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박창준.
빼도 박도 못하는 증인의 등장이었다.
“!”
가장 먼저 놀란 건 경석이었다.
박창준은 그가 고용한 암살자였으니까.
‘살아… 있었어?’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박창준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눈빛만 교환 후, 침묵했다.
그때, 강기찬이 말을 걸었다.
“창준아, 인사드려라. 경석 아버님이시다.”
“예.”
박창준은 강기찬이 시키는 대로 했다.
“반갑습니다. 제가 당신 아드님한테 돈 받고 강기찬씨를 살해하려 했었습니다.”
경석은 어이가 없었다.
박창준이 제 범행을 고백하고 있지 않나.
‘미치지 않고서야…….’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강기찬이 오죽 못살게 굴었으면 저럴까, 싶었다. 상세히 알지는 못하나 자신처럼 노예로 전락했지 싶었다.
- 당장 내 아들을 바꿔라. 당장!
경석 아버지의 일갈에 강기찬이 순순히 경석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얼른 아무 말이나 해보라는 턱짓과 함께.
“아, 아버지…….”
- 강기찬 말이 사실이냐? 방금 그놈이 네가 고용한 게 맞느냐고!
“네…….”
강기찬이 옆에서 거들었다.
“창준이가 그러던데, 경석이 지시 내린 거랑 거래내역 다 증거로 남겨두었다고…….”
증인에, 증거까지 있단다.
만약 강기찬이 이걸 터트린다면?
A길드는 물론이거니와 A기업이 박살 날 것이다.
- 워, 원하는 게 뭐냐?
“청룡길드에 똥물 튀기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내.”
- 그게 다냐?
“1천억 더 줘.”
- 그. 그런 날강도가……!
“너는 자식새끼가 죄 없는 사람 죽인다던데 지원까지 해주려 했으면서 누구보고 날강도래? 난 살해당할 뻔한 거에 대한 정신적인 위자료로 책정한 거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기한은 이번 주말까지다. 준비해라.”
- …….
“대답해라, 알았냐?”
- 으! 알았다!
뚝!
성질부리다가 끊었다.
경석과 청용이 묘한 눈빛으로 강기찬을 보았다.
둘 다 하고픈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강기찬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청용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아까 말씀하셨던 거, 왔습니다.”
강기찬이 사람 좀 쓸 수 있을지 묻지 않았나.
청용이 직원들을 불렀고 이제 온 것.
대략 100여 명이었다.
강기찬은 권속들을 둘러보았다.
레벨 2,100대부터 5,300대까지, 각 레벨별 몬스터 수백만 마리가 다 모였다.
다시 직원들로 시선을 돌렸다.
몬스터를 보는 눈가가 떨린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 권속들입니다.”
강기찬이 나직이 말했다.
“여러분을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대로 몬스터들은 석상처럼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해주실 일은 저들을 본래 필드로 되돌려보내는 겁니다.”
“!”
“!”
“!”
다들 얼굴에 느낌표 하나씩은 띄웠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슨 일 하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놀란 눈치였다. 이런 일을 시킬 줄 상상도 못 했을 테니.
‘테스트서버라면 몰라도 여긴 어쩔 수 없지.’
권속들이 제 필드로 돌아갈 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테스트서버에서 성공했었다.
다만, 이곳과 테스트서버의 사정이 다르지 않나.
이곳에는 사람이, 건물이 있다.
무턱대고 내보냈다간 난장판 될 거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줄 오해할 터.
그런 까닭에 사람을 붙이려는 것이다.
청용을 돌아보았다.
“청용씨, 지원 협조는 했습니까?”
“아, 예. 했습니다.”
몬스터 군대가 각지로 흩어지는 거다.
몬스터가 도심에 나타나니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터.
민 ‧ 관 ‧ 군 ‧ 경의 협력이 필수였다.
이는, 청용 정도의 급이 되는 인물이 아니라면 쉬이 하지 못할 일. 강기찬은 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청용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이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는 흔치 않으니.
가뜩이나 썬더버드 건으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한 민심이어서 아직 힘이 건재하다는 걸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그것도 몬스터 군대를 장악했다는 안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자!”
강기찬이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아이스 오우거 팀은 이진아씨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아이스 오우거 무리가 이진아 사원의 앞으로 줄지어 섰다.
겁먹은듯한 이진아 사원에게 강기찬이 상냥하게 말했다.
“제 아이스 오우거는 안 물어요.”
“아… 예.”
전혀 위안이 안 되는 말이었다.
주말에 특급수당을 지급한다기에 약속도 취소하고 나왔는데 이런 일이라니?
임무만 보면 간결했다. 동시에 간 떨리는 임무였다.
강기찬도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렸다.
그랬기에,
“한 번 명령해보십시오.”
안심시킨 다음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스 오우거가 해치지 않는다는 보장으로.
“예?”
“아이스 오우거에게 아무거나 명령해보십시오.”
이진아 사원은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했다.
“오른손 들어…….”
그 말에 수백의 아이스 오우거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허…….”
이진아 사원은 본인이 명령한 것임에도 믿기지 않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 지시를 내려보십시오.”
“예? 예.”
무슨 뜻이 있겠거니, 하고 순순히 따랐다.
“공격해.”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스 오우거들이 가만히 있었다.
강기찬이 직원에게‘모든 명령권’을 넘기지 않아서다. 그리고 직원에게는 이 군대로 딴 맘 품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자, 다들 출발해주십시오.”
다른 직원들도 다 지켜보았기에 두 번 할 필요는 없었다.
“1조 출발.”
“2조 출발.”
“3조 출발.”
“4조 출발.”
.
.
질서 있게 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마치, 유치원생들을 통솔하는 선생님 같았다.
청용은 그들이 나가는 걸 지켜보며 생각했다.
‘… 보면 볼수록 놀랍단 말이지.’
덧붙여, 다른 이들은 미래를 우려했다.
‘강기찬이 저것들을 돌려보내는 게, 무엇을 위해서인지가 뻔히 보여서 좀 불편하네…….’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해주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거랑은 괴리가 컸다. 왜냐하면, 저 몬스터들은 철저하게 강기찬의 지시에 따르기에.
그리고 강기찬이 일전에 보여주었던 모습을 보라. 몬스터를 통해 몬스터를 사냥했다. 저들도 제 서식지로 돌아가는 즉시 동족을 사냥할 터. 그 동족은 같은 편이 될 테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엔 사냥터 전체를 장악할 터.
현재 사냥터는 각 길드가 관리하고 있다. 유저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서.
강기찬의 권속이 그 안을 장악한다면? 그건 단순히 밖을 장악한 길드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 사냥하기 위해선 모든 유저가 강기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서운 점은, 현재 사냥터를 지키고 있는 각 길드가 이를 알고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오직 강기찬만을 위한 것이지만, 외적으로는 청룡길드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실제로 강기찬의 권속을 통솔하고 있는 자는 청룡길드 직원이지 않은가. 감히 그 누구도 그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더 나아가 향후 누구도 강기찬의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독점 체제가 눈에 선한데도 아무 조치도 취할 수가 없게 되다니, 강기찬… 무서운 자다. 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지?’
강기찬이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옆에서 그림 그리는 걸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을까.
‘어쩌면 1등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1등 때보다 더 높은 2등이 될 수 있다면…….’
여전히 강기찬과 함께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는 그였다.
그는 몰랐다.
자신은 미래로 향하려고 하는 반면, 강기찬은 과거로 향하려고 한다는 것을.
* * *
<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광경! >
< 세계 최초 도심을 평화롭게 행진하는 몬스터 무리! >
< 전문가 曰, 네크로맨서 유저의 소행으로 추정 >
< 청룡길드 내부에 네크로맨서 유저가 있다?! >
< 청룡길드의 몬스터 통솔력이 미치게 될 영향력 집중 분석! >
- 와, 장관이다. 장관이야…….
- 몬스터가 진짜 공격 안 할까?
- 벌써 한 시간이 나 지났는데도 평화롭잖아.
- 봐도 봐도 믿기지 않네.
- 이제 어떻게 되는 거임?
- 진짜 저게 네크로맨서의 소행이라면 던전을 장악하는 거지.
- 그러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 모르지.
- 확실한 건 네크로맨서가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거임.
- 하긴, 권속들이 몬스터 잡아도 네크로맨서한테 경험치 가지?
- ㅇㅇ 아무래도 그러려고 각지의 던전으로 보내는 것 같음.
- 미쳤네. 저것들이 주인 자고 있을 때도 사냥해주는 거 아님.
- 말로만 듣던 자동사냥임.
- 따지자면 대리사냥이지.
- 그게 그거지.
- 개 부럽네.
- 근데 이제 청룡길드는 해외 진출도 노릴 수 있겠는데?
- 그건 모름.
- ㄴㄴ 킹능성 있다. 네크로맨서가 변수니까.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심을 평화롭게 행진하는 몬스터 무리.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청룡길드 직원들.
마지막으로 네크로맨서 떡밥까지.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경석 아버지가,
“으으! 으-으으으!”
뻑!
어른패드를 집어 던졌다.
“개같은 청룡길드 놈들. 아주 많이 신났군, 신났어!”
강기찬이 증오스러운 만큼 청룡길드도 공중분해 시켜버리고 싶었다. 힘이 약하다는 게 이렇게 분할 수 있나!
똑똑.
“들어와라.”
벌컥.
“부르셨습…….”
경석이 들어오자마자 경석 아버지가 물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것 말입니까?”
“강기찬의 전력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라.”
“예? 그걸 왜 물으시는 건지?”
“나는 나를 뒤통수 친 놈을 살려두지 않는다.”
“강기찬을 죽일 겁니까?”
“그래, 근데 네가 저번에 실패하지 않았느냐?”
“그랬지요…….”
“그 당시의 강기찬보다 레벨이 100 높은 놈을 보냈는데도 실패했다고…….”
“네.”
“그때 어떻게 실패했는지도 알 겸, 그 외에도 주의사항이라도 있을까, 해서 널 부른 거다. 그래도 네가 우리 쪽에서 강기찬과 가깝게 지냈으니…….”
… 워낙 수상쩍은 놈이잖냐.
경석 아버지가 말을 덧붙였다.
경석이 고민하다 진중하게 말했다.
“주의사항이라… 우선 놈은 레전드스토리에서 공개된 스킬 외의 것들을 사용할 줄 압니다.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다 들은 경석 아버지가 강기찬에 대한 평을 내렸다.
“역시 비정상적인 놈이다.”
“보통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는 특별히 그자를 고용할 거다.”
“그자라 하시면…….”
“맹인 검객.”
“아……!”
경석은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렸다.
맹인 검객은 유명했다.
암살 성공률 100%
왜냐고? 암살대상의 시각을 차단해 앞을 못 보게 만드니까.
“확실히… 맹인 검객이라면 강기찬쯤이야…….”
“저번에도 말했듯, 확실한 암살법은 간단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암살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이야.”
“근데, 그자는 찾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접선하셨습니까?”
“아니, 박창준이 살아있다며? 그놈이면 찾을 수 있지 않겠냐?”
“아버지, 그자의 연락처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기찬 암살은 제가 주도하게 해주십시오. 강기찬을 적절한 장소로 불러내는 것도 그렇고, 만약에 생길 불상사를 대비하기에도 제가 적합합니다. 무엇보다 꼭 제 손으로 강기찬, 그 새끼한테 복수하고 싶습니다.”
“흐음… 좋다.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보지.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 한번 잘 해봐라!”
“감사합니다.”
경석, 아니 강기찬이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