따지면 이쪽보다 앞서는 것 같습니다. 수중 몬스터의 저력이란 대체…….”

“하늘성이 공략될 동안 수중던전은 끊임없이 불어나고 터지기만 했을 테니까요. 이미 수중던전 바깥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상상 외의 숫자, 상상 외의 기세에 수아린과 용세하가 순간 기겁했다. 그동안 지구에서 겪어 온 크레센트 에이지와는 격이 다른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시우만은 겉으로 보이는 기세에 휘둘리지 않고 놈들의 핵심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끈 떨어진 연일 뿐이니까 안심하고 돌격해!”

[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헤데아의 권속이라면 크라켄이든 아르고스든 이미 끝장을 내 두었다. 헤데아의 힘의 근원인 수중던전도 지금은 클리어가 끝난 던전에 불과한 것이다!

반면 이쪽에는 물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이락시아와 그런 녀석에게 힘을 더해 줄 수 있는 정시우가 있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수준!

[돌격해라, 돌격!]

[우리 뒤에 대리자님이 계시는 이상 결코 우리는 죽지 않는다!]

[구오오오오오오!]

“좋아, 그러면 우리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뒤에 세이락시아와 정시우가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수중 몬스터들은 스팀팩을 맞은 마린처럼 흥분하여 돌진했다. 실제로 그리 다를 것도 없었다. 정시우가 세이락시아의 물을 다루는 힘을 이끌어 내 일대의 해류…… 물의 흐름을 조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해 본 건데 이게 정말 되네.”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뿌우이이이이이이이!]

인도양에 작용하는 무수한 환경적인 요인을 모두 무시하고 정시우가 원하는 대로 해류를 조종한다는 것은 과연 마법의 영역을 벗어난 강함이었다. 마력과 권능, 의지와 정신력이 극한을 돌파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

[우리의 공격은 강해지고 적의 공격은 빗나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니던가!]

[그래, 저들이 그리도 믿고 따르던 헤데아보다 우리의 신이 더욱 강한 것이 분명해!]

[키이이이이이!]

단순히 시야에 들어오는 영역만이 아니다. 비록 레벨 300이 넘는 고위 몬스터라 해도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흐름이, 오세아니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인도양 전체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범위한 영향권과 절대적인 위력이라니!

[키힉! 숨이, 목이……!]

[피할 수가 없어. 피할 수가……!]

“비록 수중 한정이라지만……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그냥 세이락시아와 형님만 왔어도 됐을 것 같은데…….”

일행을 절로 앞으로 밀어내 전진시키며 동시에 적들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토종 몬스터 세력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끔 만드는 물의 흐름.

적에게는 지금 이곳이야말로 지옥일 터였다. 그들이 비롯된 생의 터이며 평생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온 집이자 환경…… 세상이 직접 나서 그들의 숨통을 붙잡아 조르는 격이었으니!

“앞으로 많이 써먹어야 할 거야. 힘들어도 지금 적응해 둬.”

[뿌이이이!]

소울 포스나 거인화를 숙달하면서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정신력을 갖추게 된 정시우는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는 물의 흐름을 모두 통제하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세이락시아는 아니었다. 만약 이전 거인화를 통해 그와 의식을 일치시킨 적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도 더욱 힘들어 했을 것이다.

‘다른 신들이 다스리는 곳이라면 몰라도, 헤데아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세이락시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질 테니까…….’

정시우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끔찍했던 대난투가 일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불과 2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수천만이 넘는 숫자의 몬스터가 죽어 나간 것이다.

푸르던 바닷속 풍경이 지금은 몬스터들의 피와 살점으로 완전한 죽음의 바다가 되어 있었는데, 토종 몬스터들이 악착같이 그것을 흡수하여 바다를 깨끗하게 만드는 모습이 더더욱 소름 끼쳤다.

[긴장을 풀지 마, 놈들의 증원이 온다!]

[두렵지 않다! 적의 살점을 물어뜯어 배를 불리고 다음 전투에 대비하자!]

[동료의 시체를 적에게 넘겨주지 마라. 전부 우리가 짊어지고 간다!]

[캬아아아아아아아!]

수중 몬스터는 그 규모가 지상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만큼, 전투를 치르고 나서의 변화도 극심하다. 줄어드는 숫자만큼 다른 누군가가 강해지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정시우와 세이락시아가 강력하게 서포트를 해도 무리의 20% 가까이는 죽고, 대신 살아남은 이들은 이전보다 5레벨 이상 성장한 것!

“아무리 그래도 이쪽의 사망률이 너무 높은데. 조금 더 무리를 해야겠어.”

“이 이상으로요?”

경악하여 묻는 수아린에게 상쾌한 미소로만 대꾸하며 정시우가 한 손을 뻗었다.

그 손끝에서 소울 포스의 낙인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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