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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01화 (101/260)

# 101

101화.

그로부터 네 시간 정도가 지나 정시우 일행은 간신히 몬스터 무리를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강력했을뿐더러 엘리트 몬스터도 심심치 않게 끼어 있었으나, 마리나까지 합류한 정시우 일행에게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는 별로 없었다.

정시우는 전투를 치르며 점점 오감 스킬에 숙달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직감도 성장하면서 전투의 끝에 이를 무렵 희미한 공명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까지 성공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 조금이 안 되네…… 내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 줄 만한 강적이 있으면 좋겠는데.”

“시우는 왜 볼 때마다 턱없이 강해지는 거야? 방금 그 몸놀림 당최 이해가 안 가는데!”

정시우는 아쉬움에 혀를 찼으나 마리나는 그의 활약에 어이없어 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정시우가 오감을 스킬화하는 것에 대해 말해 주자 마리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발상에 놀란 것이 아니라, 발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 그의 능력에 경악했다.

“크리티컬 불릿을 만들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녀석이구나, 너…….”

“예습복습만 철저히 하면 누구나 그 정돈 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놀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어!”

마리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성을 냈다. 그녀를 제치고 다가온 세리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보고했다.

“B&Y에서 협조해 주는 덕에 몬스터 시체는 확실히 수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투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없습니다. 승무원도 모두 안전합니다.”

“다행이네.”

“회의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서두르자!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도착해 있단 말이야!”

“마리나, 다른 사람들은 오는 길에 습격 안 받았어?”

“웅.”

마리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놈도 없었어. 용오름 길드 마스터가 자꾸 귀찮게 굴었지만 그건 항상 있던 일이고.”

“그놈이 제일 수상하단 말이죠…….”

수아린은 아직도 시청 회의장에서 김하룡과 만났던 일이 잊히지 않는지 진저리를 치다가는, 정시우가 김하룡을 호쾌하게 두들겼던 것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시비 좀 걸렸다고 해서 김하룡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팰 수 있는 사람은 정시우 외에는 없으리라.

그때 정시우가 제법 냉정한 말로 두 여자의 망상을 끊어 놓았다.

“여기 나타난 몬스터들에게서 느낀 힘은 김하룡에게서 느꼈던 힘과 달라. 둘 이상의 신이 협조를 하고 있다는 가정도 물론 가능하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32단계 던전까지 클리어하며 알게 된 신의 이름만 해도 열 개가 넘는데, 그 모든 놈들이 지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한걸.”

“거기까진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가 막아 내면 될 일. 세트나크의 힘도, 루이오스의 힘도 우리가 지구에서 몰아내는 순간 조금이나마 작아졌으니까.”

신의 힘을 직접 몸에 품었던 당사자라 그런가, 세리아의 말은 지극히 단호하면서도 희망적이었다. 그녀의 말에 정시우는 뇌신 라이아의 소신전을 부수었던 때를 떠올렸다.

단순히 지구에서 몰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지구로 향하는 통로 자체를 차단하고 그 너머 세상에까지 피해를 입히는 것. 신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효과 하나는 대단했으나 아마도 그것은 정시우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그랜드캐니언에 가려고 했었지.’

그의 의식이 자연스레 세트나크의 파편이 나타났던 그랜드캐니언으로 향했다. 그 당시엔 통로를 찾지 못했지만, 그만큼 큰 힘이 드러났던 장소이니만큼 세트나크와 관련된 세상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달려가 수색을 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가 먼저. 그는 신의 힘에 대해 얘기하는 사이 또 조금 침울해지고만 이서희와 세리아의 어깨에 각기 한 손을 얹었다.

“일단 회의를 끝내러 가자.”

“그래. 앞으로 일어날 모든 비극을 우리 손으로 막아야지.”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말이죠…….”

“벌써부터 초치지 맛!”

일행은 곧장 실리콘밸리에 있는 B&Y 본사로 향해, 그곳에서 다시 뉴욕 B&Y 지사에 있는 게이트로 한순간에 이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놀라운 마도 공학 덕분에 키메라 무리와의 전투로 소모한 시간을 메꾸고도 남게 된 것!

“이거 다른 곳에서는 아직 모르지?”

“조만간 들키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들켜도 상관없어. 어차피 소스 자체는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하늘성 던전에도 있을뿐더러, 최종적으로는 이 게이트를 지구상에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내는 게 목적이니까.”

모든 인류는 몬스터의 발생 이후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공통적인 목표를 갖게 되었다. B&Y의 행동원리 또한 이에 근거했다. 시장논리로 보면 그들의 기술력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나, 그 이전에 시장 자체가 없어지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개미굴에서 얻는 정보도 더해진다면 B&Y의 독주 체제가 확실해질 것 같은데.”

“꽁으로 얻어 가겠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히히.”

그 부분에서 수줍게 웃는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시우는 지뢰밭에 일부러 발을 들이미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마리나를 더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대신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다양한 머리색, 피부색으로 그가 외국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더욱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기묘한 활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뉴욕이 통째로 들떠 있네.”

“그야 오늘 하루에 한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가 되었으니까.”

“……최소 레벨 210에 달하는 플레이어 80, 그들을 호위하기 위한 플레이어들, 각국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까지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그랬다. 지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지구가 뉴 에이지로 진입한 이래, 전 세계 사람들은 한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몬스터의 출몰을 미리 감지하고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지만 그것도 한세월. 그런 상황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두 뉴욕에 집합해 있으니, 시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도 국격인가.”

사소한 부분에서 국가의 힘을 느끼며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통째로 뒤집어져도 강국은 강국이었다. 과연 미국이 이 우위를 언제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서 가자, 시우.”

“그래그래.”

그는 기쁜 얼굴로 그를 재촉하는 마리나의 뒤를 따라 바이크를 몰았다. 수아린과 용세하는 미니 모드로 돌아와 그의 품에 들어왔고, 이서희와 세리아가 마치 호위를 하듯 그의 양옆에서 날았다.

오늘에 한해 뉴욕 하늘을 나는 플레이어의 모습은 그리 특별할 것이 못 되었으나 하늘을 나는 바이크를 모는 정시우만은 모두의 눈에 띄었다. 멀지 않은 지상에서 사람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올 정도였다.

“그게 어떻게 들려!?”

“아, 보통 안 들리는구나.”

정나미 떨어지게 하는 자기과시에 눈을 가늘게 뜬 마리나가 주먹을 말아 쥐며 정시우 대신 수아린에게 물었다.

“아린, 시우 좀 때려도 돼?”

“아뇨, 오빠를 때릴 수 있는 건 저뿐이에요.”

“너한테도 그런 자격 준 적 없다.”

맨해튼 미드타운, 알싸라기 땅에 위치한 B&Y 지사를 벗어나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UN본부 건물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이목이 집중될 대로 집중된 상태라는 것 정도였는데, 그는 바이크를 집어넣고 대지에 발을 디디며 사람들이 아닌 다른 지점에 이목을 집중했다.

“야, 이거…….”

“맞아. 조금 운이 없었지.”

마리나가 쓴웃음을 짓고, 세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총 네 개의 건물로 구성된 본부 건물 중 남쪽의 30%가량이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복구하고자 애를 쓴 흔적은 보이지만, 그와 함께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마나의 잔향이 감돌았다.

“이미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구나. 맨해튼 한복판에, 그것도 하필이면 UN본부에?”

“지구가 이상하게 변화하기 전에 이미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법 유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는 것은 지구에서 자연발생한 몬스터들의 소행이 아니라 개미굴 던전에서 비롯된 이세계 몬스터들의 짓이란 얘기였다. 정시우가 인상을 찌푸리자 세리아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제네바 UN본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 주요 시설들이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았었습니다. 저나 마리나나 당시엔 정말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루이오스와 접촉한 것도 그 비슷한 즈음이기는 했지만…….”

“잘도 여기서 회의를 열 생각을…… 아니, 그 반대인가.”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지적하려다가는 말을 바꾸었다. 한 번 몬스터 무리의 습격을 받은 장소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의를 여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가장 간단한 의지표명이 될 테니까.

물론 그것을 몬스터 무리가 알아줄지는 미지수였지만, 뉴욕 한복판(엄밀히 말해 UN본부는 미국 땅이 아닌 UN 땅이었지만)에 나타난 몬스터들에게 겁을 먹은 시민들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충분히 있을 터였다.

“그래도…….”

정시우는 습격을 받았던 터, 그곳에 짙게 남아 있는 기이한 마나의 향을 맡으며 새삼스레 후각 스킬의 새로운 힘을 깨닫는 한편으로 걱정이 치밀었다.

“이건 습격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여기가 진원지였던 것 같은데.”

“시우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 실제로 이 안에 숨은 몬스터가 더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회의를 해야 하는 거야. 비단 미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UN을 위해서도, 인류를 위해서도.”

“만약 몬스터들이 재차 출몰한다 해도 오늘 이 자리에 모이는 사람들이라면 막을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그래, 그건 그렇지.”

차라리 이 장소에 던전이 남아 있었더라면 정시우가 빠르게 던전을 정리해 버려 후환을 없앨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능력으로는 던전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미 깔끔하게 터져 안에 품고 있던 몬스터들을 모두 바깥에 내보낸 것이겠지. 그런 것이라면 좋을 텐데…… 괜히 아까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명백히 정시우와 세리아를 노리고 습격해 왔던 키메라 무리. 이곳의 흔적은 키메라들의 그것과는 달랐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괜히 더 걱정이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저번 설악산에서처럼 서로 다른 던전에서 비롯된, 서로 다른 신을 믿는 몬스터들이 협력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공동의 적으로 정시우를, 오늘 이 자리에 모이는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려 하는 것이라면…….

“여차하면 내가 시우를 지켜 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걱정 없는데 오늘 이 자리에 참가하는 다른 사람들이 문제지.”

“이미 뭔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가정하고 계시군요, 오빠…….”

그의 직감이 어긋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수아린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모르는 마리나만이 천진난만하게 그를 끌어당길 뿐이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세계 ‘모든’ 중요인물이 한자리에 모여 비로소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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