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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8화 (18/260)

# 18

18화.

원혼은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한이 맺힌 사람처럼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네놈들 때문에 내가 죽었어! 누구보다 찬란히 빛나야 할 내가! 어째서 내가 죽어야 했던 거지, 왜 나를 희생시킨 거냐!]

“저놈 눈 번쩍이는 거 봐라. 저러다 레이저라도 쏘겠네.”

“진짜 쏠까 무서우니까 그런 말하지 말아요.”

어지간하면 대화 시도를 해 보겠지만 아무리 봐도 놈에겐 그들과 소통을 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간의 유령과는 명백히 다른 패턴이었다.

[살아남아야 하는 건 나였는데! 너희 목숨을 바쳐 나를 살리지는 못할망정 네깟 놈들이!]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은데?”

“원래 플레이어 중에는 선민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신이 제일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윽.”

그 말을 들으며 정시우가 찔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하다고 믿는 부류였으니까.

그러나 그와 유령에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으니, 정시우는 자신이 특별한 만큼 타인도 특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반면 유령은 자기 자신만이 특별하다 주장하며 타인을 깔아뭉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던전에서 리타이어해 죽은 지금까지 저렇게 악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시우는 솔직히 실소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턱대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인간!]

[놈들을 죽이자! 속박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자!]

한편 놈 주위로 몰려드는 고블린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런 놈들도 대기실로 침입해 오지 못한다는 규칙에 얽매이고 있는 것인지 정시우를 노려보기만 할 뿐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들이 살겠다고 나를 내버린 개자식들……! 나는 플레이어가 싫다, 플레이어들을 다 죽여 버리겠어!]

[캬오오오오오오!]

[쿠그아아아아!]

어째서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들이 유령이라는 모습으로 개미굴 던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정시우는 놈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만약 저들이 하늘성에서 던전 탐색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가 나오지 못하도록 관리한다면 개미굴 던전이 생겨날 일도 없을 테고, 그 던전 바깥으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일도 없지 않을까.

‘아니…… 불가능하겠지.’

단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만으로 평범하게 살아선 꿈도 꾸지 못할 돈을 얻을 수 있다. 그것도 탈이 나지 않는, 미국 정부에서조차 막을 도리가 없는 화폐다. 이러이러하니 던전을 돌지 마시오, 라고 말한다 해서 인간들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

더욱이 결정적으로, 리타이어한 플레이어가 오늘 지상에 나타난 몬스터들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정시우뿐인 것이다. 사람들을 설득시킬 방도로 뾰족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오빠, 지금 죽여야 할 것 같아요. 이러다 어쩌면 보스룸까지 열릴지도 몰라요.”

“아니, 놔두자.”

“오빠!?”

정시우는 차분히 해머를 꺼내 들어 전투를 준비하며 수아린에게 설명했다.

“이런 일이 앞으로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그렇지?”

“그, 그렇죠.”

“그러니까 이놈들이 최종진화를 하든 포타라 퓨전을 하든 내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던전에서 일이 일어난 지금 기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관찰해 두자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더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어?”

고블린들이 유령을 주축으로 모여 무슨 짓을 하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의 논지에는 확실히 수아린도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수아린은 쉽게 납득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실은 지금 이대론 너무 쉬워서 시시하니까 쟤네가 뭘 하는지 두고 보고 싶은 거죠?”

“관심법도 스킬로 익힐 수 있냐!?”

“오빠 성격이 지나치게 읽기 쉬운 것뿐이에욧!”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지만 정시우는 그저 자신의 힘을 보다 강하게 내보일 수 있는 적과 싸우고 싶을 뿐이었다!

단지 욕망이 앞선 후 곧장 행동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할 핑계를 찾고 나서야 움직이니 행동이 이치에 맞아 보이는 것!

[크아아아아아아!]

그러던 그때 마침 정시우가 그렇게도 바라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원혼이 정시우를 죽어라 노려보다가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장 눈이 붉게 물든 고블린 졸병 한 마리를 집어 삼켜 버린 것이다!

[원혼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놈이 몬스터의 힘을 체내에 받아들여 각성하기 전에 막지 않으면 보다 강한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나이스!”

“으으, 이 변태 같으니…….”

정시우는 그의 망막 위로 스쳐 지나가는 문자열을 읽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불감청이언정고소원이라, 그야말로 그가 원하던 그대로 일이 전개되고 있었다! 수아린은 그것을 보며 그저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플레이어, 죽여 버리겠어! 플레이어어어!]

[크갸아아아아아!]

[캬하아아아아!]

그러나 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혹여나 정시우가 달려들까 다른 고블린들을 방패막이 삼아 내세우며 본격적인 포식을 시작하는 원혼! 정시우는 고블린들이 저항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놈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도 여태까지 만난 유령들은 몬스터와 뚜렷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놈은 흡사 고블린들을 부리는 것 같잖아.’

어쩌면 첫 번째 던전에서 만났던 그 원혼도, 상태가 조금만 더 심해졌다면 오히려 지네들을 부려 그를 공격해 오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개미굴에 속한 던전을 빨리 클리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정시우였다.

[원혼이 고블린의 힘을 얻은 악령으로 1차 각성을 일으킵니다! 2차 각성을 일으키게 되면 던전의 경계를 넘어 대기실로 침입할 수도 있게 됩니다!]

고작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대체 얼마나 되는 고블린을 집어삼킨 것일까? 원혼의 몸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팡,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그 자리에 새로이 나타난 것은 여전히 반투명하지만 고블린을 닮아 희미한 초록빛을 내는, 인간과 고블린이 반쯤 섞인 듯한 유령이었다.

[크하아아아아아아아! 부족해, 이걸론 부족해애애애!]

“그러게, 진짜 부족하다.”

[그아아아아가가가각!]

놈에게서 느껴오는 마력과 기세로 판단했을 때, 놈은 이제 겨우 아까 바깥에서 정시우가 한 방에 쳐 죽인 고블린 백부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는 기껏 요란하게 각성해 놓고 그 정도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중얼거렸으나 그것을 도발로 받아들인 유령은 점점 더 빠르게 고블린들을 포식했다. 수아린의 두통만 더 심해졌다.

그렇게 또 한 5분 정도가 흘렀다. 고블린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와 쉴 새 없이 악령에게 먹혔다.

정시우가 보기에 이 던전은 정말 오지게 넓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 마리도 넘는 고블린이 숨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유령은 그 많은 고블린을 전부 다 집어삼켰다!

[원혼이 사악한 악귀로 2차 각성을 일으킵니다!]

[크하아……!]

그 끝에 놈은 기어이 2차 각성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몸집과 마력을 크게 불리곤 정시우를 거세게 노려보는 놈의 기세는 가히 엘리트 몬스터 그 이상!

더욱이 이제 놈에겐 대기실의 경계를 넘어 정시우를 공격해 오는 것이 가능했다. 던전의 법칙을 초월한 것이다!

[많이 기다렸다, 플레이어……! 이제 죽여 주마!]

놈이 양손을 들자 허공에 떠오르는 불덩어리! 놀랍게도 놈은 고블린들을 먹어 치운 끝에 고블린들의 기원인 요정의 힘을 얻어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에라이.”

[카학!?]

“아직도 부족하잖아, 장난하냐! 그렇게 고블린을 처먹고 겨우 이거야, 엉!?”

그리고 정시우는 그 불덩어리를 해머로 받아쳐 놈의 몸뚱이에 명중시키며 윽박질렀다.

얼결에 한 짓이기는 하지만, 마나를 무기에 부여하면 마법을 받아 낼 수 있게 된다는 유용한 상식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

악귀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해 잠시 두 눈만 꿈벅이다가는, 이내 마나를 다루어 자신의 몸에 붙은 불을 끄곤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놈의 두 눈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는 눈물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더,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

“아, 아아아.”

분명 적으로 나타난 존재이거늘 수아린은 악귀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리타이어한 것도 서러운데 악귀가 되어서까지 플레이어에게 밀린 놈의 비참한 심정을 그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놈을 봐주는 것은 별개다.

“오빠, 그래도 지금 죽여야 해요. 만약 놈이 3차 각성이라도 해 버리면…….”

“비드, 좋은 거 나오겠지?”

“오빠 정말 이럴 거예요!”

악귀는 빠르게 던전 안으로 돌진했다. 어차피 던전에 나타나는 어지간한 고블린들은 다 먹어 치운 후. 놈이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엘리트 몬스터였다.

“쟤가 날 대신해 던전을 돌아 주는구나. 이 전략도 제법 괜찮을지도 몰라.”

“괜찮기는 개뿔…….”

정시우는 악귀가 지나간 길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따라 걸으며 서서히 몸을 달구었다. 놈을 비웃듯 말하기는 했지만 2차 각성까지 마친 놈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확실히 지네병정소굴의 엘리트 지네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그놈이 3차 각성까지 이룬다면 어떨까.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정시우를 상대할 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거대지네보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펼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 무엇인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쿠가아아아아아아아!]

[인간과 적대하기에 내 부하를 몇 잡아먹어도 모른 척하려 했건만…… 감히 내 힘까지 탐내다니! 고블린 전사 천부장인 내가 네놈을 처단하겠다!]

“어, 보스랑 붙나 본데.”

“저 유령이 기어이 보스룸까지 열어 버렸단 말이에요!?”

악귀와 고블린 던전의 보스 천부장이 벌이는 처절한 전투의 여파가 진동을 타고 전해져 왔다.

아무리 난이도가 낮은 던전이라고 해도 과연 보스는 보스, 엘리트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었다. 하지만…… 정시우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악귀가 이기겠다. 3차 각성을 할 수 있으려나.”

“이러지 말고 서둘러요, 오빠!”

정시우는 그제야 수아린의 말을 따라 순순히 달리기 시작했다. 던전에 몬스터 한 마리도 남지 않았으니 이젠 유종의 미를 거두고 나갈 때였다.

[크와아아아아아아! 내가! 네놈들에게!]

[크학, 패배자 유령 따위에게 내가……!]

격렬했던 진동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정시우는 더 빨리 달리며 저 너머 보스룸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파했다. 악귀가 고블린 천부장을 먹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크화아아아아아악! 이젠 이길 수 있어! 플레이어 놈을 죽일 수 있어!]

“각성했네.”

“전 몰라요. 오빠가 죽어도 안 울어 줄 거예요.”

“그래도 지네 보스보단 약해.”

고블린 천부장을 먹어 치워 기어이 3차 각성을 이룬 악귀가 쏜살같은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정시우는 그것을 가늠해 슬레지 해머를 들어 올렸다.

[죽어라!]

한참 거리를 둔 상황에서도 후끈 열이 달아오른다 싶더니 불덩이 수십 개가 던전 좌우 벽을 부수고 날아들었다. 정시우는 씩 웃으며 슬라이딩으로 그것들을 피해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그곳에 불꽃의 벽이 솟아나 정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꺄악!”

“이까짓!”

그는 있는 힘껏 망치로 바닥을 강타했다. 그 순간 무수한 돌 파편이 솟구치며 불꽃의 벽을 무너트려 버렸다! 정시우는 돌 파편들이 만들어 낸 실낱같은 통로로 몸을 내던졌다.

그곳에서 거의 2.5미터 키에 거구로 탈바꿈한 악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3차 각성까지 마친 놈은 영체에서 벗어나 완전한 괴물의 육신을 얻어, 그 실체가 주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젠 날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래, 훌륭하게 자라 주어 고맙다!”

정시우는 진심으로 즐거워 웃으며 망치를 휘둘렀다. 악귀가 그에 대항하듯 내지른 도끼와 허공에서 충돌한 슬레지 해머가 소름 끼치는 굉음을 냈다.

“오빠랑 힘이 비슷해……!?”

“수아린, 넌 뒤로 물러나! 다친다!”

[쿠하아아악!]

이미 놈이 내는 소리는 짐승의 그것에 가까웠다.

정시우의 망치를 오히려 밀어내고, 그 직후 그의 머리 위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도끼! 그와 동시에 놈의 전신이 불타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정시우는 열기는 무시하고 망치를 있는 힘껏 올려쳐 도끼를 쳐 냈다.

“불꽃 따위가!”

[크학!?]

그리고 놈의 텅 빈 가슴팍을 자신의 어깨로 있는 힘껏 들이박아 넘어트렸다! 어깨 부위에 마나를 집중해 강타를 발현한 것까지도 완벽했다!

“오빠!”

“괜찮아!”

놈이 다루는 불꽃의 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시우는 그의 몸에 불꽃이 옮겨붙어도 그래서 뭐? 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뒤에서 날아든 수아린의 치유마법이 상처를 곧장 치료해 준 것도 한몫했다.

생각해 보니 이게 그녀에게 처음 치유를 받는 순간이었다.

설마 불타오르는 자신의 몸에 태클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악귀는 다급히 일어서 반격하려 했으나, 그땐 이미 정시우가 놈의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네놈, 목숨이 아깝지 않은……!]

“이 정도로는 안 죽어. 레벨 업 하면 아마도.”

정시우는 주먹으로 강타를 내질러 도끼를 쥔 팔을 터트려 버리곤, 놈의 불타는 몸뚱이 위에 마운트 포지션을 취하며 슬레지 해머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방어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하반신에 불이 옮겨붙었지만 정시우의 표정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어떻, 게……!]

“고통에는 익숙하거든.”

정시우가 스스로의 특별함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난 힘에 먹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르는 악귀는 그저 멍하니 눈을 치뜰 뿐이었다.

물론 정시우는 굳이 그것을 놈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해머를 내리쳐 놈의 머리통을 깨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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