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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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흐아아. 좋다.”

“좋다니 다행이네.”

냐아앙

컹!

오랜만에 산책을 나오자 쌓여 있던 짜증이 말끔히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상쾌했다.

아직 쌀쌀한 날씬데도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나는 집순인 줄 알았는데 사실 아니었던 건가?

지연이 밝아진 얼굴로 리드줄을 잡고 걸어다녔다.

“애들도 나와서 기분이 좋나 봐.”

“나 때문에 애들도 고생이 많네.”

“뭘.”

“너희들 너무 앞서가지 말고.”

“알았어.”

영훈 오빠의 말에 리드줄을 당겼다.

잘 가고 있다가 강제로 멈춰진 모짜가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뱉었다.

애애옹

“모짜 너는 고양이면서 왜 산책에 따라 나온 거야.”

애옹

모짜가 고개를 들었다.

잔뜩 과시하는 포즈를 한 모짜를 보고 지연과 지한이 웃었다.

“모짜도 누나 지켜주고 싶었나 봐.”

“아이구. 우리 모짜 기특해. 너무 고마워.”

냥냥

자리에 앉아서 모짜를 잔뜩 칭찬해주고 일어났다.

다시 산책을 시작하자 지연의 주위에 있던 이들도 다같이 움직였다.

이거 너무 대이동 아닌가.

고개를 돌리자 주위를 빙 둘러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이 보였다.

누가 경호원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한 덩치 하는 사람들이었다.

형석 아저씨와 애런이 엄선한 인물들이었다.

얼굴이 알려진 바람에 비밀경호나 경호원들을 관리하는 일만 하던 형석 아저씨가 모처럼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 같다고 기뻐하며 말했던 게 떠올랐다.

“형석 아저씨도 너무 많이 부른 거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지한이 말이 맞아. 애런한테 들었는데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이 정도 경호 인력은 데리고 다닌데.”

“으응.”

그런데 그건 스케줄 중일 때 아닌가?

지연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지한이 한발 앞서 말했다.

“우리가 미국에 온 것부터 이미 스케줄 중이야.”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캐스팅됐으니까 스케줄 시작한 걸로 봐도 무난하겠지.

“그런데 왠지 시선이 많이 느껴지는데.”

“아, 그거라면 아마 이거 때문일 거야.”

영훈이 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해서 보여줬다.

[마벨 다음 히어로는?]

[마벨의 차기작, ‘드래곤 엠페러’에 오지한 캐스팅]

[천재 스타 남매 탄생? 오지한, 지연. 마벨의 차기작에 공동 출연결정]

[할리우드에서 주목하고 있던 배우 오지한을 잡은 마벨]

[오지한, 마벨의 히어로 ‘드래곤 엠페러’ 에반 골드 역에 캐스팅!]

[루카스 감독 ‘지연은 무척 훌륭한 배우’]

우리 캐스팅 소식이 나갔구나.

애런이 그쪽에서도 의욕이 넘쳐서 곧 촬영에 들어갈 거라고 했던가?

이런 기사가 나올 때가 되긴 했지.

그럼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전부 기자들인가?

“요 근래 집 주변에 파파라치들이 늘었거든. 그거 때문에 경호 인력을 늘리려고 했어. 마벨에 갔다 온 것도 훈련 일정이랑 이런저런 주의사항이랑 사건 사고에 대해 들으러 간 거여서 경호에 신경을 쓰란 말도 들었어.”

“사건 사고?”

“파파라치들이 하도 끈질기게 붙어서 그거 때문에 내용이 유출되거나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대.”

“내용이 유출된다고? 어떻게? 촬영장까지 찾아와?”

“잠입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세상에.

파파라치는 무섭구나.

한국의 사생팬보다 더 무서운 거 같아.

아니, 비슷한가?

파파라치와 사생팬의 위험도가 비슷하다고 인식하자마자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오늘은 이만 들어갈까?”

“응. 훈련 들어가기 전에는 집에만 있는 게 좋겠어.”

“그러자.”

점점 몰리는 사람들에 지연과 지한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공원을 빠져나왔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끼이익!!

커다란 자동차가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뭐지?”

“음주운전?”

“브레이크 고장일지도. 일단 물러나자.”

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횡단보도에서 물러나려고 할 때였다.

비틀거리던 자동차가 횡단보도에 서 있던 우리에게 돌진했다.

“위험해!”

거칠게 자신의 몸을 붙잡아 이끈 경호원들 사이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운전자가 보였다.

그는 분명 이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154. 반격

부우웅, 드드드득, 쾅!

타이어 마찰음이 고막을 긁었다.

횡단보도로 돌진한 차가 나무를 들이박고 멈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모두가 깜짝 놀라 꼼짝 못 하고 멍하니 사고 난 차량만 보고 있었다.

“두 분 다 다치신 곳 없습니까?”

낮은 저음이 들렸다.

지연이 양팔에 나와 동생을 안은 채 뒤로 물러난 경호원을 올려다봤다.

옆을 보니 나무통 같은 팔뚝에 안겨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지한아, 너는 괜찮아?”

“어? 으응. 괜찮아.”

왕!

냥!

“휴우.”

자신들도 무사하다는 듯이 짧게 짖은 인절미와 모짜를 본 지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지연이 자신을 안고 있는 두꺼운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지연의 신호에 남매를 품에 안은 경호원이 양팔을 풀었다.

나무통 같은 팔에서 풀려난 지연이 몸을 돌려 자신들을 지켜준 경호원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이름이…아놀드였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누나도 저도 무사할 수 있었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나무통 같은 팔을 가지고 있는 경호원은 말투도 나무토막이 말하는 것처럼 딱딱했다.

자신이 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아놀드는 곧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주변을 경계하는 일에 합류했다.

“운전자 의식은 없습니다. 부딪힌 충격으로 기절한 것 같습니다.”

“911은 제가 불렀습니다.”

경호원들이 하나둘씩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 얼음상이 되어 있던 다른 이들도 곧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을 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파파라치는 대놓고 현장 사진과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를 찍어댔다.

“이거. 당장 너희들이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기사가 퍼지겠는걸.”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지. 오빠는 애런이랑 같이 마벨에 미리 연락 좀 해줘. 우린 사장님이랑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미리 연락할게.”

“그래. 알았다. 빨리 움직여야겠어.”

“응. 그리고 저 사람 옆에 사람 좀 붙였으면 좋겠는데.”

“저 운전자? 너무 신경 쓰지 마. 사고가 난 건 너 때문이 아니니까.”

자신이 사고 난 운전자를 걱정하는 줄 알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영훈을 보고 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사고 나기 전에 봤어. 저 운전자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

“뭐?”

“우릴 노린 거야.”

지연의 말에 영훈과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이 딱딱하게 얼굴이 굳었다.

일부러 노렸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영훈이 지연의 말을 듣고 곧바로 경호팀 팀장인 로빈을 불렀다.

“알았어. 로빈 씨.”

“네.”

“저 사람과 함께 병원에 갈 사람을 두 사람 정도 골라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칼로스, 아이작. 둘이 따라가도록.”

“예썰.”

“알겠습니다.”

로빈의 말에 두 사람이 사고난 차량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더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남매를 데리고 빠져나갔다.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하면서 로빈이 팀원들에게 재빨리 지시를 보냈다.

그저 할리우드 유명배우를 경호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 지연의 말을 들어보니 경호단계를 한 단계 더 높여야 할 것 같았다.

“형석이 우릴 고른 이유를 알겠습니다.”

“예?”

“어쩐지 단순 유명인 고용치고는 우리 전부를 고용한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라진 로빈의 태도에 지연이 그를 돌아봤다.

“그 말은 로빈 팀장님의 팀은 단순 경호를 하는 팀이 아니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경호 실력으로는 우리가 세계 최고입니다.”

지연의 말에 로빈이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로빈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저거 설마 기뻐하는 건가?

아무튼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거겠지?

지연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로빈을 보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대단한 분이신줄 몰랐네요.”

“믿음직스럽습니다, 로빈 팀장님.”

“앞으로도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앞으로 잘 보여드릴 테니 지금은 이만 차에 올라타시죠.”

자부심 넘치는 로빈의 말에 지연과 지한, 영훈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형석 아저씨가 사람을 제대로 고른 모양인데?

왠지 로빈과 로빈이 자신하는 팀이라면 믿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집에 들어오고 나서 로빈은 대책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근접 경호원만 남겨두고 밖으로 향했다.

위협이 확인된 만큼 조정이 필요했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씻길 새도 없이 곧바로 한국에 있는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쪽은 아직 새벽일 텐데도 사장님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뒤 수화기 너머로 잠시 무언가 부산스러운 기색이 느껴졌지만 그 뒤 이어진 주민의 말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안 되겠다. 내가 가야겠어.

“사장님 안 돼요.”

“갑자기 온다고 하면 어떡해요. 아직 연말이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지금 다들 바쁠 때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진짜 괜찮아요.”

“사장님 우리가 화상통화로 다시 걸게요.”

이러다가는 정말 주민이 첫비행기를 타고 LA로 날아올까봐 지한과 지연은 다급하게 화상통화로 다시 주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멀쩡한 아이들 얼굴을 본 주민이 팔다리몸통까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네.

“우리 말이 맞았죠? 경호원 아저씨들이 우릴 무사히 지켜줬다니까요.”

“누나 말이 맞아요. 우리 괜찮아요. 그냥 파파라치들이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미리 연락드린 거예요. 걔들이 이상한 기사를 쓸지도 모르니까 그거 보고 걱정할 거 같아서요.”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걱정이란 걱정은 다 하고 난 뒤였다.

잠옷 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연락을 받은 주민은 조금 전 들은 소식에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화면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래. 그나저나 지연이 네 감이 이번에도 또 맞았구나.

“그냥 꿈자리가 조금 나빴던 것뿐이에요.”

-예전부터 네 꿈은 잘 맞았지.

주민의 말을 들은 지연은 자신의 양심이 찔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거 내가 너무 꿈이랑 감을 팔아먹은 거 아니야?

다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너무 잘 믿는 거 같은데.

이러다가 내가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믿겠어.

“하하하. 제가 감이 좋아서 그런가봐요.”

이렇게 된 거 쭉 이런 컨셉으로 밀고 나간다.

-그래.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으니 당분간 조심하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경호원들과 함께 다니도록 해.

“네.”

“그럴게요.”

-그럼 놀랐을 텐데 푹 쉬고.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고. 알았지?

“알았어요. 피곤하실 텐데 조금 더 주무세요.”

“이만 끊을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통화가 끝난 아이들이 길게 한숨의 내쉬었다.

휴우. 이걸로 제일 먼저 달려올 사람을 막았으니 이제는 그다음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야했다.

“다음은 회장님이지?”

“주무시고 계실 테니까 메시지 남겨놓으면 될 거 같은데.”

“그럼 회장님은 메시지 보내놓고 다음 사람은….”

연락을 돌릴 곳이 많은 덕에 한동안 아이들은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그 덕에 산책이 끝나고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짜와 인절미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욕실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나중에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욕실로 온 두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잠이 든 두 동물들을 보고 사진을 찍은 건 덤이었다.

* * *

새벽에 아이들의 전화를 받은 주민은 아침 일찍 회사 임원들을 소집했다.

실장 이상급 인사들이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에 모두들 스케줄을 미루며 회사에 출근했다.

“나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쪽이 더 빨랐군.”

주민의 말에 모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당하고 있을 건 아니겠지? 참고로 상대는 중국에서도 꽤 힘 있는 권력자야. 정치국 위원이다. 그나마 상무위원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농담이 섞인 주민의 말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이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생겼다.

조금 분위기가 풀린 것 같자 주민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요약했다.

“상대는 중국의 권력자야. 하지만 미국 내에서 힘을 바로 쓸 순 없지. 그랬다가는 도발로 비춰질 테니까. 그래서 직접 움직이진 않고 우회해서 접근할 거야.”

“이번처럼 사람을 써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저격이나 킬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미국 내에서 그랬다간 일이 커지니까 말이야.”

주민의 말에 다들 아이들이 미국에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방해가 들어올 거다. 앞으로 물리적으로, 그 외적으로 공격이 들어올 거다. 다행인 건 우리 회사가 돈으로 공격당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안심해도 좋아.”

또다시 한바탕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신중해야 하는 건 좋지만 거대한 상대에 너무 기가 죽어 있어도 안 됐다.

적절히 균형을 잡으며 직원들에게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에 대한 정보와 이쪽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 알려준 주민은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했다.

“일단 한 방 맞았으니 우리도 한 방 돌려줄까? 남 비서. WW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회사들 중 우리가 공격하기로 한 곳들은 어떻게 됐나?”

“자료들은 충분히 모았습니다. 퀸즈 에이전시의 도움도 꽤 받았습니다.”

“사장님. 퀸즈라면 애들 미국 활동을 전담하는 에이전시 아닙니까? 그리고 WW인베스트먼트는 갑자기 왜 나온 건지….”

“그쪽이 꽤 유능해서 말이야. 정보기관이랑 꽤 긴밀한 사이라서 이런저런 도움을 좀 받았어. 그리고 WW인베스트먼트는 왕웨이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이야.”

CIA?!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밀 정보국!?

거기에 중국 권력자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회사라니!!

갑자기 장르가 첩보액션물로 전환되려는 기미에 임원들이 당황하는 사이 주민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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