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80화 (80/260)

# 80

80화.

정시우는 즐거움에 웃었다. 주목을 받는 것을 특별히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적으로부터 받는 주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앞으로 누굴 더 얼마나 쳐부숴야 할지 아주 잘 알 수 있게 해 주니까.

“반응 죽이네.”

“너 언제나 이렇게 무모해?”

“아니.”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이를 가는 언데드 무리, 저편에서 날아들다 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플레이어 집단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난 무모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것만 하지.”

“제가 여태껏 오빠한테 들었던 농담 중 제일 재밌었어요.”

수아린이 코웃음을 쳤다. 정시우가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해 그녀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던 기억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정시우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다 직감적으로 가능 여부를 파악한 거라니까.”

“시우, 온다.”

[쿠아아아아아아아!]

협곡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언데드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정시우 일행은 원래부터 놈들에게 모습을 들켰으니 괜찮지만 몰래 접근하던 다른 플레이어 일행에겐 무척 짜증나는 일인 모양이었다.

“너 이 자식……!”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여자가 정시우에게 인상을 팍 썼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채신머리없게 나이 스물셋 먹고 트윈테일을 하고 돌아다니는 마리나와는 달리 붉은 블론드를 뒷머리 위에서 묶어 깔끔하게 내린 그녀는…… 어라? 그냥 포니테일인가? 혹시 이 녀석들 컨셉 비슷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정시우가 말했다.

“여긴 우리 구역이니까 얼렁 꺼져라.”

“구역? 웃기는 소리를.”

여자가 총으로 보이는 아티팩트를 들어 정시우를 겨누었다. 과거 마리나에게 듣기론 그녀만이 유일한 마탄의 사수라고 했었지만, 아무래도 저 여자 역시 총을 자신의 주력으로 삼는 모양이었다.

“몬스터 퇴치에 언제부터 선점이 있었냐. 그런 법률이라도 있어!?”

“어…… 그런 거 없냐?”

만약을 위해 뒤를 돌아보며 마리나에게 확인하는 정시우. 그녀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 것으로 보아 역시 없는 모양이었다. 이야기가 다른데! B&Y가 나서서 확보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내가 얘기할게. 아마 그쪽이 더 저 여자를 열 뻗치게 할 테니까.”

바이저 너머로 보이는 정시우의 눈이 가늘어지자 마리나가 다급히 말하더니 정시우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세리아 윌슨, 오랜만이네.”

“역시 너였구나, 마리나 비셋!”

정시우 뒤에서 마리나가 고개를 내밀자 정말로 상대는 단숨에 화가 뻗친 모양이었다. 역시나 제법 악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리나는 귀찮다는 듯이 한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엠퍼러의 리더, 세리아 윌슨에게 말했다.

“너희, 유타 주에도 큰일 났던데 왜 거기로 안 갔어?”

“어디로 갈지는 내가 정해. 솔트 레이크보다 이쪽이 더 심각해 보였다, 단지 그뿐이지. 마리나 비셋, B&Y를 등에 업고 설치는 건 좋지만 우리 행동의 자유에까지 간섭할 참이야?”

정시우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중얼거렸다.

“어라, 맞는 말이잖아……?”

“너 누구 편이야!”

“아니 맞는 말이잖아!”

엠퍼러 측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시우를 팔꿈치로 퍽퍽 두들기는 마리나. 그것을 본 세리아 윌슨(25세 독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아, 이 사람은 내 파트너야.”

마리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밝혔다. 어째선지 그것만으로 세리아 윌슨은 적잖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파, 파트너……? 평생 혼자 던전에만 박혀 있을 것 같았던 네가 의외네.”

“뭐든 전력으로 하면서도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게 내 모토라서.”

정시우는 그쯤에서부터 이 사람들에게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저쪽 인원들도 리더가 푼수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언데드들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몰래 날개를 퍼덕이며 하강하는 놈들까지 있었으니, 이대론 선수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아무래도 좋아. 물러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시우?”

세리아 윌슨과 눈싸움을 하던 마리나가 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는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정시우가 인벤토리에서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을 꺼내어 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그거……!”

세리아 윌슨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걸 줬단 말이야!?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야!?”

“훗.”

라이플은 사랑의 증표 따위가 아니라 거래의 산물이었지만 마리나는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쪽이 더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시우에 이르러선 이미 둘의 말을 듣지도 않고 협곡 한 지점을 조준하며 라이플의 ‘옵션’을 발동하고 있었다. 거리는 상당했으나 시각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정시우에겐 모래 한 알 한 알의 표면까지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 가능했다.

“어이, 리더 양반.”

그렇게 얼마나 되는 시간이 흘렀을까, 탄환을 쏘아 낼 준비가 된 시점에서 정시우가 입을 열었다.

“너희 부하들 물러나게 하지 않으면 위험할 거야.”

“마탄 한 발로 무슨…….”

“차지 샷.”

총구에서 강렬한 뇌전의 힘을 머금은 에너지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마리나와 세리아 윌슨이 대치하는 사이 협곡으로 쇄도하던 플레이어들이 소름 끼치는 마나를 느끼고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진 다음 순간, 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간 탄환이 협곡 꼭대기에 틀어박혀 폭발했다.

“어, 어…….”

“여기 유네스코 유산인데!”

알 바 아니었다. 그쪽에 머무르던 몬스터들은 즉사했고, 탄환의 충격이 제대로 파고든 것인지 착탄 지점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실금이 쫙 퍼지며…….

“어어어어……!”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한 언데드 무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피하려는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대붕괴가 일어났다!

가뜩이나 격변이 있었던 직후. 새로 솟아난 언덕이며 그것과 불안정하게 겹쳐 있던 계곡과 같은 것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며 몬스터들을 덮쳤다! 결과물을 확인한 정시우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이게 바로 효과적으로 부수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탄생한 필살의 일발……!”

“아직 연구 안 했잖아요!”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발로 어떻게……?”

“스킬이야, 스킬.”

라이플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마리나조차 기겁했다. 당연히 엠퍼러 길드의 경악은 그보다도 더했다.

세계 최강의 마탄의 사수 마리나가 만들어 낸 일이라 해도 믿지 못할 일인데 그것은 분명 정시우가 쏘아 낸 탄환으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저쪽이랑 더 할 얘기 없지? 그럼 슬슬 사냥 시작하자!”

“그래, 가자! ……그전에 한 발 더 못 날려?”

“마나 딸려.”

정시우는 쿨하게 라이플을 집어넣고는 그 대신 해머를 꺼내어 쥐었다. 바이크를 조종해 지금도 절찬리에 붕괴 중인 협곡을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하며 거랑의 앞발을 거대화시키는 정시우!

아차 하는 순간 선수를 빼앗기고 멍해져 있던 세리아 윌슨은 그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는 바람에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날개를 활짝 펴고 바이크의 뒤를 따라 하강했다.

“거, 거기 서……! 이익!”

“따라잡을 수 있으면 따라잡아 보시지!”

[갸아아아오오오오!]

“어딜!”

곳곳에서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던 언데드 몇 마리인가가 하강하는 바이크를 확인하곤 분노의 괴성과 함께 뼈를 투척하거나, 갑각을 그대로 쏘아 내거나 하여 공격했으나 마리나의 탄환에 바로 제지되고 말았다.

“좋았어, 이대로 간다!”

정시우의 전신을 흐르던 마력이 크루얼 차지 스킬의 마나 흐름을 따라 거세게 회전하며 정시우의 전신을 극도로 강화시켰다. 놀랍게도 그는 바이크의 추진력에 의존하여 돌진 계열 스킬을 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거예요, 오빠!?”

“어쩌다 보니 됐어!”

“그럼 그렇지!”

돌진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마나의 회전 속도도 빨라지고, 신체에 주어지는 부하도 커지지만 그 대가로 전신의 강화 또한 한계를 넘어 이루어진다! 정시우는 이를 빠득 갈며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팔뚝으로 거세게 망치 손잡이를 붙잡았다.

“흐아아아아아아압!”

그렇게 바이크가 협곡의 첨단에 도달하기 직전, 정시우는 망치를 거세게 내리쳐 아직까지 버티고 있던 암석층을 가격했다. 그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두 차례에 걸친 충격파가 한데에 맞물려 끝내 붕괴 영역이 확장되기까지 했다!

[끄아아아아!]

[세트나아아아아아아아크시여!]

언데드들의 절규가 무너진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건 말건 정시우는 망치를 한 번 더 내려쳐 협곡을 통째로 무너트렸다. 인간의 힘이 자연을 움직여 만들어 낸 대재앙에 다른 이들은 아연해지고 말았다.

“거 봐, 내가 연구했다고 했잖아.”

“몬스터들이 개미처럼 쓸려 가고 있어…….”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때 기분 좋은 메시지가 찾아왔다. 비록 레벨은 낮아도 한꺼번에 워낙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바람에, 놈들로부터 수거한 마나와 기록이 기어이 정시우를 101레벨로 만든 것이다. 그는 망치를 원래 크기로 되돌려 한 손에 쥐며 씩 웃었다.

“좋아, 송사리들은 이쯤에서 다 정리됐으려나.”

“반대로 말하면 저렇게나 많은 몬스터가 그리 만만하지 않은 놈이라는 거지.”

“바이크 넣는다.”

“오케이.”

지금도 한창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으로 용감하게 뛰어드는 정시우와 마리나. 세리아 윌슨 또한 부하들을 수습하여 그 뒤를 따랐다.

“우리도 질 수 없어!”

“놈은 방금 공격으로 마나를 거진 소모했을 거야. 실질적으로 엘리트 몬스터들을 잡아내지도 못했으니 우리 좋은 일만 한 셈…….”

“하아!”

[카각!]

바이크를 집어넣고 대지에 안착한 정시우가 거랑의 앞발을 휘둘러 눈앞의 몬스터들을 싸그리 부숴 버렸다. 굳이 거대화를 하지 않아도 거대한 슬레지 해머가 반경 수 미터를 쓸어버리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얻어맞은 언데드들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먼지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소멸한 것은 장관을 넘어 경악을 안겨 주었다.

“……지금 누구 좋은 일이라고?”

“방금, 마나도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이지 거대늑대가 한 바퀴 쓸고 갔다고 해도 믿을 법한 파괴력 앞에 일동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대로 놔두면 정말로 저 많은 언데드를 그 혼자 해치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키햐아…… 세트나크 님의 영광을 위하여!]

“시우!”

“흡!”

큰 동작을 펼치는 바람에 정시우의 움직임에 공백이 생긴 바로 그 순간. 스켈레톤 나이트 한 마리가 전우의 사체를 모조리 뛰어넘어 그의 목을 노리고 뼈칼을 찔러 왔으나, 다음 순간 정시우의 반대쪽 손에 나타난 거인의 비명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고 말았다. 그에게 경고를 해 준 마리나까지 살짝 허무해지는 광경이었다.

“슬레지 해머를 한 손에 하나씩……?”

“걱정 마. 한 손으로 안 되겠다 싶을 땐 하나만 드니까.”

“그래도 지금은 한 손에 하나씩 들어도 괜찮다 이거지…….”

하지만 키가 크고 체격도 좋은 정시우가 한 손에 하나씩 해머를 쥐고 있으니 그 모습이 썩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거대한 슬레지 해머를 휙휙 가볍게 휘둘러 실시간으로 사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었으니…….

이대로 그에게 활약을 모두 빼앗기는 것도 싫었던 마리나도 지체하지 않고 쌍권총을 들어 몬스터들을 겨누었다.

[인간들…… 우리를 거부하는 인간들!]

[세트나크 님의 은총을 그대들에게. 곧 우리의 동료가 되리라!]

“나도 질 수 없지!”

단순한 마도구를 넘어 현대의 총기 이상의 성능을 갖추게 된 그녀의 쌍권총이 번갈아 가며 화려한 울음을 토해 냈다. 바위 더미를 헤치고 벌떡 일어서며 일행에게 다가오던 언데드들이 차례로 머리가 터져 죽어 갔다.

“적어도 네가 기습당하는 일은 없게 해 주겠어!”

“그것 참 든든해서 좋네.”

“방어력이 부족해서 앞에 못 나선다는 얘기를 돌려서 하는 것뿐이에요, 속지 말아요 오빠!”

“글쎄 넌 왜 그렇게 쟤를 적대하냐니까.”

“바보 오빠!”

“이번엔 나야!?”

그러나 마리나는 과연 스스로 떵떵거릴 만큼은 능력이 있었다. 한 방 한 방으로 레벨 100을 우습게 넘기는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끝낼 뿐 아니라, 한 마리를 죽이고 다음 적을 조준해 방아쇠를 쏘기까지 불과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신체능력과 마나 컨트롤, 동체시력이 조화되었기에 가능한 일!

위력뿐만이 아니라 탄을 쏘아 내는 속도도 이전보다 빨라진 것이, 아무래도 속사와 관련된 스킬 또한 새로이 개발한 것 같았다.

“마리나 비셋…… 그 짧은 기간 동안 더 강해졌잖아!?”

“내 파트너 덕분이야!”

“으드드득…… 그게 사랑의 힘이라고!?”

“야, 헛소리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아. 쟤네도 곧 참전할 기세잖아.”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마리나를 타박하며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무척 분하다는 듯 자신과 마리나를 노려보면서도 전투 준비를 하는 세리아 윌슨, 그리고 다섯 명의 부하들이 보였다.

그들이 끌어 올리는 마나의 기세는 과연 서부의 패자라는 말에 어울리게 수준이 높았다. 부하들은 레벨 220, 세리아 윌슨은 족히 230을 넘기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뿜어내는 마나의 질…… 종류.

“다른 신의 영역이라 괜찮은 건가.”

“응? 시우 뭐라고?”

“아니, 아니야.”

가능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정시우의 바람이었다. 그것이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들이 괜히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테고…… 준비를 해 둘 필요는 있겠지.’

가능하다면 막는다. 막지 못한다면 자신의 손으로 끝장낸다.

저들이 육신에 품고 있는 ‘신의 힘’이, 그들을 몬스터로 변화시키기 전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