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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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아왔지?

탁, 화르륵!

성냥에 주홍빛 불이 피어올랐다.

성냥을 킨 손의 주인이 불꽃이 사그라지기 전, 짧은 초에 불을 옮겼다.

어두운 방 안을 주홍빛 불빛이 밝히고 손의 주인을 드러냈다.

좁은 방안 떡진 머리에 기름기 가득한 얼굴의 여인이 자조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을 보던 그녀는 촛농이 뚝뚝 떨어지자 입김을 불었다.

후우-

“태어나느라 수고했다. 나 자신.”

좁은 방에서 홀로 외로이 생일을 자축한 지연이 조각 케이크를 먹었다.

집 밖은 나가지 않은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도 잘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뭔 놈의 주변 환경이 1도 도와주지 않아서 올해 30살이 된 지연은 어느새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놈의 환경!

대학 수시 쓸 때 담임이 그랬다.

‘네 성적으로는 수능 등급 컷 맞출 수 없다니까.’

수시지원에 담임이 꼭 필요했기에 지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담임의 말을 듣고 하향지원 했다.

물론 수능 등급은 1등급 2개. 2등급 1개. 3등급 1개로 원래대로 넣었으면 문제없이 패스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대학가서도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교환학생을 가 보려 했더니,

‘외국에 보내줄 돈 없는데. 그냥 혼자 알아서 외국어 공부하면 되지 않니?’

일평생 공부에 도움 되는 학원이라고는 보내준 적도 없으면서 말만 잘 하는 부모.

12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영어 못한다고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데.

심지어 수능 등급에서 유일하게 맞은 3등급도 외국어였다.

공무원을 노리고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알바해서 돈을 모아 학원을 가겠다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알바는 절대 안 돼.’

그러면서 자신이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고 했던가?

대학 다닐 때도 용돈 한 번 준 적 없던 사람이 퍽이나 내 고시 생활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

결국 질릴 대로 질린 집안과 연을 끊고 1년 동안 뼈 빠지게 알바해서 학원비를 모았다.

겨우 모은 돈으로 학원을 끊고 수업을 들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했다.

연을 끊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며 고시생이 되었으나, 혹사당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고시로 공부해야 할 양은 어마어마했고, 여기저기 아픈 몸으로는 고시 생활을 버틸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결국 4년 만에 취업 노선으로 갈아탔다.

취업도 순조롭게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먼저 취업한 친구들에게 쓴소리 들어가면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29살 겨우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퇴사할 선임이 꽂아놓고 가서일까 아니면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일까.

‘지연 씨, 죄송하지만 팀과 안 맞는 거 같아요. 오늘까지만 나와 줬으면 좋겠네요.’

인턴 생활 3개월.

날 뽑은 선임이 퇴사한 지 한 달 만에 투명인간 취급을 받다가 잘렸다.

그 이후로 아는 언니의 도움으로 계약직으로 들어간 곳도

상사가 개쓰레기.

계약이 끝날 때쯤, 내 자리에는 이미 부장의 지인이 내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더는 의욕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거겠지.”

치즈 케이크 한 조각 파먹고 누웠다.

‘아 눈 뜨기 싫다.’

지연은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졌다.

* * *

깜빡, 깜빡

뭐지?

잠에서 깬 지연은 낯선 벽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진짜 뭐지?”

옆을 보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벽에 손을 댔다.

“우리 집 벽이 아닌데?”

그리고 어째 팔도 좀 짧았다.

생각한 것보다 더 길게 팔을 뻗어야 벽에 닿았다.

“어? 내 팔 왜 이래?”

팔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손도 발도 전부 짧았다.

벌떡

“이, 이, 이, 이게 뭐야.”

거울!

거울이 필요해.

당황한 지연이 두리번거리며 거울을 찾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지연은 무언가 기시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분명 우리 집이 아닌데 이 장소가 묘하게 익숙했다.

“지연아, 일어났니?”

“!!”

어, 엄마다.

연 끊고 5년 동안 못 본 엄마.

그동안 많이 젊어졌는데. 또 나 모르게 돈 써서 피부과라도 다녀왔나?

잠에서 깨자마자 몸이 이상해서 당황스러운데 짜증나는 이미란의 얼굴을 보자 지연은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엄마?”

“일어났으면 세수하고 양치하고 와. 밥 먹자.”

“어, 어.”

“얼른. 엄마 바쁘다.”

지연이 엄마에게 떠밀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와 거울을 본 지연은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화장실로 보낸 딸이 비명을 지르자 그녀의 어미, 이미란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오든 말든, 지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기 바빴다.

“어, 어, 내가 왜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계인한테 납치라도 당했나?

왜 이렇게 어려진거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뀐 자신을 보고 지연이 패닉에 빠져있을 때, 미란이 그녀의 얼굴을 잡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훑는 손길에 지연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쳤다.

“나, 괜찮아.”

손대지 마.

난생처음 자신의 딸에게 거절당한 미란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미란은 자신이 딸에게 한순간 압도당했다는 것을 부인하듯 어머니처럼 아이를 걱정했다.

“정말 괜찮아? 병원 갈까?”

“괜찮다니까-!”

악을 쓰듯 대답하는 딸을 보고 기가 죽은 미란이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화장실을 나섰다.

얼굴에 당황, 수치, 분노가 그려져 있었지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가면을 쓴 미란이 한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그래. 세수하고 밥 먹으러 나와.”

“….”

지연은 그녀가 나가자 화장실 문을 쾅 닫았다.

인기척이 멀어지자 지연은 다시 거울을 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려졌다.

자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30대 꺾이는 노처녀였던 자신이 어느새 탱탱한 피부를 가진 어린애가 되어 있었다.

제 피부를 당겨 본 지연이 탄력에 감탄했다.

기름져 미끄럽지도 않고 말랑거리면서 부드러웠다.

“이게 머선 일이고.”

허망하게 중얼거려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꿈… 아닌가?”

시각이, 촉각이, 청각이 모두 생생했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혹시나 꿈일까, 지연이 꿈에서 깨기 위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짝!

제 손으로 내리친 양 뺨을 감싸며 지연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씨발. 개아파.”

이 아픔. 이 감각.

전부 꿈이 아니네.

현실이라고 자각하자 지연은 어마어마한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하필 나야.

겨우 이 집안에서 벗어났나 싶었더니 다시 이 집구석으로 돌아왔다니.

자신을 돌려보낸 누군가가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

왜 다시 이 집안으로 보냈어!

지연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안 그래도 없던 신앙심이 지하를 뚫고 내핵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똑똑.

“지연아, 아직이니? 밥 먹으러 나와.”

딸이 한참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자, 문 밖에서 미란이 노크를 했다.

후우.

더럽지만 일단 밥 먹으러 나가야지.

뭐라도 먹고 힘내야지.

쏴아아-

지연이 손을 씻었다.

* * *

“하아.”

아침에 있었던 일 이후 지연은 유치원에 왔다.

별님반에서 수업을 듣고 아이들과 삐약거리다 보니 자신이 7살인지 30살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지연아~”

누군가 지연을 불렀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연이 뒤를 돌아보자 햇님반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지연의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아 싫다 진짜.’

지연이 저 선생님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것은 그녀가 자신의 사촌 언니이기 때문이다.

외갓집에서 엄마는 제일 막내.

지금 저기서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은 제일 큰 외삼촌의 장녀였다.

큰 외삼촌과 엄마의 나아차가 어마어마해서 엄마랑 사촌 언니는 고작 2살밖에 나지 않았다.

시집가고 나서 한 번도 못 봤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

물론 절대 보고 싶지 않았지만.

‘5세반 선생님이 굳이 7세반에 있는 날 찾아온 이유라면 그거뿐이겠지.’

이 여사가 전화했네.

지연이 미적거리며 일어났다.

“선생님 왜요?”

“선생님이랑 잠깐 얘기 좀 할까?”

사적인 내용이니까 밖에서 따로 물어보려나 본데.

내가 왜 순순히 따라가야 하지?

“싫어요.”

“그래, 밖에서. 응?”

“선생님이랑 얘기하기 싫어요.”

“어, 지연아. 사실 언니로서 할 말이 있는데.”

“지금은 햇님반 선생님이잖아요. 저는 별님반인걸요. 선생님이랑 말 안 할래요.”

이 여사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밀정 따위를 따라갈까 보냐.

지연이 독립투사의 기세로 햇님반 선생님이자 제 사촌언니의 말을 거절했다.

당황하는 그녀를 두고 당당하게 반으로 돌아온 지연을 보고 별님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지연아 선생님이 뭐래?”

“햇님반 선생님이 왜 불렀어?”

선생님에게 ‘싫다’라는 말을 하고 돌아온 지연을 보고 아이들이 호기심에 물었다.

“선생님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집안일이었어.”

“집안일?”

“나 집안일이 뭔지 알아. 청소하고 빨래하는 거야.”

“선생님이 청소하래? 빨래하래?”

재잘대는 아이들을 보고 지연이 대답했다.

“응. 엄마아빠일 하라고 불렀나봐. 그런데 나는 엄마아빠일 하기 싫어.”

누가 다시 노예처럼 그 집에서 있을까보냐.

“우와! 그래서 싫다고 했구나.”

“나는 아빠처럼 경찰되고 싶은데.”

“나도 엄마처럼 빵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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