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134화.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자연은 오히려 평화롭네.”
“그러게요. 몬스터도 자유로이 뛰놀고 있어요.”
정시우가 탄 팬텀바이크는 은신을 유지한 채 저공비행을 지속했다. 인류가 사라져 가는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고, 강한 몬스터를 발견하면 즉각 잡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문명이 없는 건 아냐. 그들은 스스로 저 안으로 기어 들어간 거지.”
“하지만 실제로 유지되고 있는 그 문명은…….”
“그걸 이제부터 보러 가야겠지.”
팬텀바이크는 굉장히 빨랐지만 그런 팬텀바이크로도 몇 시간은 날아야 할 만큼 세상 포투포우는 거대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거대한 행성이었을지도, 그게 아니라면 행성 자체에 변화가 닥쳐 온 것일 수도 있겠지.
“본격적으로 내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데…….”
세상을 둘러보며 정시우의 가슴속에는 무언가 기묘한 감상이 들었다.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내동댕이쳐진다면 이런 생각이 들까? 지구보다도 더 커다란 세상이 수십, 수백 개씩이고 넘쳐나, 정시우 한 명의 존재가 사라져도 전혀 티도 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그는 자신의 미약함을 실감했다. 반대로 그 모든 것들 위로 우뚝 서고 싶다는 반발감이 이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오빠, 마법이 느껴져요.”
“그래, 나도 느끼고 있었어.”
용의 감각은 이세계로 진입한 그 순간부터 민감하게 발현된 상태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허공에 침입자를 감지하고 배척하는 결계가 생성되어 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인간의 흔적이 닿았음에 분명한 도시의 성벽. 지구처럼 현대화되지는 않았으나 꼼꼼하고 기계적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시우의 용의 감각은 결계 너머로도 어렵지 않게 뻗어 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의 기척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신, 아마도 군단의 신이라는 작자에게 오염된 인간들. 그럼에도 아직은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다.
“어떻게 할까요?”
“음, 그럼 여기부터 처리할까.”
“오빠 바보예요!?”
그러나 결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딱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른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았고, 독일에 나타난 놈 대신 여기서 테디베어 한 마리 잡았으니까 됐지,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행동방침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형님. 근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지구와도, 형님과도 관계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무턱대고 쳐들어가도 우리가 정당화될 수 없어요. 저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이 된단 얘기죠.”
“하긴……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 싸우게 될 놈이라 해도, 미래에 그렇게 될 게 뻔하다는 이유만으로 선공해 버리는 건 좀 그런가.”
놀랍게도 정시우가 자제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는 선후 차이일 뿐, 정시우가 정중하게 대화를 요청한다고 저들이 미소로 받아 줄 리는 없다. 어쩌면 정시우의 존재가 기폭제가 되어 몬스터화가 진행될지도 몰랐다.
“결계가 없는 곳도 있을 거예요. 오빠 말마따나 이 행성은 넓으니까요. 또 다른 신의 세력도 있다고 했으니 그쪽을 찾아보죠.”
“흠…… 빨리 그놈이랑 싸워 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나.”
정시우는 자신이 나오기 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에게 말하던 남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절대 못 이깁니다. 레벨은 더 이상 그놈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군단의 신의 힘은 정말 놈을 악마로 만들어 버렸단 말입니다. 그 힘에 홀려 놈을 따라 군단의 신의 종속이 된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놈이 더 강해졌을 뿐이었죠……. 케나토, 그놈만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군단의 신의 종속이 늘어나면서 케나토라는 남자의 힘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군단의 신의 힘이란 다른 복수의 존재에 의해 영향 받는 힘이란 말인가. 힘이 성립되는 과정에서부터 벌써 정시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타인에게 영향받는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닌 것이다.
“내가 다른 데서 날뛰고 있을 때 놈이 나를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나…….”
“태연하게 무서운 소리를.”
“형님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저도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빨리 놈하고 한판 붙고 형님 속이 시원해지시면 좋겠네요.”
김하룡에 대한 환상을 버리며 동시에 정시우에 대한 환상을 새로이 영접한 용세하의 말은 수아린에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한숨을 내쉬든 말든 정시우는 팬텀바이크의 방향을 돌려 결계가 쳐진 곳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수색을 시작했다.
포투포우는 지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다종다양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신의 힘에 미약한 영향을 받은 놈들뿐이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그나마 짙은 기운을 풍기는 녀석도 있었는데, 같은 몬스터 개체임에도 그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정시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흘러, 드디어 정시우는 ‘끈’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테디베어 찾았다!”
정확히는 레드 티베이드.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개체 한 마리가 아장아장 필드…… 초원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멋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저 흐뭇하기만 한 광경이지만, 실상 저 작은 놈 한 마리가 품고 있는 힘도 레벨 80에 근접한다.
“아, 뱀 한 마리를 발견했어요.”
“그대로 집어서 씹어 먹네요.”
솜씨 좋게 뱀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려, 팔을 칭칭 감아 오는 독의 저항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입을 벌려 뱀의 머리부터 오독오독 씹어 먹는 작은 테디베어의 모습이 실로 무서웠다. 하지만 정시우는 놈의 포식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이 깨달은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저게 바로 군단의 신의 종속이구나.”
“그랬어요!?”
“저 뱀도 다른 신의 종속으로 보이거든. 레벨 90을 넘는 놈인데 테디베어가 지금 어렵지 않게 잡았잖아.”
“그래서요!?”
“외부로부터 유입되어 놈을 강화시켜 주는 에너지의 존재가 있어. 너희 눈엔 안 보여?”
“그게 보였으면 제가 지금 이렇게 바보 같은 리액션을 하고 있겠어요?”
군단의 신, 대체 뭐하는 놈일까. 수수께끼만 늘어가는 가운데 정시우는 은신을 유지한 채 천천히 팬텀바이크를 몰았다. 뱀 포식을 마친 아기 테디베어는 또다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는데, 마냥 귀여워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에너지의 진원지로 가고 있어. 하지만 이 근처에는 느껴지는 기척이 없지.”
“아하, 결계로군요.”
“바로 그거야.”
같은 군단의 신을 따르는 종속이라 해도 아직까지는 인간의 영역과 테디베어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여태까지 레벨이 낮은 인간은 무조건 몬스터화한다는 정시우의 기존 인식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신에 따라 특성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알고 싶지 않은 지식만 나날이 늘어가네.”
정시우는 푸념하며 테디베어를 따랐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고원에 이르러 아기 테디베어는 자연스럽게 현실 공간이 아닌 아공간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고,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던 정시우는 팬텀바이크를 몰아 그렇게 열린 아공간에 발을 디뎠다.
[뀨!?]
그것을 알아차린 아기 테디베어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정시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쏘아 날린 크리티컬 불릿이 녀석의 귀여운 면상을 깔끔하게 터트린 후였다. 증인은 그것으로 완벽하게 침묵했다.
[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런 줄 알았는데.
“캬, 이게 이렇게 되네.”
정시우는 던전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독립된 소세계 안, 인간과 비슷하게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무수한 테디베어들의 모습을 보며 일단 한 번 감탄하고, 아기 테디베어가 죽는 순간 녀석과 연결되어 있던 힘이 본래 주인들에게 돌아가며 녀석의 죽음을 알리는 빠른 네트워크 방식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꾸아아아아아아!]
[꾸이이이이, 뀌우오아아아아!]
인간의 세계 대신 테디베어들의 세계를 염탐하겠다는 정시우의 계획은 초장에 날아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 은신이 유지될 리가 없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수십만, 수백만의 테디베어들이 모두 정시우 한 명만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으니!
[왔구나!]
설상가상으로 정시우의 뇌리에 직접 꽂히는 목소리까지 있었다.
[너라면 내 신전으로 직접 찾아와 줄 줄 알았는데 실로 의외로다! 어째서 이런 변두리로 온 것이야?]
살짝 간드러지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 그나저나 정시우의 이름이 신들 사이로 퍼지고 있단 말인가. 그것만은 의외였다.
[그야 우리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강탈할 수 있는 존재는 네가 처음이거든. ……아니, 두 번째인가?]
“이 새끼도 되도 않는 복선 깔고 있네. 첫 번째가 용인 거 다 알고 있어 새꺄.”
[헛!?]
군단의 신이 당황했다. 그러나 정시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그에게 전달해 올 수 있다는 것은, 이 장소 어딘가에 신의 힘이 강하게 묻어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것도 전부 빼앗아 줄 테니 기다리렴.”
[요, 용의 후계자! 내가 뇌신 같은 머저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하등한 동물이라고는 하나 나의 축복을 받은 아이들의 소굴에 직접 발을 들이민 대가는 실로 아프게 치르게 될…….]
정시우는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우선 앞뒤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인하고, 여기저기서 필살 합체를 하고 있는 테디베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인벤토리에서 마신의 징벌을 꺼내어 손에 쥐었다.
“마석을 얻기 위해 기다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뭐 이런 마석 가치 얼마나 된다고.”
하나만 지구로 가지고 돌아가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돈은 그리 매력적인 재화가 아니다.
정시우는 거대화, 소를 펼쳐 일단 그 앞으로 몰려들던 작은 테디베어 수만 마리를 깔끔하게 쓸어버리곤, 그것을 수직으로 들어 올리며 해머가 지닌 첫 번째 속성, 독염을 발휘했다.
“일단 가볍게 이 세상에서 너를 몰아내 주지. 지구로는 차마 발도 들이지 못하게 말이야.”
[상당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테디베어의 지구 침범은 군단의 신이 지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 굳이 놈의 흔적이 지구로 넘어오기를 기다릴 것도 없었다.
정시우가 인간의 영역으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을 먼저 죽이기 껄끄럽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 두자면 난 테디베어를 썩 좋아하지 않거든!”
그를 망설이게 하려거든 테디베어가 아니라 합체로봇 정도는 가져와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한 시점에서 군단의 신은 그를 유혹할 수 없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 그 후 흑뢰와 비슷하게 검은 색의 기운을 뿜어내는 거대 해머를 거세게 내리쳤다. 흑뢰와 차이점이 있다면 색이 더 구리고 독 때문에 냄새까지 구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속성의 효과에 있어 공통점이 있다면.
[독염이 사방으로 번지며 극독과 화상의 상태 이상을 전염시킵니다.]
[꾸아아아아아악!]
[꾸이, 꾸이이이이이이!]
바로 상태이상의 전염성이다! 합체하려던 테디베어들을 중간에 무너트릴 만큼 위력적인 상태이상에 이곳저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상태이상의 전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합체를 이뤄 낸 테디베어들도 곳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가운데 놈이 있었다.
[구오오오옹…… 놈, 우리의, 일원으로.]
머리 위에 황금의 조악한 왕관을 쓴 초거대 테디베어. 그 체고만 족히 50미터에 달하는, 한 팔로 내려치기만 해도 마을 하나, 덤으로 어린아이들의 꿈과 환상까지도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은 괴물! 놈에게서 느껴지는 군단의 신의 힘이 실로 진하고 풍부했다.
“아하, 군단의 신의 성물이라서 왕관이라 이거지. 정말 단순해서 좋은데 그래.”
그러나 놈을 마주하는 정시우는 어디까지나 밝게 웃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의 영역으로 쳐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을 수색한 것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저놈은 연속 타격도 버텨 주겠지!”
[일원으로, 만든다!]
테디베어를 상대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돌진하는 정시우와, 테디베어와 인간의 금지된 융합을 꿈꾸는 초거대 테디베어가 테디베어 마을의 정중앙에서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