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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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그래서 지연아 서류는 어땠어? 다 봤어?”

“네. 다 봤어요.”

“어때? 다들 괜찮지?”

“다들 좋은 언니 오빤 거 같아요.”

지연의 말을 들은 주민이 활짝 웃었다.

“한 사람만 빼고요.”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지연이 따로 빼놨던 한 장의 프로필을 건넸다.

“누구?”

“이 사람 어어엄청 나쁜 사람 같아요.”

프로필에는 선한 인상으로 웃고 있는 남성이 있었다.

* * *

아이들이 가고 난 사장실에서 주민이 프로필 한 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톡, 톡

“지연이가 잘못 봤을 리는 없고. 아직 조사가 안 된 부분이 있는 건가.”

주민이 서늘한 눈으로 프로필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았다.

아무리 남 비서가 자신을 보좌하고 기업 쪽이 전문이라고 해도 그가 놓쳤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주민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지금 당장 조영욱에 대해서 알아봐.”

73. 수작 부리지 마

“사장님은 잘하고 계시려나.”

“응? 뭐가?”

“내가 찍은 사람 있잖아.”

“아! 그 사람 알아. 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지한아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만 나쁜 견주는 있어.”

“누나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이 개를 좋아한다고 해서 착한 사람은 아니란 거야.”

“그렇구나.”

지한은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인절미의 털을 빗어주었다.

벌러덩 누워서 빗질을 받으며 시원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인절미를 보니 누나의 말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역시 이 세상 모든 개는 다 착한 갠 거 같아.”

“그렇지? 인절미는 착한 개야. 저렇게 덩치가 큰데 산책할 때 막 뛰어가지도 않고, 집에서 잘 짖지도 않고, 목욕도 잘 하고.”

“우리 인절미 너무 착해. 형이 간식 줄까?”

컹!

“그런데 지한아 팔 안 아파?”

“조금. 그래도 괜찮아.”

“인절미가 저렇게 클지 몰랐는데.”

“그런데 헨리랑 에밀리가 그랬는데 인절미 정도면 큰 게 아니래. 중형견이라던데?”

“역시 미국. 땅덩어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큰 동네답군.”

지연이 낚싯대 장남감 끝에 달린 깃털을 이리저리 흔들어 모짜랑 놀아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통화가 되면 더 좋을 텐데.

언제 개발되지?

냐아아아앙!

사냥에 성공한 모짜가 입에 깃털을 물고 고개를 들었다.

으쓱이는 모습에 아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얘들아. 우리 이제 앞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질 거야.”

“그래도 우리 없다고 너무 울진 말고. 아침이랑 밤에 산책을 꼭 하러 올게.”

“걱정 마! 형이 같이 있어 줄게. 그리고 사장님이 너희들 돌볼 사람도 데리고 와 준 댔어.”

그래도 떨어져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놀던 아이들이 등을 돌렸다.

하여간 저 자식들은.

“영훈이 오빠한테 <애니멀팜>에 출연할 수 있는지 물어봤었는데.”

모짜랑 인절미 귀가 쫑긋했다.

“아! 누나, 우리가 일요일마다 같이 봤던 그거?”

“응. 그거. 신동환 아저씨 나오는 거.”

쫑긋

쫑긋

등을 돌리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반응에 남매가 입술을 물고 웃음을 삼켰다.

아 너희들 귀여워서 어떡하냐.

“그거면 촬영해도 얘들이랑 같이 나올 수 있으니까 좋을 거 같아서.”

“정말? 잘됐다. 인절미랑 모짜도 <애니멀팜> 좋아하잖아.”

“응. 그래서 내가 오빠한테 부탁했지.”

모짜랑 인절미의 고개가 슬그머니 옆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오겠는데?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없을 때 모짜랑 인절미 모습도 촬영하고 싶다고 했는데 저렇게 떨어지기 싫어해서야. 안 되겠네.”

“안 되겠네.”

아왕왕앙

왜애애앵

결국 유인에 넘어온 모짜랑 인절미가 지연과 지한의 품에 안겼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턱을 핥는 것 보니까 이쪽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모양이다.

“히힛. 간지러워.”

“어구어구. 그래쪄? 언니가 미안해. 우리 모짜 혼자 둬서. 너무 착해. 모짜 외롭지 않게 언니가 낮에 열심히 일하고 집에 일찍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

냐앙

고맙다.

우리 옆에 있어줘서.

지연이 모짜와 눈키스를 나눴다.

* * *

아이들을 봐줄 펫시터가 왔다.

사장님 말로는 남 비서 아저씨 후배라고 한다.

그럼 같은 비서실 소속인가?

그런 귀한 인재를 아이들 펫시터로 써도 되냐고 물으니까 일부러 그런 조건으로 뽑았단다.

나중에 사장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러 가야겠다.

“하나, 둘, 셋, 넷. 따따따 따.”

트레이너 신기주의 말에 따라 지연이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모습에 기주의 얼굴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다른 연습생들이 본다면 기겁할 만큼 온화한 모습이었다.

“그만! 잠시 휴식.”

“후우.”

지연이 바로 주저앉지 않고 관절을 풀면서 땀을 훔쳤다.

곧 음악방송에서 무대를 선보일 거니까 더 잘하고 싶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지연이 눈을 반짝였다.

더, 더!

잘할 거야.

모두가 날 보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날 보고 즐거웠으면 좋겠어.

“지연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저 지금 너무 재밌어요. 더 하고 싶어요.”

“알아. 이 정도로 네가 지칠 리 없다는 걸. 그런데 지연아. 연예계는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나올 거고, 네가 잘나간다고 질투하는 이들도 나올 거야.”

“그런데 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예를 들어서 지한이나 영훈이 오빠나 미나 언니, 사장님, 실장님, 팀장님, 홍보팀 언니오빠들, 그리고 트레이너 선생님도요!”

“…맞아.”

지연의 말에 기주가 울컥한 감정을 삼켰다.

항상 동생 옆에서 동생만 보고 있던 아인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많은 일을 겪으면서 더 빨리 성숙한 모양이다.

올곧고 긍정적이며 다른 이들을 제 울타리 안에 넣을 수 있게 된 지연을 보면서 기주가 눈가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래. 지연이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항상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해. 언제든지 도와줄게.”

“네, 선생님!”

활짝 웃는 지연을 보니 기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지연이가 지한이만큼 훨훨 날아오를 것이라는 예감이.

* * *

기주의 생각대로 모두 지연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공 사장은 남 비서가 추가로 조사해 온 자료를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놈이. 빠드득,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한다고? 그것도 미성년자?”

“네. 주변 지인들의 말, 방송국 관계자들의 증언, 같은 소속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를 조사해 알아낸 사실입니다.”

남 비서의 말에 주민이 서류를 내려놓고 뒷목을 주물렀다.

그러니까 이 양아치 같은 놈이 우리 애를 노릴지도 모른다고?

이런 발바리 같은 새끼가?!

“조사에 미흡해서 죄송합니다. 이전 활동내역과 장래성을 보고, 마약, 음주, 도박 등 중점으로 조사하다보니 놓쳤습니다.”

“아니야. 남 비서가 사과할 일이 아니지. 나도 그것만 보고 있었으니까. 성범죄 쪽은 생각도 못했어. 공인이라고 안일했군.”

주민은 지켜보고 있던 남 비서가 치아건강과 혈압을 걱정할 정도로 분노했다.

그에게 아이들은 자식과도 다름이 없었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놈이 지연이에게 손을 댄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이 빨개졌다.

“후우. 지연이한테도 개인경호 붙이고 앞으로 혼자 활동할 일이 많을 테니까. 그리고 이 새끼. 주변 지인이며 친한 사람들, 연예계에서 여자한테 손쓰는 놈들, 문란한 놈들까지 싹 다 조사해서 가져와.”

“알겠습니다, 사장님.”

남 비서가 허리를 숙이고 나갔다.

이미 홍보팀과 매니지팀에서 여배우에게 손대는 놈들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지연이가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가요계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준비가 미흡했다.

가요 쪽은 약한 것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조금 더 사세를 확장해야겠어.”

지한이 덕분에 회사가 커지긴 했지만 배우와 가수의 비중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작년에 데뷔한 아이돌 가수는 성적은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지연이가 또다시 균형을 맞춰 주겠지. 이거 참.”

어른들이 나서도 안 되는 일을 아이에게 맡긴다니.

다른 이들이 들으면 믿지 못할 일이겠지만 주민은 아이들을 믿었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을 일으켜줬으니.

남매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던 주민이 얼굴을 굳히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 누나. 다름이 아니라.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역시 이런 일은 누나가 잘 알 거 같아.”

* * *

“지연아, 일어나!”

“일어났어.”

“그래. 잘됐다. 어서 움직이자!”

아침부터 영훈이 호들갑을 떨었다.

저 오빠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난리네.

나는 이제 가수실에서 담당하게 될 건데.

하여튼 영훈 엄마 어쩔 수 없다니까.

“근데 형 누나는 새로 매니저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같은 회사 사람인데 그래도 더 잘 아는 내가 아침부터 움직여야하지 않겠어? 오늘 녹화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밥 든든히 먹고.”

“먹어도 돼?”

“너는 먹어도 티가 안 나니까 괜찮아. 아니 너랑 지한이는 먹은 게 다 키로 가는 거야? 어떻게 살이 안 붙어? 볼살도 쏙 들어가는 거 같고.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어.”

“걱정 마. 잘 먹고 다닌다고 할 거니까.”

영훈이 지연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지한을 깨워 식탁에 앉혔다.

식탁에는 지연의 데뷔로 아침 일찍부터 도우미 아주머니가 솜씨를 발휘하신 건지 든든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지연아 스킨로션은 발랐어?”

“응. 언니가 화장실에 갖다 놓은 거 발랐어.”

“그래. 잘 했어. 너희들은 애라서 잘 모르겠지만 피부는 시도 때도 없이 관리해 줘야 하는 법이야.”

“이번에 새로 온 스킨로션 냄새 좋았어.”

“그렇지? 언니가 다 써보고 너희 피부에 맞는 제품으로 골라온 거야.”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식구들이 현관에서 지연을 배웅하고, 지연은 자신을 맡은 매니저와 차에 올라탔다.

“오늘 첫 음악방송이지? 지연아 안 떨려?”

“괜찮아요, 언니.”

지연의 매니저가 된 은주가 지연의 컨디션을 점검하며 차를 몰았다.

차에는 지연과 매니저 은주, 새로 붙은 경호원 지은이 함께 있었다.

공식적으로 방송 활동을 하면서 회사에서 붙여준 인력들이다.

낯선 이들에 지연이 경계를 하긴 했으나 주민이 붙여준 이들이니 여러 검증은 끝났을 거라고 믿었다.

“지연이는 SBC 처음 가보는 거지?”

“네. 지한이도 가 본 적 없는데. 나중에 지한이한테 가서 자랑해야지.”

“지한이가 부러워하겠네.”

“아마도요?”

혼자 갔다 온다고 했을 때 어찌나 서운한 표정을 하던지.

귀여워서 볼을 깨물 뻔했다.

어젯밤 삐져서 투정을 부리던 동생을 떠올린 지연이 싱긋 웃었다.

“지연이 너 너어무 예쁘다.”

“고마워요.”

“아무튼 지연아 가요계는 정글이란다. 어디 가서도 항상 인사 꼬박꼬박하고, 이쪽은 특히 선후배 관계를 엄하게 따지거든. 지연이 너도 알지? 남자 아이돌 근처는 가지도 말고.”

“알아요. 그런데 왜요?”

“음. 배우도 그렇지만 아이돌 팬들을 더 무섭거든. 팬들 나이대가 다르달까? 똑같이 어린 나이의 중고등학생들이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거야. 유사 연애감정을 가지는 거지. 그런데 그런 내 아이돌 옆에 예쁜 애가 있다? 난리 나는 거야.”

“아가씨,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극성 아이돌 팬들에 대해서 보고받았습니다. 눈을 도려낸 사진이나 죽은 쥐 시체를 보내는 것도 한답니다.”

지연을 둘러싸고 매니저 은주와 경호원 지은이 신신당부를 했다.

이 언니들.

알아요, 알아.

내가 이래 봬도 미래에서 왔단 말씀.

사생팬들에 대해서라면 연예계 관심도 없는 나도 들어봤다고.

‘팬이 건네준 음료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간 사람도 있다지?’

정말이지 무섭다 무서워.

어느새 차가 멈춰 섰다.

“자! 샵에 다 왔다.”

변신할 시간이었다.

* * *

“어머! 세상에. 고져스!”

청담동 K 헤어샵 원장인 오주현은 눈앞에 등장한 신인 가수를 보고 두 손 모아 감탄했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애가 나타났을까.

수많은 연예인들이 들렀고, 소위 말하는 S급 여배우도 봤다.

단아한 미인, 청순한 미인, 화사한 미인, 섹시한 여인.

모든 사람들을 다 보았지만 지연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아이었다.

아니,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녀는 어느새 아이의 모습을 벗어났다.

성인과 아이 사이에 있는 지연은 누가 봐도 미래가 기대되는 미인이었다.

그것도 어느 한 가지 매력을 지닌 게 아닌 천의 얼굴을 가진 미인.

“실장님께 얘기 들었어요. 아주아주 귀한 손님이 올 거라고. 이리로 와요.”

“잘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앞으로를 생각하면 내가 더 잘 부탁해야 할 거 같은걸? 우리 자주 봐요. 매니저님.”

원장의 극찬에 지연의 담당이 된 은주 매니저가 활짝 웃었다.

자신이 맡은 연예인이 잘나가는 것만큼 더 명예로운 일이 있을까.

매니저 세계에서 급은 달리 나눠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연예인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가 바로 매니저의 지위였다.

“보호자분들은 잠시 저기서 쉬시죠.”

“아니요. 여기 있겠습니다.”

“저도 여기 있을게요.”

지은의 단호한 말에 은주도 자리를 지켰다.

원장은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지연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직접 손봤다.

드라이 한 번에 지연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굽이쳤고, 붓질 한 번에 화사함이 깃들었다.

타이틀곡 에 맞게 화사하게 변모한 지연을 보고 어느새 스태프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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