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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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익! 쉬익! 쉭!

“어어. 너 오랜만이다. 그래. 잘 있었어?”

쉬익! 쉭! 쉭!

“왜 그래?”

다급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울음소리를 내는 하얀뱀을 보고 지연이 의아해하며 묻자 뱀이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내리쳤다.

허 참.

누가 키우는 뱀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고양이님의 삐진 모습과 비슷하구만.

“뭐라는 거야. 너 말 할 수 있냐? 아니면 그 사람, 이 아니라. 신? 천사? 요정? 아무튼 그 목소리 예쁜 언니 있잖아. 그분 빨리 모셔오지 않을래?”

절레절레

지연의 말에 하얀 뱀이 고개를 저으며 콩알 같은 눈에서 그보다 작은 콩알 같은 눈물을 퐁퐁 뽑아냈다.

허…내가 살다 살다 뱀이 눈물 흘리는 것도 다 보네.

“왜 그러는데.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네 말은 잘 알아듣기 힘들어. 일반적인 동물이 아니라서 그런가?”

선물 받고 나서 정확하게 말이 통하는 건 아니어도 대충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이 뱀이랑은 쉽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다행히 저쪽에서는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미안! 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지연이 미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자 하얀뱀은 꼬리로 애꿎은 바닥만 내리쳤다.

찰싹찰싹

“미안하다니까. 나도 답답하다. 그분은 왜 오늘 안 오셨데. 다른 때라면 네가 날 깨우자마자 바로 나타났던 것 같은데. 너는 그런 거 못 해? 그분은 안 나타나도 목소리를 잘만 전달하던데 비슷한 능력 없어?”

꼬리를 내리치던 하얀 뱀이 지연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몸을 웅크렸다가 쭉 펴며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뱀을 보고 지연이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하얀 뱀의 머리와 지연의 이마가 부딪혔다.

-위험해!!!!

뱀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지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뒤로 스르륵 넘어가면서 지연이 생각했다.

‘니가 더 위험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이 박치기라고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하얀 뱀의 강력한 박치기에 지연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153. 악의

“그놈의 뱀 새끼. 갑자기 박치기라니.”

꿈속에서 박치기를 당한 지연이 이마를 문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애초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냅다 박치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냥 이마를 갖다 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위험하다니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말 좀 제대로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지연의 방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지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 무슨 일 있어? 방금 누나 비명 소리가 들린 것 같던데.”

동생의 얼굴에 졸음과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헝클어진 뒷머리를 보니 옆방에서 자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 것 같았다.

“미안. 꿈에서 깜짝 놀랄 일이 있어서.”

“꿈? 무슨 일?”

지한이 다가와 침대의 옆에 앉았다.

동생이 앉은 곳이 푹 꺼졌다.

지연이 엉덩이를 움직여 동생이 올라올 수 있게 옆으로 비켜줬다.

잠옷을 입은 동생이 침대 위에 완전히 올라오자 지연이 이어서 말했다.

“꿈에 오랜만에 하얀 뱀이 나왔어.”

“정말? 얼마만이야. 그런데 나는 이번에 걔 못 봤는데. 왜 누나한테만 왔지?”

“너한텐 안 왔어? 아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안 나오는 게 낫지.”

암. 다짜고짜 박치기를 하는 뱀이라니.

안 보는 게 심신에 좋을 거다.

살짝 화가 난 것 같은 누나의 얼굴에 지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아니, 글쎄 걔가 갑자기 나한테 박치기를 하지 뭐야!”

“박치기? 누나한테? 왜?”

그보다 뱀이 박치기도 할 줄 알았나?

어떻게 박치기를 한 거지?

주둥이로 부딪쳤나?

그보다 왜?

알 수 없는 하얀 뱀의 행동에 지한이 그 이유를 추리하려고 할 때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걔가 나보고 위험하대.”

“위험…? 누나가?”

하얀 뱀이 한 말을 전해주자 지한의 얼굴이 단박에 딱딱하게 굳었다.

누나가 위험하다고?

지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그 존재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누나랑 자신을 가호하고 있는 것도 알았고.

그런 그들이 없는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나의 꿈속에 위기를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말에 지한의 머릿속에 붉은색 경보음이 가득 울렸다.

벌떡!

“지한아?”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영훈이 형이랑 애런한테 말해서 경호부터 늘려야지. 누나가 위험하다며!”

“아니 위험하긴 위험한데 뭐가 위험한지 모르잖아. 오빠랑 애런한테 뭐라고 하고 늘릴 건데.”

“누나가 안 좋은 느낌이 든다고 하면 늘려줄걸?”

아니, 느낌이 안 좋다고 하자고?

그런 걸로 과연 늘려줄까?

지금 당장 연락을 하겠다며 자신의 폰을 찾으러 가는 동생의 뒤를 지연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따라갔다.

에이 설마 되겠어?

* *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한의 연락은 받은 애런이 집으로 찾아오고, 잠시 일을 보기 위해서 마벨 스튜디오에 가 있던 영훈이 급하게 돌아왔다.

“위험한 것 같다니. 알겠습니다. 경호를 늘려야겠군요.”

“지연아. 괜찮아?”

이게 되네.

지연이 연락하자마자 집에 찾아온 두 사람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영훈과 애런 두 사람 앞에서 지한이가

‘누나가 감이 안 좋대요.’

라는 말을 하자마자 저런 말이 나왔다.

아니 감이라고 하는데 이걸 그냥 믿는다고? 이유도 안 물어보고?

라고 말하자

“무슨 소리야. 지연이 네가 그렇게 될 거라고 해서 안 된 적이 있기나 해? 헨리 교수님 때도 네 감이 맞은 덕분에 교수님이 무사하신 거잖아.”

“지한의 작품이나 지연의 노래 역시 그 감으로 선택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거 전부 미래의 정보를 감이라는 말로 포장한 거야!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지연이 미묘한 얼굴을 하자 누군가가 지연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지한아….”

“누나. 걱정돼. 당분간은 조심하자.”

“…알았어.”

먹구름이 잔뜩 낀 동생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자 차마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생이 저렇게 나오는 데 어쩔 수 없지.

지연의 동의를 들은 세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 네 사람 사이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저어기.”

“어? 크리스. 아직 있었어요?”

“너무하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아직도 죽겠는데 아침부터 너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있었다고.”

“! 미안해요.”

그놈의 꿈 때문에 정신없이 움직이긴 했지.

지연이 헝클어진 머리와 퀭한 얼굴을 한 크리스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해장부터 할까요? 영훈 오빠, 애런. 밥 먹었어?”

“그러고 보니 아직이네.”

“지연의 요리라니 거절할 수 없죠. 잘 먹겠습니다.”

“누나, 도와줄게.”

집 주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남아있던 매니저들은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먼저 샤워부터 하고 와요.”

“어제 잤던 방에 세면도구랑 갈아입을 옷 다 있을 거예요.”

“알았다. 씻고 올게.”

크리스는 다시 손님방으로 들어갔고, 지연과 지한은 식사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지연은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대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늦은 밤.

깊이 잠들어 있던 지연의 귀에 또 하얀 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쉬익! 쉭, 쉭, 쉭!!

어제와 똑같은 꿈에 지연이 벌떡 일어났다.

“어어. 왜 또 여기에.”

경고는 어제 이미 끝난 게 아니었나?

그때 지연에게 빠르게 무언가가 다가왔다.

스르륵

하얀 뱀이 빠른 속도로 지연의 몸을 타고 올랐다.

너 왜 또 내 얼굴로 다가오는 거야?

어어? 잠깐만.

설마…또?

지연이 다급하게 입을 벌렸으나 하얀 뱀이 더 빨랐다.

“잠,”

콩!

-위험해!!

그러니까 네가 더 위험하다니까.

이거 데자뷰?

지연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 * *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데 동생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눈을 뜨니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내 동생 자다가 일어나서 보는데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구나.

태양은 뭐하냐 내 동생한테 자리 양보 안 하고.

잠이 덜 깬 지연이 동생의 얼굴을 보고 왜 동생이 같은 침대에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맞다. 어젯밤 혼자 두기 불안하다면서 지한이의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같은 침대에서 잤었지.’

지연이 몸을 일으키자 지한이 상체를 받혀 몸을 일으키는 걸 도와줬다.

“고마워.”

“별말씀을. 그런데 혹시 또 하얀 뱀 나왔어?”

“응. 또 위험하다고 말하던데.”

분명 영훈이랑 애런에게 말해서 경호 인력을 늘리기로 했는데 변함없이 위험하다는 말에 지한은 답답함을 느꼈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뭐가 위험한지 알아야 대비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야. 뭔지 모르니까 답답하네. 일단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수밖에 없나.”

“응. 나랑 같이 영화 들어갈 때까지는 되도록 외출을 하지 말고 집에서 연기 연습만 하자.”

“알았어.”

집 밖으로 안 나가는 걸로 동생과 합의를 봤다.

그걸로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집 밖으로 안 나가기로 했음에도 지연은 또 같은 꿈을 꿨다.

이틀 연속으로 봤던 오색구름이 가득한 공간에서 눈을 뜨자 지연의 눈썹이 팔(八)자를 그렸다.

“또?”

이것도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콩!

-위험해!

하얀 뱀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다음 날에도.

“야, 잠시만!”

콩!

-위험해!

또 그다음 날에도.

“기다려봐!”

콩!

-위험해!

그렇게 일주일 동안 꿈속에서 박치기를 당한 지연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소파에 앉아 모짜를 쓰다듬으면서 화를 다스리고 있는 지연의 옆으로 지한이 따뜻한 핫초코를 만들어 들고 왔다.

“누나, 자. 이거 마셔.”

“고맙다.”

호로록

모짜를 쓰다듬고 있던 손으로 머그컵을 받아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달한 게 들어가니 조금 짜증이 가라앉는 것 같구만.

달그락

머그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지한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 이때까지 하얀 뱀이 나오는 꿈을 연달아 꾼 적은 없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경호 인력도 늘렸고, 집 밖도 안 나가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누가 집에 폭탄이라도 터트리는 건가. 아니면 킬러?”

“혹시나 그 경우도 생각했는데 누가, 뭐 때문에? 킬러를 고용할 정도로 우리가 누군가한테 원한을 산 적이 있나?”

“폭탄이나 도청 장치 같은 것도 전혀 발견된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내가 위험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들이 고용한 경호원들은 지연이 경고를 받은 날 이후 집 구석구석을 전부 전문장비로 검사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

이런저런 수단을 다 쓰고 있는데도 소용없으니 남매의 얼굴에 근심만 쌓여갔다.

둘이 계속 이런 상태니 한국에 있는 주민 역시 이 사정을 듣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이 왔다.

조금 전에도 통화해서 괜찮다며 주민을 진정시켰다.

답답해 죽겠네. 이러다가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보다 내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게 먼저겠어.

“안 되겠다. 직접 움직여야겠어.”

“그건 위험해.”

“경호 아저씨들 잔뜩 데리고 갈 거야. 괜찮아.”

“그럼 같이 가.”

“위험해.”

“그 말 방금 내가 했던 말인 거 알지? 절대 누나 혼자 안 보내.”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가겠다는 동생의 굳은 의지에 지연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우리가 나서서 위험이 뭔지 확인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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