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건국 (6) >
여영진 부장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내가 윗사람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어렵사리 운을 떼었다. 나는 비서가 가져다준 얼음물을 한 모금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독대행이란 어떤 직책입니까?”
“대한민국의 해외영토를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우리나라에 해외영토라는 게 있었습니까?”
“글쎄요, 명예직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저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좀 더 자신을 증명하셔야합니다. 그래서 발표 임무를 맡겨드린 겁니다.”
“예?”
“부장님이 아랫사람을 잘 다룬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부장님 본인의 역량은 어떨까요? 과연 본인은 타인에게 요구하는 엄정한 기준을 충족하고 계실까요?”
여영진은 대답하지 못하고 미간만 찌푸렸다.
“말씀드렸다시피 아주 높으신 분들이 오시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실수하시면 부장님 뒤를 봐주시는 분으로도 뒷감당이 어려울 겁니다. 물론,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를 잡으실 수도 있겠죠. 하시기 나름입니다. 저는 부장님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나는 그에게 선의로 가득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그는 비로소 내 의도를 깨달은 듯했다.
그래, 내가 자선사업이나 하자고 당신을 골랐겠냐고.
꿀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순 있다. 그러나 꿀을 빨아먹을 역량이 없다면 벌떼에게 쏘여 뒤질 각오를 하라는 거다.
“이만 가보세요. 약속드린 인력은 오늘 중으로 붙여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약속한 삼일이 훌쩍 지나갔다. 외교부는 삼경그룹 회장이 청사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아침나절부터 삼엄한 경계태세에 들어섰다.
부산을 떠는 건 외교부 직원들뿐만이 아니었다.
삼경그룹 측의 경호원들도 폭발물을 점검한다는 둥, 수상한 사람을 색출한다는 둥, 청사 현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꼴값을 떠는 중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회장님이 국가권력보다 윗줄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은 한철장사일 뿐이라는 소리가 있겠어.
“치워드릴까요?”
정장을 입은 젊은 여성이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컵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부탁해요.”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컵과 컵받침을 가져갔다.
그녀의 이름은 박이나.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옷차림은 언제나 수수했고, 두꺼운 안경을 항시 몸에서 떼놓지 않았다.
비서인 줄 알았던 그녀의 정식 직책은 총독보좌관, 무려 4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별정직이었다.
총독보좌관은 아무런 하부조직도 없는 총독실에 편입된 유일한 직제였다.
급수가 급수이니만큼 차심부름이나 하는 건 그녀의 업무가 아니었다. 나도 그녀 같은 엘리트에게 잔심부름이나 시키고 싶지 않았으나, 그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처했다.
“총독대행님.”
박이나가 컵을 치우고 내게 돌아왔다.
“삼경그룹 회장님께서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나는 블라인드를 젖혀 청사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수백여 명의 경호원들이 차가 지나갈 길만 틔운 채 검은 우산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기자에게 사진이 찍힐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나.
“위세가 대단하네요.”
“장관님께서는 아래층에 내려가 계십니다.”
나도 마중을 나가야하지 않느냐는 압박이었다.
“보좌관님은 총독이 기업총수보다 아래라고 보시나요?”
“그건 아니지만, 그분께 원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기분을 맞춰드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론이었다.
박병철 장관이 배알이 없어서 내려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만남이 결코 평범한 자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내가 왜 하고많은 재벌중에 삼경그룹 회장을 소환했겠냐고.
삼경그룹을 따르게 만들면 다른 기업들도 따라온다.
삼경그룹을 굽히게 만들면 정치인들도 허리를 굽힌다.
오늘의 회담은 금력과 마력중 어떤 힘이 차후의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자리였다.
“회의가 몇 시부터였죠?”
“오후 2시입니다.”
“2시 10분에 불러주세요.”
“총독대행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생각이 있으니.”
나는 의자에 깊숙이 등을 파묻었다.
삼경그룹 회장은 김오중이라는 남자였다. 올해 나이가 쉰이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하겠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룹을 물려받아 3대째 족벌경영을 펼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외적인 평판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김오중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김오중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두 의견을 하나로 합치면 이런 문장이 나왔다.
좆같은 놈이지만 돈이 오라지게 많다고.
그는 유능했고, 그의 유능함은 돈 냄새를 맡을 줄 아는 타고난 재능과 도덕적인 해이에서 기인했다.
곧 오늘의 선수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입장은 정확히 보유한 금력의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삼경그룹 회장은 나팔만 불지 않았다 뿐이지 열병식이나 다름없는 장관을 연출했다.
“정말 가보시지 않으셔도 괜찮을까요?”
박이나가 다시 되물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질책을 받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술법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고, 내가 아주 강력한 주술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상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같이 한 잔 하실래요?”
나는 그녀에게 역으로 제안을 건넸다. 나는 그녀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제가 타드리죠. 좋아하는 걸 말씀해보세요.”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나는 문고리를 쥔 채 그녀를 다시 채근했다. 그녀가 체념하며 대답했다.
“...홍차요.”
나는 탕비실에서 홍차와 율무차를 한 잔씩 내왔다. 플레이팅도 예쁘게 했다. 말단직원 시절의 주업무였기 때문에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박이나가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요, 이상합니까?”
“솔직히 신기하긴 해요. 다들 총독대행님이 아주 무서운 분이라고 겁을 주셔서."
“제가요?”
“아, 암살 같은 걸 하고 다녔던 분이라고...”
"암살자라고 차맛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나는 되도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래도 암살자가 되기 전 이력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사기록 자체가 기밀문서다보니.
나는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녀는 내내 초조하게 있다가, 약속한 시간이 되자마자 내게 말했다.
“2시 10분이에요, 총독대행님.”
“갑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무도 당당히 회의장으로 향했다.
회의장으로 가는 길목마다 경호원과 정보부 요원이 그득했다. 총독인 나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의전이었다.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곱지 않은 시선들이 벌떼처럼 날아왔다.
김오중은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채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드디어 총독대행께서 오셨군요. 워낙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양해를 바랍니다, 하하하.”
여영진 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목욕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땀으로 질펀했다. 그는 내가 없는 10분 동안 이 자리를 책임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지정된 좌석에 앉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지시했다.
“시작합시다.”
“예."
여영진 부장이 단상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외교통상부 주관으로 개최되는, 에신 총독령 개척사업 투자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여영진 부장이 PPT를 시작했다.
그는 리허설 때보다 훨씬 심하게 떨고 있었다. 김오중이 별 의미 없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자세를 고쳐 앉거나, 관심이 없다는 투로 옆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마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다.
“......이상입니다.”
드디어 발표가 끝났다.
자료의 퀄리티만큼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전문성과 간결함을 동시에 담아낸 수작이었다.
긴장한 것 치고는 발표도 잘했다. 실수가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단상 위로 올라가 거의 넋이 나간 듯한 부장에게 작게 속삭였다.
“너무 침울해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실수를 할 때란 있는 법이니까.”
부장이 비척비척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내 얘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멘탈이 나간 듯했다.
나는 단상 중앙에 서서 그를 대신해 발언을 이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총독대행 박봉팔입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제철 이원봉입니다.”
안경을 쓰고 머리가 벗겨진, 동글동글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손을 들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대 제철기업인 한국제철의 회장이었다.
“말씀하시죠.”
“아까 그 사진을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그가 요구한 사진이란 베이스캠프 주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 노천광이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철광석, 석탄, 망간 등 철강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가 중점적으로 소개되었다.
“오오.......”
이원봉은 탐욕어린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철강사업은 제조원가의 절반 이상을 원자재가 차지할 정도로 원료의 비중이 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자원이 대부분인데다가 대부분의 자원이 전략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철강사는 재료를 수급하는 문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광산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비용을 지원받는 대가로 지분의 20%를 보장해드리고, 육로를 통해 값싸게 물건을 넘겨드린다는 게 핵심입니다. 귀사의 해외 투자사례와 대조를 해보시면 얼마나 남는 조건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정확한 건 우리 전문가들이 실사를 나가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말씀해주신 내용 그대로라면 투자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요.”
“회장님께서 직접 오셔도 됩니다, 여기서 차량으로 3시간 거리니까요.”
이원봉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반평생 삼면이 바다로 막힌 반도에서 무역을 해오다가, 고작해야 3시간 거리에 노천광이 즐비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법도 했다.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김오중이 삐딱하게 앉은 채 내게 물었다.
“편히 하시죠.”
“나도 에신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희망이라고. 이 나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듣자하니, 프로젝트가 처음 출범했을 때와는 많이 변질이 되었다는 군요.”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회사 서류전형도 통과를 못할 스펙을 가진 천둥벌거숭이가 권력욕에 눈이 멀어서 프로젝트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오중 회장님, 그 말씀은 이 자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인신공격성 발언입니다!”
박이나 보좌관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녀는 보기보다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조금 전에는 그렇게 전전긍긍하더니 말이야.
“나는 그저 들리는 소문을 말했을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조언을 드리는 게지요. 이렇게 이로운 땅이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우리 국민의 손을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김오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그는 금권으로 쌓아올린 시스템의 정점에 위치한 자였다.
오랜 세월 남들 위에서 군림하다보면, 주술이 아니어도 주술에 버금가는 능력이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는 내게서 패배자의 냄새를 맡아내려고 후각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가 여영진 부장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유가 다 있었다. 그는 이미 무너진 자에게는 관심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김오중 회장님.”
나는 그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어주었다.
“외람되지만 소식이 많이 늦으시는군요.”
“내 소관이 아니니 소식이 늦을 수밖에요.”
“그래도 나라 살림살이를 책임지신다는 분이 국운이 달렸다는 일에 소식이 늦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놓친 게 뭡니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 스펙 모자란 천둥벌거숭이가 무장집단을 조직하여 개척지를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소문 말입니다. 이미 우리 국민의 손을 벗어난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