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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54화 (154/260)

# 154

154화.

불꽃이 처연하게 타올랐다. 피어오른 연기가 석양과 섞여 황금으로 물들었다.

“잘 타는군.”

“이들 모두가 마나로 환원되겠지. 그리고 끝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거야.”

“몬스터 놈들은 조금 줄어들었으면 좋겠는데…….”

길고도 짧았던 전쟁의 끝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사망자들을 모두 모아 불태우는 일이었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 혹여 세트나크의 입김이 깃들어 망자들이 언데드라는 형태로 부활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가 어떤지는 몰라. 하지만 우리 세계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유골을 땅에 묻을 수 있는 것은 고위 귀족들뿐이었지. 그들은 세트나크의 힘을 거부하는 정화 마법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러냐.”

정시우는 현지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럼 다들 힘내라.”

“그, 그냥 가는 것인가?”

“뭐?”

조용히 빠져 주려고 했더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저항자들이고 날개가 없는 일반주민이고 화들짝 놀라 그를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 우리와 함께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쳤나, 우리 세상도 바쁜데.”

“그럴 수가…….”

사람들의 얼굴에 어린 표정, 그것은 정시우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떨쳐 낼 수 없는 공포, 언제라도 곧 몬스터들에 의해 이 세상이 다시 뒤덮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바로 그것.

“너희는 너희 힘으로 이 세상을 지켜 내라고. ……가끔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난 여기서 살 수는 없어.”

“아아아.”

“그렇지만.”

정시우는 그대로 사람들을 놔두고 지구로 돌아가려다 말고 문득 생각이 나 덧붙였다. 루타의 당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희 중 나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몇 명 데려갈 수는 있지. 물론 나름의 재능이 있어야겠지만.”

“몇 명……?”

그의 말에 생존자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시우는 뒤늦게 자신의 발언이 무책임하고도 무식했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이제와 말을 물릴 수도 없었기에, 그냥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조용히 지구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30분 후, 정시우는 거주지역에 입주하게 된 새 식구를 베토와 루타에게 소개했다.

“약초꾼인 볼트랑 그 딸로 포션 제조를 배우고 있는 넬. 농부인 시몬 하고 아내 모나. 아, 모나는 빵을 잘 굽는대.”

“어쩜 이렇게 실생활에 필요한 인재들만 쏙쏙 골라서.”

루타의 기가 막히다는 감탄에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해설했다.

“그쪽 사람들은 내가 전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데려가겠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정정해 줬더니 생산직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간에 능력 배틀이 벌어진 끝에 제일 우수한 두 쌍을 골랐어.”

“자, 잘 부탁드립니다.”

약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40대 남성 볼트는 억센 인상과는 달리 제법 내성적이며 낯을 가렸고, 올해 12살이 되었다는 넬 또한 비슷한 성격이었으나 아버지보다는 호기심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아이였다.

30대 부부인 시몬과 모나는 평범한 인상에 수더분한 성격의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다른 이들의 존중을 받을 만큼 능력 있는 한 쌍이라는 모양이었다. 이들이라면 험난한 포투포우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좋겠다고 배려를 받을 정도로.

“이렇게 광활한, 그것도 몬스터 하나 없는 환경이 존재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벌써부터 마음이 평온해져요.”

“데,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정시우가 아무 목적도 없이 지구에 데려오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투포우에 다시 육성소가 생겨나고도 저항자로 선택받지 못한 그들이, 앞으로도 무수한 몬스터로 들끓을 포투포우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이 위험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터. 그들은 그저 그 사실에 감격했다.

“아, 안녕.”

“안녕.”

무엇보다도 볼트는 자신의 딸이 또래 남자아이와 만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났구나, 넬.”

“응!”

[큼…… 크으으…….]

동생에게 다소 과도하게 집착하는 케이나는 벌써부터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칼집을 만졌다 놓았다 하고 있었지만, 남녀관계에 무지한 베토는 그저 자기 나이 또래의 친구를 만나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넬도 덜하지 않았다.

“베토는 남자앤데 무지 예쁘다.”

“예, 예쁘지 않아. 곧 남자답게 클 거야. 그리고 넬은 여자애라서 좋은 냄새가 나.”

뭐 대충 이런 풋풋하고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순수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정시우는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넬을 베어 버릴 준비를 하는 케이나를 적당히 끌어낸 후 그는 두 가족에게 살 집을 지정해 주었다.

“이미 자생하는 식물들이 많아. 무리하지 말고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구획을 확보해서 농사를 지으면 된다고 생각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식물 말고 동물은 없습니까?”

“하하, 그런 게 있을 리가…….”

[음머어어어어어.]

정시우는 말을 잇다 말고 홱 고개를 돌렸다.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히 자라난 곳에서,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젖소 한 마리가 풀을 우적우적 뜯어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여태껏 거주지역의 모든 것에 태클을 안 거시던 분이 이제 와 새삼스럽게.”

“아니…….”

적성이 맞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으로 인해 거주지역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고 루타가 말했던 적이 있지만, 설마 단순히 건물이나 발전 가능성뿐만 아니라 거주지역의 환경 자체가 변화할 줄이야!

정시우는 굉장히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젖소를 시몬에게 끌어다 주었다. 젖소는 물론이고 닭을 길러 계란까지 확보할 생각을 갖고 있는 시몬에게 업무가 너무 과중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실은 이제 곧 가족이 한 사람 추가됩니다.”

“그게 무슨…… 아.”

시몬 옆에서 푸근하게 웃으며 아직 겉으로 그리 티가 나지 않는 배를 매만지고 있는 모나. 정시우는 그제야 어째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려 했던 것인지 이해했다. 그들은 단지 새 생명에게 희망을 안겨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 키우면서 하기는 더 빡셀 텐데.”

“걱정 마시고 맡겨 주시죠. 볼트 씨가 몸에 좋은 약을 만들어 주신다 했으니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판타지 세상에는 판타지 세상 나름의 살아가는 요령이 있는 모양이다. 정시우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들의 표정과 마주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농부 부부의 건은 완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이게 거주지역 지도야. 굉장히 대강이긴 하다만…… 그리고 여기가, 당신이 들어가면 안 되는 곳.”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래, 전부.”

볼트와 관련된 일은 더욱 간단했다. 그에게는 비밀상점과 심해관으로의 입구(바로 깊은 숲속의 호수였다.)를 제외한 거주지역 내 모든 영역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했으니까.

거주지역에 나는 약초들을 분석하고 용처를 확보하여, 딸인 넬을 통하여 가공하는 것. 그 정도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이었다.

“만약 이곳에 사람이 더 늘어난다면 당신의 능력이 더욱 큰 도움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당분간은 없어도 괜찮아. 식생활은 걱정할 일 없게 해 줄 테니까.”

“미, 믿고 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볼트는 약초를 캐는 일에서 보람을 얻는 천성 약초꾼이다. 포투포우의 환경도, 지구의 환경도 아닌 독자적으로 발전하며 각종 다양한 약초를 생산해 내는 거주지역의 환경은 그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이쯤 하면 사람들이 그리 헤매지 않고 이곳에서 해 나갈 준비는 대충이나마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정시우의 일을 보아야 할 차례였다.

“친구랑 얘기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베토, 추가로 군단의 신의 파편을 구해 왔어. 강화가 가능할까?”

“네, 주인님. 남은 재료들을 전부 투자해서 어떻게든 만들어 놨어요.”

넬을 놔두고 잠시 대장간으로 들어갔던 베토와 케이나가 다시 나와서는 그의 눈앞에 떡하니 거대한, 실로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내려놓았다.

건장한 일반인이 양팔을 벌려 간신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개틀링. 구경 30mm를 우습게 넘기는 것으로 보이는 구경의 총열이 10개 겹쳐져 있는 모습은 이미 개틀링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과거 마나의 출현 이전에 이것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반동을 버텨내기 위해선 첨단 기기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할 터였다.

“개량은 했는데…… 아직 미완성품이에요. 어떻게든 마법진은 완성시켜 놨지만, 동력은 확보를 못해서…….”

“그건 걱정 마, 이제 곧 확보될 테니까. ……흠.”

물론 그것은 정시우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크기로만 따지면 이전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을 압도하는 크기의 개틀링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린 정시우는 그것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손에 익히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 보실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이 순간만을 위해 아껴 온 군단의 신의 두 가지 성물이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헉, 소리를 내며 물러섰지만 정시우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것을 꽉 쥐며, 그대로 개틀링에 내려쳤다.

“꺅!”

“허어……!”

추임새가 듣기 좋다. 그는 씩 웃으며 마나를 컨트롤했다. 어차피 획득 시점에서 신의 영향력은 철저히 배제한 상태. 남은 것은 힘을 최대한 낭비 없이 이끌어 개틀링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워낙 거대한 힘의 집합이었기에 그것을 개틀링에 녹여 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도중에 개틀링 전체에 빽빽하게 새겨진 마법진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그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불꽃보다 어둡고 피보다 짙은 붉은 마법진의 형태가 서서히 또렷해져 갔다.

“역시 주인님은 대단하세요!”

“베토 너도 만만치 않아.”

정시우의 말만 듣고 잘도 이렇게 그가 원하는 베이스를 완성시켜 주었다. 그는 아낌없이 베토를 칭찬하며 마나를 가속했다.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용의 감각이 개틀링과 군단의 신의 힘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따라 움직이는 정시우의 마나가 섞이지 않으려는 둘을 완벽하게 제 통제에 넣었다.

강탈의 힘은 곧 모두를 공평하게 앗는 것. 제 의지를 꺾고, 모두를 정시우의 것으로 거듭나게 한다.

“아아…….”

마나를 잘 모르는 이들조차 그 광경을 보며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한때 그 힘이 저들을 괴롭힌 원흉이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서서히 마나의 분출이 줄어들었다. 정시우는 외부로 나오려는 마나마저 모두 개틀링에 밀어 넣어 강화를 마무리했다. 30초 정도가 지나 완전히 빛을 집어삼킨 개틀링이, 둔탁한 쇠의 광택을 발했다.

“완성.”

“누가 들으면 간단한 덮밥 요리라도 한 줄 알겠네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리는 수아린에게 마찬가지로 가볍게 웃어 준 후, 정시우는 개틀링의 정보를 확인했다.

[군멸포]

[랭크 ? S+]

[공격력 ? 5,300 ? 5,800]

[숙련도 ? 0/30,000]

[옵션 ? 1. 마탄 계열 스킬의 발동 시 약실에 탄환을 49개 중첩 복제 2. ???]

[군단의 신이 지닌 힘을 목적에 맞는 특정한 방향으로 진화시켜, 홀로 군단을 상대하는 병기를 탄생시켰다.]

“이야.”

정시우는 가벼운 감탄사를 흘리며 생각했다. 신의 힘 만만세라고.

그가 지닌 S랭크의 무기가 두 개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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