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9화.
정시우는 테스트 던전에서 지하 플레이어로 거듭나며 두 가지 패시브 스킬을 얻은 바 있다. 하나는 지하 플레이어임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스킬 ‘카오스 테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무대뽀 정신을 비웃…… 찬양하는 스킬 ‘무지는 용감’이다.
그렇다면 수아린은 서포터로 거듭나며 얻은 것이 없느냐 하면 아니었다. 그녀는 정시우와는 반대로 두 가지 액티브 스킬을 얻었다.
하나는 마나를 소모하여 일정 시간 본체로 돌아가게 해 주는 스킬 ‘강림’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래저래 눈에 띄기 쉬운 그녀의 모습을 감출 수 있게 해 주는 스킬 ‘은신’이었다.
강림은 그녀의 모든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만큼 마나 소모가 컸지만, 은신은 지금 그녀의 상태로도 족히 3시간 이상은 유지되는 고효율의 스킬이었다. 첫날엔 경황이 없어, 마나도 텅 비어 있어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젠 아니다.
“하지만 내 눈엔 다 보이는데.”
“그거야 제가 오빠의 서포터니까 그렇죠. 다른 이들은 절 죽어도 못 봐요. 강림과는 달리 은신은 이상할 정도로 고효율이거든요. 현존하는 플레이어 수준에서는 절대로 절 눈치챌 수 없답니다.”
자신만만해하며 가슴을 쭉 펴는 수아린. 본체였다면 그럴듯했을 텐데 미니 사이즈인 지금은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그래, 그래. 마나 다 떨어지면 말해. 회복할 때까지 숨겨 줄 테니까.”
정시우는 픽 웃으며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당연하지만 지금 그들은 집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렇다. 정시우가 마나를 다루는 연습을 개시하고도 어느덧 2주, 이제 더는 집에서 가만히 수련하는 것도 질린 정시우가 기어이 던전 탐색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의 성취도를 살핀 수아린도 그 정도면 충분히 개미굴 1단계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으니 이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빠, 그 바이크…….”
“음?”
던전을 찾아 돌아다니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정시우가 테스트 던전에서 번 돈을 거의 다 털어 이번에 새로 장만한 신형 바이크. 수아린은 새삼스레 그것을 보며 쌍심지를 치켜뜨고 있었다.
“바이크를 산 건 좋은데…… 어째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죠?”
“이제 알았구나.”
정시우의 입가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바이크 자체는 800cc급의, 제법 힘 좋은 녀석으로 구매한 정시우였으나, 그는 그것에 한국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레드&화이트 컬러로 도색을 했다. 조금 어설픈 것이 직접 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안장 끝에다 익숙한 철가방 박스까지 얹어 놓으니 언뜻 보면 완벽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처럼 보였다.
아니, 자세히 봐도…….
“너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위화감이 없다는 얘기겠지. 아주 좋아.”
“반대로 위화감이 넘친다구요!”
끝내 수아린이 폭발했다.
“이거 천만 원도 넘게 주고 산 바이크죠!? 그런 바이크를 누가 중국집 배달하는 데 써요!”
“중국집 배달 얕보냐? 전국의 중국집 배달부한테 사과해라.”
“으으아아아! 얕본 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착하다.”
이것도 정시우가 나름 꾀를 낸 결과였다. 중국집 오토바이라면 국내의 어딜 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고, 시선을 끌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즉, 아무런 위화감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질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조금만 제대로 보면 평범한 125cc 오토바이와는 차원이 다른 차체와 엔진을 보며 뜨악하겠지만, 정시우는 이 세상에 중국집 오토바이를 자세히 살피는 인간은 없으리라 장담했다.
“야, 타.”
“우으으, 생애 처음으로 남자와 함께 타는 오토바이가 중국집 오토바이…….”
더 이상 반박할 길을 잃은 수아린은 뭐라 말하기 힘든 표정으로 정시우의 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정시우가 조용히 스로틀을 당기려는 순간 갑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냐?”
“아이고 심장이야.”
목소리의 주인은 어머니였다. 현관 밖으로 튀어나온 어머니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 엄레이더, 하고 정시우가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자니 어머니가 예리한 눈으로 물어왔다.
“시우 너 그거 살 돈은 어디서 났니?”
“중국집 하는 친구가 줬어.”
“구라도 좀 구라처럼 쳐야지?”
어머니는 더 사정을 캐묻고 싶은 눈치였으나 정시우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자 더는 그를 붙잡거나 말리지 않았다.
“……위험한 일 하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 요즘 막 밤에 헛것을 봤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문도 돌던데, 길 조심해라.”
“응.”
요즘 아들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그녀는 아들이 마냥 힘만 센 무식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백수 노릇하는 것에도 질릴 때가 됐겠거니, 새로운 자극을 찾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사고 내지 말고. 굳이 들이박을 거면 외제차 말고 국산으로 들이박아라.”
“오우케이.”
바이크는 굉장히 위험한 탈 것이다. 사고를 내고 죽기도 딱 좋다. 오죽하면 오토바이를 타는 게 불효라는 말까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정시우에 한해서 그 말은 옳지 않다. 세상에서 그의 몸이 가장 강한 흉기인데 바이크 사고 정도로 죽는다면 그것이 기적!
바이크는 물론 상대 차량까지 아작이 나더라도 정시우의 몸에는 긁힌 상처 하나 내기 어려울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며칠 안 들어올 수도 있어.”
“오냐. 기념품 사 오는 것 잊지 말고.”
굉장히 쿨한 작별인사를 건넨 정시우는 마찬가지로 쿨한 인사를 던지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수아린은 웃지 않기 위해 무던 애를 써야 했다.
“후우.”
수아린은 바이크가 주택가를 완전히 벗어나고 나자 그의 품에서 빼꼼이 고개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살풋 웃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 좋은 것이 오히려 이상해서 더 웃음이 났다.
“이젠 던전을 어떻게 찾을지가 문젠데.”
“그 부분은 제가 조금 생각을 해 봤는데요.”
수아린이 착안한 부분은 바로 그가 처음 개미굴을 발견한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때 수아린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고, 정시우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곧장 그녀를 받아 내 그 결과 둘이 함께 개미굴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설마 정시우가 수아린을 안고 착지한 자리에 바로 테스트 던전이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수아린은 테스트 던전 자체가 그녀를 트리거로 하여 생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에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네가 그 자리에 떨어졌기 때문에 던전이 생긴 거라 이거지?”
“원래 존재하던 던전이 그곳으로 이동된 것일 수도 있죠. 어쨌든 제 생각은 그래요.”
“과연, 즉 던전을 찾기 위해선 플레이어들이 떨어져 죽은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거구나.”
사실 정시우도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결론부터 따지면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플레이어들이 떨어지는 것도 발견을 못하고 넘어가기가 십상인데 누가 플레이어들이 떨어져 죽은 자리에 마킹을 해 놓는단 말인가!
“시, 시우 오빠가 단련하는 동안 저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제 기억과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를 뒤져가며 언제 어떤 던전에서 어떤 플레이어가 추락했는지 조사했다구요!”
“그래? 그러면 그 위치를 알아낼 방법은 있는 거야?”
수아린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외쳤다.
“아직은 없어요!”
“좋아, 아무 의미 없구나.”
“이게 추락하는 위치랑 영 연관이 없는 건 아닌데, 당시의 풍향과 풍속까지 계산해야 해서 되게 골치 아파지더라구요…….”
역시 전국 방방곡곡 다 뒤지고 다니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바이크 속도를 조금 높였다.
중국집 오토바이 위장 전법은 매우 훌륭해서 산만한 덩치의 정시우가 커다란 바이크에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시선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정시우가 작은 배달 오토바이에 앉아 있었더라면 그쪽이 더 위화감이 심했을지도 몰랐다.
“후, 오랜만에 달리니 신나네.”
“오빠 폭주족 같은 건 아녔죠?”
“폭주족들을 좀 어르고 달래긴 했지.”
그는 폭주족 관련 사건사고 뉴스를 떠올리려 애쓰는 수아린을 무시하며, 바이크와 함께 시내를 끝없이, 끝없이 질주했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 세상에 빨간 불 말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빠 학교 다닐 때 아무 짓 안 해도 애들이 길 비켜 주고 그랬죠.”
“응. 지금 차들도 그러잖아.”
헬멧도 안 쓰고 앞머리 휘날리며 바이크를 운전하는 정시우의 모습은 보행자들에겐 몰라도 운전자들에겐 공포에 가까웠다.
그가 그리 험악한 인상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강자의 아우라란 존재하는 법. 프로 운전자들에겐 질주하는 정시우의 얼굴 표정만 봐도 견적이 딱 나왔다.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던전은 네가 찾아. 던전 찾을 줄 알지?”
“테스트 던전과 같다면, 아마도요. 괜히 지하 플레이어의 서포터가 아닌…… 어?”
돌연 수아린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아마 그를 놀리려는 것이겠거니 생각한 정시우였으나 다음 순간 수아린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외쳤다.
“던전! 던전 발견했어요!”
“이제 집 나온 지 고작 30분째인데?”
“저도 믿기지 않지만 어쨌든 그래요! 좌회전, 좌회전!”
“신호 없…… 쓰읍.”
곧장 바이크 속도를 줄여 도로변에 바이크를 세운 정시우는 휙휙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의 시선 및 CCTV 여부를 확인하고는, 그 모두의 시선이 완벽하게 그와 바이크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이크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슬레지 해머와 마찬가지로 2X4, 8칸만 차지하니 아주 좋았다.
“들키지 않았을까요?”
“아무도 안 봤으니까 괜찮아.”
“대체 오빠의 감각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거죠……?”
정시우는 당황스러워하는 수아린을 소매에 주워 담고는 담담하게 걸었다. 그가 말했듯 거리 사람들 그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아 새삼스레 수아린을 신비한 기분에 빠지게 만들었다.
“오.”
수아린이 발견했다는 던전은 곧 정시우의 눈에도 들어왔다. 주택가 공터 한중간에, 아마 지금 세상에선 그와 수아린 둘의 눈에밖엔 보이지 않으리라 짐작되는 [인터페이스], 역 피라미드 모양의 커서가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여기를 파라는 건가 보네.”
“그러게요, 그런데 이 던전…….”
수아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역 피라미드 형태의 커서를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그 옆으로 던전에 대해 설명해 주는 알림창이 떠올랐는데, 그 알림창 안에 적힌 내용이…….
[??? 던전 : 위험도 보통]
정시우 역시 그것을 확인했다. 그가 소매의 수아린을 내려다보자 그녀는 휙, 정시우의 시선을 피했다.
“저한테 물어보셔도 몰라요.”
“그래,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물론 지하 플레이어인 그가 평범한 1단계 던전을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아예 단계조차 생략되다니.
하긴 던전을 난이도 순서대로 입장할 필요가 없다면, 이렇게나 빨리 던전을 발견한 것도 설명이 되기는 했다.
입맛은 썼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정시우가 아니었다. 설명 문구에도 위험도 보통이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보통이라……. 문구도 딱 노란 색인 것이, 다년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에서 미루어 볼 때 ‘이 던전은 딱 네가 비벼 보기에 적당한 던전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좋아, 그럼 파 보자.”
“제발 어려운 던전은 아니기를…….”
정시우는 주위를 둘러보곤 커서 아래에 섰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커서가 확장되며 일대를 뒤덮었다.
그래도 요즘 마나를 수련한다고 수련한 정시우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일종의 결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플레이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건 좋은데?”
“지하 플레이어를 배려하는 건 좋네요. 그래도 서두르세요, 오빠. 이 결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나 어지간한 건물은 그대로 넘길 만한 타격을 주었음에도 바닥은 끄떡없었다. 이번엔 꼬리뼈 근처에 마나를 주입해 불러낸 꼬리로 바닥을 때려 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 바닥이 파이기 시작했다.
“역시 그게 열쇠 역할을 하나 봐요.”
“귀찮게 하기는…….”
그간 꼬리를 다루는 연습을 했던 것이 헛되지 않아, 정시우는 몇 분도 되지 않아 꼬리로 그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파야 하는…… 으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전 테스트 던전에 들어갔던 그때처럼 정시우와 수아린의 신형이 지하로 떨어져 내려 사라졌다. 던전의 입장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남녀가 사라진 자리, 공터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서서히 구멍을 메꿨다. 마침 그 위를 지나가던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그대로 구멍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지만, 그것을 발견한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