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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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온 팬들 중에서 가장 네임드로 활동하는 민지가 주의사항을 알렸다.

“너무 흥분할 거 같으면 옆 사람한테 말려달라고 합시다.”

“네에!”

무대의 조명이 바뀌고 사회자가 올라와 대본을 확인했다.

메인 PD의 신호와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생방송 SBC 인기가요!]

첫 무대가 시작됐다.

* * *

“후우.”

지연이 무대 옆에서 심호흡을 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지, 지, 지, 지, 지연아. 너, 무. 떠, 떨진 말고.”

“언니부터 진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잘 하더니 왜 여기서 진동모드가 된 걸까?

초짜던 영훈오빠와 달리 조금 연차가 있는 매니저가 붙은 줄 알았는데 실전에서 긴장하는 타입인가?

“아가씨. 무대 잘 하고 오십시오.”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께서 아가씨는 잘 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장님이요?”

“네. 조금 전에 문자 왔습니다.”

사장님이랑 직통 연락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지은이 내민 휴대전화 화면에는 주민의 음성이 지원되는 것 같은 문자가 떠 있었다.

[지연아. 너는 잘하겠지.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네 몫의 긴장까지 내가 다

가져갈게.

힘내고.

무대 끝나고 고기 먹자.]

마지막에 뭘 먹이려고 하는 걸 보니 사장님이 틀림없었다.

지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 사장님이, 뭐라, 셔?”

“잘하고 오래요. 언니 우리 이따가 고기 먹으러 가요.”

“고기?”

은주의 진동모드가 해제됐다.

고기 한 마디에 원래대로 돌아오다니 이 언니도 웃긴 언니다.

“가수 지연. 준비해주세요.”

“네.”

자신의 차례가 왔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 왔으니까.

지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를 발견한 팬들이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지한의 팬미팅에서 본 얼굴들을 발견한 지연이 그쪽을 보고 웃었다.

“꺅!”

“흐아아.”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주가 시작되기 전 지연이 자세를 잡았다.

이제 진짜 실전이야.

♬♪♬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어.

저기 저 빛난 달이

날 비추고♬

카메라가 고개를 드는 지연의 얼굴을 잡았다.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찾은 지연이 렌즈와 시선을 맞췄다.

고막을 파고드는 고운 음색에 스태프와 방청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연을 주목했다.

♬아무도 곁에 없던

내 곁엔

항상 네가 날 비추고 있었지

날아올라

지금 이 순간

자유롭게

진정한 내가 될 거야♬

조명 아래 지연이 여유롭게 웃었다.

당당하게

자신있게

활기차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연을 방청객들이 홀린 듯이 바라봤다.

당연하지.

난 지금 당신들 모두를 홀릴 거거든.

지연이 고개를 들었다.

♬Be a STAR

저 하늘

Polaris

가장 빛나는

나를 봐

지금 저

하늘 끝

높이 뜬♬

점점 빨라지는 템포

격해지는 동작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

춤, 노래, 외모 모든 것이 완벽한 지연이 무대를 장악했다.

“흡,”

“흐어.”

밑에서 보고 있던 이들이 저절로 입을 벌렸다.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참았다.

지금은 온전히 저 노래를 듣고 싶었다.

♬Polaris!

네 앞에 서 있을게-!♬

꺄아아아아악!

막힌 것 없이 높이 올라가는 피치에 모두가 결국 환호성을 질렀다.

<플래닛>에서 나온 사람들도

남자 아이돌 팬들도

다른 가수들 팬까지

혼자 몸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 지연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이날 데뷔무대는 성공적이었다.

75. 나 두고 가지 마.

“다들 고생했습니다. 짠 합시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짤랑, 짠

탑엔터 근처에 있는 고깃집을 빌려 뒤풀이를 했다.

음방무대 반응을 실시간으로 전해들은 직원들은 모두 그간의 피로가 전부 다 풀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직 술을 마시지 못하는 지한이와 지연이는 금주 테이블에 있었다.

“치사해. 다음에는 나도 같이 가.”

“그래 알았어.”

“진짜지? 약속해.”

“자, 약속.”

지한과 지연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꾹 찍었다.

“자자, 지한이도 그만 삐진 거 풀고. 사이다 먹을래?”

“응. 먹을래!”

“오늘 지한이가 혼자 있으면서 엄청 시무룩해하더라.”

“그랬어?”

“응.”

“오늘 혼자서 뭐했는데?”

“인절미랑 산책하고, 모짜 간식 주고, 대본보고, 누나 무대 보고.”

“내 무대 봤어? 어땠어?”

지연의 말에 지한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최고였어! 막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는데 너무 멋졌어. 노래도 엄청 잘하고 조명도 번쩍번쩍하고 막 춤추는데 신나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어.”

“그랬어? 방청객들도 그렇더라. 거기 지한이 팬들도 많이 왔어.”

“내 팬?”

“응. 팬미팅에서 봤던 사람들 또 봤어.”

“진짜?”

자신의 팬들이 누나의 무대까지 따라갔다는 소식에 지한이가 팔을 붕붕 흔들었다.

이 녀석은 키가 불쑥 자랐어도 어째 변한 게 없어.

내 동생 귀여워!

지연이가 동생을 옆구리에 끼고 볼을 부볐다.

“너희들 그만하고 밥 먹어야지.”

“맞아.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니.”

“오늘 하루 종일 누나 못 봤어!”

“그래그래. 다음에는 형이 너도 음방 갈 수 있게 해 줄게.”

“진짜지? 형도 나랑 새끼손가락 걸어.”

“오냐.”

영훈이 한 손으로는 약속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지한의 입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지한을 전담한 지 5년차. 회사가 이사하면서 이제 대리를 넘어서 팀장 직함을 맡은 영훈에게서 프로 보모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오빠. 이제 팀장 됐는데 우리 계속 따라다녀도 돼?”

“당연히 되지.”

“팀장인데 소속된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거 아니야?”

“앞으로 늘릴 거야. 지한이도 활동 재개하고, 지연이 너도 데뷔했고. 나 혼자 담당하기에는 너희들이 잘나가니까 직함이라도 높여 준 거야.”

영훈의 말에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결정을 내리려면 팀장급은 돼야 하니까.

지연이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설명했다.

“오늘 샵에 갔는데 거기 원장님이 엄청 잘 해줬어.”

“누나 오늘 엄청 빤짝거려.”

“그렇지? 전부 원장님이 해 준 거야. 지한이 너도 다음에 거기 가 볼래?”

“좋아. 형 나도 그 샵 가도 돼?”

“물론이지. 어디라고 했더라?”

“청담 ‘더 에이스’입니다.”

영훈의 물음에 옆에서 고기만 흡입하고 있던 은주 매니저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머릿속에 샵 이름을 머리에 넣은 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빠. 나 오늘 SBC 로비에서 조영욱 선배님도 봤어.”

텅,

쨍그랑

지연의 말에 여기저기서 뭔가 떨어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렇지 않게 폭탄을 떨어트린 지연이 후속타를 날렸다.

“대기실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 예능국장님이 나타나서 대신 데려다줬어. 대기실 가는데 계속 쳐다보더라.”

텅, 데구르르르

졸졸졸졸졸

“선배님들한테 인사했다? 나 알아보는 사람도 있어서 신기했어. 무대 하는데 지한이 팬들도 많이 왔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술을 따르고 있던 어른들이 전원이 나간 기계처럼 멈췄다.

우려했던 사람과 만났다는 거에 공 사장, 본부장, 실장들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 사태를 막지 못한 은주가 식은땀을 흘렸다.

“지연아. 어쩌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니?”

공 사장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로비에서 만났어요. 제대하고 오랜만에 고향 같은 SBC에 온 거라고 하던데요?”

“고향은 무슨,”

“매니저,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은 있었니?”

“아니요. 혼자 있었어요.”

그렇다면 공적인 일로 온 것은 아니다.

그럼 일도 아닌데 왜 방송국에 왔단 말인가.

“그 사람 왜 왔대?”

“몰라요.”

“그래.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공 사장의 두 눈은 이미 시퍼렇게 불타고 있었다.

즐거운 회식 자리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었다.

“다들 밥 먹고 회사로 들어가지.”

“네, 사장님.”

실장들은 조금 전에 먹은 술이 확 깨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지연은 조영욱에 대한 일을 찌르고 지한이랑 사이좋게 고기를 나눠 먹었다.

음. 한우 존맛.

* * *

“오늘 회식 자리가 끝나고 긴급회의를 소집한 건은 다름이 아니라. 그 새끼 때문이다.”

“네, 사장님.”

주민이 마피아 보스 같은 얼굴로 상석에 앉아 말했다.

회식 자리에 다른 이들을 남겨두고 팀장급만 모여 긴급회의가 열렸다.

“시작해.”

“네. 조영욱. 29세. 얼마 전 막 제대했습니다. 최근 친한 연예인인 신정안과 같이 앨범작업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둘의 만남이 잦고, 활동 준비를 한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SBC 로비에 있었대?”

“신정안이 오전에 SBC에서 라디오 출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우연이다?”

“네. 하지만 지연이에게 접근한 건 고의인 거 같습니다.”

주민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네. 최근에 조영욱은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이 곧 탑엔터로 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답니다.”

“우리가 거절한 사안일 텐데.”

“거절하기 전부터 계속 말하고 다녔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우리가 계약하지 않기로 한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소속사라고 티 내기 위해서 지연이에게 접근했다고?”

“저희 팀이 보기로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톡, 톡

주민의 검지가 책상을 두드렸다.

“은주 매니저에게 조심하라고 이르고, 지연이랑 스케줄 안 겹치게 해. 주변에는 우리랑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고. 다들 조금 더 주의하도록 하지. 헛소문 도는지 잘 살피고.”

“네, 사장님.”

“그럼 다들 술 마셨으니 오늘은 택시 불러서 집에 들어가.”

“감사합니다.”

모두 나가자 회의실에는 공 사장과 임 본부장, 둘만 남았다.

“임 본부장. 우리랑 친한 기자 말고 다른 사람 아는 거 있어?”

“네. 사장님. 제가 아는 기자 중에 사회부 기자가 있습니다.”

“그 기자랑 무슨 사인데?”

“제 친구의 친구입니다. 예전에 친구랑 술 약속이 있는 자리에서 잠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제보해도 우리랑 연결 짓지 못할 거다.

“조영욱 건에 대해 흘려.”

“네. 자료도 제공할까요?”

“그러지 말고 찌라시로 흘려. 능력 있는 놈이라면 알아서 뒤를 캐겠지.”

“알겠습니다.”

지연과 영욱의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주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 좋은 날에 불쾌한 얘기를 들었다.

“우리 애 건드리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다.”

주민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 * *

“누나. 이거 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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