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건 꽤 신선한데. 이것도 괜찮고.”
꽤 유쾌한 작품들이 많았다.
신선한 소재도 많았고.
창고에 오래 박혀 있었다고 했지?
그런 것치곤 요즘에 유행할 것 같은 소재와 전개가 흥미로웠다.
“아. 생각해보니까 판타지 요소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였지?”
창고에 있었다면 오래 박혀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전개랑 소재가 흥미로워 계약은 했지만 트렌드와 제작비, 기술 등의 요건으로 제작이 미뤄졌을 가능성이 컸다.
“역시 은주 언니네 팀이 감각이 좋다니까.”
검수했다지만 시나리오들이 전부 트렌드와 제작 여건들을 고려된 게 보였다.
저번까지만 해도 너무 트렌드에 치중하거나 무난한 시나리오를 배우 빨로 밀어보려던 게 눈에 보였는데 이번에 가져온 시나리오들은 반 이상 마음에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내가 촬영하고 싶을 정도.
하지만 나는 닌자 마을 출신의 닌자가 아니었고 분신술을 쓸 수 없는 이상, 한 번에 촬영할 수 있는 작품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 선택지는 간단하지. 드라마 하나. 영화 하나.”
최대로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일 것이다.
무리하면 더 들어갈 수 있겠지만 화면에 많이 나온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지 소비라는 것도 있고, 한 작품에서 나오는 캐릭터 이미지를 꽤 오래 가지고 있어서 배우의 경우 일부러 출연 시기를 조절하기도 했었다.
“그럼 드라마는 이걸로 하고, 영화는 이게 좋겠다.”
<난 여신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지연이 고르고 고른 두 작품을 보고 은주에게 연락을 했다.
238. 거기 망했어
“젠장. 우리 지연이 천사야.”
오늘도 입을 틀어막으며 팬들 사이에서 ‘출구폭파 영상’이라고 불리는 지연의 커버송을 들은 혜미가 하루를 보람차게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연이의 커버송을 반복재생하며 보고 온 혜미가 하품한 척 눈물을 닦으며 회사로 걸어갔다.
벌써 수백, 수천, 수만 번도 더 본 영상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날 같은 대가족 명절이 있을 때마다 급증하는 조회수에 오늘도 1을 보탠 혜미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오늘은 최 팀장한테 사표를 던질 수 있길.’
모든 직원들의 공공의 적인 최 팀장.
또 무슨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직원들은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이제 이 짓도 벌써 3년 차.
오늘도 벌어먹기 위해서 출근한 혜미는 콜 시스템을 켜고 헤드셋을 꼈다.
그녀와 비슷한 모양새를 한 사람들이 칸막이에 다닥다닥 붙어 응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혜미 씨. 오늘부터 이벤트 들어가는 거 알지?”
“아. 그게 벌써 오늘이네요.”
이벤트가 들어가는 날이면 콜센터는 불이 난다.
이벤트 문의하는 사람부터 주문이 안 된다, 결제가 안 된다 등등 문의 건이 폭주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죽어나겠구나.
혜미가 한숨을 삼켰다.
오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다들 긴장하며 입을 풀고 있을 때, 최 팀장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지각 안 했네.’
출근 시간은 9신데 콜 프로그램을 켜려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던 것이 바로 저 최 팀장.
정작 자기는 관리직이라며 맨날 늦게 출근한다.
본인 실적도 안 좋으면서.
자리에 앉은 팀장은 콜 프로그램을 켜 놓고 땀을 닦았다.
콜이 열리자 전쟁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한참을 전화받고 있을 때 막 상담을 끝낸 혜미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상담 내용을 저장하고 뒤를 돌아보자 최 팀장이 인상을 구기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하아. 또 무슨 일이지.’
뭐 때문에 트집을 잡는 건지 궁금했다.
“무슨 일이세요?”
“혜미 씨. 나 조금 전에 콜 받았는데 그거 이전 콜이 혜미 씨더라.”
“잠시만요. 확인해 볼게요.”
팀장의 말에 혜미가 상담했던 기록들을 살폈다.
나와 상담하고 나서 또 전화했다고?
기록을 살핀 혜미가 상담을 떠올렸다.
아. 부분취소하고 싶다고 하신 분이네.
부분취소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신 연세가 든 아주머니였어.
“네. 누군지 기억나네요. 이분이 왜요?”
“혜미 씨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안 된다면서 또 전화했지 뭐예요. 혜미 씨. 일 제대로 처리한 거 맞아요?”
“잠시만요.”
혜미가 해당 고객의 주문내역을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께서 잘 처리하셨는지 5가지 상품 중에 2가지만 취소한 게 보였다.
“잘되어 있네요.”
“당연하지! 내가 다시 처리해 드렸으니까.”
“예?”
“그거 내가 한 거라고요.”
“아, 팀장님께서요?”
“도대체 어떻게 설명했길래 고객이 못 알아들어서 다시 전화하게 만들어요? 이런 재통화 건이 생기는 건 좋지 않다고 내가 말했었죠? 모든 고객이 다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아주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교육 안 들었어요?”
또 시작이다.
최 팀장의 고객론.
연세가 드신 분이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드렸고, 내 폰 화면과 비교하면서 눌러야 할 버튼을 하나하나 설명해 드렸다.
고객의 주문을 우리가 개입해서 처리할 수 있지만 개인 주문 내역이기에 최대한 고객이 직접 취소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편.
만약 그게 힘들 경우 이쪽에서 취소해 드릴 수 있다고 했지만 고객님이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한 게 생각난다.
아니 그런데 이게 화낼 일이야?
“딱 보고 고객이 혼자 못 할 거 같으면 본인이 알아서 취소해 줘야지 뭘 가르치고 있어. 덕분에 내가 전화 또 받았잖아요. 이러면 좋은 평가 줄 수 없어요, 혜미 씨.”
경력 좀 있다고 매니저 단 주제에 훈계하기는.
우리 중에서 제일 클레임 많이 걸리는 사람이 누군데?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맨날 관리직이라는 핑계 대며 콜도 안 받고.
바쁠 때 딸 학원이나 학교에서 전화 왔다면서 사무실에서 전화 받으면서 누가 누구한테 큰소린지.
속으로 구시렁대던 혜미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혜미 씨. 회사에 데이트하러 왔어요?”
“네?”
“아니 복장이 그게 뭐예요.”
내 복장이 어때서?
블라우스에 깔끔한 검은색 바지인 평범한 오피스룩인데?
전화를 받던 다른 직원들도 최 팀장의 말에 혜미를 힐끔거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지?
모두가 의문에 빠질 때, 최 팀장이 황당한 소릴 했다.
“가슴이 그렇게 파인 걸 입고 오면 어떡해요?”
“…네?”
혜미가 이것만은 편히 넘기지 못하고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다른 직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요즘 유행하는 V넥 블라우스잖아.
하늘하늘하고 하얀색이지만 비침 방지도 되어 있고, 속옷 색깔도 안 비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여기 혜미 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 직원도 있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회사에 남자 꼬시러 온 거 아니잖아요. 복장은 단정히 하고 다닙시다. 우리가 자율 복장이라지만 그래도 회사잖아요.”
“….”
혜미가 황당함에 말을 잃자 최 팀장은 자기 할 말이 다 끝났다는 듯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키 때문에 고집하는 최 팀장의 하이힐 소리가 송곳처럼 고막에 꽂혔다.
최 팀장이 돌아가는 걸 본 옆자리 직원이 혜미를 토닥였다.
“내버려 둬. 최 팀장이 너 예뻐서 질투하는 거야.”
“오늘 보니까 볼터치 과하게 했던데 화장도 별로 안 한 혜미 씨가 더 예쁘니까 트집 잡은 거지.”
“나 아까 혜미 씨 통화하는 거 들었는데 상담 잘했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동료들의 응원에 혜미가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 같은 한숨을 내쉬곤 최 팀장의 말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키보드 옆에 놔둔 혜미의 폰에 메시지가 떴다.
마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콜이 절묘하게 멈춘 때 온 메시지라 혜미가 최 팀장을 살피고 폰을 켰다.
[안녕하세요, 이혜미 작가님. 하늘고래 스튜디오입니다. 예전에 저희 측에 제출해주신 공모전 출품작 <난 여신이다>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하늘고래 윤세경]
“어?”
하늘고래라면 대기업 계열사 측에서 인수한 제작사 아닌가?
예전에 막내작가로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넣은 공모전 중에 한 곳이 하늘고래가 주최한 곳이란 걸 떠올렸다.
그때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던 곳 중에 사라진 곳도 있고, 살아남은 곳도 있었는데 하늘고래는 꽤 실력이 있는 곳이었고, 몇 년 전에 대기업 계열사에 인수되면서 제작 환경 또한 좋아진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작가를 그만둔 나한테 왜?
혜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답장했다.
[안녕하세요, 이혜미입니다. 지금은 근무 중이라 연락을 할 수 없네요. 혹시 12시에 연락할 수 있으실까요? 아울러 왜 갑자기 제게 연락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연유로 연락해주셨는지 확인하면 이후 통화할 때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몇 번을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그 사이 콜도 몇 개 받으며 작성한 답장을 보냈다.
그쪽에서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보냈는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회신이 왔다.
[자세한 얘기는 통화로 전달해 드리겠지만 하늘고래 스튜디오에서 작가님의 <난 여신이다>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관련 사항은 12시에 통화할 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끼흡!”
오늘 최 부장이 시비 걸었던 건 다 이 일 때문이었나보다.
나쁜 일 뒤에 찾아온 행운에 혜미가 입을 틀어막았다.
* * *
오늘은 직접 구운 레몬 마들렌을 만들어 온 지연이 층을 돌며 전달하고 은주가 있는 배우 3실로 향했다.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며 손에서 휴대폰을 떼어 놓질 못하는 언니오빠들을 본 지연이 얌전히 은주에게 눈인사를 하고 회의실로 향했다.
지연이 회의실에 마들렌과 딸기에이드를 세팅했을 때 은주가 장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휴.”
“오늘도 고생이 많아.”
“죽겠다.”
“지연아 이거 마셔도 돼?”
“마셔도 되죠. 더 있어요.”
“고마워.”
장훈이 지연이가 준비한 마들렌과 딸기에이드를 여러 각도와 필터로 찍은 뒤 한 모금 쪼옥 빨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탄산과 진한 딸기청이 꿀맛이었다.
옆에서 맛있게 먹는 장훈을 본 은주가 자신도 딸기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방금까지 일하느라 열 올랐던 머리를 딸기에이드가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그래서. 또 뭐 때문에 그렇게 열 올리고 있었던 거야?”
“아아. 그거? 후우.”
내 말에 깊은 숨을 뱉는 은주 언니를 보니까 이건 나랑 관련된 일 같은데.
창고에서 꺼내온 작품들이라 뭔가 하자가 있는 건가?
표절은 아닌 거 같던데.
돌아오기 전에도 비슷한 작품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걸.
“하늘고래 측에선 연락이 왔어. 지연이 네가 출연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쪽에서도 부랴부랴 움직이더라. 작가도 벌써 찾아왔대.”
“작가를 찾아왔다고? 작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나 봐?”
“아. <난 여신이다>가 멜로의 대모라고 불리는 오희은 작가님 밑에 있던 막내작가가 쓴 대본이더라고. 너도 보면 알겠지만 오희은 작가님이랑은 글이 완전 다른 스타일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리고 공모전 제출한 것도 꽤 오래됐고. 그때 공모전을 마지막으로 드라마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운 좋게 연락이 닿았대.”
“전화번호는 그대로였나 봐.”
“오희은 작가님 덕분이지. 연락이 바뀌어도 그분한테 안부 연락은 계속했었나 봐.”
그 말을 들으니까 사람은 좋은 사람 같아서 안심이 된다.
창고에서 꺼내오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있구나.
작가랑 연락이 안 될 경우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여신이다>는 하늘고래랑 같이 제작에 들어갈 거 같아. 마침 그쪽이 JBC랑 끈도 탄탄하니까 아마 편성도 그쪽에서 날 거 같아.”
“그렇구나. 그럼 언니가 지금 이렇게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쪽이겠네.”
“맞아. 그쪽이랑 연락이 닿아야 사람을 찾든 권리를 사 오든 할 텐데 연락이 안 돼.”
“응?”
아니 왜?
지연이 머릿속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동안 은주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영화사 망했어.”
“아.”
그래서 연락이 안 닿았구나.
직원이나 스태프들이 이 바닥에 있으면 그래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무튼 주인 찾느라 여기저기 수소문 중이긴 한데 지금까지는 찾기 쉽지 않네. 지연이 네가 두 작품을 동시에 하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쪽은 조금 걸릴 거 같아.”
“아. 난 괜찮아. 쉬엄쉬엄해. 정 안 되면 다른 작품 고르면 되지.”
지연의 말에 은주가 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장훈이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미안해, 지연아. 우리가 스토리랑 표절 쪽만 신경 쓰다 보니까 다른 걸 검토 못했어.”
“다른 거라니?”
“다른 곳도 마찬가지야. 망한 곳이 반 이상이야.”
은주 언니가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니 아무리 이쪽이 대박 아님 쪽박이라지만 너무 많이 망한 거 아니야?
“대표가 투자만 받고 나른 일도 있고, 블록버스터 찍을 거라고 제작비 왕창 쏟아부었다고 손익 분기점도 못 넘긴 곳도 있고, 파산한 곳, 흡수된 곳, 중국으로 넘어간 곳 등등. 암튼 엄청 많아.”
내가 시나리오를 골랐다고 끝인 게 아니었구나.
이때까지는 캐스팅받거나 편성이나 제작사가 확실한 곳에서만 일해서 잘 몰랐다.
“아무튼 이 일은 우리가 해결해 볼게. 며칠 있으면 하늘고래 측에서 연락이 올 거야. 그때 미팅있을 거야.”
“좋아. 그리고 시나리오는 수정할 거지? 이대로 보내기에는 시대가 안 맞는 부분이 보이니까.”
“당연히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미팅 전에 말은 해 볼게.”
“작가님 빨리 보고 싶네. 혹시 다른 공모전에 낸 것도 볼 수 있을까?”
“네가 원한다면 찾아봐야지. 작가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
“그냥 어떤 스타일인지 미리 알아보려고 하는 거지. 글을 보면 그분이 어떤 분인지 대략 알 수 있으니까.”
글에는 작가의 성격이라고 할지 그런 게 묻어나온다.
사람을 보는 시선이 어떤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떤지.
아무리 로맨스 장르여도 작가의 시선이 묻어나오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걸 보면 조금이라도 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가급적 찾아보는 편이었다.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난 <난 여신이다>만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을게.”
“그래. 이제 집에 갈 거지?”
“응. 집에서 연습하는 게 편하니까.”
“데려다줄게.”
마들렌을 먹던 장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갈 수 있는데.
차도 직접 운전해서 온 날 뭘로 보는 건지.
저번에도 그렇고 다들 아직도 나를 너무 어린애로 보는 거 같았다.
“나 차 가지고 왔어. 괜찮아.”
“그래도.”
“나 데려다주면 장훈 오빠는 어떻게 돌아오게.”
“택시타면 돼. 실장님 경비처리 되죠?”
“지연이라면 오케이.”
“봤지?”
상사의 허락에 장훈이 이거 보라는 듯이 말했다.
어휴.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어.
“다음에는 나 혼자 갈 거야.”
“그래.”
“그럼 언니. 잠은 자면서 해.”
“조심해서 가.”
은주가 손을 흔들었다.
지연이 가는 걸 확인한 몇몇 직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통화 중이거나 타자 치고 있으면서도 손을 흔들어주다니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연에 혹시 집에 마들렌 더 없니?”
“조금 더 있긴 한데 갈 때 줄까?”
“응. 너무 맛있다 이거. 새콤해서 계속 입에 들어가.”
“그치? 레몬이야.”
“밥 못 먹을 때 한 개씩 먹으면 딱 좋을 거 같아.”
“아무리 제때 밥 못 먹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끼니는 챙겨 먹어야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네.”
장훈이 아련한 눈으로 차 문을 열었다.
예의 바른 신사처럼 지연을 뒷좌석에 태운 장훈이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다음에는 일하면서 먹을 수 있는 걸로 준비해야겠다.’
지연이 머릿속에 있는 레시피를 뒤졌다.
239. 공동집필 어떠세요?
이혜미 작가와의 미팅은 꽤 빠른 시일 내에 잡혔다.
하늘고래 측에서는 못 잡아서 안달인 날 잡았다는 것에 환호했고,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