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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96화 (96/260)

# 96

96화.

우연에서 비롯된 정시우의 연구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흘러내리는 물을 계속해서 살피며 그 신비로움에 찬탄하던 그는 물에 마나를 불어넣어 어떻게 변화하나, 어떤 식으로 강화할 수 있는가를 관찰하기도 했으나, 이내 한계를 깨닫고 다른 대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육체였다.

“그래, 옷을 투시할 뿐이면 전투에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지.”

투시 능력의 진체는 피부조차 투시해 인간의, 생물의 내면을 확인하는 데에 있다. 물과는 달리 제법 집중도를 요하는 일이었으나 정시우는 대략 30분여 끙끙거린 끝에 자신의 뼈와 근육, 혈관을 두 눈에 담는 데에 성공했다.

‘제법 징그러운데 이거…….’

빠르게 피가 흐르는 모습이 생경했다. 뼈를 감싼 근육의 형태가 놀랍다. 그 모두에 깃들어 그것들을 강화시키는 마나의 형태가 신비롭다.

‘신체 내부에서의 마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터무니없는 메리트야.’

정시우는 일전의 일을 떠올렸다. 정상급 플레이어인 김하룡을 그렇게나 압도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정시우가 그보다 강해서이기도, 성공적인 기습으로 기를 꺾어 놓고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놈이 스킬을 구사하려는 것을 제때에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떠올린 방법이었지만 당시엔 무척 조악했다. 단지 끓어오르는 상대의 마나를 감지하고 그것이 어느 부분에서 활성화되는지 직감하여 (물리적으로) 때려 맞춘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상대의 마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 전투 난이도가 절반 이하로 급감할 것이다. 이쪽 스킬을 때려 박을 최상의 타이밍과, 저쪽의 스킬을 저지할 최상의 타이밍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지금 상태론 무리겠지. 내 육신도 투시하기가 힘든데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를? 절대 불가능해.’

투시 능력의 연습과 동시에 동체 시력 강화 연습도 병행되어야 했다. 어느 쪽이든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것들을 위해선 역시 탱탱볼의 개조 작업이 필요하다. 주방에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오감을 스킬화하는 일에는 진전이 찾아왔다. 신체 내부를 볼 수 있으며 그 안의 마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그 안의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욕실 거울에 반사되어 비치는 육신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패시브 스킬들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며 탄성을 토해 냈다.

“정말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마음 같아선 한 1년 정도 자신의 육신과 마나, 스킬들만 탐구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지나치게 냉정했다. 지금 이 순간도 수아린이 욕실 문을 두드리며 괜찮으냐고 소리쳐 묻고 있었으니까.

“그래. 나간다, 나가.”

어쨌든 시각 스킬과 미각 스킬이 각각 어떤 식으로 생성되어 그의 눈과 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기존의 육체와 어떤 식으로 교류하는지에 대해선 잘 알았다. 나머진 그것을 나머지 신체에 적용하는 것뿐!

‘적어도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는 마무리해 두고 싶네.’

정시우는 작게 다짐하며 문을 열었다. 눈앞에 수아린의 모습이 있었다. 두 시간여의 탐구 끝에 시각 스킬을 충분히 조율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제 더는 그녀를 마주하고도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미안하다, 아린아.”

“뭐가 미안한 건데요!? 갑자기 그런 말 들으면 되게 기분 이상해지거든요!”

“그냥 그런 게 있어. 미각 스킬 연구하게 밥이나 먹자.”

“되게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지금……? 그야 식사는 준비해 놓았지만요…….”

얼버무리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넘어가 주는 수아린은 무척 착한 아이라고 정시우는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아까 정시우에게 들은 말 때문에 극도로 부끄러워하고 있어 차마 그에게 강하게 나갈 수 없는 상태인 것뿐이었다.

정시우는 메밀 소바를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곧장 소파에 정좌하여 오감 스킬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후각이었다. 후각을 최대로 자극하고, 마나로 코와 일치되는 부분에 스킬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포션으로 해 볼까. 힐링 포션과 중독 포션이…… 여기 있다.”

“위험하게시리.”

“바로 그거야. 위험한 냄새와 위험하지 않은 냄새를 번갈아 맡다 보면 감각이 활성화되지 않겠어?”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을까요?”

정시우는 수아린의 걱정을 언제나와 같이 무시하고 힐링 포션의 냄새를 맡았다. 제법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딸기 주스가 이럴까. 얼려서 마셔 보고 싶게 하는 향기였다.

그다음은 중독 포션. 이쪽이 더 친숙한 이유는 어째설까. 그야 힐링 포션을 마신 적보단 독에 당한 적이 더 많기 때문이겠지. 실로 한탄할 일이다.

“매번 저렇게 아슬아슬한 짓을.”

“그래도 강화한 탱탱볼에 얻어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네요.”

용세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수련을 하기 위해 수련장에 틀어박혔고, 수아린은 정시우가 혹시나 중독에라도 당할까 걱정이 되어 그의 곁을 지켰다.

정시우의 후각 연구는 그로부터 이틀 동안 이루어졌다.

후각을 자극하기 위해 다소 위험한 수준까지 향을 흡입하거나 하며 수아린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정시우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점점 포션 병과 거리를 벌리더니, 급기야는 포션 병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본인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정신이 감염되는 중독 포션인가?”

“아니거든.”

무례한 말을 내뱉는 수아린의 이마에 알밤을 먹여 준 후, 정시우는 다시금 코를 벌름거렸다. 마나가 유동하며 코의 특정 부분을 건드리자, 세포들이 활성화되며 성능이 증폭되었다.

그러자 수십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놓인 두 포션의 향기가 구분되어 코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냄새로 대충의 거리와 포션의 농도까지도 포착할 수 있었다.

“좋았어, 됐다.”

“됐어요!?”

정시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 순간, 체내의 마나가 급속도로 코를 향해 몰려들었다. 정확히는 가능성을 구체화한 정시우가 작정하고 마나를 이끌어 코에 패시브 스킬을 생성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단지 시각과 미각이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듯, 코와 후각 스킬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는데, 몇 시간의 실험을 통해 자신이 지닌 후각을 보다 깊이 파악하고 마력을 어떻게 유통해야 코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정답을 얻은 끝에 비로소 후각 스킬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3 감소합니다.]

[플레이어 스킬, 후각(패시브)을 얻었습니다.]

“좋았어.”

“만든다고 정말 만들어지는 거군요, 그게…….”

모두 시각 스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정시우는 지금 당장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그녀와 만나게 되면 그때 말해 줘야지.

“남은 건 촉각과 청각이지? 좋았어, 이 기세로 마스터해 볼까!”

“오빠 이틀 동안 잠도 안 주무셨잖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무리 없어. 완전 괜찮아.”

오히려 오감 스킬 획득까지 앞으로 두 단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흥분되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걱정스레 자신에게 피로 회복 주문을 걸어 주는 수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기지개를 켰다.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가 열리기까지 앞으로 족히 사흘은 남았으니 잘만 하면 나머지 두 오감 스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르르르르, 소파 위에 굴러다니고 있던 폰이 진동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집중해서 스킬만 수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오빠, 전화 안 받으세요?”

요 며칠 폰이 울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중요한 전화였다. 설마 이제 와서 대출 권유 전화나 보험사기 전화는 아니겠지. 정시우는 죽은 지 사흘 정도 지난 붕어 같이 탁한 눈으로 폰에 떠오른 번호를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무시할까?”

“외국에서 걸려 온 전화 같아요.”

“하…….”

마리나는 번호를 등록해 놓았으니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UN측일까. 이쯤 되면 세계가 정시우의 오감 스킬 완성을 막기 위해 뭔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받지 않을 수도 없겠지. 그는 진한 한숨을 쉬며 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정시우…… 맞지?]

공교롭게도 전화를 건 이는 UN보다 더 귀찮을 것 같은 상대였다.

“세리아 윌슨?”

[맞아. 목소리를 기억해 주고 있었구나.]

“세리아 윌슨이라구요?”

수아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애도 정말 쓸데없이 견제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정시우가 입을 열었다.

“마리나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아 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째서 연락을?”

[그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나는 지금 한국에 왔어.]

이 망할 놈의 플레이어들은 언젠가 각 나라 항공사들을 망하게 만들 것이라고 정시우는 생각했다. 한국까지 왔다는데 개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창 좋은 흐름을 끊고 나가자니 장난 아니게 귀찮고…… 정시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한 일이지? 안 나가면 안 되지?”

[매우.]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정시우는 점차로 날카로워지는 수아린의 눈초리를 마주하며 에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래, 만나서 얘기하자고. 그러니까…….”

그로부터 30분 후, 정시우는 지나다니는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약속장소로 정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카페 안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 저 사람……!”

“정시우다.”

“진짜다.”

마침 카페 벽 기둥에 걸린 스크린에서는 정시우가 김하룡을 흠씬 두들겨 패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이가 정시우와 김하룡인 만큼 요 며칠간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구타 장면이 방송되는 실정이었다.

[올해 가장 통쾌한 순간이었습니다. 김하룡한테는 개인적인 원한도 악감정도 없지만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놈이 쳐맞으니까 그냥 유쾌하네요.]

[약혼자 뺏기고 구타까지 당한 용오름 길드 마스터, 졸라 눈물 난다. 그런데 저 자식이 평소에 좀 껄떡거리긴 했지.]

[마리나 비셋하고도 잘 해 보려고 하지 않았었냐? 거기에 요즘 뜨는 이서희한테도 길드 들어오라고 했다면서. 단박에 차였지만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이서희랑 정시우 졸라 친함. 엌ㅋㅋㅋㅋㅋㅋ]

[이제 김하룡 흑화해서 다른 나라로 귀화하기만 하면 완벽히 삼류소설이다.]

[그래도 정시우가 다 이길듯. 저 새낀 진짜다.]

대충 이런 반응들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영 취급이 좋지 않은 것이 실로 불쌍하다. 이제 신의 힘을 드러내면서 정시우와 싸우기만 하면 완벽한 악역A였다.

“굉장히 유명해졌네.”

“아, 거기 있었냐.”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같은 반응으로 정시우를 훔쳐보며 웅성거리던 카페 안의 사람들을 제치고 세리아 윌슨이 나타났다. 타는 듯이 정열적인 붉은 블론드도 그렇지만, 빛의 신 루이오스의 잔재로 인해 황금의 빛 무리를 뿌려 내는 눈동자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헐, 저 여자 정시우 만나러 온 거였어!”

“개쩐다. 하렘 마스터다.”

“왜 플레이어만 저렇게 다 예쁘냐. 왜 우리 회사 동기는 안 예쁘냐.”

“일단 너 먼저 거울 보고 와라.”

당연하지만 그녀도 정시우 못지않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마주 보며 서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시우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약속장소 여기로 정한 거 대체 누구야?”

“당신이야.”

“죄송합니다.”

본모습이 미디어에 노출될 대로 노출되어 엄청 유명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정시우의 잘못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그녀에게 사과하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이야기 길어지냐? 실은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있거든. 한국까지 만나러 와 준 건 기쁘지만 가능하면 짧게 끝내 주면 고맙…….”

“짧게 끝날 거야.”

세리아 윌슨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리나와는 달리 말이 제법 통하지 않는가! 환한 미소를 짓는 정시우를 보며 세리아 윌슨이 말했다.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부디 절 거두어 주세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폭탄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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