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19화.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0:46:07]
[근원각성 악귀 1 처치]
[특수 업적 ‘단 한 마리!’ 달성]
[추가 보상, 플레이어 스킬 획득 ? 화염 내성(패시브)]
아직까지도 불타오르고 있는 악귀의 시체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온 정시우는 그의 망막 위로 갱신되는 문자열을 읽으며 눈을 빛냈다.
혹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특수 업적을 달성했다.
다만 보상은 지극히 지금 상황에 맞추어 주어진 것이, 업적의 내용과 보상의 종류에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클리어 랭크 ? B]
[추가 보상, 귀환석 1개 획득]
[귀환석]
[던전에서 긴급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물품.]
단지 불만인 것은 몬스터를 모두 정시우가 잡은 것은 아니다 보니 정작 클리어 랭크는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아린은 보상에만 신경을 쓰는 정시우를 보며 어이가 없어 소리 질렀다.
“지금 그게 문제예요!? 오빠 팔, 팔이 시커멓게 탔잖아요!”
“속은 멀쩡해. 그리고 겉도 이제 곧 멀쩡해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고 있을 때가……!”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1 올랐습니다.]
그때 정시우가 기다리던 알림이 왔다. 직후 그의 신체 내부의 마나가 증폭되며 전신을 말끔하게 씻어 내렸다.
여태까지는 던전에서 다친 적이 없어서 레벨 업의 효능을 피로와 마나 회복 외에는 느껴 본 적이 없지만, 화상을 입은 지금은 상처가 치료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시우는 마나가 움직이는 경로를 똑똑히 기억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내 마나가 완전히 가라앉고, 굳게 닫힌 그의 망막이 열리는 타이밍에 맞추어 망막에 글씨가 맺혔다.
[정시우]
[지하 플레이어]
[Lv 26]
[근력 ? 134 민첩 ? 133 체력 ? 152 마력 ? 26]
[패시브 스킬 ? 카오스 테일 Lv1, 무지는 용감 Lv3, 독 내성 Lv6, 화염 내성 Lv1, 소울 컬렉트 Lv1]
[액티브 스킬 ? 부여 Lv13, 강타 Lv10, 전투질주 Lv5, 마탄 Lv5, 워 크라이 Lv2]
“후, 봐봐. 이제 됐지?”
“되긴 뭐가 돼요!”
수아린은 화를 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불꽃에 갇히는 모습을 보며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달랬다.
“너는 32단계 최전선에서 싸우던 플레이어잖아. 이 정도 광경은 자주 봤을 것 아냐?”
“네에, 그보다 더한 광경도 얼마든지 봤죠. 하지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을 도발해 일부러 위험한 사태를 초래하는 미치광이는 별로 못 봤어요! 쉽게 이기기나 했으면 몰라, 화상까지 입었잖아요!”
“놈의 전력 정도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어.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것도, 화상은 던전을 클리어하면 나을 것까지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약한 고블린들을 패기만 해선 내가 성장할 수 없어.”
“…….”
정시우는 팔뚝에 흉물스럽게 달라붙어 있는 피부 껍질을 툭툭 털어내며 대꾸했다.
그런 그를 보며 수아린은 소름이 끼쳤다. 그의 활기에 찬 두 눈이 진정으로 그가 조금 전의 전투를 즐겼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나 강한 모습만 보여 주었기에 그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힘으로 적을 압도하기를 즐기는 것만이 아니었다. 초인력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초인력을 타고났기에 더더욱 그는 자신을 담금질해 줄 위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더한 강함으로 이어진다면 정시우는 이보다 더 위험한 일에라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좋게 말한다면 대담했고, 나쁘게 말한다면 무모했다.
“그래요…… 오빠가 괜찮으면 된 거겠죠.”
그러나 수아린은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가 말한 대로의 결과가 찾아왔기에 뭐라 더는 할 말이 없었던 것.
새삼 그와 자신의 차이를 실감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가 리타이어한 것도 정시우와 같은 독한 마음가짐이 없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순간 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목숨을 걸지는 말아요. 오빠가 죽어 버리면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 명심할게. 강해지려다 죽어 버리면 그거야말로 의미가 없지.”
끝내 수아린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에게 보험을 걸었다.
정시우는 그깟 화상 좀 입은 걸로 되게 유난 떤다고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속내를 들킨다면 또 잔소리를 들을 테니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
“그러면 루팅하자.”
“네에.”
수아린은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도 부끄러운지 소극적으로 대꾸하며 정시우에게 다시 합류했다. 정시우는 죽어 뻗은 악귀의 시체를 강타하여 한순간에 루팅을 완료했다.
100달러짜리 지폐 200장과 붉게 물든 몬스터 비드 하나.
“돈이 이렇게 쉽게 벌리는 건 정말로 납득이 가질 않아…….”
“잠깐만요, 오빠.”
“응?”
돈을 인벤토리에 넣고, 비드를 챙겨 제단으로 향하려던 그때 수아린이 그를 붙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악귀의 몬스터 비드에 닿아 있었다.
“이거, 유니크 비드예요.”
“그게 뭔데?”
“특수한 능력과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비드. 엘리트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가 정말로 드물게 드랍하는 건데…… 어서 제단에 이 비드를 바쳐 봐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정시우가 제단에 그 비드를 놓자, 비드가 눈부신 빛을 내며 소멸하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아티팩트나 기타 소모품이 아니라 둘둘 말린 종이가 나타났다.
[화속성 인챈트 스크롤]
[아티팩트에 D+등급 화속성을 부여한다.]
과연, 랜덤이 아니라 이렇게 지정된 보상이 나오는 것인가.
정시우는 역시 원혼이 고블린들을 먹어 치우도록 놔둔 것은 무척 잘한 일이었다는 또라이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수아린 역시 크게 기뻐했다.
“오빠에게야 D++등급이 익숙하겠지만 마법과 인챈트로 넘어가면 또 얘기가 달라요. D+등급의 화속성이라면 정말로 나쁘지 않아요. 일단 속성이 붙어 있으면 적에게 주는 데미지가 뻥튀기되는 셈이거든요.”
하지만 화속성의 적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 오히려 데미지를 덜 입히게 되거나 아예 데미지를 주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섣불리 무기에 인챈트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설명을 잇기도 전에.
정시우가 인챈트 스크롤을 덥석 집어 해머 끄트머리에 철썩, 붙여 버리고 말았다.
[흑랑의 앞발]
[랭크 ? D+++]
[공격력 ? 500 ? 1,100]
[숙련도 ? 29/240]
[속성 ? 화염 D+]
[옵션 ? 1. ??? 2. 타격 시 일정 확률로 중독]
[자이언트 블랙 울프의 앞발에 담긴 거력을 그대로 담아낸 슬레지 해머. 단단하며 강력하지만, 그만큼 무거워 다루기 힘들다. 강력한 독의 힘이 추가되었다.]
“공격력도 조금 올랐잖아? 인챈트, 되게 좋은 거구나.”
“그래요, 오빠가 그럴 줄 알았죠.”
체념하여 어깨를 늘어트리는 수아린을 보며 정시우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불꽃이 안 통하는 놈한테는 주먹질을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불꽃이 안 통하는 놈이면 또 대부분 아까 그놈처럼 불꽃을 두르고 있을 텐데요!”
“또 내가 그럴 줄 알고 이번에 화염 내성을 익혔잖냐.”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나 않다.
수아린은 자신을 걱정하게 만드는 정시우에게 언젠가 기필코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전에 축복마법과 치유마법을 되찾지 않으면…… 하다못해 신성방어막이라도 있었다면, 아까 오빠가 그렇게 불꽃에 휩싸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수아린의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시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열기를 품은 해머를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게이트를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오빠.”
지상으로 나와 티가 나지 않게 공사장을 빠져나오던 도중 문득 수아린이 말했다.
“그 바이크 타고 가면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 어떻게 하죠?”
“휴식처 열쇠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만약 재수 없게 열쇠의 은신의 힘을 뚫어 보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가뜩이나 이 근처에 플레이어들도 몰려올 텐데…….”
“음…….”
바이크뿐만이 아니다. 비록 헬멧으로 얼굴을 감추었다고는 하나 정시우만큼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결국 정시우는 그 자리에서 곧장 휴식처로의 귀환을 택해야 했다.
상황은 정시우의 우려대로 흘러갔다.
한국의 서울 산하동에서 일어난 고블린의 난동에 온 세계가 발칵 뒤집어진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도 몬스터들이 날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도 크게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아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동원해 어렵지 않게 몬스터를 진압한 나라도 있었는가 하면, 여력이 되지 않아, 혹은 긴급대처가 미흡해, 소총탄을 가볍게 튕겨 내는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하늘성에서 플레이어들이 돌아올 때까지 몬스터들을 막아 내지 못한 나라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무려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가 죽거나 크게 다쳤다.
맹수보다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이성을 지닌 괴물들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도시 각처에서 나타나 날뛰니, 차라리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나아 보일 만큼의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에 하늘성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이 조성되었고, 몬스터들이 전부 하늘성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플레이어들은 그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했지만, 그들도 어째서 몬스터가 지상에 출몰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늘성과 던전은 여전히 일반인의 손에는 닿지 않는 곳이었고, 핵을 쏜다 해도 하늘성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인간들은 그저 하늘성을 받아들였듯 지상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현실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몬스터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도 그것을 모두 대처하는 것엔 무리가 따랐고, 무엇보다 강력한 화기를 사용하기에 도심은 너무 피해가 컸다.
결정적으로 일정 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은, 마치 하늘성이 그러하듯 현대 문명이 이룩한 힘을 완전히 무시하기까지 했다. 결국 사람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결코 국가에 종속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국가와 거래를 했다. 그 이후로 플레이어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각종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각 국가는 가뜩이나 법으로 통제하기 힘들었던 플레이어들을 졸지에 상전 모시듯 대접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대가로 보다 안정적으로 몬스터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몬스터가 나타나는 난리통을 겪은 한국은, 그와 또 다른 이유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한 번 몬스터를 막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그 장소에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 곤경을 겪은 반면, 한국의 산하동만은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해야 몬스터의 재발생을 막을 수 있는가. 전 세계의 관심은 한국에 쏠렸고, 당연하게도 한 인물이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제일 처음으로 재앙이 일어난 곳임에도 그 피해를 국소적인 규모로 멈추게 한, 번개처럼 나타나 엘리트 몬스터를 제거하고 사라진 한 명의 남자.
여태까지 그 정체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플레이어.
다름 아닌 정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