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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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네! 그런데 형이랑 누나는 별로예요?”

“아니야. 우리 하운이는 이대로만 커 주렴.”

“형! 저 다 컸어요.”

“진짜 다 큰 애는 그런 말 안 하는데.”

“윽.”

윽.

류연지의 말이 지연에게까지 타격을 입혔다.

불과 이틀 전에 내가 백하운이랑 똑같은 말을 한 거 같은데.

같은 생각을 했는지 승우 아저씨가 이쪽을 보고 묘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지연이 고개를 돌려 카메라 감독님을 보았다.

“그런데 감독님 평소에 만타가오리를 좋아하셨어요?”

“남자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죠!”

모처럼 의욕에 가득 찬 모습에 지연이 동생을 돌아봤다.

‘그런 거야?’

‘일단 큰 생물은 다 좋은 거 같은데. 공룡이나 고래 같은 거?’

그런 거구만.

지연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수중카메라를 가져왔습니다!”

“어어. 가격이 꽤 있을 텐데 용케 가져오셨네요.”

“하하하. 카메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장비에 돈을 아껴서 쓰겠습니까!”

아니 드라마나 영화 촬영하는 것도 아니라 취미 생활로 쓰는 건데.

됐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

나도 그림 하나 그리는데 물감이며 캔버스며 돈 좀 들어가니까.

일반 사람들이라면 만져볼 수도 없을 만큼 돈을 벌어도 소시민적 마인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만타가오리, 거북이, 만타가오리, 거북이, 개복치, 만타가오리, 만타가오리….”

뭔가를 중얼거리는 카메라 감독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동생의 팔을 붙잡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앞으로 저 감독님은 조심하자.”

“그래도 촬영할 때는 꽤 프로페셔널 하신 분인데.”

“사적으로는 조금 위험하신 분 같아.”

저러다가 고래 보면 눈 돌아가서 찍으러 간다고 할 거 같았다.

나중에 바다 속에서 미아 찾기를 하지 않으려면 미리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 감독님 잘 살피라고 말해둬야겠다.

“스노클링팀 출발하겠습니다.”

* * *

요트를 타고 이동하길 잠시.

일행들은 금방 부두에 도착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장비를 받아 챙겼다.

“후. 하. 떨려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작가님.”

“그래도 꼭 보고 싶어요. 특히 개복치!”

만타가오리나 니모를 닮은 물고기도 있는데 왜 하고 많은 생물 중 개복치를 보고 싶어 하실까.

지연이 묻기도 전에 민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특유의 멍청하게 생긴 얼굴이 좋아요!”

“멍청….”

“작가님 취향이 독, 흡.”

“백하운 거기까지.”

동생 입단속 하느라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류연지 씨.

어째 스노클링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쳐 보인다.

“하하. 예쁘고 잘생긴 분들. 준비되셨습니까?”

가이드가 너스레를 떨며 사람들에게 말하자 장비를 착용한 ‘내호생’ 팀이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하하. 좋습니다. 안전사항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이미 들었던 말이지만 한 번 더 들을 만했다.

안전수칙을 머릿속에 새긴 사람들이 입수할 준비를 했다.

물에 들어가기 전 지한이 누나의 손을 잡았다.

“같이 들어가게?”

“응. 같이 들어가도 되지 않나?”

“가이드도 있고 구명조끼도 맸으니 괜찮겠지. 그럼 가자. 하나, 둘!”

셋!

풍덩!

풍더엉!

풍덩, 풍덩, 풍덩.

같이 들어가기로 한 건 동생뿐이었는데 지연의 신호에 모든 인원이 동시에 입수했다.

바다 속에 하얀 거품기둥이 세워졌다.

오리발을 낀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떠 있을 때 드디어 물거품이 사라지고 시야가 선명하게 트였다.

푸른 바다를 보고 감탄하길 잠시 동생과 맞잡은 손이 당겨졌다.

‘저기 봐.’

‘와. 물고기 엄청 많네.’

발밑에 물고기들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바닷속 모습에 어느새 지연이 배시시 웃으면서 물고기를 따라 헤엄쳤다.

뻐끔

그때 지연의 눈앞에 니모를 닮은 작은 물고기가 다가왔다.

지연을 보고 입을 뻐끔이던 물고기가 재롱을 부리듯이 지연의 눈앞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에 지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뿌그르르

물방울이 시야를 가렸다.

재롱을 부리던 물고기는 곧 어딘가로 안내하듯이 엉덩이를 보이며 남매 앞을 헤엄쳤다.

‘따라갈까?’

‘따라가보자.’

말하지 않아도 대화가 통하는 남매가 니모(가칭)를 따라 헤엄쳤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음에도 니모는 지연이와 지한이를 배려해서 유유히 움직였다.

남매와 거리가 벌어졌다 싶으면 다시 뒤를 돌아오는 게 길안내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니모의 뒤를 따라가는 남매의 곁으로 하나둘씩 색색의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팔다리를 간질이는 모습에서 반가움이 느껴졌다.

‘아하학. 누나 나 간지러워.’

‘나도 간지러워. 얘들아 너무 간질이지 마.’

마음이 통한 건지 장난치던 물고기들이 더 이상 남매를 건드리지 않고 오작교처럼 나란히 헤엄쳐 한 곳으로 헤엄쳤다.

그리고 그 끝에

거대한 생명체가 느릿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온순한 성격 탓에 바닷속 신사라고 불리는 생명체.

만타가오리였다.

* * *

오 씨 남매들과 함께 바다에 입수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른 물살에 겨우 몸을 가누었다.

광활하고 푸른 바다에 압도된 것도 잠시 곧 발밑을 스쳐지나가는 물고기들을 보겠다고 바닥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부그르륵!?

누군가 당황해서 내뱉은 소리에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주변에 있던 모두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운이 한 손으로 입을 꼭 막고 다른 한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연지와 서진이 하운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수면을 가리키며 올라가자고 물었고, 승우와 우빈 역시 하운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카메라 감독과 민경 작가만이 하운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아.’

‘인어 같다.’

손을 꼭 잡은 지연과 지한의 곁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사람을 보면 피하기 바쁜 물고기들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다가와 남매의 몸을 톡톡 건드리는 모습은 가슴 한편이 간지럽게 만들었다.

잊고 있었던 동심이 떠오른 듯 감독과 민경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은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카메라로 아이들을 찍었다.

오랜 카메라 감독 경험에서 우러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인어공주같다….’

하운을 걱정하며 다가왔던 이들도 괜찮다며 저길 보라고 손짓하는 하운의 행동에 남매를 발견했다.

그들의 눈앞에 피쉬로드가 펼쳐졌다.

마치 왕자와 공주를 안내하는 신하처럼 길게 이어진 물고기들의 행렬을 본 사람들은 이제 넋을 놓고 남매의 뒤를 멍하니 따라 움직였다.

저 장면을 더 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기인한 움직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남매와 물고기들의 하모니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의 화제의 중심에 있는 ‘내호생’ 출연진들은 조용히 발장구를 쳤다.

‘어? 만타!!’

‘세상에!’

‘호, 혹시 지연 씨랑 지한 씨는 인어였나?’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멋지다.’

‘진짜 저 아이들은….’

모두가 입을 틀어막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을 때,

거대한 만타가오리가 남매 앞에 인사를 하듯이 머리를 가져다댔다.

아이들이 잡고 있지 않은 손을 뻗어 만타가오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면을 통과한 빛이 두 사람과 만타가오리를 비추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에 모두 보고 싶었던 만타가오리가 나타났음에도 다가갈 수 없었다.

141. 발리에서 생긴 일 (3)

“푸하!”

“후우.”

오랜 시간 만타가오리와 물고기들이랑 노느라 수면 아래에 있었던 아이들은 자신을 부르는 은주의 신호에 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요트 근처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은주와 배우 3실 소속 철영이 수건을 내밀었다.

“아가미라도 달았어? 왜 그렇게 오래 있었어.”

“미안해 언니. 애들이랑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누나. 밑에 진짜 대박이야. 만타가오리 엄청 많아.”

“그래그래. 그 전에 잠시 몸 좀 녹이자. 지금 너희 입술 완전 파래. 철영아. 가서 보온병에 담아 온 물 좀 가져와.”

“넵!”

수건을 감싸고 따뜻한 차를 마시자 몸이 조금 녹는 것 같았다.

아무리 여기가 10월의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도 물속에 오래 있는 건 저체온증이 오기 딱 좋았다.

“그런데 너희 또 물속에서 무슨 짓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

“우리 사고 안 쳤는데.”

애초에 사고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걸.

아이들의 얼굴에 순수한 의문이 떠오르자 먼저 올라와 있던 배우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게 무슨 일이 아니면 뭐라는 거야.”

“승우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기, 선배님들은 혹시 인어신가요!?”

“쉿, 하운아. 그런 거 아니다.”

“맞아요. 하운 씨. 인간세상에 나온 인어는 인어라는 걸 들켜선 안 된단 말이에요.”

“최 작가님….”

뭔지 모르겠지만 연지의 몸에서 사리가 생기고 있다는 건 알겠다.

같이 온 일행들의 반응에 지연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연지를 쳐다봤다.

그건 그렇고 인어공주라니?

“갑자기 웬 인어공주예요?”

“아니 아까 그거 말이에요!”

“그거?”

“만타가 와서 인사하던데!”

“아아. 그게 무슨 인사예요. 그냥 물속에 낯선 인간이 들어오니까 호기심에 다가온 건데.”

“하하하. 하운이 말은 무시해요. 당연히 그런 거란 걸 아는데 뭐랄까. 우리 눈에는 조금 더 두 사람과 물고기들이 교감하는 것 같이 보여서 한 말이에요.”

“서진 형도 참. 우리가 어떻게 그래요.”

촬영장을 오가며 형동생으로 부르기로 한 지한이 서진의 말에 발뺌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오지한 씨는 디지니 공주님이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앗, 작가님 그거 어떻게 아세요? 제 팬들 사이에서도 꽤 옛날에 지어진 별명인데.”

“헙! 오, 오지한 씨가 워낙 유, 유명해서!!”

몹시 당황하는 행세를 보아하니 행성이가 분명하구나.

지연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당황하는 민경을 보고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 다른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본받고 싶은 사람, 롤모델, 이상형으로 오지한을 꼽으니까.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유명한 사람과 지금 여기서 한가로이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나 계 탄 건가?’

인터넷에서 덕계못이란 용어가 있던데 나는 훌륭한 계 탄 덕후가 되었구나.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분들 놀라시겠다. 얘들아. 조금 적당히 해 주렴.”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래. 너흰 아무것도 안 했지만 옛날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었지. 동물들이 너희한테 모여드는 것도 그랬고.”

“저, 정말요? 두 분 정말 대단하시군요.”

소속사 선배의 말에 우빈이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납득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훌륭한 사회생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카메라 감독님?”

보트에 올라와서 지금까지 말없이 찍은 영상을 보고 있던 카메라 감독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고개가 카메라 감독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중요한 건 두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만타를! 언제든지 찍을 수 있단 겁니다!”

“오오. 만타! 만타!”

“멋져요! 혹시 개복치도 볼 수 있을까요?”

“…틀렸어. 이 사람들 이미 눈이 돌아갔어.”

“하하하….”

연지까지 말리는 걸 포기하는 모습을 보자 서진이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 보니 우리 팀은 순수하고 사고 치는 팀과 그걸 수습하는 팀으로 나눠져 있군.

물론 우린 방관하는 팀이다.

“에효.”

“언니 왜 그래?”

“아니. 그냥 고 실장님한테 연락해야 할 거 같아서.”

“에이. 무슨 일 생기겠어?”

“허허허허. 그래. 내가 휴가와서도 사건이 안 생기면 너희들이 아니지.”

그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

누굴 마취침 쏘고 다니는 사신 꼬맹이 취급을 하는 건지.

호로록

“레몬차 맛있다. 그치?”

“응. 따뜻하니까 더 좋아.”

태평하게 레몬차를 마시고 있는 두 사고뭉치들을 본 은주가 눈 사이를 짚었다.

지금 여기서 제일 사고를 잘 치는 게 이 둘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팀장님 힘내세요.’

‘너도 지금 체력 많이 아껴둬라.’

‘넵!’

머지않아 폭풍이 들이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이게 뭐야?”

“장 감독. 이거 어떻게 찍은 거야?”

“CG? 아니지. 그냥 원본인데.”

흩어졌던 인원들이 호텔에서 모였다.

통 큰 사장님 덕분에 몇 층은 전부 우리 사람들이었고, 덕분에 휴게실을 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휴게실에서 지금 제작진들이 노트북을 둘러싸고 카메라 감독이 찍어온 영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쪼로로록

“너희는 태평하구나.”

“응? 그냥. 뭐.”

“우리집에 길냥이들 찾아오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내 팬들은 아직도 날 프린세스라고 부르는 걸. 저번에 몸통까지 깠는데.”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고 무알콜 음료를 쪼로록 빨고 있는 걸 보니 제대로 관광 온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머리를 짚은 은주의 옆에서 철영이 그녀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동안 노트북을 보고 있던 쪽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여기는 점점 클로즈 하는 게….”

“자연광도 예쁘긴 한데. 조금 뿌연걸?”

“물살이 조금 세서 물속도 흐렸어.”

“장비가 거슬리네요. 스노클링 장비 때문에 두 사람 얼굴이 안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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