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153화.
[괴력 스킬이 Lv5가 되었습니다.]
[강타 스킬이 Lv55가 되었습니다.]
[타격전이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인간 수십 명을 겹쳐 놓은 듯이 보이는 체구의 케나토. 거대화한 마신의 징벌이 놈의 몸통에 틀어박히는 순간 놈의 신체 절반이 짓이겨졌고, 남은 반신에서는 독을 품은 불꽃이 타올랐다.
아무리 저항력이 강해도 차지 스트라이크에 얻어맞아 약화된 상태에서도 불꽃을 완벽히 이겨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거대한 몸집을 지닌 놈을 대상으로 타격전이 스킬이 발동하며 수십 퍼센트의 데미지를 더 먹이기까지 했으니!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가장 치명적으로 틀어박힌 공격은 그것 한 번만으로도 놈을 완벽한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정시우가 해머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한 방만 제대로 갈기면 확실하게 적을 끝장낼 수 있으니까!
“아린이 넌 세하 치료해.”
“네!”
수아린이 다급히 용세하에게 날아가는 사이 정시우는 해머를 축소시켜 놈을 공격했다. 놈의 회복력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공격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타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서 뻗어 나와 인간들의 생명력을 빨아먹으려는 저 나무줄기!
[크아아아아아악!]
“그렇지, 더 크게 울어 봐!”
[크하아아아! 죽여 버리겠어!]
정시우는 놈의 몸통 곳곳에서 뻗어 나오는 나무줄기들을 단숨에 붙잡아 불태우며 으르렁거렸다.
“네가 지금 날 뭐 어떻게 죽이겠니. 그렇게 뻔한 단말마나 내지르지 말고 살려 달라고 빌어 봐, 혹시 내가 살려 줄지도 모르잖아?”
[사, 살려 줘!]
“싫어!”
정말 의지가 약하구나! 정시우는 환한 미소와 함께 크루얼 차지, 강타를 발현했다.
그의 전신을 몇 겹이고 두껍게 두르고 있던 나무껍질이며 줄기가 순식간에 깨져 나가고, 놈을 강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었던 신의 성물이 놈의 몸통에 반쯤 박힌 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온전히 수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이나 놈을 완전히 죽이고 마석까지 수거하면 그럭저럭 괜찮아질 터였다.
“대신 금방 편하게 해 주지.”
[크아아아아아아! 뒤, 뒤세느 님!]
놈의 목소리에 광기가 깃든 그 순간, 놈의 육신에 박힌 성물로부터 정시우가 붙인 불꽃과는 다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나를 파악하는 정시우의 눈에는 보였다. 그것은 결코 신의 치유나 강화 따위가 아니라, 단지 신이 의지를 발해 놈에게서 자신의 마나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패배를 인정하겠다, 용의 후계여.]
[끄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 속에서도 그녀의 의지는 뚜렷이 정시우에게 전달되어 왔다.
[군단의 힘을 홀로 맞받아친 너에게, 더 이상 하등한 세계에서의 격돌은 의미를 갖지 못하겠구나. 물론 다른 신들은 여전히 해 볼 생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미련한 여자가 아니거든.]
“순순히 패배 선언을 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그런데 뭐, 하등한 세계?”
[오, 그럼 이곳이 발전된 세계라고 생각한 것이냐?]
성물이 놈의 몸에 잔존해 있던 마나를 모두 빨아들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정시우는 그것이 행여나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았으나 애초에 그녀는 그것을 포기할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너는 이미 다른 세계를 여럿 맛보지 않았니. 그곳이 어떠했더냐?]
“다 끝나 있었지.”
[마나는?]
마나? 고개를 갸웃하던 것도 잠시 정시우는 떠올려 냈다. 전직 퀘스트를 위해 향했던 세계도, 라이아의 소신전이 있었던 세계도, 가장 최근에 겪은 세트나크의 73마성이 위치한 세계도…… 지금 이 포투포우에 비해 월등히 농밀한 마나를 품고 있었던 세계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세계의 발전, 혹은 진화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
[이제 알겠니?]
정시우를 가르치려는 듯한 뒤세느의 목소리는 솔직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으나, 정시우는 아직 이 여자의 말을 더 들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조용히 있었다.
[네가, 변화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구라는 세계에서 기이할 만큼 특출한 재능을 지니고 성장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너는 네 수준에 비해 지극히 뛰어나. 아마도 다시는 없을 만큼.]
하지만, 하고 뒤세느는 여유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이 세계는 뉴 에이지로 진입한 지 40년 만에 크레센트로 성장해, 그 시점에서 이미 우리에게 잡아먹히게 된 세상이야. 그래…… 네게 익숙한 단어로 얘기해 주자면.]
정시우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지만.
[100단계 스테이지 중에 고작 3스테이지 정도란다.]
그녀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기에.
[네가 거쳐 온 다른…… 그렇지. 라이아가 차지한 세계가 5스테이지, 세트나크가 차지한 세계가 7스테이지 정도. 아, 물론 네가 상대했던 적들은 그 세계에서도 약한 축에 드는 아이들이었을 거란다.]
“하.”
[이 세상의 아이들은 아직 약해도 너무 약해. 내 힘을 많이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받아들인 힘도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개화하지 못했어…… 하지만, 앞으로 네가 마주하게 될 다른 모든 세상이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단숨에 자신의 좁아터진 세계관이 확장되는 느낌에 멍하니 서 있던 정시우의 품에, 군단의 신 뒤세느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힘, 성물을 마치 선물하듯 안겨 주었다.
그가 보여 준 즐거운 공연의 관람료로서 기꺼이 지급했다. 그녀의 신실했던 종이 그것을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죽어 버렸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가장 강한 종이라 해도, 그녀가 부리는 나머지 종에 비하면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마, 어린 용아. 하지만 다음에도 그렇게 막무가내라면, 그땐 죽게 될지도 몰라.]
목소리가 사라졌다. 정시우가 끊은 것이다. 그는 성물을 단숨에 인벤토리에 구겨 넣고는 신의 힘을 잃어 바짝 말라비틀어진 괴물의 시체도 일단 인벤토리에 넣었다.
신이 직접 놈에게서 힘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놈이 스스로 쌓아 올린 기록만은 확실히 정시우에게 전달되어 그의 레벨을 두 단계 높여 주었다.
괴력의 유지시간이 끝나 패널티가 그를 찾아왔으나 이젠 바닥을 뒹굴 필요도 없이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직 3스테이지 수준이라 이거지…….”
그의 머릿속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다.
비록 군단의 힘을 빨아먹고 강화된 괴물이라고는 하나, 놈을 상대로 혼자만의 힘으로는 틈을 찾기도 힘들어 용세하의 도움을 빌어 차지 스트라이크를 먹여서야 간신히 죽일 수 있었던 놈인데…… 그놈이 3스테이지의 보스라.
정시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 97스테이지나 남았다는 거잖아.”
지금의 감상을 말하라면 그저 단순한 한 가지 감정만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기쁨이다. 아직 올라갈 곳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더 강해져야지.”
100스테이지까지 깨려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잘난 척하는 연놈들을 모두 조져 버리기 위해선 지금보다도 더욱 빠르게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괴력의 패널티가 주는 고통마저 기쁘게 받아들이며 두 눈을 지그시 떴다.
“오.”
저 너머 하늘에, 아주 서서히 구축되는 거대한 성의 모습이 보였다.
“유, 육성소가…….”
“맙소사, 육성소가 다시 생기고 있어. 군단의 신이 완전히 물러났다는 증거야!”
“날개! 이봐, 지금 네 등에 날개 돋아나고 있다고!”
“자네도 마찬가지야!”
군단의 신의 힘이 깨끗이 사라지면서 세상에 다시 육성소가 생겨나고, 새로운 저항자들이 탄생했다. 실로 극적인 변화였으나, 다시 다른 신들의 세력이 강해지는 일이 생긴다면 기껏 새로 생겨난 육성소는 이전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되리라.
“아직 화염의 신의 세력이 남아 있다! 놈들을 쳐부숴야 해!”
“이 기회…… 절대 놓칠 수 없다!”
희망을 얻은 인간들이 용기백배하여 재차 승리를 향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고, 신의 가호를 잃은 괴물들은 그들을 도저히 넘어설 수 없었다.
정시우는 더 이상 마나 드레인을 유지하지 않아도 인간들이 신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얻고는 스킬을 해제해 버렸다.
그가 케나토를 압도하지 못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스펙에서 차이가 나서이기도 했지만, 광범위한 영역의 마나 드레인을 유지하느라 전투 집중력이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딱히 변명할 생각도 없고, 결국 이겼으니 됐지만 말이다.
“후우…….”
아직 화염의 신의 대리자 파이라의 목숨 줄이 붙어 있었지만, 그것도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더욱 기세가 강렬해지고 있는 케이나가 머지않아 끝내 줄 것이다. 그는 케이나에게 마음속으로만 응원을 보내며 용세하에게로 향했다.
“세하 상태는 좀 어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치유를 퍼부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는데, 레벨이 오르면서 괜찮아졌어요.”
치료를 마친 수아린이 후, 안도의 한숨을 토해 내며 물러났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 의식을 잃었던 용세하는 레벨 업과 동시에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아, 형님.”
녀석은 정시우를 보자 다급히 몸을 일으키다가는 아야, 하고 움츠러들면서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크하…… 아직 몸은 좀 저리네요. 그보다 형님, 저 잘했습니까?”
“끝내줬지.”
솔직히 차지 스트라이크를 완성하기까지 나무줄기에 수십 번 얻어맞는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용세하가 그의 생각 이상으로 분투해 준 덕분에 깔끔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돌격병이자 탱커로서 톡톡히 활약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저는 용세하 씨가 숨어 있는 줄도 몰랐어요.”
“형님이 은신에 도움을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전장을 지배하는 컨트롤에 기가 질릴 정도라니까요.”
“어쨌든 잘했어. 이제 좀 돌격에 폼이 나오더라.”
“하하…… 끄으.”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치료와 레벨 업만으로 회복할 수 없는 내상도 있는 모양이었다. 정시우는 반성회는 다음으로 미뤄 두기로 하고, 용세하의 크기를 줄여 품에 들였다.
[맡겨 줘서 고맙다, 주인님. 여기 적의 수급을 베어 왔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케이나가 복귀했다. 완전히 불도마뱀 같은 형태로 변화해 인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 파이라라는 여자의 시체를 통째로 질질 끌고 와 그에게 넘기는 케이나에게 정시우는 기가 막혀 대꾸했다.
“수급이 아니라 사체를 통째로 들고 온 거잖아, 이건. ……아니, 너 기사는 기사라도 시대랑 문화배경이 좀 다르지 않냐?”
[오랜만의 격전이었다. 레벨 업이라는 것도 실로 오랜만에 겪는 감각이군.]
정시우의 태클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말하고 있는 케이나는 심지어는 레벨 업까지 치른 모양!
물론 그녀가 육신을 얻고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을뿐더러 화염의 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파이라의 육신에 깃들었던 기록과 마나는 그녀의 격을 향상시켜 주기에 충분했을 터이지만…….
“레벨도 오르는구나, 너…….”
[데스나이트이던 시절에도 혼으로서 지니고 있던 격은 성장했었다. 하물며 반생물이 되어 육체와 영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
정시우는 파이라의 사체에서 화염의 신의 파편…… 성물과 반쯤 녹아 하나로 합쳐진 채인 그녀의 마석을 뽑아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마신의 징벌에 흡수시켰다.
그 순간 마신의 징벌이 지닌 독염 속성이 A+랭크로 성장했다. 공격력도 조금 올랐다.
“이것이 바로 강화의 기쁨인가.”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오빠…….”
신의 힘을 거침없이 다뤄 신의 힘을 뭉쳐 만든 물건을 강화한다. 그 절반이라도 다른 누가 따라했더라면 큰일이 났으리라.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망치를 허공에 붕붕 휘둘러 보고는, 자, 하며 되돌아섰다.
“그럼 남은 거 정리하고 지구로 돌아가 볼까.”
전투는 그로부터 두 시간 더 이어진 끝에, 군단의 신과 화염의 신에 속한 세력의 전멸이라는 결말로 끝을 맺었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은 그 어떤 신도 이곳 포투포우에서 활개를 치지 못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