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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8화 (8/260)

# 8

8화.

한국의 가장 거대한 길드, 그 안에서도 서브마스터에 해당하는 인재가 죽었다. 당연히 돌리는 TV채널마다 용오름의 서브마스터 수아린의 죽음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성급한 시도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32단계 던전을 클리어한다는 생각에 우리 모두의 눈앞이 흐려졌던 것이죠. 그녀는 능력이 뛰어나고 상냥한 치유사였습니다. 결코 이렇게 잃을 인재가 아니었는데…….]

[수아린만 한 치유사는 전 세계를 뒤져 봐도 없습니다. 용오름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대가로 당분간, 혹은 영원히 정체될 것입니다.]

용오름 길드의 멤버들도, 한국의 다른 길드도 하나같이 수아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원래 굉장히 유명했던 모양이다. 아마 요정 같은 그녀의 외모도 유명세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정시우는 생각했다.

“그냥 치유사라는 클래스가 드물어서 그래요. 아, 클래스는 게임에서 나오는 그걸 생각해 주시면 돼요. 개인의 특기분야를 강화시켜 주는 능력. 10단계 던전을 클리어하면 업적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어요.”

“레벨이 아니라 특정 단계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거야?”

“네. 하늘성에서 강함을 따지는 기준은 레벨 이전에 던전의 클리어 정도니까요.”

각 던전에는 두 가지의 입장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레벨이고, 두 번째는 전 단계 던전의 클리어 여부다.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2단계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았으면 3단계 던전에 진입할 수 없고, 4단계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았으면 5단계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것.

“종종 상위 단계의 던전에 두려움을 느끼고 하위 단계 던전만 뺑뺑이 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레벨은 조금 높아질지 모르지만, 스킬은 성장하지 않고 클래스도 제대로 얻지 못하니 내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던전에서 죽으면 실제로 죽는 셈이니, 겁을 먹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냐.”

정시우는 수아린의 말에 답하면서도 가만히 생각했다.

여태까지 자신은 무엇이 앞을 가로막건 그것을 가볍게 부수고 전진하기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 비해 그를 가로막은 것들이 약했기 때문. 만약 그보다 강하고 단단한 벽이 나타난다면 정시우는 그때 어떻게 될까.

수아린이 말한 플레이어들처럼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하고 되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무리하게 도전한 끝에 수아린처럼 패배하게 될 것인가?

‘까짓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어쩌면 자신과는 영 관련이 없었던 고난이란 단어와 마주하며 그는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강하고 단단하건, 높건 두껍건, 무너질 때까지 두드려 부수지 않을까. 그것도 나름 기대가 되었다.

그는 그쯤에서 상념을 멈추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그보다 아린이 너, 정말 저대로 괜찮은 거야?”

“네? 아…… 장례식장 말이죠.”

수아린은 연고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녀의 학교 친구들과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던 다른 플레이어들뿐. 그래도 몇몇이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보면 수아린에게 정을 많이 주고 있었던 모양인데…….

“돈 빌려달라느니 사귀자느니 귀찮게 하는 사람만 많았는데, 차라리 잘 됐어요. 인연 깔끔하게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죠, 뭐.”

정작 수아린은 한여름의 체육 시간, 학생들이 에어컨을 끄는 것을 잊고 뛰쳐나가 방치된 빈 교실처럼 쿨하게 대꾸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것보다도 시우 오빠의 단련이에요.”

“계속하고 있거든.”

정시우는 아령을 든 채 끄으응, 힘을 주며 대꾸했다. 당연하지만 이 세상에 그가 들 수 없는 아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가 이렇게 아령에 힘을 주고 있는가? 그것은 지금 그가 마나를 다루는 기본 테크닉, 부여를 연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무기는 마나를 담는 것으로 강화되죠. 투척용 단검, 심지어는 평범한 짱돌도 마나를 담는 것으로 그럴 듯한 무기가 돼요. 이건 마나가 모든 것을 강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모든 것을 강화한다, 한 번 들어 감이 딱 왔다. 정시우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가 마나를 각성한 순간, 마나가 그의 육신을, 그가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초인력을 강화하는 감각을 말이다.

“그걸 내가 인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건가. 어렵구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답니다.”

강타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가 어째서 부여를 연습하고 있는가, 그것은 부여의 연장선상에 강타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물에 부여한 마나를 그대로 전방으로 폭발시킨다, 이거지.”

“정확히는 물리력과 마력의 진행 방향을 맞추어 일시에 쏟아 내는 느낌이죠.”

정시우가 망치를 휘두른다 치자. 망치를 휘둘러 적을 타격하는 바로 그 순간 망치에 주입한 마나를 타격 방향으로 폭주시켜, 공격속도의 가속과 공격력의 강화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빠르게 타점에 이르러 마나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강타는 완성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에 맞으면 무진장 아플 것 같았다.

정시우는 이것이 제법 복잡하고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수아린은 강타에 대해 설명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부여보다 강타를 먼저 습득하게 돼요. 제가 오빠한테 강타에 대한 말을 먼저 했던 것도 그래서이고요.”

“수수께끼 시간이야?”

“그도 그럴 게 생각해 보세요, 오빠. 마나를 사물에 부여한 상태에서 유지하는 것보다는, 다짜고짜 마나를 전방으로 쏟아 내는 쪽이 더 쉽거든요. 대신 타격 타이밍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강타의 진정한 위력을 끌어내기는 조금 힘들지만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그렇게 강타를 습득하고, 실전과 연습을 거쳐 천천히 부여와 강타를 숙달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하던 정시우의 머릿속에 벼락이 친 것은 그때였다.

“그거라면 이미 나도 가능하지 않냐!? 이미 마나를 왔다 갔다 조종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오빠는 그렇게 허술하고 불완전한 강타를 다루고 싶으세요?”

“……아니.”

적당히 사나이 자존심을 긁는 수아린의 말에 정시우는 억눌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수아린은 책상 위에 걸터앉은 채 생긋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달랬다.

“거봐요. 강타는 원래 부여와 방향성 부여, 폭발의 세 단계로 구성된 스킬인걸요. 전 오빠라면 반드시 강타를 완벽히 익힐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너 말솜씨가 제법이구나.”

정시우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적어도 마나를 다루는 영역에서 수아린은 완벽한 지도교사였다.

“그러면 방향성 부여 같은 거 없이 무기에 마나를 부여한 채 전투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무기는 강화된 채로 남겠지만 순간 폭발력은 없어지겠죠? 무엇보다도 오빠의 마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러면 내 주먹이나 발에 마나를 부여해서 강타를 발현하면?”

“그건 가능하지만 타격 순간의 폭발에 의한 데미지를 무기라는 완충재 없이 겪어야 하니 조금 많이 아프겠죠? ……어, 음. 하지만 오빠라면 괜찮겠네요.”

다른 플레이어들도 레벨이 높아지면 맨몸으로 강타를 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아린이 생각하기에 정시우가 그런 플레이어들보다 신체가 약할 것 같지는 않았다. 수아린이 스스로 납득해 고개를 끄덕이자 정시우는 씩 웃어 보였다.

“무기가 없을 때도 마나를 소모해서 강한 공격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마음에 드네. 음, 그러면 이건 어때?”

정시우가 아령을 던지는 시늉을 했다. 투척무기에 마나를 부여해, 그것을 던져 타격 순간 마나를 폭발시키는 것. 이른바 원거리 강타를 말하는 것이다. 수아린은 그의 제스쳐를 보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투척무기나 활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이 강타를 그렇게 다루죠. 하지만 유념하셔야 할 것은, 마나가 부여된 어떤 물건이든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천천히 마나를 소모한다는 거예요. 타격 지점에 이르렀을 때 충분한 양의 마나가 남아 있는가, 또 그것을 멀리서 깔끔하게 다루어 폭발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죠.”

“마나란 건 심오하구나…….”

“이제 막 마나를 익히셨는걸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세요.”

“음, 그래.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못 견디도록 재미있기도 했다.

그의 몸 안에 아직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에너지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 우습고, 그 외에 다른 많은 인간들이 이미 이 힘을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에 질투가 나고, 앞으로도 이것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정시우는 원래부터 강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자신은 강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그 힘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강해지고 싶었다.

“오빠?”

“아, 응.”

철부지 같은 상념에 빠져 있던 정시우는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수아린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손에 쥐고 있는 아령에 집중했다. 그의 몸 곳곳에 퍼져 있는 마나를 부르고, 흔들고, 쥐어 패서 아령으로 보냈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령으로 마나를 보내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거나, 일시에 방향성을 부여해 질주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머지않아 될 것 같다.

‘결국 내 몸 안에 있는 것, 내가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어. 단지 갑자기 생겨난 기운에 몸이, 정신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그의 몸에 이제 막 돋아난 도마뱀 꼬리처럼 말이다. 정시우는 그것을 생각하며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여를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그의 몸에 돋아난 꼬리를 다루는 연습도 해 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날개가 필수인 것처럼, 지하 플레이어인 정시우에게는 꼬리가 필수. 꼬리로 던전을 파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분명 꼬리가 쓰일 일이 있을 것이다.

“좋아, 저녁 먹고 나선 꼬리를 다루는 연습을 해야겠어. 그것 관련해선 팁 없어?”

“날개를 다루는 감각은 알지만 꼬리는 글쎄요. 꼬리뼈를 흔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기대한 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이구나.”

“기대한 대로!? 이래 봬도 최선을 다한 답변이었다구요! 꼬리가 나 본 적이 없는 걸 이 이상 어떻게 생각하란 말이에욧!”

한 쌍의 깃털 날개를 퍼덕이며 불만을 표출하는 수아린의 모습은 역시나 상당히 귀여웠다. 그런데 정시우가 키득거리며 다시 마나를 다루는 연습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계속 같은 채널에 맞추어져 있던 TV에서 아주 조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한편 고 수아린 양의 약혼자, 용오름 길드의 마스터 김하룡 씨는 수아린 양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하룡 씨는 하늘성 내부의 수호석에 수아린 양의 이름이 없다며, 전 길드의 힘을 동원해 수아린 양의 수색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수호석은 하늘성에 등록된 플레이어들이 죽으면 자동으로 그들의 이름을 새기는 비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늘성 내부로 현대 물품의 반입이 금지되어 그것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수호석을 확인한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수아린 양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긍정하며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어…….”

“아…….”

정시우와 수아린의 시선이 마주쳤다. 수아린이 날개를 파닥이며 강렬히 주장했다.

“약혼자 아녜요, 지 멋대로 주장하는 것뿐이죠. 전 던전 오르느라 바빠 연애도 한 번 못해 본 사람이라구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절대로!”

아니, 그거 말고 수호석.

정시우는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로 인해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그를 덮쳐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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