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엇갈린 선택 (2)
외교부의 일처리 능력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그들은 내가 인수인계 따위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회사에 압력을 넣었다. 사표는 부장에게 전화를 걸기도 전에 수리되어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부장놈 얼굴 안 보고 퇴사한 건 좋았지만, 문제는 동창이자 입사동기인 이상민이었다. 이놈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다짜고짜 쌍욕부터 박았다.
- 야이 새끼야, 말도 없이 혼자 튀기 있냐.
- 그럼 너한테 결제라도 맡으리?
- 여물고 술이나 사 인마.
- 이틀 후에 홍대에서 보자.
- 왜 이틀 후냐? 이틀 후에도 형님이 시간 날 거 같냐?
- 나 면접봐야된다고, 자식아.
- 어디 면접?
- 공무원 면접.
- 지랄났다.
이상민은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놈이자, 전생의 비밀도, 현생의 재산도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그 나이 먹고 걸그룹 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걸 보면 평범하다는 수식어에 의문이 들지만.
나는 그에게는 대충 백수로 돌아간다고 말해두었다.
인수인계 없이 퇴사했다는 것도 납득시키기 어려운데 공무원 특채를 어떻게 설명하겠냐고.
서울특별시 종로구 모처.
경비가 엄중한 빌딩 정문을 말 한 마디로 통과했을 때부터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에신으로 돌아간다.
에신이 다시 찾아갈만한 땅은 결코 아니었다. 그곳은 강자가 모든 권리를 독점하는 야만의 사바나였다.
여기서 말하는 강자란 우리의 상식이나 자연법칙마저 거스르는 초월적인 존재를 가리켰다.
나?
나는 물론 좆도 아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암살자란 누군가에게 의해 휘둘러지는 도구일 뿐.
널찍한 로비에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먼저 다가가 말을 붙여볼만한 붙임성은 없었기에 나는 로비 중앙에 입간판처럼 우두커니 서서 안내인을 기다렸다.
“박봉팔씨?”
머리를 짧게 깎은 삼십 중반 가량의 사내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 있었다. 나는 한 눈에 그가 전화로 얘기를 나눴던 이범영 과장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범영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따라오시죠. 회의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가 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보조를 맞추며 그를 흘끔흘끔 관찰했다. 그는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고, 침착한 목소리와 진중한 분위기를 지녔다. 보증을 서줘도 되겠다 싶을 만큼 신뢰가 가는 관상이었다.
“하시던 일이 마케팅 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복도를 두어 번 꺾었을 때 이범영 과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박봉팔님은 이세계협력국 산하의 에신1과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케이팝이나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의 한류컨텐츠를 홍보하고 기업투자를 따내는 일을 맡으시게 됩니다.”
“한류컨텐츠를 홍보한다고요.......에신에서요?”
“예.”
“하지만 저는 케이팝이나 드라마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데요.”
“웹툰도 안 보십니까?”
“옛날에 마음의 소리 같은 거 조금.......”
“잘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일이야 차차 알아가시면 되니까요.”
지극히 사회인다운 발언이었다. 나도 동의했다.
“다 왔습니다. 들어오시죠.”
나는 이범영 과장의 뒤를 따르다가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한 아름다운 소녀가 회의실 중앙에서 주변의 시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공예품을 보는 듯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미모라 주변 환경과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쪽으로.”
이범영 과장이 그녀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나도 실에 꿰인 바늘처럼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새로운 팀원분이 오셨습니다. 마케팅 실무를 맡아주실 박봉팔님입니다.”
소녀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시선엔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있지 않다는 걸, 그런 일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결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녕하십니까, 박봉팔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투시즌의 소미입니다.”
투시즌, 이상민에게 들어봤던 이름이다.
한류를 견인하는 걸그룹 쌍두마차중 하나라던가.
“소미님은 케이팝 홍보대사이시자 유일무이한 주술사이십니다. 여러 가지 술법으로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죠.”
“아니에요, 하는 게 없어서 언제나 죄송한걸요.”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그리고.......오데르의 신도입니다.”
“아, 정말요?”
그녀가 검은 눈동자를 둥그렇게 떴다.
오데르는 뒷골목 인간들이 숭배하는 강력한 영이다. 그의 신도라고 자처하는 부류는 둘 중 하나였다. 갱이거나 암살자거나.
나로서는 부담없이 한 발언이었다. 어차피 이범영 과장이 암살자라고 까발렸을 테니.
그러나 그녀가 놀라는 표정은 진짜였다. 놀란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내 평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분이 새로 오신 분이로군요.”
한 젊은 남성이 다가와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굉장히 마른, 평생 운동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듯한 사람이었다.
“박봉팔이라고 합니다. 중소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다 왔습니다.”
“저는 아약이란 필명으로 활동중인 웹소설 작가입니다. 혹시 제 소설을 읽어보셨는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책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
“시간 때우기로 좋으니 말씀만 하시죠. 캐시는 제가 쏴드립니다.”
아약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앱을 열어서 굳이 자신의 글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한 번 읽어보기는 해야 할 듯하여 그의 소설을 확인해두었다.
“아약님은 웹소설 홍보대사이시자 마법사이십니다. 유일한 마법사이시기에 아약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성립이 불가합니다.”
포탈을 열어서 두 세계를 잇겠다는 양반이 이 사람이었구만.
그나저나 마법사면 자동적으로 귀족일 테고, 귀족이라면...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귀족 대접같은 거 안 해주셔도 됩니다. 전생은 전생일 뿐이니까요.”
아약이 사람 좋게 웃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쪽이 원한다면 별 수 없이 대우를 해줘야하지 않나 싶던 참이라.
“다들 여기 모여 계셨습니까.”
이번에 나타난 건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현역 UFC 선수, 정기호였다.
그는 인간 철탑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거대한 남자였다. 대흉근이 만주벌판마냥 광활하기 그지없고. 주먹은 과장 조금 보태서 슬렛지 해머를 떼다 붙인 것만 같았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 에신은 각별한 안전대책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는 나라입니다. 정기호님은 UFC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셨고, 에신에서는 군인으로서 숱하게 무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저희는 경호책임자로 이보다 더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정기호가 두 주먹을 내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동시에 난데없이 엄지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어라라?
나는 깜짝 놀라 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른손이 있지도 않은 검을 뽑으려고 허리춤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전생에서 호적수를 만났을 때 느끼곤 했던 감각이었다. 이젠 완전히 잊은 줄로만 알았던 감각이 그의 앞에 서는 순간부터 당혹스러울 정도로 솟구쳤다. 그도 같은 것을 느끼는지 내 미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주술사, 마법사, 경호책임자.
이후로도 많은 사람을 소개받았으나 앞서 만났던 세 사람만큼 인상적인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전생자인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본인이 어떤 프로젝트에 가담중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범영 과장은 소개를 마친 뒤 내게 서류를 한 장 건네주었다.
“여기 서명하시면 물릴 수 없게 됩니다.”
“.......”
소미와 아약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펜을 쥐고 두 말 않고 서명했다.
물리는 게 가능했다면 소개를 시켜주지도 않았겠지.
이범영 과장은 서류를 챙긴 뒤 내게 악수를 건넸다.
“외무부의 가족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굳게 맞잡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