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그러면 루팅에 대해서 설명할게요.”
“기다리고 있었어.”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수아린이었으나 언제까지고 멀뚱거리고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머리가 터져 나간 웨어울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던전에서 만나는 몬스터들은 모두 전리품을 남겨요. 간단한 루팅 작업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소유권이에요. 몬스터의 소유권은 기본적으로 그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자가 아니면 루팅을 할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난 혼자인데.”
“……아, 그랬죠.”
아직까지 혼이 제자리를 완벽히 찾지 못했음에 분명했다.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재화는 단 두 가지예요. 첫 번째가 돈이고, 두 번째는 몬스터가 일정 확률로 지니는 특별한 마나 구조를 지닌 결정, 몬스터 비드죠.”
“돈이 뭘 말하는 거야? 설마 한국 원화는 아닐 테고.”
“네, 애석하게도 한국 원화는 아녜요. 미국 달러죠.”
“……아이 벡 유어 파든?”
“미국 달러라니까요.”
수아린의 역습! 이번엔 정시우의 의식이 혼미해질 차례였다!
“날개 달린 사람도 있고 괴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는데 몬스터가 달러를 뱉는다고 이상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아냐, 그건 이상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세요. 어쨌든 달러예요. 레벨이 엄청나게 높은 몬스터는 달러가 아니라 금을 뱉기는 하는데, 적어도 정시우 씨에겐 당분간 그럴 일이 없겠죠.”
그 달러의 출처는 둘째 치고 한꺼번에 많은 달러가 풀리면 그게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달러 시세는? 화폐 번호는? 무수한 의문이 솟구쳤지만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수아린의 신비한 미소는 그에게 반박을 허용하지 않았다.
“돈에 대해선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몬스터 비드에 대해서만 설명하죠. 이건 일종의 상품 교환 코인이에요. 그 자체로는 거의 의미가 없지만, 던전을 ‘클리어’하면 나타나는 제단에 비드를 바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어요.”
“대가……?”
“후후, 게임에 나오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무기나 방어구, 소모품을 말하는 거랍니다.”
그 시점에 이르러서 정시우의 머릿속에는 혹시 이 녀석은 설명의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직관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마치 가이드북을 읽는 기분이었다.
“비드는 하나만 바쳐도 되고, 한꺼번에 여럿을 같이 바쳐도 되고. 제단에 바치는 비드의 종류나 개수에 따라 나타나는 보상이 달라지니 머리를 굴릴 필요가 있답니다.”
“보스를 다 깬 후에야 얻을 수 있다 이거지. ……아하.”
정시우는 거기까지 듣다가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이 던전이라는 장소는,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도중에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나봐?”
“정확하게 보셨어요.”
힘만 센 게 아니라 머리도 좋구나. 좀 좋은걸, 하고 생각하며 수아린이 추가로 설명했다.
“테스트 던전에서부터 시작해서 던전은 결코 우리에게 힘을 먼저 주는 법이 없어요. 보상도 그렇지만 레벨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많은 몬스터를 잡아도 그게 당장의 능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던전을 클리어한 다음에야 정산이 되어 한꺼번에 레벨 업이 이루어지거든요.”
아까 수아린은 자신이 219레벨에까지 이르렀었다고 말했었다. 거기에 대해서 따로 설명을 들은 것이 아님에도 정시우 또한 레벨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마력의 수준, 힘의 세기, 몸의 강인함. 그 외 무수한 플레이어의 능력의 절대적인 기준! 진입단계가 높은 던전은 플레이어의 레벨이 높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레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강해지고 싶다면 자격을 증명하라는 건가.”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 방식에 납득하지 못했어요. 하늘성과 던전을 평소 그들이 플레이했던 RPG게임과 비슷하게 판단했던 거죠. 던전은 하나의 거대한 시험이나 다름없는데, 시험문제를 하나하나 풀 때마다 보상을 받기를 바란 거예요. ……물론 그런 이들은 하늘성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죠.”
몬스터가 던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납득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루팅 방법은 뭐야?”
“일단 돈을 루팅하는 건 간단해요. 적의 생존 당시를 기준으로 유효타를 일격, 먹이면 됩니다. 이걸 캐시 루팅이라고 불러요.”
“흠.”
그냥 주먹을 내질렀더니 놈들의 머리통이 터졌으므로, 평범한 유효타라면 알밤을 먹이는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정시우가 다섯 웨어울프의 몸통에 차례대로 노크를 하자 정말로 놈들의 몸통 위로 달러 지폐가 솟아났다. 100달러 지폐가 1장씩 총 다섯 장.
“55만 원 벌었다…….”
“테스트 던전에서 100달러 지폐…….”
정시우는 고작 약해 빠진 늑대 몇 마리 골통 부순 정도로 쭈쭈바 550개, 원 플러스 원 행사를 감안하면 1,100개를 사 먹을 돈을 얻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란 것은 수아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하늘성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녀에게 500달러 정도면 별로 놀랄 액수도 아니지만 테스트 던전에 도전하는 플레이어 후보가 만질 수 있는 돈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일단 인 마이 포켓, 좋았어.”
취직 걱정 끝, 행복 시작이다! 힘을 쓰기만 하면 돈이 생기니 과연 플레이어란 위대한 직업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시우는 행복한 표정으로 돈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는 수아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비드 루팅은?”
“캐시 루팅을 마치고 나면, 비드를 갖고 있지 않은 몬스터들은 마나로 분해되어 던전 안으로 흡수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몬스터들은 전부 비드를 갖고 있는 모양이네요.”
어쩜 이렇게 운이 좋을까. 몬스터 비드는 원래 제법 획득 확률이 낮은 전리품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정시우가 잡아낸 다섯 마리의 웨어울프 모두가 비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수아린의 설명이었다.
“이렇게 남은 몬스터의 사체를 대상으로, 이번엔 적의 생존 당시를 기준으로 치명상에 해당하는 양의 데미지를 먹여야 합니다. 그러면 비드를 얻을 수 있어요.”
“뭐……?”
정시우의 인상이 딱딱해졌다.
“즉 전리품을 얻기 위해서 체력이나 마나를 추가적으로 소모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만약 치명상을 먹일 자신이 없으면 비드는 못 얻겠네? 아니면 다른 파티원한테 양보하거나.”
“정시우 씨, 머리 좋다는 얘기 많이 듣죠……?”
루팅 방법을 듣고 단번에 던전의 규칙을 꿰뚫어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째서 전리품 수거를 위해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게 하는 것일까, 처음엔 수아린도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던전에서 체력과 마나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전리품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다 이건가. 정말 재밌게 됐는데 이거.”
정시우의 눈이 도전적인 빛을 띠었다. 던전을 순순히 클리어하고 싶으면 전리품 때문에 힘 낭비하지 말라니, 이렇게 건방진 소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좋아, 그러면…….”
하지만 정시우도 사나이다. 던전이라는 녀석이 그를 시험하겠다고 한다면 그 틀 그대로 부숴 주는 것이 멋지지 않겠는가.
“어라, 정시우 씨. 설마…….”
“이렇게 해 놓고…… 흡!”
그는 웨어울프 다섯의 사체를 한 대 모으고는 기합을 넣어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찍었다! 그 결과 웨어울프들의 사체는 모조리 사라지고, 다섯 개의 작고 붉은 결정, 비드만이 남았다.
“좋아, 퍼펙트.”
“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사체를 한꺼번에 모아 놓고 광역 마법이나 스킬로 한 번에 루팅하는 건 봤지만 설마 발 구르기로 해치우실 줄은…….”
대체 저력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수아린은 다섯 개의 결정을 주워 마찬가지로 품에 넣는 정시우를 그저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좋아, 그러면 이 방에서 할 건 다 끝난 거지?”
“보통 방을 하나 클리어한 후 기본적으로 취해야 하는 행동이 있어요. 일단 부상 확인, 던전 뒷방과 앞방 확인, 체력과 마나 확인. 테스트 던전에서는 이 정도만 기억하면 되는데…….”
수아린은 말을 마치며 정시우를 살폈다. 아직도 던전은 어둡지만, 그동안 어둠에 적응된 그녀의 시야가 정시우의 모습을 어렴풋이 잡아냈다. 한 번 보고 두 번 봐도 상처는 없었다.
“그래도 던전이 어디까지 있을지 몰라요. 체력 분배에 신경 써야 한다는 건 이미 자각하고 계신 거죠?”
“오케이.”
그러나 그 후로 벌이는 정시우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그가 체력 분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일대는 빠르게 내달려 스킵하질 않나, 테스트 던전에는 함정이 없다는 수아린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심지어는 달리는 속도를 늘리질 않나!
[갸우우우우우!]
“저곳에도 또 웨어울프…… 좀 천천히 달리라구욧!”
“하!”
앞서 웨어울프들과 싸우며 놈들의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 학습한 정시우는 두 번째로 출몰한 몬스터 역시 웨어울프라는 것을 깨닫곤 더욱더 대담하게 돌진했다!
“태클!”
[깨갱!]
[깨애앵!]
일단 그대로 몸을 숙이고 슬라이딩 태클을 걸어 한 번에 두 마리의 다리를 분질러 넘어트린 후, 땅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돌려차기로 한 마리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날렸다.
[킥!]
[키히……!]
“흡!”
그 시점에서 전투가능한 놈은 딱 세 마리가 남아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정시우의 난입에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그가 뻗어 낸 채찍과 같은 후려치기에 한 마리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남은 두 놈은 이대로 얼 타고 있다간 죽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급히 정시우로부터 거리를 벌렸지만 안타깝게도 정시우는 이미 원거리 무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웨어울프 어택!”
[끼기기기긱!]
바로 죽어 자빠진 웨어울프의 사체를 집어 적을 후려치는 것이다! 얼마나 강한 일격이었으면 후려치는 순간 사체의 머니 루팅과 비드 루팅이 한 큐에 완료되었고, 당연히 그것에 맞은 대상도 영 좋지 못한 부분을 맞았는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캬아아아아아아!]
“음?”
그러나 정시우의 공격은 파워풀하다는 장점과 함께 동작이 지나치게 커 약점을 노출하기 쉽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의 공격을 피한 나머지 한 마리의 웨어울프는 그의 공격이 끝난 순간, 즉 가장 큰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을 노리고 입을 쩍 벌리며 덤벼들었다!
[깨갱!]
“하!”
……가는 그의 팔꿈치에 이빨이 전부 부러지고 턱까지 아작이 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
“아직 살아 있는 놈이 셋…….”
수아린이 눈을 새하얗게 뜨며 그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정시우는 아직 살아 있는 웨어울프를 들어 올려 나머지 놈을 때려 죽였다. 태클을 걸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으나 체력도 온존하면서 효과적으로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라, 이놈들도 전부 비드를 뱉는데?”
“그러게요. 하지만 이제 그 정도 일은 그리 놀랍게 여겨지지 않네요…….”
“좋아, 체력 소모도 아꼈겠다 바로 다음 방으로 가자.”
분명 그는 체력을 아끼고 있었다. 아끼고 있었지만…… 수아린은 과연 어떤 플레이어 후보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던전을 돌파했을까,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를 따랐다.
그로부터 3시간이 흐르도록 정시우는 139마리의 웨어 울프를 더 사냥했다. 놈들 전원이 100달러 지폐 한 장과 비드를 드롭했다.
그렇게 정시우는 할퀸 상처 하나도 입지 않고 보스 룸 앞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