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25화.
쥐의 낙원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던전이었다. 쥐의 낙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쥐가 환장을 할 법한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 한 번 지독하네. 페스트 돌던 때의 유럽이 딱 이짝 아닐까?”
“정말 병에 걸릴 것만 같아요…….”
더욱이 지금의 수아린은 쥐와 1대1 맞짱을 뜰 수도 있을 만큼 작아진 상태.
자동으로 클로즈업되는 쥐의 얼굴을 마주하기 싫었던 수아린은 정시우의 품에 기어 들어가 시즈 모드를 굳혔다. 그의 품에 있으면 편안했다. 냄새도 조금 좋았다.
“저기 보이세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들……. 오빠가 입구를 지나 방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수백 쌍. 몬스터로 강화되며 인간에 대한 공포감을 잊고, 오히려 먹잇감을 판단하게 된 괴물 쥐들이 그곳에 있었다. 레벨의 고저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낄 법한 광경이다.
그러나 정시우는 놈들을 보며 그저 흠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역시 약해 보이네. 슬라임보다 더 잘 터질 것처럼 생겼어.”
“오빠 아까부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는.”
정시우는 슬레지 해머를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격력이 붙어 있는 장갑까지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무장이라곤 방어력이 붙은 갑옷 하나뿐인, 던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평화주의였다.
“좋아, 그럼 달려 볼까. 보스 룸까지 마나 아끼면서 달리려면 좀 서둘러야 할 테니…… 꽉 붙잡아라.”
“그게 무슨 소…… 으꺄아아아아아!”
정시우는 전투질주를 발동하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한 점이 하나 있다면, 몸집 크고 둔한 슬라임과는 달리 괴물 쥐들은 정시우가 굳이 워크라이를 시전하지 않아도 그를 보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끽!]
[찍!]
그리고 전투질주를 펼치는 정시우와 스치기만 해도 터져 죽었다.
“비드! 오빠, 비드!”
“그건 보스 룸까지 클리어한 다음에 수거하자!”
“보스 룸이요……?”
정시우의 추측은 이러했다.
전투질주로만 슬라임들을 죽이고, 직접적인 공격은 빅 슬라임을 향한 공격 단 한 번이었던 이전의 던전 클리어. 그러자 마치 아깝다는 듯이 특수 업적의 안내를 해 주었던 인터페이스.
그렇다면 던전의 시작부터 클리어에 이르기까지 무기를 들지 않는다면? 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쭉 달리기만 해서 던전을 클리어 한다면 어떻게 될까!
“되게 또라이 같겠죠……?”
수아린이 정곡을 찔렀지만 정시우는 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놈들을 직접 때리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리는 데 성공하면 비폭력주의자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무래도 전투질주는 전투보조 스킬이라 전투 스킬로는 카운트가 되지 않는 것 같거든!”
“그게 무슨 비폭력주의자예요, Be폭력주의자지!”
공격도 하지 않고 전부 죽여 버린다니, 존재만으로 폭력이 되는 셈이니 실로 합당한 지적이었다. 더불어 실로 정시우에게 어울리는 칭호이기도 했다.
[끼이이이익!]
[찌직!]
[찍!]
둘이 논쟁하는 동안에도 쥐들은 무지막지한 기세로 정시우에게 달려들어 터지기를 반복했다.
인간의 피와 살점에 굶주려 있던 놈들은 동료가 얼마나 죽어 가건 상관없이 어떻게든 반드시 그를 갉아먹겠다는 일념으로 무장해,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강으로 뛰어드는 쥐떼처럼 그에게 덤벼들어 죽었다. 아무리 몬스터가 되었다고 해도 뇌 크기는 그리 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게에. 더러워! 이 피 좀 어떻게 해 봐!”
“난 몰라, 안 나가.”
정시우는 전신 가득 적셔지는 더러운 피에 구역질을 했고, 수아린은 시즈 모드를 유지했다.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쥐떼는 점차로 빨라지는 정시우의 질주, 그로 인해 생겨나는 풍압에 갈가리 찢겨졌다. 이건 무슨 인간이 아니라 태풍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앗, 녹색 쥐! 엘리트 몬스터…….”
가 찢겨져 죽었다. 전염병을 일으키고 다니는 변이 쥐였지만 이젠 알 바 아니다.
[전투질주 스킬이 Lv7이 되었습니다.]
“좋아, 쑥쑥 오르는구만.”
역시 만물에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저 질주하는 것만으로 스킬 레벨이 오르니 얼마나 좋은가! 더욱이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속도는 빨라지고, 반대로 소모하는 마나의 양은 줄어드니 금상첨화다. 정시우는 그냥 평상시에도 전투질주를 유지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던전을 내달렸다.
“일상의 스킬화, 아주 좋구나.”
“제발 강타를 일상생활에 적용하지만 말아 주세요, 오빠.”
던전은 슬라임 던전보다 훨씬 길었고, 쥐떼의 숫자도 슬라임보다 훨씬 많았지만 정시우의 돌진 속도는 더욱 더 빨라질 뿐이었다.
엘리트 쥐조차 속속 나타났다가 나타난 것만큼이나 금방 사라졌기 때문에 수아린은 이제 일일이 녀석들의 특징을 짚어 주는 것도 포기했다.
“시우 오빠, 저기 갈림길!”
“내가 유턴은 못할 줄 알았지?”
“꺄아아아아악!”
“내 드리프트를 봐, 어떻게 생각해?”
“토 나올 것 같아욧!”
이것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달리던 중에 방향 전환도 얼마든지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요는 힘의 방향성의 통제 아니겠는가?
스스로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안다면 그 방향을 바꾸는 정도 어려울 까닭이 없었다.
물론 그 힘은 고스란히 유지되어, 지금도 실시간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많은 숫자의 쥐떼를 깨부수는 데에 사용되었다.
‘근육, 마나…… 어라?’
그 와중에 정시우는 다른 종류의 깨달음까지 얻었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의 정시우는 마나와는 연관 없는 삶을 살며, 만으로 24년을 넘는 세월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과연 육신에 마나가 깃든 지금도 그의 행동이 이전과 같아야 할까?
액티브 스킬이니 패시브 스킬이니, 굳이 그가 다루는 육신과는 다른 개념에 놓아두어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 게임 같기는 하지만 지금 정시우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건 지금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수습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아마 수아린에게 얘기해도 그녀는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애초에 그의 생각이 이 정도로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그가 강한 힘을 타고나, 근육을 다루는 데 평생 고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히 스스로의 육신을 다루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 원리를 깊이 파악하고 통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마나와 육신의 조화에 대해 궁구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으리라.
‘힌트는 전투질주에 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 플레이어의 기록으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에게 이만큼 육신과 마나를 일치시켜 줄 수 있는 스킬은 전투질주가 유일하다. 그러니 지금은 그것에 집중하자.
마치 중학교 수학에서 근의 공식을 배우듯 과정을 알지 못하고 답만을 얻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에겐 얼마든지 역으로 풀어 나갈 자신이 있었다.
“오빠. 오빠!”
“어, 아. 응.”
마나와 육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정시우는 수아린의 부름에 각성했다. 어느덧 보스 룸이 가까워져 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쥐들은?”
“뒤쳐진 녀석들이 조금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단 말이지.”
정시우는 깔끔하게 유턴을 해 내달렸다. 어차피 이 던전의 모든 쥐는 정시우에게 덤벼들고 있었기 때문에, 고작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남은 쥐들을 모두 깔끔하게 잡아 치울 수 있었다.
“오빠, 정말 이대로 달릴 거예요?”
“속도는 최고조야.”
그리고 찝찝함도 최고조였다.
아무리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면 무조건 휴식처에서 샤워를 하리라. 정시우는 굳게 다짐하며 달렸다.
어느덧 보스 룸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대로 돌파했다. 보스 룸이 열리고, 정시우는 거대한 공동 안으로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돌진했다.
수아린의 말마따나 다른 쥐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구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마리 한 마리가 정시우의 팔뚝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괴물 쥐들이 수백 마리, 그 안에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흐에에엥, 엄마아아아.”
수아린이 죽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닥쳐 올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정시우의 옷깃을 꽉 붙들며 숨을 죽일 따름이었다.
“와라!”
짧게 기합을 주어 외치며 돌진하는 정시우. 쥐떼는 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인간을 보며 찍찍, 환호의 울음소리를 내곤 마주 돌진했다.
그 피가 인간의 피가 아닌 줄도 모르고, 그저 오랜만에 포식을 할 생각에 들떠 날뛰며…….
[끽!]
[찌직!]
한 마리 한 마리 쥐포가 되어 한 많았던 서(鼠)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으브브브브븝!”
입을 열면 온갖 더러운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 이미 수아린에게 상태이상 전염병의 존재를 들어 알고 있는 정시우는 처음 한 번 워크라이를 질렀을 때를 빼면 완벽하게 입을 다물고 전투질주만을 이어 갔다.
공동에 더러운 피의 비가 내렸다. 그것이 멎기까지 단 30초가 걸렸다.
[전투질주 스킬이 Lv8이 되었습니다.]
“후우.”
괴물 쥐가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하고, 정시우는 비로소 제자리에 멈추어 서며 인벤토리에서 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머리 위에 부었다.
“푸억, 크웨엑.”
“으으, 정말 이런 던전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
겪은 이도 지켜본 이도 지치는 던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기진맥진해 있을 때, 그제야 던전의 정산이 시작되었다.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0:15:36]
[갈색 쥐 6,853, 녹색 쥐 7, 세 배 빠른 쥐 5, 산성 쥐 3, 대왕 쥐 375 처치]
[특수 업적 ‘비폭력주의자’ 달성]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살기(패시브)]
[살기 Lv1]
[정신력, 신체능력, 마나 능력을 자연스럽게 버무려 내뿜는 능력. 엄연히 정신적, 육체적 타격을 입히는 기술로 적을 위축, 약화시키며, 경지의 차이가 심할 경우 즉사시키기도 한다. 스킬이 성장하면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업적 이름과 보상 스킬의 갭이 정말 참을 수가 없는데.”
“역시 비(Be)폭력주의자가 맞잖아요!”
살기, 그저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적을 약화시키는 굉장히 좋은 스킬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시우가 이것을 이제 막 얻은 참이라 스스로 조절하기가 힘들다는 것. 당분간 사람 앞에 나설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추가된 셈이었다.
“하지만 패시브야. 그것뿐만이 아니지. 아주 좋아. 정말 좋은 스킬이야.”
그것도 신체능력과 마나뿐만 아니라 정신력이라는 미지의 능력까지 버무리는 최고의 패시브 스킬이다.
업적 달성의 순간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새겨진 이 스킬을 탐구한다면, 분명 자신에게 생긴 모든 힘을 완벽히 통제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그야 플레이어 생활로 어지간히 잔뼈가 굵은 저도 처음 듣는 스킬이니 좋은 스킬이기는 하겠지만…….”
어째서 정시우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인지 수아린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시우는 눈을 감고, 그의 신체 내부 깊숙한 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패시브 스킬들의 존재감을 뚜렷이 느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그가 새로운 스킬 살기가 그의 육신에 자리 잡는 것을 완벽히 파악하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른 문자열이 떠오르고 있었다.
[클리어 랭크 ? EX]
[추가 보상, 귀환석 2개 획득]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은 이번에도 오르지 않았다. 더욱이 클리어 랭크가 EX였음에도 고작 귀환석 2개를 얻었을 뿐, 스테이터스도 스킬도 물론 정수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정시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두 번의 기회가 더 생겼네.”
“충분히 레벨 업 하고 갈 거죠, 오빠? 그럴 거죠?”
“물론이지.”
정시우는 수아린을 안심시키듯 말하며 돌아섰다. 그곳에 대왕 쥐들이 죽으며 남긴 달러와 비드가 놓여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템이나 수거하자.”
“못살아 정말.”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정시우는 무려 마흔 개의 던전을 정리하는 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