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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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한 방 먹으셨네요.”

승욱의 말에 범수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손주를 볼 나인데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에 승욱이 부드럽게 웃었다.

잠시 범수를 보던 승욱이 맞은편에 앉은 똑 닮은 부자를 보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도 만만찮거든요. 상은 우리가 탈 거예요.”

승욱이 강 씨 부자를 보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두 사람을 밀어붙였으나 강 씨 부자는 흔들리지 않고 마주봤다.

조용한 대치가 이어지고,

멀리서 식판을 들고 갈까 말까 고민하던 편집 기사는 조용히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끼어들지 말자.’

혼자 먹는 밥이 편하게 느껴졌다.

* * *

블레스 스튜디오 내에서 ‘류박 vs 강강’ 매치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남매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뜨겁게 쏟아지는 햇빛.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새하얀 모래사장.

두 사람은 지금 신혼여행의 성지, 몰디브에 와 있다.

“헤이! 연! 비키니 엄청 예쁘잖아?!”

“케이티. 시끄럽습니다.”

“뭐, 어때. 여긴 우리밖에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지연! 마음껏 네 자신을 드러내는 거야!”

그것도 오랜만에 만나는 ‘드래곤 엠페러’ 팀과 함께.

워낙 유명인이다 보니 숙소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마침 사장님네도 휴가를 떠난다고 하고, 거기에 케이티들도 합류했다.

합류하게 된 사정은 다름이 아니라 생일 때 못 와서 미안하다면서 겨울 휴가를 한국으로 왔는데 마침 우리가 휴가를 간다고 하니 따라나선 것.

사장님은 흔쾌히 케이티들의 합류를 허락했다.

“케이티 부끄러우니까 그만 말해줄래?”

“원래 휴양지에서는 사람이 개방적이게 되는 법이야.”

어휴. 처음 만났을 땐 조금 낯가리는 것 같더니 이제는 완전 개방적인 서양인의 모습이네.

함께한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저 모습이 진짜 케이티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화보 아니면 속살을 드러내는 게 좀 그렇다고.

지연이 방방 뛰는 케이티를 보고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지한이 옆에서 자켓을 걸쳐줬다.

“누나 이거 걸쳐.”

“고마워.”

“우우. 지연의 아름다운 몸을 가리는 건 천벌받을 짓이야.”

“이제 그만하시죠, 케이티.”

“꺅!”

보다 못한 로드리오가 딱밤을 때리며 케이티를 말렸다.

케이티가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가라앉았다.

역시 케이티가 말썽부릴 땐, 로드리오를 부르면 된다니까.

지연이 동생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워터 빌라라 숙소와 연결된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바다에 입수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새 기운을 회복했는지 옆으로 헤엄쳐온 케이티가 눈을 빛내며 남매에게 손짓했다.

“헤이. 어서 와. 인어 왕족님들!”

몇 년 전 있었던 영상을 써먹는 케이티를 보고 지연이 웃었다.

“무례하다. 예를 갖춰라.”

“합. 방금 지연. 완전 머메이드 퀸이었어.”

완전 섹시했다며 케이티가 한 번 더 해달라고 졸랐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의 부탁이었다.

못할 건 없지.

휴가에 와 자유로워진 지연이 케이티의 장단에 맞춰줬다.

275. 어디 가자고?

꺄르륵!

햇살이 내리쬐는 푸르른 바다 위에서 들리는 맑은 아이의 웃음소리에 주민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빌라와 바로 연결되는 바다에서 남매의 지인과 유나가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설날 이후로 바로 날아온 몰디브는 한국과 달리 햇살이 쨍쨍한 여름 날씨였다.

“아이고. 유나야 조심해야지.”

“어푸! 야! 천이나! 이게 죽으려고!”

“이게?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누나가 누나다워야지!”

“죽어랏!”

이나가 도진을 덮쳤다.

출산이 얼마 안 남아 한국에 남은 선우네를 제외한 사촌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잘 보이는 쪽에 놓여 있는 선베드에 누운 주민이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편하게 웃는 주민의 곁으로 그의 아내, 여진이 다가왔다.

“얼마 만이야. 주민 씨가 이렇게 웃는 게.”

“왔어?”

“응. 푹 자고 났더니 살 것 같더라.”

“당신이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알지만 몸 상할까 봐 걱정이야.”

복직하고 나서도 열정적으로 팀장 업무를 수행하는 아내를 보고 주민이 눈썹을 늘어트렸다.

일할 땐 칼도 안 들어갈 것처럼 차갑고 딱딱한 사람이 사적인 자리에서 다정하게 구는 걸 본 여진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한창 바쁠 때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그래도 열심히 일한 덕에 이렇게 휴가 올 수 있었잖아?”

그게 아니라면 휴일이라는 게 없는 이 업계에서 휴가를 쓸 수 있을 리 없었다.

주민도 그래서 일을 해치우느라 며칠 고생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2017년 하반기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큰일이 있었으니까 한 번쯤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번 일로 가수 팀도 일이 많았지?”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우리가 애들을 잘 대우해 준다고 하더라도 자식 등쳐먹으려는 부모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지연이의 일로 시작한 일에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탑엔터는 소속 연예인들의 인성을 확인하고 관리까지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몇몇 연예인들의 가족들을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했다.

가수, 배우 할 것 없이 소속사에 있는 모든 연예인의 친인척까지 관리 대상에 올랐다.

가수 2실에서 팀장을 맡고 있던 여진이 고생한 것도 당연했다.

“이번에도 수고했어. 주민 씨.”

“내가 잘한 게 맞을까.”

“그럼. 주민 씨는 멋진 보호자야. 그러니까 지한이랑 지연이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거잖아?”

여진의 말에 주민이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햇빛이 반사되어 바다가 반짝반짝 빛났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그곳에서 환하게 웃는 지연과 지한이 보였다.

자신이 저 웃음을 지켰다고 생각하니 주민은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멋진 사장, 멋진 아빠, 멋진 남편이 되어 줘.”

“그럴게. 유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마벨의 히어로보다 더 강해질게.”

“어이쿠.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구까지 지키려고?”

“나는 내 사람만 지킬 건데?”

주민이 당당하게 말하자 여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휴가를 오길 잘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이 느슨해지자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주민과 여진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엄마아! 아빠아!”

멀리서 유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황급히 떨어졌다.

여기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신혼여행의 성지라고 잠시 신혼 때라고 착각했나.

주민이 헛기침을 하며 유나의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유나가 손을 흔들며 주민과 여진을 불렀다.

“엄마! 아빠! 이거 봐!”

음? 뭘 보라는 거지?

수면 위에 잠시 고개를 내미는 무언가를 가리킨 딸을 보고 두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유나가 무언가의 정체를 알려줬다.

“여기 돌고래 있어!”

돌고래?

아무리 여기가 섬이고 물 위에 떠 있는 워터빌라라고 하지만 돌고래가 올 리가….

끼루룩!

“있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고래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수면 위로 푸른빛이 도는 짙은 회색빛의 몸체가 떠올랐다.

뭉툭한 주둥이 튀어나온 머리, 유선형의 몸체와 장난스러운 울음소리.

누가 봐도 돌고래였다.

“아니. 돌고래가 여기 왜 있어.”

“몰디브에서 돌고래랑 바다거북 투어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돌고래가 나타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 주민 씨.”

“하지만 그건 바다에 나가야 하는 거고. 여긴 사람이 있는 빌라 바로 옆이라고.”

“그건 아마 지연이랑 지한이 때문이 아닐까?”

“아.”

아내의 입에서 남매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주민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이미 예전에 비슷한 일로 인어 소동을 일으킨 걸 생각하면 돌고래쯤이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꺄아!”

끼루룩, 끼룩!

지한의 품에 안긴 유나에게 돌고래가 주둥이를 들이밀며 장난쳤다.

코앞까지 다가온 돌고래에 조카들과 남매의 지인들이 가까이 다가가는 게 보였다.

“돌고래! 한번 만져봐도 돼?”

“만져봐도 될까?”

지연의 통역에 돌고래가 고민하는 듯 수면 아래로 머리를 숨겼다가 내밀었다.

허락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는 돌고래를 보면서 케이티가 손을 들었을 때, 돌고래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물줄기가 튀어나왔다.

“꺄악, 푸흡!”

돌고래가 쏘아낸 물대포에 맞은 케이티가 침몰했다.

“케이티!?”

놀라서 다가가려는 로드리오를 지한이 말렸다.

“괜찮아. 쟤들이 도와줄 거야.”

“어? 어어. 하지만.”

“걱정되면 저길 봐 봐.”

지한의 말을 들은 로드리오가 케이티가 빠진 곳을 보았다.

그곳에 매끈한 등을 가진 돌고래의 등 위에 케이티가 엎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무슨.”

“쟤들도 같이 놀려고 온 거야. 그러니까 너무 케이티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노는 건 어때?”

“그렇네요. 우린 휴가 온 거였죠.”

지한의 설득에 로드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티도 멀쩡해 보였고, 다가온 돌고래들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로드리오도 한번 만져보지, 그래.”

“잠시 저 좋자고 스트레스를 줄 순 없습니다.”

“괜찮을걸. 그치?”

끼룩!

지연의 말에 돌고래들이 그렇다는 듯이 동시에 소리를 냈다.

얼른 만져보라면서 주둥이로 로드리오의 손을 툭툭 치는 걸 보니 참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들인 것 같았다.

지연과 돌고래의 보챔에 머리에 손을 갖다 댄 로드리오가 잠시 감동한 얼굴로 돌고래를 쓰다듬었다.

“지연아, 나도!”

“누나. 나도 하고 싶어!”

“알았어, 알았어.”

하나씩 지연의 안내를 따라 돌고래를 만지는 3세들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전세 낸 빌라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도 머릿속에 푸근한 광경을 새겨넣었다.

그렇게 몰디브에서의 날이 저물고 있었다.

* * *

돌고래들과 함께 해수욕을 즐긴 사람들이 숙소로 올라왔다.

물놀이한 덕에 지친 유나는 사장님이 데려가 잠을 재웠고, 어른들은 가벼운 칵테일 한 잔을 들고 건물이 만든 그늘에서 몸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 언제 할리우드에 올 거야?”

“음? 할리우드에 언제 가다니. 우린 이미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게 아니라! 다음 작품 말이야! 한이야 잠시 징병제? 아무튼 그거 때문에 잠시 군인이 되어야 했지만, 연도 그동안 안 왔잖아!”

케이티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할 말은 많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칵테일 한 잔에 벌써 취한 건 아니겠지, 케이티?

잠시 케이티가 취했는지에 대해 걱정했지만 다행히 케이티의 두 눈은 또렷했다.

지연과 지한이 대답이 없는 사이 케이티는 더욱 열을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감독님도 이제 우리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랑 리벤져스 제작해야 한다고 했단 말이야. 드래곤 엠페러 3편이랑 리벤져스 시리즈 안 찍을 거야? 이러다 우리만 빠지겠어!”

“으음. 마벨 시리즈를 생각하면 찍어도 벌써 찍을 때가 되긴 했지.”

솔직히 스틸맨이랑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기 있는 드래곤 엠페러를 마벨 측에서 이때까지 가만히 놔둔 게 더 대단했다.

지한이가 군대 가는 것도 그렇지만 마벨 측이 지한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론 지한이가 출연한 드래곤 엠페러가 그만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대우였지만.

“그럼 지한이만 할리우드에 가면 되겠네.”

“무슨 소리야! 연! 너도 와야지!”

“한국에만 있기에 연은 너무 아깝습니다.”

“맞아, 맞아. 더 넓은 세상으로 오라고.”

소년 만화의 주인공 라이벌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지연이 대답 없이 칵테일을 한 모금 홀짝이자 케이티가 태도를 바꿔 지연에게 달라붙었다.

“같이할래. 하고 싶어. 연이랑 같이 또 촬영하고 싶어!”

“새치기하지 마시죠. 저도 연이랑 같이 촬영하고 싶습니다.”

“로드리오, 내가 먼저야!”

“연.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아앗! 치사해! 그건 또 언제 준비해 온 거야!”

로드리오가 가져왔던 패드를 켜 문서를 열었다.

옆에서 준비되지 않은 자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케이티랑 로드리오는 시리즈 3편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나도 같이 할 수 있어!”

로드리오의 대답에 케이티가 지기 싫은 듯 외쳤다.

케이티. 지한이가 리벤져스 시리즈 들어가면 너도 들어갈지도 모르잖아.

지연이 애써 한숨을 삼켰다.

그런 케이티를 보고 지한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래서 누나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나? 나는.”

지연이 입을 열자 모두가 그녀의 입을 주시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뭐든 좋을 거 같아. 드래곤 엠페러랑 리벤져스 촬영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려도 되고, 아니면 좋은 작품을 만나 촬영할 수도 있을 거 같아.”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읽어볼게.”

로드리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연의 대답을 들었으니 1단계는 통과한 셈이었다.

그걸 본 케이티가 울상을 지으며 지연의 팔을 잡았다.

“나도! 나도 좋은 배역 있어. 에이전시에 가면 들어온 게 많을 거야!”

“케이티. 무슨 작품을 같이 할지도 안 정해놓고 무작정 하자는 겁니까.”

“에이바가 구해 줄 거야!”

어린애처럼 떼쓰는 케이티의 말에 로드리오가 지지 않고 맞섰다.

으음. 역시 술이 조금 들어가서 취한 거 같지?

지연이 동생에게 눈빛을 보내자 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우드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어찌 됐든 우리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러웠잖아. 한동안은 우리를 보면 그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거야.”

“지한이 네 말이 맞아. 이럴 땐 더 강한 이슈로 기존의 이미지를 지워버려야지.”

“마벨의 작품 같은 거 말이지?”

“그냥 작품도 아니지. 무려 마벨을 대표하는 히어로 중 하나잖아?”

지연의 대답에 지한이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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