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휘잉!
그리고 번쩍 하며 글로리를 중심으로 사방을 가득 메운 환한 빛. 찬영은 눈이 부셔 손을 들었다.
‘그가 갓피스였다고?’
기습처럼 다가온 글로리의 갓피스 개방. 많이 놀랐지만 기쁨도 그만큼 컸다.
‘그가 갓피스가 되었다면…….’
전력의 상승은 당연하니까.
‘글라투에게 고마워할 일이 생길 줄이야.’
놈이 아니었다면 글로리의 갓피스로서의 각성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글라투로 인해 글로리는 견고해졌고 자유를 갈망했다.
이건 그로 인한 성과다.
글로리의 결의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자유의 전용 장비가 소환됩니다.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빛이 아까보다 더 강렬해졌고 글로리가 쥐고 있던 CB-15가 그의 손을 벗어나 날아왔다.
이어서 허공 또한 지퍼 열리듯 세로로 갈라진 후, 빛의 구체 세 개도 그 사이를 비집고 날아올랐다.
동시에 CB-15와 충돌하는 빛의 구체들. 아니, 충돌이 아니다. CB-15는 저 구체들과 뒤섞이고 있다.
합성이었다.
‘드디어…….’
단언컨대 제이나 당시 같이 전용 무기가 나타날 거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서서히 잦아드는 빛. 이젠 손을 뻗을 차례.
스륵.
빛무리가 사라진 전용 무기가 찬영의 손에 잡혔다.
모든 가치를 판별하는 열쇠인 찬영. 그의 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불타는 돌로 제작한 박격포 ‘크투가’
-‘자유’ 전용 (‘자유’가 착용하지 않을시 효과 사용 불가
-가치 : 5,320
-효과 A : 신성력 3,200 증가
-효과 B : 신성력 700 소모 시. 자유의 바람 발동
-‘자유’ 는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150% 증가
-반경 15m 지정 아군에게는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 50% 증가
-30분 제한
-3시간 후 재사용 가능
- 효과 C : ? (강화 시 개방 가능)
‘이건…….’
제이나 경의 첫 전용 무기인 툴챠를 만났을 때만큼 경이롭다.
단순히 합성으로 제작하는 장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효과 A만 봐도 그렇다.
‘신성력을 이렇게까지……?’
신관들이 들었다면 까무러치게 놀랄 일이다.
신성력은 신에게 힘을 빌려 몸에 구현하는 힘.
그 힘을 지니고 있는 장비가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증가시켜준다는 건 신이 내린 신물神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이동속도 및 공격 속도를 본인 포함, 아군까지 증가시켜주는 효과 B만 봐도 이 물건은 신물이라 칭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하아. 하아.”
그사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눈을 뜬 글로리.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소. 구속을 벗어나라는…….”
제이나 경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정말 신일까?’
찬영은 글로리를 바라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마 그럴 거다. 신이 아니라면 이런 기이한 현상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 신성 왕국의 여신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걸까?’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라면?’
노티스 여신이 아닌 또 다른 신이 있다면?
문득 스쳐가는 생각.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노티스 여신이건 다른 신이 있건 그게 무슨 상관일까? 확실한 건 신은 대리자인 갓피스들에게 이 싸움을 맡기고 있고, 갓피스인 우리들은 싸움을 승리해야 생존할 수 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하다.
“받으세요.”
찬영은 잡념을 지우며 손에 쥔 크투가를 글로리에게 전달했다.
“이게 내, 내 것?”
말을 쉽게 잇지 못하며 서 있던 글로리.
그는 재탄생한 CB-15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글로리 씨에게 소환된 전용 무기입니다. 제이나 경이 들고 있는 ‘툴챠’라는 지팡이처럼요.”
글로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쉽게 손을 뻗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찬영이 부드럽게 크투가를 쥐게 했다. 찬영의 도움을 받아 손을 잘게 떨며 크투가를 쥐어 보는 글로리.
크투가의 외형은 견착 형태의 박격포였다.
견갑이 등과 어깨 위에 깔리면, 2개의 박격포가 양 어깨에 1개씩 부착되어 자리를 잡는 형태다.
“내가 정말 받을 자격이 있겠소?”
찬영이 그에게 크투가를 넘기며 대답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아닌 것 같군요.”
“어째서?”
“스스로 증명하는 것 말고는…… 어느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답이니까요.”
이건 찬영이 그동안 경험하며 느껴온 생각이기도 했다. 자격이란 건 부딪치고 깨지며 스스로 증명하는 거다. 갓피스란 자격이 주어진 게 미증유의 힘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결국, 이 길을 걸어가는 건 각자의 선택과 결의.
찬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었다.
한참을 찬영의 얘기를 듣고 있던 글로리가 희미한 미소를 보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리고 손에 쥔 크투가를 장착하며 덧붙였다.
“당신은 늘 어떤 말이 필요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소.”
찬영은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 짓기만 했다.
그가 그렇게 느끼는 건 갓피스로서 먼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얘기를 해 주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건 그냥 조언일 뿐. 글로리의 갓피스로서의 삶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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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삶도.
“아슬란 소환.”
글로리와 마주 보고 있던 찬영이 재빨리 아슬란을 손에 쥐었다.
노이즈와 함께 나타난 푸른 검. 이를 본 글로리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가 왔군.”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 나갔다.
-돌발 현상 수배 (D)
-글라투
-주의사항 : 독물을 잘 다루고 언데드 소환에 능합니다.
-고정 보상 : 25km ~ 50km 구간 복속.
-돌발 현상 수배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서 있는 위치 북쪽 5km 지점에서 리턴 데드 망령의 군대가 몸을 일으킵니다.
-현재 서 있는 위치, 동쪽 5km 지점에서 그롭 버그 망령의 군대가 몸을 일으킵니다.
-현재 서 있는 위치, 서쪽 5km 지점에서 망령의 군대에 속한 광대가 몸을 일으킵니다.
-현재 서 있는 위치, 남쪽 5km 지점에서 망령의 군대에 속한 레드 아이가 몸을 일으킵니다.
-글라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올 게 왔다.
찬영은 가지고 있던 중급 경계 포탑 업그레이드권을 사용한 직후 동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버텨내야 할 텐데…….’
홀로 평야 지대에 서 있자, 뒤에 두고 온 아군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본 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프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을 잃어버리면 승기를 급격히 잃게 될 거야.’
그도 그럴 게 이건 대규모 전투다.
하지만 적은 대규모 군대가 몰려오는 반면, 이쪽은 비전투 인원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반드시 경계 포탑을 지켜야 해.’
모든 전력을 그곳에 두고 온 이유이며 홀로 그롭 버그를 상대하고자 한 이유이기도 하다.
촉수, 녹색 점액 등이 포탑에 들러붙기 시작하면 포탑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대비하려면 그롭 버그의 진입부터 막아 내야 한다.
그게 성공한다면…….
‘이길 수 있는 승산이 더 높아진다.’
찬영은 확신했다.
-키에에엑!
곧 평야 가득 메운 그롭 버그 떼를 보며 찬영은 아슬란을 고쳐 쥐고 걸어 나갔다. 각오는 이미 할 만큼 했다. 하지만 각오와 상관없이 녀석의 숫자는…….
“……미친.”
오랜만에 욕을 할 만큼 평야를 가득 메웠다. 생각이 옳았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 그롭 버그 떼가 달려들었다면, 녀석들의 속도와 덩치를 봤을 때 포탑은 당장 무너지고도 남았다.
하지만 여긴 동쪽 4km 지점.
지킬 사람도, 포탑도, 어떤 것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만 지키면 된다. 이는 운신의 폭이 자유롭고 넓어졌다는 얘기.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저 베고, 태우고 짓밟으면 된다. 결국 여기서 중요한 건 마지막으로 누가 살아 남느냐일 뿐.
‘반드시 이 땅을 끝까지 밟고 있겠다.’
처절한 생존 경쟁의 막이 열렸다.
“섬뢰보, 북빙진기.”
새로 개방한 두 번째 연계기가 툭, 치고 나간 발끝에서 시작됐다.
숙련도 50% 라는 조건 달성이 필요하단 예상은 적중했다.
섬뢰보는 50% 의 숙련도가 달성되자마자 가장 합이 잘 맞는 심법을 택해 연계기로 탈바꿈했다.
이는…….
쐐액!
가공할 속도를 일으킨다.
쩌적!
발을 두른 빙결 효과. 이로 인해 그의 발을 내딛을 때마다 얼어붙는 바닥.
동시에 질주하며 생긴 마찰력이 강한 압력을 발생시켜 열을 일으킨다. 빙결과 열의 충돌이 가져오는 결과는 가공할 추가 가속도로 전환되었다.
파밧!
방금까지 그롭 버그 떼와 멀리 떨어져 있었던 찬영이 단숨에 지상을 가로질러 그들 속에 파고든다.
“에어 펀치.”
연계기와 더불어 추가 연계기로 쓰인 스툼의 에어 펀치.
따로 쓰여도 그롭 버그를 단숨에 박살내던 그 파괴력이 이번 연계기로 인해 더욱 상승한 결과.
쾅!
주먹에 부딪친 그롭 버그의 머리부터 몸통까지 반으로 ‘쩍’ 하고 갈라졌다.
콰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에어 펀치가 일으킨 충격파가 선두에 있던 녀석을 반으로 가른 것도 모자라 일직선상의 녀석들의 몸통까지 일제히 갈라 버렸다.
가공할 파괴력! 직접 시연해 본 찬영마저도 놀랄 지경이었다. 동시에 이 벌 떼 같은 놈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자신감이 붙은 찬영의 움직임은 더욱 거침이 없다.
“헬레.”
그 위에 헬레의 서클 번이 파고들었다.
불꽃이 갈라진 몸통 사이를 파고들자, 활활 타는 화염이 사방에 옮겨 붙는다.
사방에 퍼져 가는 화마를 그롭 버그들도 보고만 있진 않았다.
진형을 흩트리며 진입한 찬영을 향해 날아간 수백이 넘는 그롭 버그의 촉수들. 도망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계산한 듯 허공, 지상, 어디로도 몸을 피할 곳이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정면 돌파뿐!
우웅!
이번엔 아슬란이 울었다.
아슬란 끝에 서린 빙결 효과가 날아오는 촉수들을 일제히 얼게 만들었다.
쩌저적!
놈들에 비하면 한참 작은 일개 인간일 뿐인 찬영.
하나, 놈들은 그런 찬영의 그림자조차 붙잡지 못했다.
-키에엑!
곧 몸의 일부를 잃어버린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자 틈이 보인다.
파밧!
이제부터는…….
‘염왕초혼심법, 진공나찰보.’
파바밧!
불로 휩싸인 발끝이 촉수 끝을 밟았다.
찬영에게 다시금, 첫걸음을 허락한 대가는 굉장히 컸다. 촉수의 공격을 피해낸 찬영이 아슬란을 위로 치켜들었다 지상을 향해 내리 찍었다.
콰쾅!
그리고 시작된 10회의 얼음 파도들. 그롭 버그는 그에 대항할 만큼 얼음 저항력이 높지 못하다. 단숨에 얼어붙어 버리는 한 떼의 그롭 버그 무리들.
쐐액!
아슬란은 그에 그치지 않고 얼어붙은 그롭 버그들을 일제히 갈라 버렸다.
후우우웅!
적들을 유린하는 찬영.
마치 지금의 싸움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찬영의 동작 하나 하나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연계 됐다.
-키에엑!
하지만 수없이 많이 베었음에도 그롭 버그의 숫자는 아직 산더미처럼 많았다.
곧 그롭 버그들이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10m의 여왕 그롭 버그.
놈의 지시에 따라 여왕을 둘러싸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롭 버그들. 위협을 느끼고 집단행동으로 대항하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놈들은 모른다. 여왕을 드러낸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파밧!
찬영이 촉수를 자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집단으로 대항하는 놈들은 분명 아까보다 예리하게 점액을 날리고 촉수를 휘젓는다.
그러나 이동계열의 2개 연계기를 장착한 찬영에게 그들의 반항은 더 이상 위협이 못 된다.
쿵!
놈들의 몸통을 발판 삼아 달려 나간 찬영이 여왕 근처, 그롭 버그의 몸을 발판 삼아 뛰었다. 반작용으로 인해 그롭 버그의 몸통이 찌그러져 버릴 만큼의 도약!
부웅!
“에어 펀치.”
강한 공기 압축이 스툼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건 폭발력을 위한 시동일 뿐.
몸을 띄운 채 두 다리를 움직였다.
곧이어 발동하는 진공나찰보.
찬영의 몸이 빠르게 여왕에게 접근했다. 이를 알고 있던 여왕이 황급히 촉수를 날렸다.
쐐액!
하지만 아슬란의 칼날이 때에 맞춰 휘둘리자, 날아온 촉수들이 힘없이 얼어붙고 잘려나간다.
팔 옆을 스쳐가는 잘려가는 촉수들.
이를 지나쳐 계속 달렸다.
파밧!
그리고 커다란 여왕의 머리를 향해 도착한 찬영.
-키에엑!
위험을 감지한 여왕이 사납게 울었다. 하지만 울음에 답해야 할 그롭 버그들은 이 순간 무기력하기만 했다.
서걱!
여왕이 재차 비명을 내지르려던 그때였다.
여왕의 머리로 아슬란이 슥, 스쳐 지나갔다.
쩌적-!
반으로 갈라지는 여왕의 머리.
명백한 피지컬의 차이였다.
이를 일궈 낸 찬영은 더는 한낱 인간으로 치부할 수 없다. 몬스터를 밟고 올라선 새로운 차원의 영장류, 자격을 갖춘 갓피스였다.
-여왕의 죽음으로 글라투가 분노했습니다.
-글라투의 분노로 인해 생존한 망령의 군대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해보자는 건가?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