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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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지연이가 자랑한 그 후배라면서요?

└얼굴 보니까 다 예쁘다. 비주얼 구멍이 없네.

순식간에 팬들 수가 몇 배로 뛴 메시아가 감격한 얼굴로 폰 화면을 바라봤다.

댓글 쌓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얘들 노래 좋은데? 왜 이때까지 묻혀 있었음?

└홍보가 덜 됐던 거지.

└역시 우리 지연이 후배! 지연이가 그냥 띄워줄 리가 없지.

└앞으로도 좋은 노래 부탁해요.

“다들 우리 노래 좋대요. 얼굴도 예쁘대요. 앞으로도 잘 부탁한대요.”

“어떡해. 나 또 울 거 같아.”

“아린 언니. 역시 아까 눈물 고인 거 맞구나.”

“예림아, 빨리 내려봐.”

“은비 너도 이번엔 좀 좋은가 보네.”

방송이 곧 시작하는데 다들 머리를 맞대고 댓글만 보고 있었다.

이제 태클을 걸 때도 된 거 같은데 조용하자 지연이 옆을 쳐다봤다.

“은주 언니. 애들 안 말려?”

“지금은 좋아하게 놔두는 게 메시아한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하긴 그동안 아닌 척해도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거 같긴 하더라.”

“무대 올라가기 전에 저렇게 사기를 충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그렇게 말하는 은주의 얼굴에 벅찬 감정이 흘러나왔다.

은주 언니는 나보다 더 메시아 애들과 함께 했으니까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거다.

며칠 전에도 잠을 뿌리치고 애들을 위해서 뛰어가지 않았던가.

“이번엔 잘 될 거야.”

“지연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이 된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이제 행운의 부적 같은 걸 넘어서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 취급인 거 같은데?

그리고 잠시 후 회사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 * *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뒤에 대기하던 메시아들은 객석 중간중간에 보이는 자신들의 응원문구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긴 내 팬들이 있던 자린데 곧 메시아가 나온다는 걸 알고 응원할 준비를 해 준 모양이다.

‘괜히 뿌듯하네.’

역시 내 팬들은 착하다.

말썽을 부리지도 않고 내가 하는 것마다 좋아해주고, 내 가수&배우 챙긴다고 내 이름으로 기부도 해 주는 착한 팬들이었다.

지연이 속으로 팬부심을 부리고 있을 때 자신들에 대한 관심에 또 잔뜩 긴장을 메시아 멤버들이 덜덜 떨면서 지연의 곁에 붙었다.

“서, 선배님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다들 연습 열심히 했잖아. 음방도 잘 끝냈으면서.”

“그런데 너무, 지금 사람들이, 많아요.”

“무대만 집중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선배님, 손잡아 주세요.”

“내 손?”

“제발요!”

“부탁이에요!”

“기운 좀 받아갈게요.”

수능이나 고시를 위해서 기운을 받아간다는 행운의 바위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 내 손을 잡아서 긴장을 떨칠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못 빌려줄까.

긴장에 떠는 후배들을 위해서 지연이 손을 내밀었다.

양손을 둘씩 나눠 잡은 멤버들이 지연의 손을 쪼몰락거렸다.

“메시아 올라갈게요.”

“그럼 다들 홧팅!”

“화이팅!”

“잘 하고 와, 얘들아.”

지연과 매니저들의 응원을 받은 아이들이 조금보다 진정된 얼굴로 무대 위를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악!!!

메시아가 올라가자 군대에 간 것 같은 함성이 들렸다.

저 정도면 내 팬만이 아니라 다른 걸그룹 팬들도 같이 함성을 쳐 준 거 같은데?

MC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바로 메시아의 컴백곡인 오라토리오가 시작됐다.

그때 함성을 뚫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최아린 이소정 김예림 윤은비 메.시.아!

아이돌들의 전유물인 응원법이었다.

응원법이라니 메시아 찐팬인가?

커다란 목소리에 가수도, 팬들도, 스태프들도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혼자 메시아 응원카드를 만들어 온 짧은 머리칼의 남성이 보였다.

군인티가 나는 걸 보니 전역한 지 얼마 안 됐거나 휴가 나온 군인인 거 같았다.

혼자서 100인분을 하는 팬을 본 메시아가 표정을 수습하고 무대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꿈에서 만났었죠

당신을 난 기억해요♬

리드 보컬이자 맏언니인 아린이 첫 소절을 뗐다.

무대 아래에서 떨던 모습은 어디 가고 프로다운 얼굴로 무대를 소화하고 있었다.

♬당신을 찾아 헤매이던 날

그런 날조차 날 설레게 했죠♬

말괄량이 막내 예림이 맏언니의 뒤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무대 위에서 예림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예림이 자신의 파트를 부르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그 자리에 엘리와 은비가 들어왔다.

♬언제 오시나요 내 소중한 사람

그댈 만날 날 손꼽아 기다렸어요♬

무표정했던 은비가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하얗고 긴 손이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이윽고 두 손을 모은 엘리가 기도하듯이 노래를 불렀다.

♬Dear my love

I miss u♬

엘리의 노래와 함께 모두가 군무를 췄다.

각도기로 잰 듯 팔을 뻗는 각도까지 일정한 그들을 본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소중한 마음 두 손에 모아 기도해요

영원히 기다릴게

세상의 중심에서♬

최아린 이소정 김예림 윤은비 메.시.아!!

군인 같던 찐팬의 응원을 이제는 모두가 따라 했다.

다들 메시아의 노래에 흠뻑 빠져든 게 보였다.

저렇게 잘하는데 왜 이때까지 묻혀 있었을까.

“이제 쟤들은 걱정 없겠네.”

“이것도 다 지연이 네 덕분이야.”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애들 기운을 북돋아 줬잖아.”

“열심히 한 건 애들이지.”

“쟤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에이, 설마.

지연의 시선이 조명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메시아에게로 향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게 인기 아이돌의 아우라가 비추는 것 같았다.

메시아는 내가 아니었어도 잘됐을 거야.

지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 * *

꿈만 같았던 무대를 하고 내려온 메시아 멤버들은 아직도 무대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열기가 가득한 얼굴로 걸어왔다.

자신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준 팬이 있다니.

짧은 머리칼에 굵은 선을 가진 그 팬의 얼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데뷔 이후로 관객들이 이렇게 호응해준 무대는 처음이었다.

“너희들! 그동안 진짜 고생했어!”

“여기 온 사람들이 전부 후렴구 따라 부르는 거 봤어?”

“예에.”

무대에서 내려와 얼빠진 얼굴로 있는 메시아들을 매니저들이 데리고 이동했다.

대기실에 도착하고 자리에 앉혀진 아이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커지고 있을 무렵 한 줄기 희망이 동아줄처럼 내려와 그들을 구원했다.

“잘했다. 진짜 잘했어.”

“흐윽. 실장니임. 우리 잘한 거 맞죠?”

“맞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흐아아아앙.”

가장 어린 예림이부터 눈물 많은 맏언니 아린, 엄마처럼 다정한 엘리, 부정적이던 은비까지 전부 눈물을 터트렸다.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오는 길에 스태프들이 보낸 호의적인 시선을 확인했다.

오랜 연습생 생활에 잘나가는 소속사와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도 빛을 보지 못할 거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자신들의 앞길에 여명이 떠오르고 있었다.

멤버들이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연 선배님. 진짜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도 잘할게요.”

갑작스럽게 모두의 감사를 받은 지연이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메시아가 잘한 거지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야. 이건 전부 너희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

“지난번에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도 묻혔어요.”

“선배님이 오시니까 바로 잘됐어요. 진짜 선배님 덕이에요.”

“지연 선배님은 우리의 행운의 여신이에요!”

“선배님 손 또 잡아주세요.”

은비가 팔을 벌리고 지연에게 다가왔다.

그건 손잡는 포즈가 아니잖아?

누가 봐도 안아달라는 포즌데?

“얘들아 잠깐. 나 곧 무대 올라가야 하는데.”

“뭐 어때. 한번 안아줘. 화장은 고치면 되지.”

“언니까지?”

지연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은주의 허락까지 받은 메시아 멤버들이 팔을 벌리고 지연에게 달려들었다.

“선배님 저희 이번 앨범 대박 나게 해 주세요!”

“저희 콘서트도 하게 해 주세요!”

“광고도 찍고 싶어요.”

“다음 앨범도, 다다음 앨범도 잘 되고 싶어요.”

멤버들이 소원을 빌며 지연을 안았다.

진짜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온몸에 퍼지는 온기에 지연의 입꼬리가 은근슬쩍 올라갔다.

180. 나 왜 우냐

음악창고가 열리는 KBC 공개홀에는 자신의 가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열기로 가득했다.

“됐어! 오늘 방송은 성공이야!”

메시아가 팬들에게 불을 지폈다.

지연의 SNS 업로드

혼자서 100명분을 하던 짧은 머리칼의 남팬

놀라운 무대를 보여준 메시아에게 자극받은 다른 아이돌

월드스타의 출연에 발카를 벗어난 카메라 무빙 등등

모든 것이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었다.

[네. 정말 멋진 무대였죠?]

[식스보이즈 선배님들의 ‘Mask’ 정말 멋졌어요.]

지연의 전 무대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열 띤 얼굴로 방금까지 숨 가쁘게 무대를 소화한 그들의 얼굴에 뿌듯함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무대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동안 지연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팬들의 함성을 받은 많은 아이돌들.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격한 안무를 소화함에도 미소를 그리고 있던 아이돌과 그들의 무대에 최선을 다해 호응해주는 팬들.

카메라 화면 밖에서 최고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구슬땀을 흘리는 제작진들.

‘선배님 덕분이에요.’

데뷔 이래 처음으로 팬들의 응원을 받아봤다는 메시아 멤버들의 감사 인사가 지연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

선배로서 후배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SNS를 한 게 다였다.

그것만으로 그룹이 떴다고?

그랬으면 다른 소속사에서 나온 많은 후배 그룹들도 떠야 했다.

메시아는 이번 앨범을 위해서 몸살이 날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했고, 운 좋게 그들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MC의 멘트가 계속되는 동안 지연이 무대에 올라서서 앞을 쳐다봤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대와 설렘.

기쁨과 애정.

거의 1년 만에 컴백하는 것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이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할 만큼 자신은 최고의 가수인가?

지연이 민소매 원피스 아래 드러난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어린 날, 동생과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붉은 자국이 여전히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동생과 나만의 상처.

‘내가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수 있는 건 이 선물 덕분이야.’

지금도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을 존재가 준 선물.

항상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도 되는 걸까?

돌아오고 나서 나는 나 자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동생을 외면할 수 없어서 동생과 함께하기로 하고 그 대가로 이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평생 동생을 버리지 말 것.

이 세상에 하나 남은 내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할 것.

그것을 명제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는 건 동생과 함께 하는 과정 중에 생긴 부산물 같은 것들이었다.

…그저 너는 네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단다.

나는 정말 내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다음 무대는 정말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무댄데요?]

[바로 월드 스타가 돼서 돌아온 지연의 무댑니다.]

[다들 함께 보시죠. 지연의 ‘Alone’]

MC의 소개가 들렸다.

오늘따라 공들인 세트장 위에 지연이 우뚝 서 있었다.

어둡게 반짝이는 세트 뒤로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스크린에는 어두운 밤하늘이 비춰졌다.

남색 하늘 위에 창백한 달이 떠올랐다.

따다단 딴 따라라♬

연주자의 손이 움직이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채웠다.

하늘하늘한 민소매 원피스에 짙은 애쉬그레이색의 머리카락에 구불구불 웨이브를 넣어 반묶음을 한 지연의 머리 위로 조명이 쏘아졌다.

지연이 선물로 받은 크림색 마이크를 들었다.

반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연의 이름을 외치며 함성을 지르던 팬들이 짜기라도 한 듯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지연이 분위기가 어쩐지 이상한데.”

“예?”

무대 아래에서 지연을 보고 있던 은주가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지연의 기세에 긴장했다.

옆에 있던 매니저가 은주의 말에 돌아봤지만 대답을 해 줄 틈은 없었다.

홀을 장악한 지연의 아우라에 음악 방송에 온 다른 가수의 팬들도 합죽이가 된 채 지연에게 집중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그때 지연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창문 틈 사이로 빛이 보여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어♬

“미친…!”

“음색 미쳤어…!”

한 소절 불렀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숨죽인 감탄이 튀어나왔다.

객석이 한 차례 술렁거렸다.

리허설을 들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들썩임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지연은 자신의 노래에 파도를 파듯이 울렁이는 팬들의 동요를 고요히 지켜봤다.

입을 틀어막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팬들이 보였다.

♬다시 또다시 달이 뜬 낮이 시작돼

웅크린 내 작은 공간에 달빛이 들어왔어♬

메인 PD의 지시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달빛이 가까이 스며들고

내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려

이불을 뒤집어써

이곳만 완벽한 내 공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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