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화.
[정시우]
[파괴자(Breaker)]
[Lv 229]
[근력 ? 1,053 민첩 ? 1,011 체력 ? 1,121 마력 ? 1,155]
[내성 ? 독 Lv14, 화염 Lv5, 저주 Lv18, 뇌전 Lv13, 빙결 Lv19, 바람 Lv15, 대지 Lv11, 침식 Lv11, 산성 Lv15]
[패시브 스킬 ? 용의 감각 Lv8, 용의 위엄 Lv13, 카오스 윙 Lv3, 카오스 테일 Lv7, 카오스 스케일 Lv9, 무지는 용감 Lv15, 소울 포스 Lv15, 헤비 웨폰 배틀 Lv25, 타격 전이 Lv11]
[액티브 스킬 ? 괴력 Lv13, 부여 Lv81, 강타 Lv83, 바람의 질주 Lv15, 크리티컬 불릿 Lv40, 워 크라이 Lv24, 카오스 크루얼 차지 Lv5, 긴급탈출 Lv15, 은신 Lv46, 부메랑 Lv14, 마나 드레인 Lv11, 반복재생 Lv10, 조련 Lv15]
[고유능력 ? 강탈 Lv3, 지배 Lv1]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스테이터스였다. 정시우는 레벨 200에 도달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제법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지구에 있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인 신의 심복 크라켄을 해치운 덕에 단숨에 200을 넘어 230 가까이에 도달한 것이다.
‘레벨 외의 스테이터스…… 근력이나 민첩뿐만이 아냐. 모든 스테이터스가 말도 안 되는 폭으로 성장했어. 내성을 비롯한 스킬들이 성장한 것도 놀랍지만…….’
괴력 스킬을 비롯한 여러 스킬을 단련해서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고유능력을 얻고 거인화를 달성하면서 단숨에 스테이터스가 성장한 덕이 컸다. 특히 체력과 마력의 성장폭이 기적적이었다.
이미 같은 세계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는 수준은 벗어났지만, 이쯤 되면 여태껏 그가 거쳐 온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순수 스탯 상으로는 크라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약하다는 게 문제지만…….”
정시우는 쓰게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세이락시아와 케이나를 비롯한 모든 종속의 힘을 빌어 간신히 이른 거인의 영역, 그로써 겨우 놈을 꺾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나마도 완전히 터득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한 모험심과 강해지고 싶다는 바람만으로 이세계 탐험을 꿈꾸던 정시우에게 크라켄은 실로 냉혹한 현실을 보여 준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녀석 덕에 각 세계의 발전 정도에 따른 무력 수준은 파악했다는 건데…….’
크라켄은 풀 에이지에 이른 세상에서도 그와 마주 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는 것은 지구에 크라켄이 나타난 것처럼 규격 외의 일이 다른 곳에서도 되풀이 되지 않는 이상은 풀 에이지 수준의 세상에 가도 일단 정시우가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결국 이놈이 어떻게 지구에 있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주인님, 어떻게 할 텐가?]
“아…….”
터무니없는 성장과 변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케이나가 말을 걸어왔다. 경황이 없기로는 그녀가 정시우보다도 더하리라.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정시우는 우선 눈앞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크라켄의 사체 위로 손을 얹었다. 크기를 재는 것이 허무할 만큼 거대한 덩치의 크라켄이 그의 인벤토리 안으로 빨려 들어와, 단숨에 인벤토리를 가득 채워 버리고 말았다.
[뿌이!]
정확히는, 폭발적인 레벨 업을 거듭해 확장된 인벤토리로도 그것을 모두 감당하지 못해 남은 부분이 깔끔하게 잘려 나왔다.
잘려 나온 부분만도 족히 수천 톤 분량. 세이락시아가 그것을 보며 환호했다. 정시우가 자신에게 밥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네 덩치가 커도 이걸 먹으려면 한 세월은 걸릴 거다. 이거 들고 그대로 수중도시로 가자꾸나. 애들하고 나눠 먹으면 다들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뿌이!]
“그래, 착하지. ……음?”
정시우는 세이락시아의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걸리는 것을 느꼈다. 집어 들려 했지만 녀석의 이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용의 감각을 돋워 자세히 살피니 느껴지는 것은 진한 물의 향기와, 그리고 크라켄의 흔적. 그렇다. 다름 아닌 헤데아의 파편이었다.
“…….”
[뿌우우우?]
어떻게든 녀석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뽑으려 애를 써 봐도 파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용을 쓰는 정시우를 보며 세이락시아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을 보는 정시우는 그저 쓴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크라켄의 힘이 전율스러웠던 만큼, 그에게 깃든 신의 흔적이 진했던 만큼 당연히 그 파편 또한 거대했다. 그런데 그것이 세이락시아에게 철석같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으니…….
“후우…… 신의 목소리 같은 건 안 들리니?”
[뿌우우우우…… 뿌이이!]
아무래도 신이 맹렬히 유혹을 해 오고는 있지만 세이락시아의 강철 같은 정신력에는 흠집도 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시우도 헤데아의 힘을 갖기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같은 물의 힘을 다루는 세이락시아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파편이 알아서 세이락시아에게 붙어 버리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좋아, 너에게 주마.”
[뿌우?]
뭘 준다는 것인지도 모르고 세이락시아는 마냥 웃을 뿐이었다. 정시우는 헤데아의 파편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세이락시아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만약 조련 스킬로 녀석을 길들이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녀석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취급하며 거인화까지 달성한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신의 영향력을 지우고, 순수한 힘과 권능을 세이락시아에게 소화시키는 것이!
[뿌우우우이이.]
“조금 아플 수도 있지만 참아.”
[뿌우우!]
대답만은 가상했다. 그는 언젠가 세리아의 마나를 이끌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얕게 웃고는, 자신의 마나로 천천히 헤데아의 파편을 감싸 녹이기 시작했다.
과연 바다를 다스리는 어마어마한 권능의 주인답게 거칠게 저항하던 신의 파편은, 정시우의 두 가지 고유능력이 동시에 발동되어 압박을 가하자 이내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지는가 싶더니 곧 완전한 액체로 녹아 세이락시아에게 흡수되었다.
[뿌우우……!]
정시우는 두 고유능력으로 헤데아의 영향력을 완벽히 억압하는 동시에 세이락시아의 마나를 자신의 것처럼 자연스레 이끌어 그것을 덮었다.
피차 수십 번의 레벨 업을 했으니 마나는 차고 넘친다. 두 존재의 힘을 하나로 집중시켜, 지구에 남은 가장 거대한 신의 파편을 끝내 제 것으로 만들었다.
바다의 신의 권능이, 세이락시아가 타고난 권능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합쳐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근원에서 비롯된 같은 힘이 기적적인 합일을 이루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진보를 이루는 것이다!
[……! ……. ……!?]
물론 헤데아의 목소리만은 여전히 남아,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웅웅거리며 정시우를 저주하고 동시에 세이락시아를 유혹했지만 지금 정시우와 세이락시아의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런 무의미한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끝내 주는 감각이네.’
만약 정시우가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거나, 소울 포스 스킬을 수련하지 않아 정신력이 부족했더라면 이 시점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인화도 마찬가지. 여태까지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이 지금 그가 행하는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이 아니었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뿌이이이이이이이이이!]
정시우는 잡념을 모두 떨쳐 내고 오직 신의 힘을 고스란히 세이락시아에게 소화시키는 데에만 집중시켰다. 파편의 크기가 워낙에 거대했기에 신의 목소리를 깔끔하게 지우기까지도 제법 되는 시간이 걸렸지만, 승리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이락시아의 체내로 완전히 흡수된 힘의 결정이 녀석의 마나를 합일되어, 이내 녀석의 전신으로 완전히 퍼져 나가며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언젠가 정시우가 그랬듯, 세이락시아도 존재의 근원이 뒤틀리는 진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결국 세이락시아의 힘이 내 힘이니까…… 이걸로 됐나.’
정시우가 조금의 아쉬움을 담아 한숨을 쉬고 있자니 이내 천천히 빛이 사그라지고 그 안에서 세이락시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용의 감각을 굳이 활성화할 것도 없이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힘의 상성이 극도로 좋았던 탓에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승효과를 이룬 것이다. 다만…….
“뿌이!”
“……왜?”
“뿌이이!”
어째서 고래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소년의 모습인 것일까? 더욱이 완성도가 높아지기까지 했다. 겉으로만 보면 인간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물이 나오는 머리구멍도 이젠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나도 저런 거 하나 주면 안 되는가?]
“미안하지만 당분간 크라켄 같은 놈 하고 싸울 예정은 없어……. 정히 원한다면 세트나크가 다스리는 세상을 두세 개 정도 털어서 마련해 줄게.”
정시우는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정시우에게 애교를 부리는 세이락시아를 멍하니 쓰다듬어 주며 케이나에게 성의 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로 인해 나중에 케이나가 얼마나 그를 조르게 될지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쨌든 다들 고생 많았어. 앞으로 당분간은 이렇게 힘든 전투는…….”
그러나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정시우는 자신이 과거 이런 말을 한 이후로는 항상 더욱 빡센 전투를 맞이하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뭐 어떻게든 앞으로도 이길 수 있겠지…… 다 됐으니까 이젠 좀 돌아가서 쉬자…….”
지울 수 없는 깊은 피로감과 아련함을 담아 중얼거리는 정시우의 말에 세이락시아와 케이나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때, 한없이 순종적이기만 할 뿐 정시우에게 거스르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유령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입이 나섰다. 바로 이강후의 유령이었다.
[저, 주인님…….]
“왜 인마.”
생전의 그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말이 곱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강후는 곱지 않은 그의 대꾸에도 변함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저희가 돕던 몬스터 무리가 거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저희가 주인님의 부름을 받았기에, 지금 그들은 불리한 형세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
정시우가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 보면 그랬다! 엘의 요청에 유령들을 모두 지원군으로 보내 줬었는데 그들을 고스란히 불러들여 버렸으니 지금쯤 엘은…….
“마, 망했다.”
[죽진 않았을 것이다. 서두르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터무니없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런 이유로 동맹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엘은 분명 지금도 자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 터!
“씁, 어쩔 수 없지…….”
정말 긴 하루가 되겠구나, 정시우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며 수중던전을 찢어 열었다. 아직 던전 심부에는 강한 몬스터들이 대기하고 있겠지만 이 정도로 정리해 놨으면 당분간은 심해관의 몬스터들이 곤란한 일은 겪지 않으리라!
“뿌이, 이거 가져가서 애들 먹여라.”
“뿌이.”
세이락시아는 어디까지나 바다의 주민이고, 녀석은 크라켄의 사체를 가지고 돌아가 승자로서의 권리를 만끽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정시우가 그렇게 명했으나, 녀석은 그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마력을 발했다.
그 순간, 심해 깊은 곳에 살고 있던 몬스터와 물고기들이 모조리 그들을 향해 쇄도해 왔다!
“뿌이, 뿌우우이.”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이락시아가 불러 모은 몬스터와 물고기들이 조금씩 크라켄을 뜯어 먹는가 싶더니, 거기서 얻은 힘으로 그 거대한 크라켄의 잔해를 밀고 당기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뿌이!”
저들이 무사히 크라켄의 사체를 수중도시로 데려다 주리라 장담하는 세이락시아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진 정시우였으나, 지금은 그저 가만히 웃기로 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가.”
“뿌이!”
[이 녀석이 고래라고 그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정시우 일행은 보무도 당당하게 발을 내뻗었다. 지하와 수중, 지상의 힘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