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37화 (137/260)

# 137

137화.

베토가 대체 뭘 한다는 거지?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했던 정시우는 이내 포투포우로 떠나기 전, 녀석에게 대장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 이후로 쭉 방치라니 참 너무하군.”

[그렇다. 바로 주인님 말이다.]

이세계에 다녀오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베토는 어른의 변명이 통하지 않을 만큼 어리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이곤 거주지역 입구로 향했다.

“좋아, 가 보자고.”

“네, 어서 가죠.”

자신의 침실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던 수아린은 망상을 일단 접어 두고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용세하는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한 번도 거주지역에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척 기대가 된다는 표정이었다.

“루타는 얌전히 지내고 있냐?”

[매일같이 와서 베토와 나의 안온한 생활에 태클을 걸고 있다. 그 여자는 머리가 살짝 이상한 것이 아닐까.]

“속내는?”

[저런 천한 여자가 우리 귀여운 베토에게 쓸데없이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전직 데스나이트, 현직 드래곤나이트의 발언치고는 심히 유감스러웠다. 정시우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어머나, 영주님! 새로운 문을 한 단계 열어젖히고 오셨네요!”

“그 문을 콱 닫아 버리고 싶다. 네가 못 들어오게.”

과연, 그녀의 말마따나 대장간에 이르렀을 즈음엔 가게 앞에 파라솔을 펼쳐 놓고 쿠키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고 있는 루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럴 거면 대체 자기 집은 왜 으슥한 곳에 만들어 놓았는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원래 이렇게 친근한 인상으로 동네에 나타나는 여인이 알고 보니 비밀스러운 상점의 주인이더라, 는 설정이 더 매력적으로 먹힌답니다!”

“매력 없으니까 저리 가라.”

“오늘은 영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러나 루타는 정시우의 매몰찬 말에도 불구하고 찡긋, 어울리지도 않는 윙크와 함께 쿠키를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그곳에 놔둔 채 일행과 함께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분하게도 그녀에게서 받아 든 쿠키는 제법 맛있었다.

“아, 주인님!”

“차라리 너도 영주님이라고 불러 줘.”

“네, 주인님!”

베토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는 정시우의 모습을 발견하자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왔다. 어쩌면 누나로부터 그렇게 행동하라고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정시우는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뭘 만들었다면서?”

“네! 잠깐만요!”

게임을 해도 그렇고 소설을 봐도 그렇고 대장일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제일 처음 칼을 만들던데, 아마 베토도 칼을 만들지 않았을까.

정시우는 본인은 칼을 안 쓰는데 어떤 식으로 녀석을 칭찬해 주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곧 베토가 천에 둘둘 감싸인 것을 안고 정시우에게 다가왔다.

“여기 마도구를 하나 만들어 봤어요!”

“총이잖아!?”

“원래 갖고 계시던 마탄 사출 보조장치…… 마포를 잃어버리셨다고 들어서.”

모든 문명이 총을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다른 세계 사람들도 마탄을 보조하는 마도구를 다루긴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마포라 부르는데, 이번에 정시우가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을 합성에 써 버린 것을 케이나가 말해 주었고 그 말을 들은 베토가 첫 작품으로 총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어, 어떠신가요? 아직 재료도 별로 없고…… 또 제 실력도 미숙해서, 그리 대단한 것을 만들진 못했는데요…….”

정시우는 걱정 반 기대 반이 어린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돌려, 천에 감싸인 마도구…… 얼핏 머스킷과 비슷한 외견을 지닌 마도구에 시선을 주었다. 어차피 실제로 탄환을 삽입하여 쏘아 내는 용도가 아닌 만큼 총의 생김새 따위는 어찌 되든…….

[테일러 형 마포 개량형]

[랭크 ? C+]

[공격력 ? 1,300 ? 1,500]

[숙련도 ? 0/500]

[테일러 제국에서 비밀리에 생산되던 마포가 개량을 거쳐 아티팩트화하였다. 타입에 맞는 탄을 삽입 후 소량의 마력을 주입하는 것으로 발사가 가능하며, 마탄 스킬을 지니고 있지 않아도 균일한 위력을 지닌 마탄을 쏘아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단 연사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이게 뭐야!?”

모든 의미에서 정시우의 상상을 배반하는 물건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여, 역시 별로겠죠. 죄송합니다, 저는 마탄 스킬을 지닌 분들을 위한 강화형 마포는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무슨 소리야, 이게 더 대단하잖아!”

“네?”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하는 베토를 보며 그만 정신이 어질해지고 말았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마포를 케이나에게 내밀자, 케이나는 그 정보를 확인하고는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멸망한 테일러 제국의 귀족이셨다. 테일러 제국은 여러 신의 세력에 의한 합공에 비참하게 몰락하였지만 마도공학에 관해서만은 다른 어떤 세계와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수준에 이르러 있었지. 이, 마탄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마탄을 쏠 수 있게 하는 물건 또한 그 제국의 잊혀진 유산 가운데 하나다.]

“아니 대체…….”

이 녀석은 글렀다. 정시우는 아무 말 없이 마포를 수아린에게 건네었고, 불과 5초 만에 정시우와 비슷한 표정이 된 수아린은 다시 그것을 용세하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정확히 5초 후 용세하가 소리 질렀다.

“이게 뭐야!?”

[흉내 내기 놀이인가? 다들 사이가 좋군.]

“이것만 있으면, 이게 양산이라도 된다면…….”

현대 개인 화기로는 오크 이상의 몬스터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다. 미사일 같은 대형 무기로 넘어가면 약한 오크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게 되지만 그땐 인류가 이룩한 문명도 같이 날아간다. 그러나 이 마포만 있다면…….

“마력이 있는 모든 이가 오크 정도는 처리할 수 있게 된단 얘기잖아?”

죽일 수 있는 몬스터의 측정 기준이 오크라는 점이 실로 오크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놈들이 제일 만만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마탄의 위력에 따라 더 강한 적도 죽일 수 있게 돼요. 마석이 있다면 더 강한 적도!”

정시우가 자신의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이자 잔뜩 신이 난 베토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정시우는 그것을 쥐고 생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구에 마나가 생겨난 지금, 가능성만 놓고 보면 모든 인간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셈인데…… 아린아, 그것과 관해서 뭐 알고 있는 거 없냐?”

“잠시만요, 오빠. 인터넷에 요즘 좀 그런 얘기가 뜨고 있어요.”

곧 수아린이 그에게 폰 화면을 내밀었다. 기를 느끼고 있다느니, 손이 푸르게 물들었다느니, 누가 보면 사이비 종교 광고 같아 보이는 각양각색의 체험담을 이슈로 다룬 뉴스가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대부분이 사실이리라는 것.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지…… 혹시나 해서 묻는데, 하늘성에서 이런 아티팩트가 보상으로 나온 적은?”

“없어요. 비드를 바쳐 얻는 보상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기록에 따라 생성된다구요. 뭐가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홍보는 홈쇼핑에나 나오는 얘기예요.”

그럴 줄 알았다. 정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는 베토에게 물었다.

“이런 물건을 만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

“제가 손이 느려서…… 이게 제법 공정이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제 실력이 늘어도 일주일에 한 개 정도가…… 죄, 죄송해요, 주인님.”

“아니, 죄송할 일은 아냐. 그 정도면 충분히 빨라.”

애초에 이런 물건이 많이 돌아다녔다면 어떤 문명이든 쉽게 무너졌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정시우는 아까 업그레이드된 휴식처의 주방이 품게 된 옵션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티팩트의 열화 복제. 열화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마탄을 쏘아 내는 병기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위험하지…….”

베토 한 명으로 인해 단박에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정시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베토, 혹시 이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겠어? 내게 열화 복제 능력이 있는데, 복제의 결과물로도 오크를 사냥할 수 있게 되려면 기본이 되는 아티팩트의 성능이 뛰어나야 하거든.”

“이, 이것보다…… 으으음, 저는 아직 도제 수준이라서, 앞으로 많은 연습을 하고, 또 마포를 만들 때 마석을 소모하고 그 외에도 좋은 소재를 쓴다면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또 있어.”

이 무기는 어디까지나 마탄 스킬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정시우도 좋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을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원거리 무기가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 마포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마탄 스킬은 이미 지니고 있으니까, 그 점을 고려해서 다른 옵션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겠어? 연사라든가.”

“연사 말씀인가요!? 그러면 혹시 주인님.”

베토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그에게 물어왔다.

“혹시 견본이 될 만한 물건을…… 볼 수 있나요? 서, 설계도라도 괜찮은데. 부모님께 배운 마도공학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든지. 조금만 기다려 줘.”

정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수아린은 심히 불안해지고 말았지만, 그를 말릴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자, 일단 급한 대로 마석을 비롯한 재료들을 줄게.”

그 말과 함께 정시우가 인벤토리에서 쏟아 낸 것들은 포투포우에서 사냥한 테디베어들의 마석을 비롯해 여태까지 그가 이곳저곳에서 얻어 보관하기만 했던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베토는 입이 떡 벌어져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다 엄청 좋아 보여요!”

“그래, 다 마음껏 사용해. 이 마포는 일단 내가 받아 둘게.”

정시우는 마포를 수아린에게 넘겼다. 직접적인 공격 스킬이 마땅치 않은 그녀이지만, 이 마포라도 들고 있으면 유사시에 제법 도움이 될 터였다.

“고마워요, 오빠. 그런데…… 주방에서는 이런 것들을 못 만드는 건가요?”

“그게 가능했으면 진즉 마리나를 통해 미국이랑 거래라도 했겠지.”

팬텀바이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정시우가 팬텀스티드의 마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방에서의 마도구 생산이 이루어질 때의 핵심은 지구의 기술이 아니라, 특성을 지닌 마석인 것이다.

“그러니까 난 한시라도 빨리 개구리 계열 몬스터의 마석을 찾지 않으면 안 돼.”

“아직까지 탱탱볼의 강화를 포기하지 않고 계셨군요, 형님…….”

용세하가 절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포를 품에 안아 든 수아린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 나가서 개틀링 건의 설계도를 한 번 검색해 볼까. 아니지. 마리나한테 개틀링 하나 달라고 하면 가져올까?”

“엄청 물어볼 텐데요.”

“어차피 내가 마도구 개틀링을 들고 나타나도 귀찮게 하긴 매한가지일걸.”

새로운 재료들을 공급받고 잔뜩 신이 난 베토에게 하루 정도만 기다리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나온 정시우 일행은 그들이 대장간에 들어가던 때와 마찬가지 포즈로 쿠키를 깨물어 먹고 있는 루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시우는 애써 그녀를 외면했다.

“휴식처로 돌아가 볼까.”

“그러면 이제 저의 비밀상점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정말 귀찮게!”

[잘 가라, 주인님.]

결국 루타에게 질질 끌려가는 정시우를 향해 케이나가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그녀는 루타가 베토에게 집적대지만 않으면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도달한 비밀상점에서, 루타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이렇게 물어 왔다.

“영주님, 왜 거주지역에 이세계의 주민들을 데려오지 않으신 건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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